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57화
일상 회복 (2)
마탑에서 자체적으로 마법의 원자재를 생산하게 된 이후.
에스테반의 왕국 마탑은 연금술의 분야에도 발길을 뻗어 나가게 되었다.
영약 제조부터 포션의 개량까지.
또다시 독자적인 방향성으로 발전을 시작한 것이다.
본래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던 에스테반의 마법들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런 연금술 분야 개발의 책임자를 맡은 마법사는 뜬금없는 요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동물의 성장을 촉진 시킬 수 있는 약 말입니까?”
“그래.”
나는 마탑까지 따라온 남작 일행을 향해 눈짓했다.
정확히는 그 뒤에 숨어 있는 로엘과 품에 안긴 그리폰을 향해서였다.
마법사의 눈이 끔뻑끔뻑 두 번 깜빡였다.
“혹 이번에 새로 부화한 그리폰이 있었습니까?”
“예정보다 늦게 부화했을 뿐,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놈이다.”
“……작네요.”
“그래서 문제지.”
이미 그리폰의 막대한 성장 속도는 마탑에도 알려진 지 오래였다.
그러니 저 어린아이의 품에도 안길 수 있는 크기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쯤은 마법사도 알고 있었다.
“흐음…….”
마법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다가, 그리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성장 촉진이고 나발이고, 일단은 상태를 알아야 뭘 하든 할 게 아닌가?
하지만 로엘의 품속에서 온순하게 안겨 있던 그리폰은 마법사의 손이 다가오자마자 눈을 부라리며 부리를 쪼아 댔다.
삐약!
쿡 쿡-!
“으악!”
마법사는 화들짝 놀라며 아려오는 손등을 부여잡았다.
그러고는 나와 로엘을 번갈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겨, 경계심이 엄청나군요. 대체 저 아이는 어떻게 저러고 있는 것입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은 저래 보여도 놈은 창공의 제왕이라 불리는 그리폰이었으니…….
나로서도 온순하게 안겨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크흠……! 일단은 전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겠습니다.”
마법사는 머쓱하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곤 이내 연구실의 선반을 뒤적거리다가 노란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 하나를 꺼내왔다.
“그리폰에게도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것을 먹여 보시지요.”
“이건?”
“가축용으로 제작되고 있는 일종의 영양제입니다.”
그렇군.
나는 플라스크를 받아 들고 내부의 액체를 흔들어서 확인했다.
예정보다 늦게 부화했기에 부작용이 생긴 것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늦게 태어난 데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애초부터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부작용의 인과관계가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마법사도 새로운 약을 만들기보다는 영양제를 건네주었으리라.
‘나쁘지 않은 해결법일지도 모르겠군.’
“우선은 먹여 보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특수한 재료는 아닌지라, 큰 부작용은 없는 것이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스윽-
그렇게 영양제를 챙겨 드는 내 뒤로 히죽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은데.”
“…….”
꼭 이런 상황에서마저 초를 치는 것은.
……조지였다.
하지만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했던가?
아니나 다를까, 사건은 영양제를 먹인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벌어졌다.
“이, 이건…….”
남작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양제를 먹은 이후부터 그리폰이 눈에 띄게 자라나는 것이 보였던 탓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삐약!
“…….”
“얼씨구? 못 본 사이에 통통해졌는데요?”
……위아래로 자라나는 것이 아닌, 옆으로만 자라고 있었다.
다른 곳은 멀쩡한데 뱃살만 늘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비정상적으로 뚱뚱해진 수준이다.
“……닭돌이, 무거워.”
로엘은 낑낑거리며 들고 있던 그리폰을 내려놓았다.
삐약?!
푸드덕- 푸드덕-
그러자 그리폰은 잔뜩 울음소리를 내며 로엘의 품 안으로 날기 위해 파닥거렸다.
물론, 그 무거워진 몸이 제대로 날 수 있을 리는 없었고.
“이, 이걸 어쩌죠?”
남작은 그 모습을 보며 당황한 채 내게 물었다.
