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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55화 (155/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55화

대륙회의 (3)

꿀꺽-

누군가가 손을 들어 구매 의사를 드러낼 때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수식이 하나둘씩 사라져갈수록, 귀족들 사이에서는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일만의 군세를 소멸시키는 마법.”

한 국가의 귀족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그것은 어느 역사에 기록된 어떠한 마법과 궤를 달리한다.

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그만한 전쟁 억지력을 얻게 되는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명백히 도태되는 것이었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반드시 구해야만 하네.”

“예, 그건 그렇습니다만…….”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지불할 수 있지?”

“……그건.”

어느덧 책상 위에 남은 수식은 하나뿐.

그리고 이전, 네 번째의 대가는 그야말로 간이고 쓸개고 모든 것을 내준 수준이었다.

“당장 저희가 지불할 수 있는 것은 금화가 전부입니다. 급하지 않은 수출까지 제외하면 철광석까지도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해도…….”

“그래, 아마 이전의 대가에도 조금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예.”

막말로 이제는 국토라도 팔지 않는 이상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얻고 싶은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기에 내부의 모든 귀족들은 촉각을 곤두세운 채로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다.

일부는 그 자리에서 본국에 마법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게 보인다.

그 막대한 값어치를 치르지 못할 거라면 최소한 인근에 위치한 국가가 구매하는 것이라도 막아야 할 판국이었다.

그런 일념으로 처음의 협의는 무시한 채, 이젠 아군이었던 이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동부의 쓸모없는 일부 영지를 내어 줄까? 아니, 일단은 왕실에 연락해서 어떻게든 협상을…….’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다이아몬드 광산의 재량권을 요구하였어야 했거늘!’

‘제기랄, 이를 어쩌지? 빌어먹을 사이론 녀석들이 가장 먼저 수식을 채갈 줄이야…….’

계산에 이어진 계산.

살벌한 눈빛이 무수히 교환하던 그 순간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우리가 사는 것으로 하지요.”

“……!”

“대, 대체 누가…….”

회의장에 자리한 귀족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대마법의 수식하나.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지불하게 될 나라가 대체 어디인지 보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귀족들의 눈이 크게 띄어졌다.

“저 남자는……!”

세상의 지식을 꿰뚫듯 청명하게 번뜩이는 푸른 눈. 그리고 로브 사이로 드러난 수많은 문신까지.

일백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마기아’를 수호해 온 그 모습은 타국의 귀족들마저 익히 알고 있을 정도였다.

“대, 대현자!”

로드 헤임달.

그는 기록 이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대마법사로 꼽히는 남자였다.

* * *

마기아의 대마법사가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무려 십 년 만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을 상정하지 못한 것도 있으리라.

“……놈이 어째서 이곳에 있지?”

내내 비웃음으로 일관하던 연방제국의 귀족은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마법이란 수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맺는 데에 필요한 술자와 마력 등등. 수많은 요소가 결합 되어 만들어지는 이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연방제국은 이 상황에도 한 발자국 물러서서 웃을 수 있었다.

어차피 저들이 수식을 가져간다 한들 대마법사가 없는 이상 마법을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어떻게든 개량하여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위력이 반감될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

하지만 마기아의 대마법사가 온다면 말은 달랐다.

‘놈들도 이 마법을 노리고 있었나……!’

저들은 다른 피라미들과 다르다.

가진 수식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데다, 그것을 훨씬 강력하게 개량시킬 힘도 있었다.

하물며 이미 수식 중 하나는 연방제국의 품으로 들어왔다.

……네 번째 물건.

그것을 그들의 지원을 받는 국가에게 몰래 낙찰받도록 만들어 두었으니까.

그것은 연방제국에게 있어서도 무척이나 뼈아픈 출혈이었다.

한데 그런 상황에서 마기아에까지 수식이 들어간다면, 말 그대로 낙찰받게 한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에스테반 따위만 없다면 우리 연방제국이 마법을 지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늘……!’

저 마법을 대륙에서 오직 자신들만이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든다는 그 계획이, 시작부터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연방제국의 귀족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긴급사태다. 놈들에게 마법이 흘러 들어가서는 안 돼.”

“어떻게 할까요?”

“상회입찰 한다.”

