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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56화 (156/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56화

일상 회복 (1)

1왕자의 개인 전담 시종 로엘.

원래부터 그 외모와 나이 덕에 왕궁 시녀들에게 귀여움을 받던 아이였다.

삭막한 왕궁 속, 머리 위로 세탁이 끝난 옷들을 이고 뽈뽈뽈 뛰어가는 모습에서 사랑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시녀는 없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단순했던 평가가 묘하게 바뀐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저 아이가 바로…….”

기사들은 물론이고 귀족들까지. 로엘이 지나갈 때면 길을 비키고 서서 그녀를 주시했다.

무척이나 진지한 눈빛이었다.

“……그래, 전하께서 가르치신다는 제자일세.”

무려 스물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소드마스터가 된 1왕자, 그가 육성 중인 제자였다. 심지어 개인 시종으로까지 들이면서 가르치는.

하물며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저 아이가 마탑에서부터 왔다고 했던가?

“대마법사이신 마탑주께서 저 아이를 수련시켰다는 소문이 있네.”

“헛……! 확실한 소문인가?”

“왕실과 마탑에서 동시에 퍼진 소문이니 근거가 없지는 않을 걸세.”

즉, 저 아이는 소드마스터의 제자인 동시에 대마법사의 가르침을 받은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소문이란 으레 그렇듯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높다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는가?

귀족들은 경외감과 부러움에 사로잡힌 눈빛으로 로엘을 바라보았다.

“한 명은 역사 속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재능의 기사. 나머지 한 명은 온 대륙에 하나뿐인 마법을 사용하는 대마법사.”

“대체 얼마나 대단한 재능을 가졌기에…….”

“글쎄, 우리 같은 범인은 모를 일이지.”

이쯤 되면 불분명한 출신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웬만한 귀족 이상의 출세가 확실하게 보장된 인생!

그 존재만으로도 보는 이들의 경외감을 사기에는 충분했던 것이었다.

“…….”

하지만 그런 로엘은 주변의 어수선함은 전혀 모른 채로.

태연한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닭돌이야…… 밥 먹자.”

삐약!

……바로, 왕실에 남아 있는 마지막 그리폰에게로였다.

* * *

척-

“…….”

발테르 후작은 책상 위로 내던져진 서류들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열어 보기 싫다.

저것을 드는 순간, 자신은 분명 곤란함이라는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이다.

단순히 일거리가 늘어나는 것에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다.

“확인해 보도록.”

“…….”

하지만 이어진 목소리는 조금이라도 도망칠 곳을 남겨 두지 않았다.

결국 후작은 떨리는 손으로 서류들을 주워 들었고…….

“……컥!”

이내, 눈을 까뒤집으며 뒤로 쓰러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엄살이 제법이군.”

“엄살이 아닙니다, 전하!”

후작은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눈동자가 빙빙 돌아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서류를 내게 들이밀었다.

“대, 대체 이건 무엇입니까?! 금광의 소유권은 무엇이고, 또 이 수많은 물품은 대체 무어란 말입니까?!”

그것은 타국과의 협의를 체결했다 증명하는 계약서였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보는 대로다.”

“보는 대로라니…….”

“타국에서 에스테반에 물품을 보내오기로 했다.”

“그,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그것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상식적으로.

그 단어는 요즈음의 후작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이나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난다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닌 듯싶다.

“수식을 팔았다.”

“……예?”

“고대의 마법, 미티어 스웜의 수식을 타국에 팔아넘겼다.”

“…….”

허망한 듯 머리를 부여잡은 후작을 보며, 나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마지막까지 항변해 보았지만 이내 포기하더군.”

끝까지 값을 지불할 수 없다며 반항하던 귀족들은, 이내 마기아 측의 대마법사가 확언하자 입을 다물었다.

-이것은 에스테반에서 사용했던 대마법의 수식이 맞소.

-그, 그렇다면 마기아에서는…….