그리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라고 별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조지에게는 마땅한 해결법이 있는 모양이었다.
“근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짜로 잡아먹는 건 어떱니까?”
“그것도 나쁘지는 않군.”
“이보게 조지 군!”
뺙! 뺙!
콕콕콕!
“이, 이런 닭 다리처럼 푸짐하게 생긴 게!”
삐약!!
결국 녀석은 값비싼 양복바지의 다리가 구멍이 난 뒤에야 부리의 공격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한 번 놀린 것치고는 꽤 비싼 대가였다.
“헉, 허억…… 차라리 이대로 내버려 두고 알아서 살라고 합시다.”
“그건 안 될 말이지.”
“예?”
나는 다리를 부여잡은 조지의 말에 단호하게 일축했다.
그런 그리폰을 바라보는 눈은 섬뜩할 정도로 무표정했다.
“놈을 왕성에서 기르기로 한 것은 어떻게든 쓸모가 있을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연구용으로 사용하여 갈데르드 평야로 보내진 그리폰들의 육성에 도움이 되든. 거기서 더 나아가 직접 사육하는 것으로 전서구 이상의 쓸모를 찾든.
기본적으로 사육의 동기는 ‘쓸모’였지, 자선사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뭔가?”
“쓸모가 없을 거라면 구태여 왕성에서 기를 이유가 있나?”
“뭐, 그건 그러네요.”
“굳이 애완동물 따위로 왕성의 돈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낭비.
녀석에게서 쓸모를 찾지 못한다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전운이 불어닥치는 지금에는 특히 한 푼의 예산도 허투루 소모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리폰과 실랑이 중인 로엘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서든 쓸모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이런 데에는 철저하시네요.”
……뭐, 냉철하다고 해야 할지.
“일단은 먹는 것보다는 쓸모가 있게 해 보겠습니다.”
조지는 어깨를 으쓱이며 뒷말을 이었다.
“마침 좋은 것이 떠올랐거든요.
* * *
그렇게 그리폰.
……닭돌이는 조지에게 맡겨졌다.
로엘의 손이 아닌 다른 이에게 맡겨지는 것이 싫었는지 잠깐 난동을 부리기는 했다만.
내 싸늘한 눈빛을 바라보자 금세 진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로엘은 내 일정에 맞춰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고 있었다.
녀석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 수련장으로 향한 것이다.
“발전은 있었을 테지.”
“……응.”
마주하는 투지.
지금까지의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던지, 겨누어진 레이피어의 날 끝은 처음과 다르게 떨리지 않았다.
자기 몸통만 한 그리폰을 가뿐히 들고 다닐 정도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그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었기에, 나는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검술은 어떨까.”
검술이란 제아무리 재능이 있다 해도 일이 년 사이에 통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신체 능력이 압도적으로 부족했던 로엘의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나는 이번 내전에 녀석을 참전시켰다.
‘전쟁의 살의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
상대를 죽이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효율적인 궤적.
그리고 효율적인 움직임.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몸짓에 배어 나옴으로써, 비로소 무기를 다룰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틀이 완성되는 것이다.
듣자 하니 성벽을 방어하는 데 나름의 공을 세웠다고 했던가?
아티팩트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으니 세간에 알려지지는 않았더라도, 제2 기사단을 통해 들은 사실이니 확실할 터다.
‘기대되는군.’
나는 손가락 끝을 까닥이는 것으로 시작의 신호를 알렸다.
그리고 로엘의 작은 몸이 일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
챙!
……재빠른 런지(Lunge), 이어지는 측면의 찌르기.
그렇다면 다음은 무너진 자세를 바로잡기 위한 물러섬인가?
나는 레이피어를 쳐 내며 녀석의 다음 행동을 예상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력하게 쳐 내어진 것을 확인했음에도, 녀석은 당황하지 않고 마나를 더욱 강하게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로엘의 팔은 마나의 반발력으로 휘어지며 다음 공격으로 자연스럽게 쇄도했다.
