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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60화 (160/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60화

책봉식 (2)

반란군의 준동 이후,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던 왕궁의 분위기가 처음으로 활기를 띠었다.

왕세자 책봉식에 이어지는 승작식.

마치 기다려온 이들에게 보답하듯 축제처럼 이어지는 일정들에 바빠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 단연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예식들을 준비해야 하는 이들이었다.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빨리 움직여!”

“필요한 자재는 도착했는가!”

“드워프들이 가지고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너무 지체되는 것이 아닌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1왕자’의 책봉식이었다.

뛰어난 선구안과 무력으로 무수한 위업을 새긴 남자.

조금도 소홀히 준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후에 도착한 드워프들은 여유가 넘치는 상황이었다.

“음, 이것이 책봉식에 사용될 예식장의 도면이오?”

“그렇소. 우선 한시가 급하니 최대한 빠르게 시공하여 책봉식 전까지 완성할 수 있도록…….”

“구조가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구려. 설계부터 다시 합시다.”

“그,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오! 설계부터 다시 하자니!”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드워프의 말에 책임자는 물론이고 기술자까지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제아무리 빠르게 공사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설계단계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일정에 맞추지 못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물론 그 모습들을 보며 드워프는 오히려 의아해했다.

“음? 공사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고 왜들 그리 놀라시오?”

“아, 아니…… 설계에서 얼마나 시간을 소요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런 것을 걱정하고 있었소?”

한 드워프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적을 것을 찾았다.

이윽고 누군가가 펜을 건네자, 그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설계도면 뒤쪽의 여백에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오.”

“대체 무얼…….”

슥- 슥-

“…….”

그렇게 짧은 침묵 사이로 펜촉이 스치는 소리만이 이어졌다.

하나 조금만 기다리라 말했던 부분은 거짓이 아니었던 듯, 고작 오 분이 지나기도 전에 드워프의 손이 멈추었다.

“확인해 보시오.”

“이, 이건……!”

종이를 받아 든 공사 책임자의 손이 경악으로 떨려왔다.

거기에 그려진 것은 오 분 만에 그렸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구조를 띠고 있는 도면이었다.

명백히 기존의 설계보다도 웅장하며 또한 ‘책봉식’에 어울리는 형태였음이 분명했다.

그러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 맙소사! 드워프들의 능력에 대해서 들어는 보았지만 이건…….’

그저 짧은 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그린 도면일 뿐이었지만.

그건 지금까지 그들이 보아 온 어떠한 건축물보다도 아름다웠다.

과장을 보태지 않더라도 그 속에 억만금의 가치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드워프는 발뒤꿈치를 힘겹게 들어 올리며 도면 위로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끄응! 기존의 설계는 너무 흔하고 경직된 구조로 되어 있었소. 하지만 대강 이런 식으로 바꾼다면 조금은 나아질 거요.”

“그, 그렇습니까?”

“그 외에 세세한 것은 천천히 바꾸어 보는 것으로 하지. 아직 일정에는 여유가 있으니까 말이오.”

그 말에는 또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고작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은 시간.

다른 이가 이처럼 말했다면 허풍선이, 혹은 시간을 착각하고 있다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드워프.

“큼! 인간 왕족을 위한 구조물을 짓는 것은 처음이군.”

30일.

그들에게는 파도가 밀려오기 전에 모래성을 짓는 것보다 손쉬운 일이었다.

* * *

“…….”

인부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것은 평생을 건축에 힘써 온 기술자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 말도 안 되는 속도는 대체…….”

“벌써 건축물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단 말인가.”

드워프들이 공사를 주도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건축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정확히는 눈에 보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눈에 보였다.

일 초가 멀다 하고 휙휙 바뀌는 기틀들이 그들의 눈에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조하는 것은 검은색으로 되어 있는 거대한 기계 팔이었다.

“이보게, 레임스톤! 완성된 카이멘툼 좀 올려 주게!”

“미리 준비해 두었지, 여기 받게나!”

그 순간 도합 수백 킬로그램에 가까운 벽돌들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 작업을 위해 위쪽에 서 있던 드워프는 그것을 너무나 가볍게 받아 들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들.

평범한 건축 인부였다면 수 명이 달라붙어서 한참을 끙끙댔어야 할 일을, 단 두 명 이서 1초 만에 해결한 것이다.

“저, 저러니 진척 속도가 빠를 수밖에.”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애초에 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완성되는 벽돌은 대체…….”

또한 속도가 빠른 데에는 그런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봐, 기둥! 기둥 자리의 크기가 안 맞잖아!”

“그 부분은 설계가 바뀔 수 있으니 우선 내버려 두라고!”

“흠! 대충 경사가 2도 정도 기울어져 있군. 이쪽은 더 깎아내리는 것이 어떤가?”

“흘흘,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드워프들은 서로가 한 몸이 된 것처럼 보조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땅을 파내는 것이면 파내는 것. 건축물을 쌓는 것이면 쌓는 것.

서로가 필요한 자리에서 유동적으로 행동하며 완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하나의 유기체라고 해도 좋았다. 적어도 인간들이 보기에는 그러했으니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거야…….”

“오히려 우리가 끼어들면 작업이 느려질지도.”

때문에 작업을 도와야 할 인부들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애초에 건축의 방법조차 다른 데다 끼어들 틈조차 없이 견고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탓이다.

그때, 저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설렁설렁 걸어오기 시작했다.

“작업은 잘 됩니까?”

“오오, 왜소한 인간! 오랜만이구려!”

“……그 왜소한 인간이라는 말은 안 하면 안 됩니까.”