-이 또한 거래에서 어긋나지 않은 것. 마기아에서는 약조했던 대로 에스테반 측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겠습니다.

-……크윽.

그래.

거래의 조건은 어디까지나 에스테반 측이 수식을 공개하는 것이었지, 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따지고 든다면 당초 수식을 공개하라던 명분과 달라진다.

그들로서는 자승자박이나 다름없었다.

“뭐, 그들로도 어쩔 수 없었을 테지.”

의외였던 점은 아렌델의 행동이었다.

단순히 수식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경매에 참여한 것이 아닌, 정말로 제시한 대가를 모두 지불했다.

은혜를 갚고자 한 것일까?

이것으로 에스테반과의 신뢰를 쌓을 수 있다면 흔쾌히 지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후우.”

결국 계약서를 넘겨 가며 검토하던 후작은 체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은 알겠습니다. 지급받은 물품들을 어디에 사용할지는 내부 회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금광의 경우는 해당 국가에 다시 팔아넘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겠습니다.”

“그것도 재미있겠군.”

나는 찻잔을 들며 작게 눈썹을 으쓱댔다.

역시 편리하다.

이쪽에서는 물건만 가져다주면 알아서 처리해 주니까.

“그럼 처리 방안이 결정되면 사람을 보내도록.”

“……예, 전하.”

그렇게 용건을 끝내고 재무부를 나섰다.

문손잡이에 비친 후작의 표정은 거무죽죽했으나, 깔끔히 무시했다.

집무실로 돌아오자 비도르 남작과 조지가 무언가에 관해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 오셨군요.”

“무슨 일이지?”

“방금 전에 2왕자파의 귀족이었던 이들이 전하를 뵙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렇군.”

나는 일전에 내 집무실로 방문했던 귀족을 떠올렸다. 무작정 들이닥쳐 발이라도 핥을 것처럼 행동하던 그 모습을.

대륙회의 탓에 한동안 기별조차 넣지 못했으니 잔뜩 조급해졌을 터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남작이 조심스럽게 물었으나, 나는 시큰둥하게 반문했다.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지?”

“예? 아, 지금도 관련자가 있는지 꼼꼼하게 색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사가 끝난 뒤에 찾아오라 하도록.”

끼익-

그러고는 천천히 의자에 몸을 기대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때까지도 살아 있을 수 있다면 말이지.”

이미 놈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결심한 지 오래였다.

무고한 이들은 살아남을 것이나, 조금이라도 죄가 있다면 벌을 피해 갈 수는 없으리라.

‘그것은 회귀 전에 죄를 저질렀다 해도 마찬가지다.’

나를 배신한 이들.

……그리고 나를 배신할 이들.

놈들을 이번 기회에 정리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니 이 시기에 구태여 ‘죄인’들을 만나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만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죄가 없다고 밝혀진 이들 뿐이다.

‘두려움에 질려 있는 꼴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문득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녀석은 어디에 있지?”

“아, 로엘 그 아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남작은 품 안에 있던 회중시계를 꺼내 확인하고는 답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왕성의 뒤편에 들렸을 것입니다.”

“왕성의 뒤편?”

이제는 사라진 제1 기사단의 본부가 ‘위치했던’ 장소.

그리고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곳.

“거기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을 터인데.”

미간에 골을 만들자, 한참 동안 눈치를 조지가 쭈뼛대며 말했다.

“실은, 임시로 지어져 있던 그리폰의 사육시설이 그쪽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폰?”

“그, 뭐냐…… 병약한 놈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런 것도 있었지.”

알에서 깨어났던 그리폰들은 이미 대부분이 갈데르드 평야에서 드워프들의 손에 길러지고 있다.

하지만 딱 한 마리.

부화시기를 지나서 깨어난 그리폰은 사정상 왕실에서 길러지게 되었다.

녀석이 말하는 그리폰이란 아마 그 녀석이리라.

