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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58화 (158/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58화

일상 회복 (3)

쿠구구구궁-!

투두둑-

미약한 진동이 연신 이어졌다.

고풍스러움을 연출하던 왕성 입구의 기둥이 흔들리며 돌가루가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황급하게 그곳으로 도착한 남작은 몰려든 사용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소리쳤다.

“자, 잠시만 비켜 주시게나!”

분명 풍석이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건 분류 작업에 착수하기 위해 사람을 불렀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이 폭발은 대체 뭐란 말인가?

설마 풍석에 무언가 문제라도 있었다는 말인가!

‘절대로 그럴 리가 없을 터인데……!’

남작은 어느새 본인이 기사 못지않은 움직임으로 인파를 헤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렇게 사건의 중심부로 달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드러난 광경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저, 저게 무슨……!”

차라리 풍석에 문제가 있었다면 다행이었다.

적어도 그건 변명할 거리라도 있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조지 군! 거기서 무얼 하는 것인가!”

“하, 하하…… 그게…….”

주저앉아 헛웃음을 흘리는 조지.

……그리고 풍석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부리를 우물거리는 그리폰의 모습까지.

이 상황이 납득이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왕궁에서 벌어진 때아닌 소란의 주범이. 다름 아닌 그들이었다는 사실을.

‘이,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지!’

정신이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원인 불명의 폭발은 고사하고, 지금도 저 그리폰의 입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풍석 만큼은 어떡해서든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남작은 애써 팔을 휘적거리며 조지를 재촉했다.

“상황은 나중에 설명하고 우선은 저 아이를 떼어 내게!”

“……아, 그게, 이미 시도해 봤는데 불가능하던데요.”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저 뭉툭한 닭 다리 녀석, 어찌나 힘이 센지 당겨도 꿈쩍도 안 합니다.”

“또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흐어억?!”

그 순간 조지를 다그치던 남작이 기겁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돌연 만족한 듯 날개를 푸드덕거리던 그리폰의 몸이 번쩍하고 빛났기 때문이다.

우우우웅!

“무, 물러서시게들!”

설상가상으로 번뜩이는 몸통은 마치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팽창했다.

이제는 수습이고 나발이고 사람들을 물려야 할 판국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팽창하던 몸은, 수 배가 넘게 거대해진 후에도 잠잠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을 잠잠하다고 해야 할지…….

터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은 이전의 모습과 다르게 수 배는 거대해졌을 뿐이었다.

캬아아악!

“……그리폰?”

높이만 해도 성인의 키를 가뿐히 넘어가는 체형.

그리고 이전의 앙증맞던 날개와 다르게 활짝 펼쳐진 제왕의 그것…….

그 날카로운 울음소리에 남작과 조지는 놀란 시선을 교환했다.

* * *

“……우선, 한 시간 전에 발생했던 소동은 그리폰이 난동을 피운 탓에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살의가 담긴 눈빛 덕분에 그나마 고분고분하던 모습도 잠시.

풍석이 담긴 수레 앞으로 다가갈 때 즈음, 그리폰은 돌연 무언가를 감지한 듯이 조지의 통제를 벗어나 날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풍석이 실린 수레로 달려들어 얼굴을 처박은 데까지가 그 소란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남작은 면목 없다는 듯, 한껏 침울해진 표정으로 보고를 이어 갔다.

“그리폰이 난동을 부리며 일으킨 재산의 손실은 40만 골드 정도. 거기에 풍석은 총합 여덟 덩이를 삼켰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그것보다도 문제는…….”

말을 흐린 남작의 시선이 십여 미터가량 떨어진 정원의 한복판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놀고 있는 그리폰 한 마리가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명백히, 그것은 ‘그리폰’이었다.

“……갑자기 저 아이의 몸집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졌다는 점입니다.”

“음.”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폰을 응시했다.

기실 비정상적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녀석이 자란 시간을 계산해 본다면 저 정도의 몸체가 당연하였으니까.

하지만 급작스러운 격변이었으니만큼, 비정상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뭐, 보다 정확히는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지.’

생명체인 그리폰이 마정석의 부류인 풍석을 먹은 것도 황당하지만, 그 이상으로 황당한 것은 지금 이 상황 자체라는 소리였다.

