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70화
기사 (2)
“새로운 제 4 기사단, 붉은 매 기사단에게 본부를 배정해 주었습니다.”
“들었다.”
나는 비도르 후작의 간략한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약조한 대로 용병들에게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드워프들이 지어 놓은 새로운 본부를 배정했다.
물론 아직 기사로서 지녀야 할 자질이 미숙한 그들이 왕실 수호 기사단의 빈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겠으나…….
“적어도 알량한 알력 다툼만 벌이던 놈들에 비해서는 실력이 검증돼 있으니.”
“축출된 왕실 수호 기사단을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전투에 한해서는 그 빈자리를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근위대랍시고 엉덩이만 무겁던 놈들에 비하면 더더욱 그러했고.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내게 후작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기사단장으로는 브롬, 그자를 임명하실 테지요?”
“그래.”
“그런데 구태여 그자를 데리고 오실 이유가 있으셨습니까?”
“자세히 말하도록.”
“그자가 처음 전하의 초대를 거절했던 것은, 타국의 왕세자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했기 때문 아닙니까.”
브롬은 공국의 후계자였다.
그리고 멸망한 공국을 다시금 일으켜 세운다는 뜻을 품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타국의 왕세자 아래로 들어간다는 것은 어불성설.
구태여 그런 사람을 데리고 온다는 것은 한 가지의 위험부담을 품고 있다는 뜻이었다.
충성이라는 절대적인 요소가 결여됐다는…… 그런 위험부담을.
하지만 내 생각은 후작과 달랐다.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지?”
“……목적입니다.”
“그래. 너무도 당연한 소리다.”
나는 후작을 바라보며 확신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고, 목적이 없는 이들은 도태되기 마련이지.”
하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는 사람들은 성장한다.
마치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목적이 손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 순간에, 온몸을 불살라서라도 그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브롬의 경우는 후자였다.
“놈은 성장한다. 그리고 숙원을 이루기 전까지는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을 테지.”
“다른 방향이라 하심은…….”
“배신.”
“…….”
경외 따위의 ‘감정’은 한때의 치기다.
하지만 정녕 사람을 충성케 만드는 것은 그 ‘행동’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놈을 다루는 것은 무척이나 간단한 일이었다.
어차피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때까지 잘 따를 수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나는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확답했다.
“놈은 나를 배신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이곳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잠시나마 나를 따르기로 결정했던 그때부터.
모두 결정되어 있는 일이었다.
“……전하의 의중은 이해했습니다.”
후작은 납득한 듯 고개를 주억이며 턱을 쓰다듬었다.
새로운 기사단을 설립한 것과는 별개로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던 탓이다.
“하면, 부족한 기사단의 인원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채워야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왕실 법상, 기사단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 일개 소대 이상의 인원을 선별해야 했다.
하지만 데리고 온 용병들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
필연적으로 그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어중이떠중이까지 넣을 생각은 없다.”
전선의 최전방만을 지키고 선 태양 기사단.
그와 반대로 신설되는 붉은 매 기사단은 오로지 전투를 위한 주요 전력으로 키울 생각이었다.
‘경직된 구조의 태양 기사단보다 이용하기 쉬운 형태.’
즉, 어떤 분야에도 전투라면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특화성을 가지게 하겠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숫자를 채우겠다고 어중간한 기사를 끼워 넣었다가는, 그 목적성을 잃게 되는 것이었으니…….
“붉은 매 기사단의 일원이 될 이들을 선별하지.”
“예……? 아아, 현 왕실 기사 중에서 따로 선별하시겠다는……”
“아니.”
나는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예……?”
“어차피 놈들이 알아서 찾아올 테니까.”
내 입꼬리가 비릿하게 비틀어졌다.
에스테반의 각지에서 저마다의 생활을 영위하는 실력자들.
놈들이 신설된 제4 기사단의 소문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 지는 훤한 일이었다.
“소문을 들은 이들이 알아서 왕실의 문을 두드릴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것이 내가 생각한 계획이었다.
“자격은 오로지 사람을 죽이는 실력이다. 이쪽은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될 뿐이지.”
“맙소사…….”
말 그대로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비도르 후작은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머리를 부여잡았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즐겁다는 듯 웃었다.
‘브롬, 지금의 네놈이 이것까지도 통제할 수 있을까?’
연방제국의 사탕발림에 속아 조지와 함께 전군을 통제하게 되었던 회귀 전의 그 모습.
그래.
녀석은 연방제국의 총사령관이 되었던 최초의 용병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회귀 전과 다르다.
본래라면 회유책을 사용했을 연방제국은 여유가 없다는 듯, 회귀 전과 다르게 녀석을 제거하려 들었다.
그리고 이미 조지라는 인물 역시 회귀 전과 다르게 에스테반에 잔류하기를 택했고.
그렇다면 이제는 증명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지금의 네 녀석이 회귀 전의 모습만 보여 주어도 충분하단 거지.’
전국 각지에서 제각각 모인 실력자들.
그것마저도 통제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한다면 총사령관이라는 자리에 어떠한 이견도 없을 것이 분명하리라.
‘그리고 그것 또한 녀석의 힘을 개화시킬 발판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느낌이었다.
* * *
“이, 이보게들! 그 소식을 들었는가?!”
신설된 제 4 기사단에 대한 소문은 즉각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무척이나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새로운 왕실 직속 기사단이 용병 출신으로만 구성되었으니 당연했다.