신체 강화를 자유자재로 끌어낸 뒤, 튕겨 나간 팔의 움직임을 절제한 것이다.
우우우웅!
“호오.”
슉- 슉-!
이어진 두 번의 찌르기는 질풍과도 같았다.
각각 목을 노리고 한번. 그리고 피할 방향을 예측하면서 허공으로 다시 한번.
작은 키를 이용하여 시야에 닿지 않는 낮은 궤도에서부터 찔려져 온 공격이었기에, 자칫 당황했다가는 실력 있는 기사조차도 두 번째 공격을 허용해야 할 수준이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가볍게 움직이는 것으로 그것을 파훼해 냈다.
“움직임은 제법이었다만 빈틈을 만드는 실력은 아직 부족하군.”
슈우욱!
청록색의 칼날이 여리한 목을 노리고 짓쳐 들었다.
로엘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순간적으로 마나를 끌어올리며, 미처 바로잡지 못한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그 순간이었다.
“……!”
슈우우욱!
목을 노리고 쏘아졌다 생각했던 검은 어느새 그녀가 움직이는 방향을 정면으로 노리고 있었다.
거의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목을 향해 검이 내질러졌던 것도. 그리고, 피할 방향을 예측해 한 번 더 찔러진 것도.
……아니.
어쩌면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찰나의 시간에, 이미 두 번의 검격이 ‘동시에’ 내질러진 것일지도 몰랐다.
“명심해라.”
“…….”
그렇게 순식간에 다가온 검은 로엘의 눈앞에서 멈추었다.
짐짓 아슬해 보이는 그 거리는, 다만 무엇보다도 안전한 간격.
나는 멀뚱멀뚱 눈만 깜빡거리는 로엘을 바라보며, 천천히 검을 회수했다.
“빈틈을 만들려거든, 허와 실을 적절히 분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응.”
“나쁘지 않았다.”
이제는 제법 길게 자라난 머리카락을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그것이 기분이 좋았는지, 로엘은 눈을 감으며 부드럽게 다가오는 감촉을 만끽했다.
‘제법이군.’
당연히 빈말은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전과 다르게 폭발적으로 성장한 움직임과 감각.
마법의 증폭이라는 고유의 힘을 갈고닦고 검술에 녹여낸 그 형태는, 진정으로 내가 바라던 것이었으니까.
이러한 방향성을 드러내기까지, 아마도 무던한 노력들이 뒤따랐을 터였다.
‘조금만 더 성장하면 정말로 소드 엑스퍼트 급의 기사와도 맞붙을 수 있겠군.’
그렇게 속으로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던 그때였다.
“아, 대련이 끝났습니까? 좋은 타이밍에 도착했군요.”
무언가를 손에 든 비도르 남작이 수련장으로 들어왔다.
나는 남작의 손에 들린 물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풍석이군.”
“예, 그렇습니다. 마탑주께서 직접 아렌델에 다녀오셨습니다.”
아렌델에서는 수식을 제공하는 대가로 금광을 비롯한 여러 물건들을 제시했다.
그리고 저 바람의 속성을 담은 마정석은 제공하기로 한 것 중에 하나.
그것을 지금 받아왔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물건이 벌써 준비되었던가.”
“아마 처음부터 에스테반으로 보낼 생각으로 모아 두었던 모양입니다. 최근에 에스테반에서 대대적으로 매입하기도 했으니까요.”“……그렇군.”
에스테반에서 저것을 매입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갈데르드 평야에서 육성 중인 그리폰들을 위해서.
정확히는, 놈들이 낳게 될 알을 보다 수월하게 부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렌델에서는 그것을 보고 황급히 물량을 모아 두었던 것 같았다.
“귀중한 물건이니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테지.”
“이렇게나마 보답하는 것이 미안하다는 말도 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쪽에서도 통신을 보내야겠군.”
그렇게 의외의 수확에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쾅!!
“헛?!”
왕궁의 어딘가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당황한 비도르 남작은 폭발음이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고…….
“저, 저기는 풍석을 가지고 온 곳인데?”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곳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