심지어 몸뚱이만 커졌을 뿐, 그 성향이 바뀐 것도 아니었으니.

끼룩?

“…….”

캭! 캭!

“…….”

녀석은 로엘 주변을 맴돌며 여전한 애정을 과시했다.

아직도 자신의 크기가 쥐꼬리만 하다 생각하는지, 로엘의 품속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파고들려는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덕분에 로엘은 자기 키의 두 배나 거대한 그리폰의 애정 공세를 곤란한 표정으로 받아야만 했지만.

“그래서, 녀석이 변한 원인은 뭐라고 하지.”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물었다.

“아마, 짧은 소견으로는 부족했던 원소를 충족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남작이 아닌 그 뒤에서 들려왔다.

마탑주였다.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흥미로운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허허, 풍석이 일부 소실되었다기에 무슨 일인지 보려고 왔습니다만…… 예상보다 더욱 흥미로운 현상이군요.”

“설명하도록.”

“쉽게 설명 드리자면, 그 미숙한 부화와도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아직 그리폰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학자들은 제법 많은 것을 추측해 낼 수 있었다.

하나는 알이 부화하고 자라나는 데에는 바람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다른 알들이 거의 동시에 깨어난 것을 보아서 산란기의 시기가 무척이나 일정하다는 것.

하지만 저 녀석은 다른 그리폰들과는 달리 무척이나 늦게 부화했다.

아마 그 이유는 다른 알들보다도 바람의 힘을 적게 흡수했던 탓이라는 것이 마탑주의 의견이었다.

“즉, 녀석의 몸이 커지지 않았던 것도 그 탓이라는 소리겠군.”

“직접 두 눈으로 보니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 아이의 몸을 이루는 내부의 원소는 무척이나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부족했던 것을 직접 충족했으니 몸집이 커졌다.

아니, 정상의 범주로 돌아왔다.

거기까지는 이해했다. 그렇다면 주변으로 증폭된 ‘마나’를 발산하는 로엘을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갔고.

하지만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은 무슨 뜻이지?

그러자 마탑주는 그 의문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설명을 이어 갔다.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섭취한 것이 아니기에 몸이 바람의 원소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도 원소가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머지않아서 본래대로 돌아온다는 말인가.”

“예, 아마 그리되겠지요. 대략 적으로 두 시간이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성장기에 굶주렸던 아이가 성년이 된 후에 많이 먹는다고 해도, 왜소한 체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비슷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작아진 이후에 풍석에 환장하는 것은 똑같겠군.”

“이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훈련을 시키시렵니까?”

“그래야지. 놈이 지금처럼 멋대로 하지 못하도록.”

훈련은 익숙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앞선 그리폰들을 직접 훈련 시킨 경험이 있었으므로.

마탑주는 그것이 재미있었는지,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그래도 저토록 로엘을 잘 따른다면 문제는 없지 않겠습니까?”

“효율의 차이라는 거다.”

지극히 결론적으로만 말하면 연비 나쁜 그리폰이다. 그것도 그 귀한 풍석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그나마 연구자료와 더불어 쓸모를 갖췄다는 것에 기뻐해야 할지…….

“확실히 닭고기 신세는 면한 것인가.”

“허허.”

놔두면 원래대로 돌아온다니, 지켜보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녀석을 제어 가능한 로엘 역시 나름의 실력을 갖췄으니 문제가 생길 것도 없으리라.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어디로 가십니까?”

“돌아간다.”

그래, 아직 해결해야 할 것은 남아 있었다.

지금도 ‘그 녀석’이 내 방문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소동에 대한 보답으로 무슨 선물을 줘야 할까.”

……흠칫!

방 안, 침대 밑에 숨어 있던 조지의 몸이 움찔거렸다.

팔에 우수수 돋는 닭살은 이후의 고통을 예언하듯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 *

요 며칠 사이에 조지의 얼굴은 무척이나 초췌해졌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전보다 수 배는 늘어난 일거리 탓이다.

“그러니까…… 저는 더도 덜도 아니고 딱 하나만 먹여 보려 했단 말입니다.”

“그, 그런가…….”