재빨리 맞은편에 앉은 동맹국의 귀족에게 시선을 던졌다.

막대한 출혈은 감내해야겠지만, 지금 이 상황을 막을 방도는 그것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 대가로 마기아에서 개발된 대마법의 수식을 드리겠습니다.”

“……!”

하지만 그 헛된 계획조차 망가지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등한 수준의 마법.

마지막 다섯 번째 수식을 가져가는 대가로 제시한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대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 * *

“결정됐군.”

나는 책상 위에 놓인 다섯 뭉치의 종이를 밀쳤다.

그러고는 가져가라는 듯 눈짓하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제 이것들은 그대들의 것이다.”

정말로 저들이 이것을 흑마법의 산물이라 생각했든 혹은 다른 의도로 수식의 공개를 외쳤든.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수식을 공개하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과 결과는 저들이 그렸던 그림과 많이 달라졌지만.

“그러니 좋을 대로 하도록.”

“……알겠습니다.”

허가가 떨어지기 무섭게 네 국가에서 앞다투어 달려 나와 종이 뭉치를 채 갔다. 그리고 소중한 것을 숨기듯, 가슴팍에 꼬옥 안고는 빠르게 돌아갔다.

그 와중에 마기아의 대마법사는 나와 마탑주를 응시하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뭐……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지만.

‘어째서 이런 것을 공개했느냐는 뜻이겠지.’

나는 시선에 응수하듯 대마법사를 마주 보았다.

차라리 감추고 있었다면 모를까, 깔끔하게 공개한 이상 수상한 속내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여기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더 에스테반에서 펼쳐진 대마법의 특이성을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난 조금의 거짓도 말하지 않았다.

저것은 분명 마탑주가 펼친 대마법의 온전한 수식이었고, 고대의 마법 ‘미티어 스웜’의 정수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어, 어서 그 수식이 맞는지 확인해 보게!”

“알겠습니다.”

수식을 전달받은 귀족들은 수행 마법사들을 독촉했다.

그러자 비로소 그 비밀과 같던 수식의 실마리가 세상으로 공개되었다.

“…….”

“어…….”

하지만 종이 내부의 수식을 확인해 나가던 마법사들의 표정은 의문으로 찡그려지고 있었다.

그것은 명백한 ‘의문’이었다.

“이, 이게 뭐지…….”

“무슨 일인가?! 설마 잘못된 수식이 적혀 있는 겐가!”

“아, 아니…… 그건 아닙니다. 수식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만…….”

“에잇, 답답하게! 이리 내 보게!”

한 귀족이 마법사의 손에서 수식을 채 갔다.

그러고는 종이 내부에 적힌 내용을 황급히 읽어 내렸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을 ‘바라만 보는’ 것에 그쳤다.

“……이게 뭐지?”

“아, 아마 혼돈의 시대 훨씬 이전의 고대어로 추정됩니다.”

그것에는 기존 마법의 정수와 더불어, 중심축을 고대어로 쓰인 수식들이 적혀 있었다.

마법진 전체에 걸쳐서 말이다.

그들이 이를 확실히 읽어 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귀족과 마법사들의 황망한 눈빛을 확인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 전하…… 이건 대체…….”

“보다시피 마법의 수식이다만.”

“하, 하지만 이건…….”

“아, 말하는 것을 깜빡했군.”

나는 정녕 잊어버렸다는 듯이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거기에 적힌 마법 ‘미티어 스웜’은, 역사 속에서 사라진 고대의 마법을 복원한 것이란 사실을.”

“……!”

“고, 고대의 마법이라고?!”

“저, 정말로 고대의 마법을 복원하는 데에 성공했단 말입니까?”

“그래.”

수식을 구매한 귀족들은 물론이고 그 모습을 질시하던 귀족들까지. 모두 경악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말뜻을 이해하고 상황을 납득하기까지의 충격이 너무도 거대했던 탓이다.

‘표정들이 제법 압권이군.’

회의장에 적막이 감돌았다.

지금까지의 침묵이 분위기에 의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오직 충격 하나만으로 벌어진 침묵이었다.

특히나 그건 수식을 구매했던 귀족들이 더욱 그러했다.

“그렇다면 이건…….”

