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62화
펜던트 (1)
끼이익-
“이곳은 앞으로 후작 각하께서 관리하게 되실 부서입니다.”
비도르 남작.
아니, 이제 후작이 된 테일러 비도르는 기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눈을 끔뻑였다.
그것이 자신에게 한 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10초나 후의 이야기였다.
“……아, 그, 그러한가?”
그러나 알았다는 듯 주억여지는 눈빛에는 여전히 혼란이 가득했다.
보잘것없는 소영지의 남작이 하루아침에 후작위까지 오를 거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본인 역시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개 하위 귀족이었던 자신이, 이런 막대한 권력이 쥐게 된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정말로 후작이 되었다고…….’
후작.
오등작 가운데 둘째인 그 작위는, 그 숫자가 극히 제한적인 왕족과 공작을 제외하면 사실상 귀족이 오를 수 있는 최후의 영광이나 다름없었다.
그 재무대신인 발테르 후작이 그러했듯, 이제는 일국의 기둥이라 불리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왕세자 전하께서는 각하께서 업무에 적응하실 수 있도록, 가장 먼저 실무를 도울 이들을 들일 것을 종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심정을 짐작한다는 듯.
기사는 개의치 않으며 인적 사항이 담긴 서류들을 전달했다.
모두 일 처리에 관해서는 내로라하는 인재들이었다.
“지시를 내려 주신다면 사람을 시켜 이들을 불러오게 하겠습니다.”
“아, 아니! 지금은 괜찮네.”
비도르 후작은 그런 기사의 말에 황급히 손을 내저을 뿐이었다.
아직 호칭에도 적응하지 못한 상황에서 혼란을 가중하고 싶지는 않았던 탓이다.
그렇게 기사가 나가고 부서에 홀로 남게 된 후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설마하니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릴 줄이야…….”
“허허, 걱정했던 것치고는 신수가 훤하지 않은가?”
“후, 후작 각하?!”
덜컥!
비도르 후작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맞았다.
그러나 상대는 고개를 내저으며 은은한 웃음을 보였다.
“재무부의 사람들도 그러더니, 자네마저도 적응하지 못해서 어쩌겠는가?”
“아…… 죄송합니다, 공작 각하.”
발테르 공작.
내란으로 인해 공석이 되어 버린 공작의 작위를 임명받은 것은 재무대신인 그였다.
언제까지고 그 자리를 비워둘 수도 없던 노릇인데다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당연히 반대도 없었다.
정확히는 반대할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이해하네. 나 역시도 싱숭생숭한 기분이 드는데, 하물며 자네라고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후우,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과분한 자리가 아닐지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 걱정은 말게.”
공작은 그 소리에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자네가 아는 전하께서는 어울리지 않는 자에게 과분한 자리를 내리시는 분이신가?”
“그, 그건 결단코 아닙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허허, 그렇다면 누구보다 자네가 먼저 그 결정에 확신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
이제는 후작이 된 그는 책상 위에 놓인 명패를 보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새로이 배정받은 직책은 수상(首相).
왕실의 모든 부서를 아우르고 총괄하는 자리였다.
공작 역시 그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서 어찌 자네를 중히 쓰시는지 생각해 보게나. 아마 거기에 뜻이 있을 것이네.”
“……뜻.”
후작의 표정이 결연하게 굳어졌다.
공작을 위시한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던 현 상황에서.
자신이라는 사람이 고위 관직에 오른 이유는 명백했으니까.
* * *
책봉식에 이어진 수여식이 끝난 직후.
남작에서 후작위로 껑충 뛰어오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신분 자체가 뒤바뀐 이도 있었다.
“진짜로 이딴 걸 하루 종일 입고 있어야 합니까?”
새로운 보좌관, 조지가 불편한 옷자락을 부여잡으며 투덜거렸다.
단출했던 남작의 보좌관 의상과 달리 귀족의 정복은 입는 것조차 불편했던 탓이다.
