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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67화 (167/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67화

개편 (2)

“바뀐 병력을 통솔할 사람 말입니까?”

“그래.”

내 생각을 들은 조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총사령관이라는 것은 결국 통수권자의 권한을 대신할 사람이었다.

이미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상 구태여 총사령관을 임명할 이유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뭐, 그러네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편적인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진의를 파악해 낸 것이다.

척- 척-

녀석은 책상 위로 손을 뻗더니 펜촉 하나와 편지칼을 가지런히 정렬했다.

그리고 그 두 가지의 사이로 도장 하나를 놓았다.

그렇게 일직선으로 놓인 세 물체는, 언뜻 보기에 두 물건이 도장을 보좌하는 것 같은 형태가 되었다.

조지가 어깨를 으쓱였다.

“머리인 참모와 병력을 통솔할 총사령관. 그리고 검처럼 휘둘러질 국왕이군요.”

“정답이다.”

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연방제국과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지휘권을 가지는 것은 통수권자인 나였다. 그리고 이를 보조하는 것이 바로 참모인 조지.

하지만 그것은 비효율적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모를 일이었으나, 직접 놈들을 베겠다고 다짐한 내게는 치명적인 허점이라는 뜻이다.

‘전장에 한복판에서는 변수에 대처하기 힘들다.’

전장의 한복판에서는 병력을 단박에 지휘할 수도 없을뿐더러, 좁아진 시야로 적들의 계책을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의 폐해는 이미 뼈저리게 겪어 본 지 오래였다.

실제로 연방제국과의 전쟁 초기에는 그것을 간과한 탓에 전선이 걷잡을 수 없이 밀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스터급 이상의 무력을 썩힌다면 그것이야말로 본말전도.

그렇다면 과거와 다르게 처음부터 지휘 체계를 확립해 놓으면 그만이다.

“지금까지는 왕족이 직접 전쟁을 통솔했기에 문제는 없었겠지만, 앞으론 다르다.”

“기사의 나라이기에 생길 수밖에 없는 경직된 운용.”

“그래. 내게는 누구보다 통솔력이 강한 총사령관이 필요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달라진 병과에 적응하고 운용에 허점이 생기지 않을 만큼 통솔에 재능이 있는 자.”

또한 참모인 조지의 계책을 온전히 이해하고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자.

이를 증명한 이는 내 기억 속에서도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붉은 매 용병단을 이끄는 대장.’

용병단.

어찌 보면 짐짓 농담처럼 들리는 소리였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용병들이……

타인에게 간섭받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용병들이, 어느 집단에 소속된다는 것은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었으므로.

다만 ‘강렬한’ 구심점이 있다면 말은 달랐다.

열망하던 자유조차 잊을 정도로 따르고 싶은 구심점.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카리스마와 명성. 마지막으로 무력까지.

적어도 붉은 매 용병단을 이끄는 대장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차기 용병왕의 이름으로 회자되고 있는 유일한 남자.’

그의 이름은 브롬이었다.

* * *

끼이익-

용병 길드로 한 거구가 들어왔다.

곰처럼 우람한 몸집. 그리고 해질 대로 해진 낡은 가죽 갑옷과 산발의 머리카락.

얼핏 걸인과도 같은 그 모습은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였으나, 그 누구도 남자의 꼴이 더럽다며 핀잔을 놓지는 못했다.

그 남자가 바로 붉은 매 용병단의 대장, 브롬이었기 때문이다.

붉은 매 용병단.

그 대장을 중심으로 뭉친 그들은 토벌 임무라면 어떤 것이든 ‘완벽’하게 완수하기로 유명한 용병단이었다.

붉은 매라는 이름답게 사냥감을 노리는 눈은 정확했고, 이를 노리고 짓쳐 드는 속도 역시 무척이나 날렵했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나 같은 인간을 상대할 때면 더욱.

그러니 그런 그에게 무례하게 굴 작자가 있을 리 없었다.

‘뭐지?’

하지만 길드에 도착한 무렵, 내부의 공기가 어쩐지 어수선하다고 느꼈다.

정확히는 평소보다 보는 눈이 많았다.

이름을 떨치고 있었기에 시선을 받는 것은 익숙했으나, 오늘은 유별났다.

‘착각인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검은 눈빛은 그마저도 무색할 정도로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봐도 평소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브롬은 그 감각들을 애써 떨쳐 내며 용병길드의 안내원에게 다가갔다.

“붉은 매 용병단의 브롬이다. 도적 떼 토벌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다.”

“토벌의 증거를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여기.”

툭-!

안내원의 앞으로 내던져진 것은, 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진 주머니였다.

그 안을 열어 보자, 사십 개에 달하는 잘린 귀가 들어 있었다.