남작은 억울해하는 조지의 눈치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언뜻 보면 위로해 주는 듯했다.

하지만 그 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결국 자업자득이 아닌가…….’

풍석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조지는 좋은 생각을 떠올리고는 그리폰을 끌고 움직였다.

바로, 그 풍석을 그리폰에게 주는 것이었다.

구하기 힘들기에 하나만으로도 들어가는 엄청난 금액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멍청한 생각이었지만, 바람의 원소가 그리폰의 힘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금,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론이 있었을 터다.

당연히 통제 불능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결국 저 그리폰이…… 그 뭐냐…….”

“……성체화?”

“예, 뭐, 아무튼 그거.”

조지는 손뼉을 맞부딪치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폰이 성체화 한다는 것을 알아낸 것은 제가 아닙니까?”

“그건 그렇다만…….”

“그런데 상을 주지도 못할지언정 벌을 주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합리적인 처분이 아닙니다.”

“…….”

당장 수리비로만 40만 골드의 지출을 남긴 사람이 당당하게 지껄일 말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 귀한 풍석을 몇 개나 소모했던지…….

그러나 남작은 마지못해 고개를 까닥일지언정 공감을 표하지는 않았다.

‘……미안하네. 나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많은 조지의 일거리는 자신의 업무에서 비롯된 것.

조지의 얼굴은 날로 초췌해질지 모르겠지만, 그 본인은 어느 때보다 편안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남작은 연신 헛기침만 이어 갈 뿐이었다.

같은 시각.

나는 어두컴컴한 복도를 따라서 나아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복도의 끝에 있는 미약한 불빛을 향해 손을 뻗었을 때, 당연하게도 내 손에는 문고리가 잡혀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여기까지 직접 찾아와 주시다니.”

소름 끼치도록 기괴한 목소리가 울리고.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얼굴을 감싸고 있는 무수한 붕대가 보였다.

입고 있는 검은 양복과 전혀 매치 되지 않는 모양새.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의 맞은편으로 걸어가서 앉았다.

……암지의 지배자, 존 헤드윅.

녀석은 내 방문을 무던히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비즈니스는 곧 신뢰의 연장선, 직접 저를 찾아와 주신 것은 신뢰를 위해서입니까?”

“네까짓 놈의 신뢰를 사서 내게 무슨 이득이 있지?”

“하하. 예, 그것도 맞는 말씀이시지요.”

이내 환영한다는 듯, 놈의 몸이 우아하게 굽혀졌다.

얼굴의 붕대를 반쯤 가리던 페도라는 마치 귀족의 예우처럼 배꼽 위로 비스듬하게 얹혔다.

나는 무표정하게 그것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시켰던 일은.”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덕분에 쉽게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붕대 사이로 감춰진 눈이 번뜩였다.

“처형된 2왕자파 귀족들의 사업체는 이제 저희 음지의 것입니다.”

2왕자파가 여론을 움직이며 나를 압박하던 그때, 나는 놈에게 통신을 보내 미래를 대비하라고 지시해 두었다.

2왕자파는 곧 궤멸할 것이라고.

그러니 놈들의 사업체를 점거할 대비에 충실하라고.

그러면서 몇몇 귀족의 이름들을 녀석에게 보냈다.

당연히 그것은 반란에 참여할 가능성이 가장 큰 놈들의 이름이었고.

그렇다면 그 이후의 일은 간단했다.

미리 죽을 놈들의 명단을 알고 있던 음지는 즉각적으로 움직여 사업체의 규모와 가짓수를 파악해 두고, 놈들이 처형당하자 홀라당 그것을 삼켜 버렸다.

말 그대로 헐값이었다.

주인을 잃고 방황하던 그것들을 시세의 절반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모조리 집어삼킨 것이다.

스윽-

“이건.”

“그 사업체를 토대로 네놈들이 해야 할 일이다.”

나는 그런 존 헤드윅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붕대 속에 가려진 놈의 입꼬리가 짙게 올라간 것은 당연하리라.

“……그렇군요.”

앞선 경험들로 미루어 보아서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돈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이것 또한 서로에게 윈윈이 되어 주는 비즈니스의 일환이 되리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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