바쁜 남작을 대신하여 책봉식을 준비하고 있던 조지였다. 그 얼굴을 아는 드워프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조지는 귀찮음이 만연한 얼굴로 건축 현장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뭐, 대충 윤곽은 잡히고 있네요.”

“흠! 우리 일족에게 맡겨지면 당연한 일이지!”

탕 탕!

대답한 드워프가 가슴께를 팡팡 두드렸다.

자긍심이 엿보이는 대답이다.

조지는 수첩에 무언가를 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완성까지 대략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설계대로라면 앞으로 2주면 넉넉히 완성할 수 있을 것이오.”

“그렇습니까.”

2주라는 말에 뒤쪽에 서 있던 작업자들에게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지만, 조지와 드워프는 개의치 않으며 대화를 이어 갔다.

“그렇다면 3주를 목표로 잡되, 예산은 걱정하지 말고 원하는 대로 하시죠.”

“음? 예산을 걱정하지 말라니…….”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귀족들이 위축될 만큼의 걸작을 만들어 달라는 뜻입니다.”

“크하하핫!”

그 말에 드워프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드워프들의 욕심을 너무 과소평가하는군! 정말로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겠소?”

“뭐, 돈은 남아도니까요.”

“아주 좋지! 그렇다면 걱정하지 마시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드워프들의 눈은 어느새 번뜩이고 있었다.

“거리낄 것이 없다면 우리 일족도 망설일 이유가 없지.”

“예, 뭐, 좋습니다.”

조지가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러한 지시에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앞선 행보들로 인해 귀족들이 1왕자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테니 이번 기회에 더욱 찍어 눌러 왕실의 위엄을 각인시키겠다는 계산이.

앞으로도 이어질 파격적인 행보를 예언한 만큼, 미리 무릎까지 꿇려 놓아야 미래가 편해질 터였다.

물론 드워프들이 완공까지 얼마를 쓸지는 계산하지 않았으나…….

“뭐, 내 돈이 아니니까?”

이미 그것까지는 신경 쓰지 않는 조지였다.

* * *

“일단 타국에서 보내온 서신들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쿵!

조지가 품속 가득한 종이 따위를 책상 위로 올려놓았다.

공사가 차츰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타국에도 책봉식에 관한 소식이 퍼져 나갔다.

가장 먼저 연락을 보내온 곳은 당연 아렌델과 신성제국이었다.

하지만 의외인 점은 그다음으로 연락이 도착한 곳이 아즈란이라는 사실이었다.

“뭐, 대외적으로는 나비산호의 무역이 오가는 국가이니 당연한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생각해도 의외인 건 마찬가지군.”

남부 대륙에 자리한 아즈란에는 소식이 늦게 전해졌을 터.

그런데 이리도 빠르게 연락이 도착했다는 말은 소식이 들려온 동시에 서신을 보냈다는 뜻이었다.

‘연방제국을 운운했던 것이 충분히 유효타였나.’

아즈란과의 지속적인 관계는 지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에스테반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어쨌거나 긍정적인 신호인 것은 틀림없다는 소리였다.

나는 서신들을 대강 치워 내며 조소를 흘렸다.

“그런데, 익숙한 이름들이 있군.”

“……아, 마법의 수식을 구매한 놈들 말입니까?”

조지는 서신들 사이에서 몇몇 개를 골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마찬가지로 비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 거죠. 그게 아니라면 아직 고대 마법에 미련이 남았다던가.”

“읽어 볼 가치도 없다. 버려라.”

“엥? 그래도 됩니까?”

“어차피 놈들이 할 말은 뻔하니까.”

자신들이 구매한 것이 고대 마법의 수식이라는 사실을 어떻게든 납득했다 하더라도 정작 연구에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을 테니 답답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축하하는 척 은근슬쩍 마법의 정보를 원했을 테지.

‘혹 다른 쪽으로 추가적인 보상을 노렸을 수도 있을 테고.’

이를테면 신성제국과의 무역이 시작된 미스릴처럼 말이다.

이러나저러나 읽을 필요도 없다는 사실은 똑같았다.

“뭐, 그렇다면야.”

툭-!

조지는 어깨를 으쓱인 뒤, 그것들을 쓰레기통으로 집어넣었다.

“그렇다면 저는 책봉식 준비나 마저 하러 가겠습니다. 또 다른 소식이 오면 보내 드리죠.”

“마음대로 하도록.”

그렇게 조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눈매를 좁혔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결국 끝내 작위를 받지 않을 심산이군.’

이미 에스테반을 장악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게 된 지금.

더 이상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으니,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녀석에게 귀족의 작위를 얹어 주려고 했다.

평민에게 귀족의 작위를 수여하는 것이 인제 와서 문제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녀석은 그것을 거절했다.

-허, 귀찮게 무슨 귀족입니까. 차라리 돈으로 주십시오.

영지를 관리하는 것조차 귀찮다고 말하는 것일까?

귀족으로써의 의무를 더하느니 차라리 편하게 돈이나 받겠다는 생각.

지극히 녀석다운 일관적인 생각이었기에 납득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 본심은 달랐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남작이 당장 후작위에 오른다 하더라도 그의 보좌관으로 위장하고 있는 조지의 활동은 여전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계급의 차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앞으로도 녀석을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작위가 필요할 터였다.

특히나 점차 회귀 전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지금에는 더욱.

‘받기 싫다 하더라도 억지로 받게 해 주겠다.’

나는 작성하고 있던 서류에 날인 하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 서류는 새로이 오등작에 오를 인물에 관한 것.

“우선은 자작으로 시작해 볼까.”

그렇게 입지를 견고히 한다는 목표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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