안내원은 능숙하게 그것을 확인한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매 용병단의 토벌 임무 완수가 확인되었습니다. 선수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이틀 뒤에 찾으러 오십시오.”

“그럼 돌아가지.”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뭐지?”

뒤돌아 걸어가던 브롬을 안내원이 불러 세웠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눈을 찡그린 브롬에게 건네진 것은 황금빛 검의 문양이 각인된 한 장의 서신이었다.

‘……왕실의 서신?’

에스테반에서 활동하는 그가 그 문양이 가리키는 것을 알지 못할 리는 없었다.

안내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에스테반의 왕세자 전하께서 당신을 찾고 계십니다.”

“……뭐?”

“빠른 시일 내에 서신을 들고 왕실에 방문하시기를 권장 드립니다.”

“…….”

브롬이 눈을 찡그린 채로 손에 들린 서신을 바라보았다.

왕세자가 용병인 자신을?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하물며 현 에스테반의 왕세자는 소드마스터라는 이름으로 위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부를 이유가 무어가 있단 말인가?

당최 짚이는 이유가 없었기에 안내원을 재차 바라보아도, 그는 조용히 자신을 쳐다보며 무표정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순간, 그 모습에 브롬은 속으로 부아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감히 손가락 하나로 나를 부른다고?’

높으신 나으리들.

지금까지 용병으로 활동하며 놈들의 부름을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당연한 이유였다.

본신의 능력과 용병단의 위세. 만일 자신을 부린다면 그것들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까.

용병이니만큼 직접 기사를 기르는 것보다도 싸게 고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으리라.

하지만 놈들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자신과 용병단의 수준을 낮잡아 보고 아랫것을 대하듯 거만한 태도로 일관했다.

마치 자신의 아래로 들어오는 것이 영광스럽고 당연하다는 듯.

존중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부려 먹을 생각만으로 자신들을 찾아온 것이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를 하는군.’

어차피 왕세자라 하는 인물도 똑같을 터.

아마 용병의 생태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자유를 갈망하는 용병에게 아래로 들어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

아니, 거기까진 그렇다고 칠 수 있다. 돈만 준다면 얼마든지 따를 인간도 수두룩하니.

하지만 그, 브롬만은 그럴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

으득 깨물어지는 아랫입술.

그는 잠시 생각을 마친 뒤, 그것이 아직도 버리지 못한 미몽이란 것을 깨닫고는 다시금 고개를 털어냈다.

‘후……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니, 멀었군.’

마음이 정해졌다.

당연히 그런 것들은 상대할 가치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까짓 초대 따위에 응할 브롬이 아니었다.

입술을 잘게 깨문 그가 몸을 돌려 길드를 나섰다.

“…….”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내원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사라졌다.

……말 그대로 사라졌다.

그림자에 동화된 것처럼.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다는 듯 모습을 감춘 것이다.

……

그 소식이 내게로 전해진 것은 십 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무래도 초대에 응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렇군.”

조지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사실상 이미 예상된 결과. 자유 용병인 그가 쉽사리 고개를 조아릴 리는 없었다.

애초에 용병이라는 것은 소속을 가지는 이들이 아니었으니, 왕세자의 초대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의무도 없었고.

‘게다가 놈에게는 특히나 꺼림칙한 초대였을 테지.’

그 사정을 아는 내게는 이미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주였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다면, 에스테반의 용병 길드로 위장한 뒷골목의 음지 세력이 이미 내 손아귀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압박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 같습니다만…… 뭐, 한번 판이라도 짜 볼까요?”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러면요?”

“유능한 사람을 대할 때는 그만한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하던가?”

나는 가소롭다는 듯 조소를 지었다.

“놈의 위치를 말해라.”

본래라면 용병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터나, 내게는 수단이 있다.

그러니 놈들의 다음 의뢰와 위치를 알아내는 것 따위는 간단한 일.

“그토록 비싼 몸값이라면 직접 만나 보도록 하지.”

다만, 나를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면 직접 움직이게 만든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두 번의 기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 * *

“이번 의뢰도 낙승이었구먼.”

“당연한 소리.”

몸통만 한 도끼를 손에 든 용병이 거침없는 모습으로 어깨를 으스댔다.

그러자 주먹을 감싼 너클을 어루만지던 용병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쳤다.

“우리 ‘붉은 매’에게 걸리면 그딴 의뢰 따위는 식은 죽 먹기지.”

눈이 번뜩였다.

온몸에 낭자한 피.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다.

“의뢰가 들어오는 것은 좋지만 도적 떼를 상대하는 것은 이제 시시한데.”

툭-

털썩-!