당연히 나는 깔끔하게 그 헛소리를 무시했다.
“보좌관의 모습은 대외적으로 왕실의 위엄을 상징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그냥 시키던 사람 시키시죠?”
“그럴 수는 없지.”
책봉식 이후 몰려든 서류들을 살피던 내 입꼬리가 살포시 올라갔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고위 관직에 세워 놓아야 일이 편해지는 법이니까.”
높은 곳에 선 자는 발밑을 살피는 것이 어렵다.
회귀 전에 뼈저리게 느꼈던 사실이었다.
그러니 한 명쯤은 절대적으로 내 명령만을 듣고 상황을 괄목할 만한 지위를 가져 줘야만 했다.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권력.
그것이 테일러 비도르였을 뿐이다.
“애초에 그는 임시 보좌관으로만 임명되어 있던 상태다. 언제까지고 그 상태로 부려 먹을 수는 없겠지.”
“……뭐, 잊고 있던 사실이네요.”
애초에 조지를 데리고 온 목적도, 보좌관으로 임명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능력을 빌리기 위해서였으니…….
‘순수한 계책만으로 에스테반을 농락하던 그 악마와 같은 능력을.’
내 눈매가 마침내 흡족으로 휘어졌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과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래.
작위와 직책이 바뀌었다 해서 하는 일이 달라지지는 않을 터.
오히려 그보다 심해졌으면 심해졌을 뿐이다.
“이제는 거리낄 것 없이 부려 먹을 수 있다는 소리일 테니까.”
“…….”
조지는 설렘과 혼란 사이에서 갈등하던 후작을 떠올리며 짧은 애도를 표했다.
이윽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쩝, 어쨌거나 남은 유예 기간은 한 달이네요.”
“그래.”
왕세자 책봉식에서 있었던 아버님의 돌발 행동을 떠올린 내 입술이 작게 굳어졌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내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아마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내게 전권을 위임하겠다는 결정이셨겠지.”
“앞으로 벌어질 연방제국과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겠군요.”
“왕세자라는 이름은 전권을 움직이기에 부족함이 있을 테니까.”
내게 전쟁을 대비케 하는 것이 에스테반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나아가서는 군주의 자격 역시 이미 충분하다고 여긴 것이다.
지금까지의 일들을 미루어 보아, 그 사실을 아버님께서도 알고 계셨다는 뜻이었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상황을 짚어 나갔다.
“아마 그조차도 왕세자에게 왕위를 선양하기 위한 유예 기간이 없다면, 곧장 내게 넘겨주셨을 테지.”
“왕실 법률로 지정된 최소 기간이라는 뜻이지요.”
“음.”
“근데 왠지 기뻐 보이지 않으십니다?”
“어차피 응당 내게 주어져야 할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
……그 모습이 꽤 익숙해 보인다는 말입니다. 꼭 왕위를 받는 것이 처음이 아닌 것처럼.
조지는 그 뒷말을 삼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일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뭐, 일단 보좌관이 되었으니 다음 일정이라도 읊을까요?”
“일정?”
“일단은 예정되었던 잡무의 개수가 대부분 빠졌습니다.”
빠졌다라…….
왕세자에 오른다면 국왕으로부터 일부 권한을 위임받기에 일거리가 추가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의 의무가 줄었다면 반대로 누군가가 그것을 부담하기로 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짚이는 것이 있었기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2왕자의 수행원 측에서 대신 받아 들고 간 모양입니다.”
“그렇군.”
본디 2왕자가 내버린 왕자의 의무는 내게로 가중되어 있었다.
각종 서류의 처리부터 외교 사절을 맞이하는 일 등의 자잘한 업무들을 나 혼자서 맡아 왔다는 소리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알베도, 긴 절망을 깨고 스스로를 왕실의 일원이라 받아들이기로 했나.’
자신의 상황에 비관하며 거부하던 모든 것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헛된 자유를 벗어던지고 속죄하듯 일상에 충실하고자 했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나를 도우라는 그 말을 기억하듯.