하지만 그건 분명 조지에게 관리를 맡겼을 터.

그런데 지금 로엘이 그곳에 가 있다는 말은…….

“맡긴 일을 또 넘겼군.”

“넘긴 게 아니고 본인이 좋아하길래…….”

녀석은 시선을 피했다.

그것은 무언의 긍정이었다. 잡일에 이어서 그리폰의 관리까지, 모조리 후임에게 떠넘긴 것이다.

나는 그 뺀질대는 모습에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잡무를 모조리 넘겼으니 시간이 많이 남았을 테군.”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렇다면 오늘부터 네놈은 남작의 일거리를 나눠 받는 것으로 하지.”

“…….”

남작의 지옥 같은 업무량을 떠올린 조지가 사색에 질렸다. 거의 트롤에 버금가는 푸르죽죽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사족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여기서 입 하나라도 뻥긋하면 업무량이 두 배가 될 것을 알았던 탓이다.

결국, 제 무덤을 스스로 판 격이었다.

‘……그나저나 그리폰이라.’

집무실 창밖으로 비추는 정원을 바라보았다.

처음 놈들이 왕궁을 점령했을 때는 바람 잘 날이 없었을 정도였으나, 지금까지 보고가 올라오지 않은 것을 보면 나머지 한 마리는 소동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그 지랄 맞던 성격들을 생각하면 의아할 따름이다.

“한 번 확인하러 가 보시겠습니까?”

남작이 물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러도록 하지.”

어차피 왕실의 관리하에 있는 이상 확인해 볼 필요는 있었다.

게다가 성장했을 로엘의 성취를 확인할 필요도 있었고. 일상이 회복되고 있는 지금은 그 정도의 여유쯤은 가능했다.

“안내하도록.”

* * *

왕궁의 뒤편에 마련했다는 사육장.

사육장 내부에 있는 녀석을 발견하자 내심 가지고 있던 의문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작군.”

삐약?

그곳에 있는 그리폰은 너무도 조그마했다.

날개를 다 펼쳐도 겨우 팔십 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한 크기.

알에서 막 태어났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이미 태어난 지 꽤 지난 점을 생각해 본다면, 활동량으로 보나 몸집의 크기로 보나 그 크기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소란이 없던 이유가 있었나.’

내 눈이 절로 찡그려졌다.

“원래 저렇게 작은 생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만.”

“하하…….”

“학자들은 뭐라고 하고 있지?”

그리폰의 사육사는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상하게 이 아이는 성장이 더딘 것 같습니다. 학자들은 부화 예정일을 훨씬 지나서 태어난 부작용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원인을 모른다는 소리군.”

원래도 알려진 게 많지 않은 생물이었던 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그런 사육장 내부. 로엘은 말없이 그것과 놀아 주고 있었다.

조지는 은근슬쩍 다가오며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뭐랬습니까? 전부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니까요?”

“닥쳐라.”

“…….”

나는 그 한심한 소리를 일축하며 물었다.

“그것 외에는 문제가 없나?”

“예, 건강 자체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

어차피 연구용으로 놔둔 것이었기에 상관은 없었지만, 저대로면 연구용으로의 가치조차도 없을 것 같다.

그때 문득 학자들이 지나가던 말로 지껄이던 것이 떠올랐는지 조지가 눈을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리폰의 고기가 그렇게 별미라던데.”

삐약?!

귀도 밝은지 사육장 내부에 있던 그리폰의 몸이 움찔거리는 게 보인다.

마찬가지로 로엘 역시 황급히 달려 나와 조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닭돌이는…… 먹을 거 아니야…….”

“아니, 그, 그게 아니고.”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신난 듯 지껄이던 조지였다.

이제는 한심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나는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다, 몸을 돌려서 사육장을 빠져나왔다.

“……엇, 어디로 가십니까?”

“마탑.”

비도르 남작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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