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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59화 (159/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59화

책봉식 (1)

왕성에서 벌어졌던 의문의 소란.

결국 그것은 어떻게든 흐지부지 넘어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각별한 경계 태세를 요구하는 왕실의 일을 생각하면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 속에 누군가의 헌신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 사람들에게는 모두 알려진 사실이었다.

“예산의 편성까지도 완료되었으니 이제 한숨 놓아도 될 걸세.”

“……후우, 감사합니다.”

“허허, 무얼 감사까지야. 나는 그저 예산안을 통과시켜 준 것밖에는 없네.”

비도르 남작은 발테르 후작의 말에 식은땀을 훔치며 반색했다.

수리 예산이 편성되었다는 말은,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별도로 묻지 않겠다는 뜻과도 같았으니까.

‘이미 그 죗값을 호되게 치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자업자득이었다.

한숨을 내쉬는 남작의 얼굴에 언뜻 한심함이 스쳐 지나간 듯하다.

물론 왕실의 일이었으니만큼 유야무야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으나, 제 상관인 1왕자의 비호 덕분에 그것이 가능했다.

아마 현 왕실의 권력 구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상황이었으리라.

또한 그와는 별개로 지금 이 상황은 남작이 바라던 방향임이 틀림없었다.

“어차피 왕궁의 유지 보수가 필요한 시점이기는 했습니다. 현왕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별다른 보수가 없지 않았습니까?”

“음…… 확실히 그렇지. 거진 이십오 년 만일세.”

“대대적인 보수를 진행한다면 필시 이전보다 안정성 역시 높아질 테지요. 이번 일을 계기로 드워프에게 꾸준히 관리를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드워프들에게 부탁한다면 확실하겠지.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하하.”

남작은 돌아온 답변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왕궁은 언젠가 1왕자가 사용하게 될 에스테반의 심장이었다.

언제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며, 조금의 모난 곳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조지 군의 실수도 넘어갈 수 있으면서도 왕궁을 보수할 수 있다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그야말로 보좌관이 할 수 있는 완벽한 대처라고 하겠다.

그때,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속에서 후작이 입을 열었다.

“허허,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가장 먼저 식을 진행할 장소를 따로 짓겠는가? 따지고 보면 드워프들을 데리고 오신 업적을 남겨야 하기도 하고.”

“예?”

“음?”

“식이라니요? 무슨 중요한 일이 있습니까?”

남작이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남작의 반문에 더욱 놀란 것은 발테르 후작이었다.

“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1왕자 전하의 왕세자 책봉식 말일세.”

“그게 무슨…….”

“설마 전하께 듣지 못하였는가? 머지않아 왕세자의 책봉식이 있을 거라는 내용을?”

“……예?”

책봉식?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했던가.

남작은 혼란과 당혹감 사이에서 처음 듣는다는 듯이 두 눈을 부릅떴다.

“책봉식의 날짜가 결정됐단 말입니까?”

“그, 그러네. 이미 관련 예산을 책정하기 위해 재무부에 공문이 내려왔네.”

“대, 대체 언제…… 혹 최근 제가 자리를 비웠을 때 결정됐습니까?”

“이, 이미 오래전의 일인 것을…….”

“…….”

언뜻, 턱을 다물지 못하는 것이 혼이 나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팔을 내저으면서까지 당황하는 후작을 보면 농담이 아니란 것 역시 알 수 있었고.

그러니 더욱 황당했다.

‘나는 어째서 그런 소식을 타인의 입으로 전달받아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이미 재무부에까지 퍼져 나간 사실을.

“자, 잠시만 기다려 보게.”

그런 남작을 바라보던 후작은 당황해하며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황금빛 무늬로 고풍스럽게 장식되어있는 왕실의 서신이었다.

“때마침 사본이 남아 있었군. 일단은 이것일세. 혹 비슷하게 생긴 것을 보지 못했는가?”

“처음 보는 것입니다.”

“허, 거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분명히 자네에게도 전했던 걸로 기억하네만.”

“그, 그렇습니까?”

스륵-

그 의문을 뒤로하고 남작은 조심스레 서신의 봉인을 풀어 나갔다.

“어디 보자…….”

그리고 고풍스러운 종이에 적힌 서신을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손에서 서신이 떨어져 내렸다.

툭-

“…….”

종이조차 들지 못할 정도로 손아귀에 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인제 와서 왕세자 책봉식에 새삼스레 당황한 것도 아니었고. 다만 그 내용에 예상치 못한 것이 함께 적혀 있었기에, 충격으로 손이 떨려 왔을 뿐이었다.

“이, 이게 무슨 소리지…….”

황금빛 서신에 담긴 내용.

-……하여, 왕실에서는 책봉식과 함께 오랜 기간 에스테반을 위해 노력해 온 귀족들의 노고와 공로를 치하하는바.

-지엄하신 국왕 전하께서는 귀족들에게 새 작위와 영지를 수여하실 것을 약조하셨습니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서열을 갖추게 될 오등작의 귀족에게 ‘미리’ 보내는 안내장을 겸한다는 사실을.

이 서신을 처음 보는 남작이 알고 있었을 리는 없었다.

-……남작, 테일러 비도르 공에 수여될 작위는 후작입니다.

-해당 귀족들은 미리 승작에 대비하여 책봉식에 이어지는 수여식에 차질이 없게 하십시오.

“후, 후작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허, 그 반응을 보니 정말로 금시초문인 모양이군.”

남작은 지금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후작위에 오르는 것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원체 욕심이 없기도 했거니, 애당초 남작이 후작위로 승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실제로 여태 그런 적이 없었다!

‘당최 이건 무슨 상황인…….’

번뜩!

그 순간, 정신을 차린 남작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서신이 누락이 되었구나!’