왕위 계승에 발을 들였던 그때조차도 내버렸던 의무들을 비로소 더는 놓아 버리지 않겠다 다짐한 것이다.
“…….”
어느덧 서류를 작성해 나가던 손이 멈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조지는 일정을 확인하느라 미처 그것을 보지 못했다.
“왕위 계승이 확정된 상태에서 움직였으니 오해는 안 생기겠네요.”
“…….”
“뭐, 일단은 잘됐습니다. 그쪽에서 잡무를 거의 대부분 맡아 준 덕에 움직이기가 훨씬 수월해졌으니까요.”
“……그렇군.”
“시간으로 따지면 절반 이상을 아끼는 수준이 되려나.”
그리고 그 절반의 시간은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 되리라.
말 그대로 한 사람의 몫이 더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쁘지 않다.”
단지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조지가 잊고 있었다는 듯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아, 그리고 이건 2왕자의 수행원이 주고 간 물건입니다.”
촤르륵-
무언가가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손에 들린 것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고는 무언가에 막혀 허공에 붙들렸다.
그것은 내게도 낯설지 않은 물건이었다.
“……녀석이 항상 가지고 다니던 펜던트군.”
“전하께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묵묵히 살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지가 입을 열었다.
“일단은 왕실의 옛 보물 같은데, 회로가 드러난 것으로 봐서는 아티팩트로 보입니다.”
“…….”
“혹시 모르니 마탑에 사용법을 물어보고 올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다.”
고개가 내저어졌다.
그런 내 눈은 펜던트에 붙들린 채로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사용법을 알 것도 같거든.”
“음? 알고 있는 아티팩트였습니까?”
“…….”
끼이익-
나는 녀석의 말에 답하지 않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천천히 집무실을 빠져나가며 한마디를 남겼다.
“기다리고 있도록.”
녀석은 곧장 어리둥절한 눈치가 되었다.
* * *
철통의 보안으로 지켜지고 있는 국왕의 서고.
각종 금서와 기록을 담고 있는 그곳은 국왕 외에는 결코 출입을 허가하지 않는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와, 왕세자 전하!”
“에스테반의 작은 태양을 뵙습니다!”
“비켜라.”
“충!”
이미 왕실에서의 내 위치는 국왕이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고작 한 달 뒤면 왕위를 계승 받을 텐데 무어가 문제일까. 그렇기에 기사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섰다.
난 그런 그들을 지나쳐 서부의 내부로 들어갔다.
‘국왕의 서고.’
회귀 전에는 수도 없이 방문했던 곳이다.
그리고 그 이후 간혹 아버님의 호출이 있었을 때면 찾아왔던 곳이기도 했고…….
나는 익숙한 손길로 책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 자유롭게 방문하는 것은 오랜만이군.’
손에 닿는 것들은 모조리 금서다.
하물며 놓인 물건들 역시 하나하나가 국보에 준할 정도였다.
과연 국왕이 아니라면 출입이 불허되는 장소다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숨겨져 있는 것를 감추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리라.
척- 척-
책장 위로 재배치되는 금서들.
망설임 없이 움직여지는 그것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무표정했다.
그리고 이내 모든 책이 제자리에 찾아가자 소드마스터의 감각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작은 진동이 서고에 울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
이윽고 책장의 뒤편으로 드러나는 통로.
내 입술이 비뚤게 끌어당겨졌다.
‘국왕에게만 전승되는 비밀 장소.’
그래. 책장을 장식한 금서들은 모조리 이곳을 감추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저 서적들조차 이 통로의 너머에 있는 것들에 비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에 불과했으니.
아버님이 아수스에 의해 암살당한 과거에는 어떠했던가?
작디작은 실마리들만으로 이곳을 여는 데에는 무려 오 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은 결코 아깝지 않았지.”
그 이유가 이곳에 있다.
뚜벅- 뚜벅-
나는 어두운 통로를 향해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발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