발길질에 채인 시체가 바닥을 뒹굴며 구덩이 속으로 사라졌다.

그 속으로 얼핏 보이는 시체만 해도 족히 서른 구.

반대로 그들의 숫자는 단 넷뿐이었다.

이제는 식어 버린 전투의 흔적을 닦아 내는 그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사냥을 끝마친 한 마리의 고고한 매와도 다르지 않았다.

자박- 자박-

“그쪽도 얼추 마무리된 것 같군.”

그때 핏물 섞인 진흙을 밟으며 누군가가 다가왔다.

용병들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대장.”

그는 붉은 매 용병대의 대장이자 맹수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만든 ‘구심점’인 브롬이었다.

몸통만 한 도끼를 들고 있던 용병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이깟 놈들을 상대하는데 시간이 지체될 리가. 그쪽은 어떤데?”

“모두 정리했다.”

“그래?”

이쪽에 서른 명. 그리고 맞은편에 남은 이들 역시 서른 명이었다.

한데 자신들이 이제 막 정리를 시작할 동안 그 많은 숫자를 홀로 상대하고도 이미 정리까지 끝마쳤다는 소리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돌아온 소리에 두 용병의 눈은 이채를 띄었다.

“휘유, 역시 차기 용병왕 후보라는 건가.”

그것은 낯간지러운 이름이었으나, 남자의 자격을 짐작게 하는 이명(異名) 중 하나였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과연 감탄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도적들의 정체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짐작대로 훈련받은 정규 기사들이야. 전쟁통에 몰래 이탈했던 윌리엄 공작의 기사인 것 같아.”

“일대에 도적 떼가 늘어났던 원인이 있었군.”

“그래 봐야 갈 곳 잃은 기사들이 뭉친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내전에서 패배한 이들이 포로가 되었다 하더라도 도망친 이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왕실의 추격대가 남은 공작의 잔당들을 처리하기 위해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그런 놈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분을 버리고 도적으로 위장하는 것밖에 없었으리라.

“다른 용병들이 왔으면 뼈도 못 추릴 뻔했군.”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그 와중에 놈들은 운이 나쁘게도 붉은 매의 표정이 되어 버렸다.

그렇기에 토벌당했다.

“뭐, 지금까지 열심히 숨어지냈을 텐데 안타깝다 해 주지.”

너클에 묻은 피를 닦던 용병이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말 그대로 매의 눈에 띄어 버린 것.

아마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밖에는 없으리라.

“이놈들이 마지막이었나.”

“일단은 주변의 도적 떼를 모두 정리했으니 그렇게 되겠지.”

“그렇다면 의뢰는 끝났군.”

놈들의 출신이 어떠했느냐는 그들과 상관없는 이야기다.

단지 전달받은 의뢰가 끝났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다시 용병 길드로 돌아간다.”

브롬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리며 용병들을 이끌었다.

그들이 타고 온 말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을 정도의 처리 속도였다.

그때, 한 용병이 너스레를 떨며 물어 왔다.

“그런데 대장, 정말로 왕세자의 초대를 거절해도 되는 거야?”

에스테반에서 활동하는 그들이 왕세자에게 찍혀서 좋을 것 없다.

하물며 상대는 절대 권력을 쥐고 있는 그 소드마스터.

용병이니 문제가 생길 것은 없다 하더라도 불안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브롬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껏 해 봐야 왕실의 기사로 들이려는 수작이겠지. 내게는 그깟 기사의 명예보다 내 용병대가 더 중요하다.”

“오오.”

“역시 우리 대장. 조금 멋있잖아?”

“이러니 믿고 따를 수밖에 없지.”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해라.”

브롬은 용병들의 짓궂은 너스레에 손을 내저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저벅-

“……!”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

브롬은 알 수 없는 감각에 몸을 떨며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서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한 로브의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곳에 인간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유령처럼.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그 발걸음은 상대가 의도하지 않았다면 감지하지 못했을 정도로 조용하고 정적이었다.

그리고 용병왕에까지 거론되는 자신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소리는…….

‘……최소 소드 엑스퍼트의 최상급.’

말 그대로 격의 차이가 확연하다는 소리다. 의도는 모르겠지만 결코 좋은 목적은 아니다.

“누구냐!”

“대, 대장?!”

브롬은 부하들을 뒤로 물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상대에게서 믿지 못할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보는 것은 처음인가?”

“……!”

“일단은 반갑다고 해야겠군.”

스륵-

인영은 얼굴을 덮던 로브 자락을 뒤로 넘겼다.

그러자 그 모습이 드러났다.

찬란한 은발과 번뜩이는 핏빛의 눈.

그 모습은 그들이 익히 들어 본 남자의 특징이었다.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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