이런 중요한 서신을 왕실에서 보내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발테르 후작 역시 받지 못했느냐며 의문을 표하기도 했고.

그렇다면 이렇게 된 것은 명확히 ‘누군가’가 누락시켰다는 뜻이었다.

그래, 바로 중간에 있을 ‘누군가가’ 말이다.

드르륵-

오늘따라 의자 끌리는 소리는 또 왜 이리 이빨을 가는 것 같은지.

“……이런 중요한 소식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준비에 늦을 뻔했습니다.”

“그, 그런가?”

“또한 책봉식과 관련된 내용은 자세히 알아보고 추후에 안건을 올리겠습니다. 제가 아직 아는 것이 없다 보니.”

“그, 그러도록 하게나?”

무척이나 담담한 어투.

하지만 흡사 전쟁터로 나가는 듯한 그 기백이 어찌나 무서웠는지, 후작조차 몸을 움찔거릴 정도였다.

끼이익-

그렇게 남작은 부릅뜬 눈으로 재무부를 빠져나갔다.

* * *

한편, 집무실에서 서류를 뒤적거리던 조지는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런데 요새 남작님이 안 보이네요. 대체 뭘 하고 다닌답니까?”

“모르겠군.”

나는 작게 어깨를 으쓱이며 서류를 확인해 나갔다.

책상 위에 가득한 서류들은, 이번에 새로운 작위를 받게 될 귀족들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처형된 반란군의 자리를 대신할 귀족들.

또한, 조만간 축출될 2왕자파의 잔당들을 대신할 귀족들에 관한 것까지.

물론 그곳에 새로 후작위(位)를 받게 될 남작의 서류가 있는 것은 당연했다.

“뭐, 그리폰 사태의 사후 처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더군. 유지 보수가 필요했으니 잘 되었다며.”

“아니, 굳이 지금 이 시기에 말입니까?”

담담한 내 말에 조지가 혀를 내둘렀다.

“남작에서 후작이 되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산더미일 텐데, 용케도 그런 이야기를 꺼낸답니까? 당장 본인 수여식이나 생각할 것이지…….”

“모르는 일이지.”

“하이고, 일에 미친 것도 아니고 무슨.”

그렇게 몸서리치던 조지가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용케도 후작위를 선뜻 주기로 했네요.”

“음.”

남작에서 곧장 후작위를 받는 경우는 대륙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애초에 그런 파격적인 인사를 결정할 일도 없었을뿐더러, 거기서 나오는 반발을 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감히 내 말에 거역할 귀족 따위는 없다.’

반대파의 반란을 저지하고 잔당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지금.

오히려 내 말에 고개를 조아렸으면 조아렸지, 대들 만큼 간 큰 귀족이 있을 리 없었다.

명백한 월권행위처럼 보일 수 있는 이것들을 1왕자인 내가 처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이유였다.

‘현 상황에서는 왕세자라는 이름 역시 허울에 불과하다.’

절대적인 권력.

이미 그것은 내 손에 들어온 지 오래였다.

줄곧 바라던 바였다.

“어쨌든 앞으로의 일들을 수월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이 필요하다.”

“뭐, 후작 정도면 굳이 상부에 거치지 않아도 될 만큼 확실한 작위라는 것이겠죠.”

“그래.”

지금의 방식은 비효율적이다.

무언가를 하려 하더라도 남작의 손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가 후작이 된다면 말은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의 손을 거치지 않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쥐여 줘야겠지.”

“그런데 남작님의 성격을 생각하면 무리 아닙니까?”

“딱히 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불가능했다면, 처음부터 고려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어디까지나 정확한 설계와 계산으로 짜인 상황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이변은 없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바로 나였다.

끼이익-!

그런 그 순간이었다.

집무실의 문이 열리더니, 눈을 부릅뜬 악귀 하나가 슬그머니 내부로 들어왔다.

“히, 히익?!”

아니, 착각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대화의 주제였던 비도르 남작이었다.

“……전하. 잠시 조지 군을 데리고 나가도 되겠습니까?”

“아, 아니 갑자기 절 또 왜!”

“무슨 일이지.”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긴히 할 이야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렇군.”

긴히 할 이야기가 생겼다.

즉, 조지가 잘못을 저질렀다.

참으로 간단한 귀결이었다.

나는 한심하다는 듯 조지를 쳐다보았다.

“네놈은 또 무슨 짓을 저질렀지.”

“이, 이번에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하지만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다급하게 고개를 휙휙 내저을 뿐이었다.

떨려 오는 눈동자 속에서 얼핏 억울함과 두려움이 엿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조지 군, 자네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

“그, 그렇습니다요! 전하께 물어보십쇼! 저는 여기에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문제일세.”

“예?”

스윽-

“그, 그건……?!”

남작이 황금빛으로 장식된 서신 하나를 꺼내 들자, 조지의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

그제야 남작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그것도 저런 악귀 같은 얼굴로 말이다.

“어째서 이토록 중요한 내용을 내게 전해 주지 않았는가?”

“아, 아니, 그게, 최근 늘어난 업무에 대한 부담 탓에 잠시 혼동을…… 게다가 그, 그 일도 있었고.”

“덕분에 나는 책봉식과 더불어 승작에 관한 이야기를 지금에서야 전해 듣게 되었네.”

“…….”

조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나를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마치 살려 달라고 내게 애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상황을 모두 이해한 내게 그런 자비 따위는 없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원할 대로 교육하도록.”

“으악!”

“예, 전하.”

그러자 남작의 악귀 같았던 얼굴이, 처음으로 웃었다.

“본부대로 하겠나이다.”

책봉식이 있기까지 고작 한 달여만을 남겨 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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