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68화
개편 (3)
맞춰질 듯 완벽하게 어긋난 퍼즐.
브롬은 이 상황을 납득하기 위해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에스테반의 왕세자가 어째서 이곳에 있지?’
본래라면 얼굴을 구경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상대는 자신에게 초대장을 보냈고 자신은 그것을 단박에 거절했다.
그것을 생각하면 저자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뜻이 될 테지만, 그것만큼이나 말이 되지 않는 일이 있을까?
단지 유명한 용병일 뿐인 자신을 왕세자가 찾아왔다는 것이?
게다가 저 움직임은 대체 뭐란 말인가!
‘저게 불과 얼마 전에 경지에 오른 사람의 움직임이라고?’
움직임으로 경지를 가늠하려 했던 것도 잠시였다.
상대가 다가올수록. 그리고 발걸음을 뗄수록.
그럴수록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저 도무지 인간 같지 않다는 객관적인 감정과 막연한 두려움뿐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저건…….’
애써 되뇌어 봐도 마찬가지.
저것은 이제 막 경지에 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있는 기세가 아니었다.
믿을 수 없지만 오히려 그 이상이다.
확실했다.
그는 이미 초인이라는 존재를 실제로 마주한 경험이 있었으니까.
브롬의 몸이 긴장감으로 굳었다.
“에스테반의 왕세자, 국적도 없는 용병 나부랭이에게 예우를 기대하지는 않았을 터니 거두절미하고 말하겠소. 이런 곳에 어째서 그대가 있는 것이오?”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군. 정말로 이유를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닐 테지.”
“……그렇다면 정말로 내가 초대에 응하지 않았기에 찾아왔다는 소리요?”
“정답이다.”
“…….”
그렇다면 잘못 생각해도 한참은 잘못 생각했다.
브롬은 어느덧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실수다.’
왕세자의 초대에 응하지 않은 대가.
기껏해야 귀족들의 의뢰를 받는 것에 제약을 걸거나 용병 길드에 압박을 넣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자유 용병인 붉은 매 용병단으로서도 타국에서 활동을 이어 가면 될 뿐이니 그리 행한 것이다
하지만 미처 상정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건 세간에 드러난 왕세자의 성격이었다.
‘……과감하고 손속 없는 행동력.’
그게 감히 초대를 거절한 용병을 직접 찾아올 정도였다니.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들을 찾았느냐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용건을 말씀하시오, 초대장을 보내고도 직접 찾아올 정도라면 내게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다는 소리일 것이니.”
“초대장을 보낸 용건이라.”
“혹 왕실의 기사가 되라고 협박하러 온 것이라면…….”
“한데 이런 곳에서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군.”
“……무슨 소리요?”
브롬은 자신의 말을 끊고 나온 왕세자의 목소리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이곳에서 말해도 괜찮겠느냐고?
대체 무슨 말을 하려기에…….
“용건을 말하려거든 무너진 공국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지.”
“……!”
일순, 어떻게든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려던 브롬의 눈이 부릅떠졌다.
동시에 경악과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
무너진 공국, 그것은 자신의 역린과도 같은 것이었으므로.
“……용병단은 즉각 물러서라. 둘이서 대화를 나누겠다.”
“무, 물러서라고? 하지만 대장……!”
“내 명령을 거스르지 마라!”
“헛!”
“흠!”
분노로 가득 찬 노호에 용병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더 이상 사족을 붙이지 않았다.
그들로서도 강제적인 명령을 내리는 대장의 모습을 본 것이 처음이었던 탓이다.
“……조심해, 대장.”
그렇게 용병단이 조심스럽게 물러선 뒤에도.
브롬의 눈은 쉴 새 없이 주변을 훑으며 만에 하나를 상정했다.
하지만 온 신경은 여전히왕세자를 향한 채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어떻게 알았소?”
“이제는 사라진 네놈의 고국, 레스피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건가?”
“말을 돌리지 마시오.”
자신이 레스피엘 공국의 출신이라는 것은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니다.
“이곳까지 왔다는 소리는 이미 모든 내막을 알고 있다는 소리가 아니오?”
“호오. 역시나 이해가 빠르군.”
그래, 변수는 없었다.
상대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자신을 찾아왔다.
“네놈이 죽은 레스피엘 공왕의 아들인 ‘브라함’이라는 사실까지 말이지.”
“큭.”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이는 왕세자의 모습에 브롬이 이를 악물었다.
생각해 보면 왕세자가 절대적인 권력을 쥐게 된 배경에는 그 과감한 행동력뿐만 아니라 천 리를 꿰뚫는 정보력과 통찰력 역시 존재했다.
이미 왕국의 시민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기껏해야 선전의 일부라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직접 후벼 파자, 그제야 소문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축소된 것이다.
그 실력과 마찬가지로 외부에는 극히 단편적인 모습밖에 드러내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에 브롬은 이전보다 더욱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미련하게 그것을 어찌 알았느냐고 묻지는 않겠소. 이제 나를 찾아온 이유를 말씀하시오.”
“내 아래에서 능력을 펼쳐라.”
“능력?”
“나를 따르라는 말이다.”
“하.”
이미 예정되었을, 너무도 당연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브롬은 코웃음을 치며 그 말을 받아쳤다.
“그대가 아는 대로 나는 공국의 후계자였소. 하지만 무언가를 배우기도 전에 멸망했고, 이제는 무식한 일개 용병 나부랭이에 불과하지.”
그 말대로 레스피엘이 멸망한 것은 이십 년도 더 된 일이었다.
브롬의 나이가 고작 열 살일 때의 이야기였다.