“뭐, 고대 마법의 수식이 되겠지.”

“……아.”

그들은 아예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신음 외에는 흘리지 못했다.

이미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늦었다.

“이, 이건 사기입니다!”

“어째서지?”

“고, 고대의 마법이라니…… 애초에 그런 것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그쪽에서 요구했던 것은 마법의 ‘수식’이 아니었던가?”

“…….”

“나는 그대들이 원하는 것을 주었고, 그게 전부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속이 탈 수밖에 없으리라.

당장이라도 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 여겼을 테니까.

“……큭.”

이 수식이 잘못됐기라도 했다면 항의라도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를 확인한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감탄하며 연구욕에 불타고 있었다. 얕은 지식으로나마 그 진위를 확신할 수 있던 것이다.

즉, 퇴로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리.

그리고 그사이.

“…….”

스윽-

고고하게 서 있던 로드 헤임달이 다가와서 수식을 살폈다.

“……그렇군.”

대현자인 그 역시 이 수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완성된’ 고대 마법의 위대함은 대현자라 불리며 칭송받는 그조차도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은 사용할 수 없는 마법이다.

애초에 고대어를 해석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데에 필요한 요소들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제야 그는 이 일련의 상황을 에스테반이 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사용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랬다.

마법은 수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손쉬운 마법조차도 발현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마법적 과정과 사용법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곳에 적힌 것은 수식과 마법진이 전부…….

해당 마법에 관련된 정보는 전무했다.

‘이를테면 어떤 원리로 수식이 작동하는지가 되겠지.’

만일 이것이 현대의 마법이었다면 수식만으로 유추해 내는 것은 간단할지 모르나, 고대의 모든 마법 지식이 소멸된 지금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대포의 작약만 존재해 있는 상황.

그것만 보고 포신과 포탄의 존재를 만들어 내라는 것과도 다르지 않았다.

‘이건 마법의 정보 원본을 가지고 있는 에스테반 외에는 사용하지 못한다.’

……완전히 당했군.

헤임달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그런 그의 눈이 에스테반의 1왕자와 대마법사에게 향했다.

귀족들의 면면들을 바라보며 짓는 조소는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으리라.

‘원하는 대로 수식은 줬다.’

하지만 네놈들은 결코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 * *

연방제국의 귀족은 몸을 떨었다.

그것은 이전과 다르게 분노와 당혹감이 아니었다.

공포.

저도 모르게 몸을 엎드리고 있는 것은, 분명 눈앞의 사내에게서 흘러나오는 ‘감각’ 때문이리라.

“그래서, 가지고 온 것은 이게 전부입니까?”

“그, 그렇습니다.”

스윽-

남자, 연방제국의 4황자는 수식이 적힌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확인해 나가며 입을 열었다.

“고대의 마법.”

“…….”

“당연히 해석은 불가능하겠지요.”

“마탑 소속의 고대학 학자들에게 해석을 요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그리하면, 해석이 가능합니까?”

“그, 그건 확신할 수가…….”

귀족은 말을 잇지 못하고 더욱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다.

저 점잖고 차분한 가면 뒤에 어떤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는지를.

쓸모가 없어진 이에게는 어떤 최후가 기다리고 있는지를.

그때, 무거운 분위기를 깨뜨려 주는 발걸음이 들려왔다.

저벅- 저벅-

“걱정하지 마십시오, 4황자 전하.”

“……!”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한 목소리.

바닥에 처박은 고개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볼 수 없었으나, 그것이 자신에게로 다가온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앞으로 다가와 멈춰 섰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땅으로 끌리는 검은색의 로브 자락과 구두뿐이었다.

“수식 따위가 없더라도 계획에는 아무런 차질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저희를 믿으십시오.”

……저희?

귀족이 그 단어에 의문을 품은 순간, 머릿속을 깨뜨리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 왔다.

“끄, 끄아아아악……!”

머릿속이 파괴되고 정신이 소멸되어 가는 고통.

귀족은 부릅뜬 눈을 들어 목소리의 주인공과 4황자를 쳐다보았다.

“흐, 흑마법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의 심장으로부터 뻗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과 그것이 4황자에 연결되어 있는 장면이었다.

그 경악을 끝으로 귀족은 영원한 안식 속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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