“듣기로는 실력만을 보고 그 자리에서 직접 기사의 작위를 내리셨다더군.”
“내가 듣기에는 그 실력과 충심에 반해 새로운 기사단을 창설하셨다고 그랬네.”
“허어! 왕실 직할 기사단인데도 신분의 차등 없이 임명하겠다는 말인가……!”
비단 왕실뿐만 아니라 귀족가의 기사들까지, 기본적으로 그 출신이 천하면 명예를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왕세자는 그런 것쯤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용병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가까이에 두기로 하였다.
신분의 고저에 관계 없는 평등함.
말로는 많이 할지 몰라도, 이렇게 직접 행동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흐음……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뽑는 인원은 신분이 확실한 귀족들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이미 내정된 단원들이 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닐세! 해당 기사단의 단장도 용병 출신이란 말일세!”
“그, 그게 정말인가?”
하지만 기사단장부터 용병 출신이라는 것은 왕실의 의도를 확신할 수 있는 장치가 되었다.
오로지 실력.
왕실 기사단에 어울리는 실력만이 조건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계기가…….
“왕실의 기사단이라고.”
“이런 공명정대한 분이라면 혹시 나 같은 사람도 써주실 수 있을까?”
당연히 평소 검술에 자신이 있어 하던 용병은 물론이고 몰락한 귀족의 자재들까지, 그 공문에 귀를 기울이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일부는 보다 내부에 있는 왕실의 ‘의도’를 깨달았다.
“……왕세자, 역시 보통이 아니군.”
“처음부터 노린 것은 이것이었나.”
신분에 가려진 실력자를 찾아내는 것도 그러했지만, 이로 인해 일어날 여파도 여간 작은 것이 아니었다.
‘……마치 고대의 마법을 공개했던 것처럼.’
현재 마탑에는, 소문을 듣고 고대의 마법을 배우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드는 마법사들로 넘쳐 날 정도였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실제로 마탑에 정착하여 고대 마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물론 으레 그렇듯 첩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삼라만상을 꿰뚫는 대마법사의 눈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나쁜 의도를 가졌다고 해도 선별에서 즉각적으로 걸러졌으며 보다 강화된 보안은 만에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게끔 마탑 전체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대로, 이번 대대적인 등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것을 이끄는 자는 무려 스물한 살에 초인의 경지에 다다른 왕세자.
모르긴 몰라도 에스테반에 존재하는 모든 실력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론으로 실력자들을 끌어내고, 그와 동시에 평민들에게도 희망을 심어준다.’
게다가 신분과 출신에 관계없이 실력만 된다면 명예를 쥐여 준다는 그 소문은, 비단 기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각종 분야에서 신분이라는 벽 때문에 무너졌던 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일어선다.
이것은 말 그대로 그 계기일 뿐이었다.
앞으로 있을 포용을 꾸며 주는, 첫 번째 발판.
‘내전으로 굳은 여론도 움직임과 동시에 원하는 바까지 이루겠다는 건가……!’
모든 것은 왕세자의 치밀한 계획 아래에 진행되고 있던 것이다.
* * *
한편, 외부의 뜨거운 소란은 관계없다는 듯.
새로운 기사단장이 된 브롬은 연병장에서 왕세자를 만나고 있었다.
“……병과의 세분화 말씀이십니까.”
“그래.”
왕세자가 손짓하자 무기가 잔뜩 담긴 수레 하나가 다가왔다.
이윽고 그것을 확인해 보라는 듯 눈짓으로 수레를 가리켰다.
내내 굳어 있던 브롬의 눈이 처음으로 이채를 띄었다.
“이게 바로…….”
“드워프가 만든 무구들이다.”
멸망한 공국의 후계였던 그가 용병들을 이끄는 대장이 되었던 것은 특유의 통솔력도 있었지만 그만한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다 뛰어난 무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이것이 연방제국을 꿰뚫을 무기라면 더더욱.
‘역시 대단하군. 드워프라는 명성이 헛된 것은 아니라는 건가.’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무기를 살펴보던 브롬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제게 새로운 무기의 이해도와 더불어 그에 맞는 통솔력을 지니기를 원하십니까?”
“잘 알고 있군.”
왕세자는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뒤로 질문이 이어졌다.
“백병전의 기본이 뭐라고 생각하지?”
“백병전의 승리를 좌우하는 것은 적보다 좋은 무기와 우월한 사거리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병력의 훈련 상태가 모든 승리 조건의 기초입니다.”
“정답이다.”
그제야 그 입꼬리는 흡족한 듯 비틀어졌다.
어차피 상대를 꿰뚫으면 죽는 것이 병장기.
제아무리 무기가 뛰어나더라도 그에 맞추어 훈련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새로운 무기와 발전에는 그만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연방제국의 기술력 역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언제 어디에서 위협적인 무기가 탄생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
“……압도적인 숫자의 기술자들.”
이미 미래가 틀어진 시점부터, 그것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는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것이 병과의 세분화입니까?”
“음.”
그 순간, 왕세자에게서 한 장의 종이가 건네졌다.
그리고 그것을 본 브롬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이건!”
그리고 그제야 왕세자의 진정한 의도가 드러났다.
“놈들이 어떠한 대비를 하더라도 막지 못할 전술 운용법을 세워 놓겠다.”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를 이용하여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겠다.
그것은 어떠한 변수도 없는 승리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