본디 대단한 능력을 펼치려거든 그만한 교육을 받았어야 할 터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에게는 타국의 왕세자를 따르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
‘……이런 곳에서 발목이 잡힐 수는 없다.’
그래.
왕세자가 자신을 바라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그런 이유가.
“아무래도 부릴 사람을 잘못 찾아오신 것 같소만?”
“…….”
“내게는 그대가 원하는 능력은 아무것도 없을 줄로 아뢰오.”
완곡함도 없는 거절이었다.
그러고는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틀며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우습군.”
“……뭐라?”
하지만 그때였다.
부드러운 미성이 비웃음을 띠었고, 브롬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런 왕세자의 얼굴은 무척이나 가소롭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브롬은 차갑게 되물었다.
“무엇이 우습다는 소리요?”
“스스로를 용병 나부랭이라 칭하기에는 네놈의 행동에서 모순이 있지 않은가?”
“……감히 용병 주제에 고고하게 구는 내 처지가 우습다는 소리군.”
자신을 비웃는 듯한 왕세자의 모습에 브롬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하지만.
“아니.”
왕세자가 비뚤어진 입술을 움직이며 뇌까렸다.
“누구보다도 무너진 공국을 재건하려는 주제에 용병 나부랭이라며 스스로를 비관하는 것이 우습다는 소리다.”
“……!”
브롬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무너진 공국의 재건.
그것은 자신만이 품고 있던 소망이었으며, ‘브라함’이라는 이름을 버렸던 적부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한데 그런 것을 저자가 어떻게……!
“그, 그걸 어떻게…….”
“스스로를 용병 나부랭이라며 낮잡음에도 거기에 순응하지 않으려 한다. 아마 네놈도 알고 있었을 테지.”
“어떻게 그것을 알았느냐고 물었소!”
마침내 주체하지 못한 감정이 터져 나왔다.
하나 그 외침에도 불구하고 왕세자의 핏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자신을 용병이라 치부하는 것은, 실패할 미래에 대비한 방어기제를 펼치기 위함이지.”
“…….”
깨물어진 브롬의 아랫입술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그 말대로다.
전력으로 부딪혀도 반드시 실패할 미래라면, 소망을 품고 있을지언정 전력이 아니었다고 자위하면 될 뿐이다.
나는 용병 나부랭이였을 뿐이라고.
……용병 따위가 무너진 공국을 재건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내심 그렇게 생각한 게 사실이었다.
마치 알몸으로 벗겨진 듯한 기분.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왕세자의 말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가슴 깊은 곳까지 헤집어 놓았다.
“늑대의 밑에서 개새끼가 태어날 수는 없는 법이지. 나를 따른다면 네놈의 소망에 다가갈 기회를 제공해 주지.”
“기회…….”
“그 손으로 연방제국을 쳐부술 기회를 준다는 뜻이다.”
“……뭐, 뭐라고?”
연방제국이라고?
레스피엘 공국의 상국이었던 카롯트 연방제국.
그 이름이 대체 여기에서 왜 나온다는 말인가……
“그, 그게 무슨 소리…….”
“자세한 이야기는 불청객을 치운 뒤에 하지.”
“…….”
“아무래도 대화를 엿듣고 있는 개새끼들이 있어서 말이지.”
“……!”
스릉-
검집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유려하다는 말이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운 청록색의 날이었다.
그 상황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였다.
“다섯. 아무래도 용병 길드에서부터 따라온 모양이군.”
“무, 무슨…….”
“네놈의 정체를 눈치챈 놈들의 꼬리가 따라붙었다는 뜻이다.”
왕세자가 울창한 나무들의 저편을 바라보며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그러자 브롬은 용병 길드에서 느껴지던 시선이 저곳에서도 느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척이나 또렷하게. 그러면서도 결코 들키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게 감추어진…….
‘왕세자가 심어 놓은 눈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것은 살기였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 살기가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마치 저것을 겪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문득 그것이 어째서 익숙하게 느껴지는지를 상기하던 브롬은.
무의식의 저편에서 한 단편적인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
이십 년도 훨씬 전의 이야기.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던 서고에서 눈이 마주했던 암살자와 비슷한 기운이었다.
……어긋났다고 생각했던 퍼즐이 끼워 맞춰지고 있었다.
무언가 놓치고 있었던 한 부분이, 비로소 드러난 느낌이었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머릿속으로 부드럽지만 한없이 차가운 미성이 각인된다.
“놈들의 정체를 직접 확인해라.”
“…….”
“그리고, 직접 목도하도록.”
화르르르륵!
청록색의 검을 타고 흐르던 핏빛의 오러가 불타올랐다.
마치 화염을 집어삼킨 것처럼.
오로지 살의로 뭉친 그것은 마치 화염처럼 그 살기를 주변으로 발산하며 피부 결에 와닿게 만들었다.
초인의 것이되, 이미 그것을 넘어서고 있는 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치미는 경외감과 두려움.
그것이 태풍처럼 불어온 바람을 따라서 폭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네놈의 주인이 될 인간의 힘이다.”
“……!”
콰과과과과광!
만연한 초목이 화마에 휩싸인 듯, 천천히 핏빛의 아지랑이 속으로 사라져 간다.
풀. 나무. 흙.
그리고 그 속에 있는 것들은 한 줌의 잿더미조차 남기지 못했다.
마치 소멸하듯. 그 장엄한 파괴력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아…….”
털썩-
그 가공할 장면을 목도한 브롬은 다리에 힘이 빠진 채로 무릎을 꿇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라는 한낱 미물의 손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광경을 일신의 힘만으로 가능케 만들었으므로.
천외천.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 말하듯, 남자는 이미 자연의 위대함마저 손에 쥐고 있었다.
“자, 그럼 마저 이야기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