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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76화 (176/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76화

끝내 이루지 못했던 소망 (4)

“편하게 앉으십시오.”

침묵에 이어지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마기아의 왕자가 눈썹을 씰룩였다.

자신들을 불러낸 것에 대한 설명조차도 없는 건가.

그러나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권유에 따를 뿐이다.

스윽-

“…….”

왕세자의 왼편.

자리에 앉고 보니, 네 방향으로 놓인 소파의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왕자는 맞은편의 빈 소파 위를 흘깃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오기로 한 사람이 남아 있습니까?”

“아직은 예정일 뿐입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적어도 아렌델과의 관계를 알게 되어도 괜찮은 인물.

혹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모종의 관계로 묶인 국가라는 뜻이다.

‘에스테반의 짧은 외교 관계를 생각하면 신성제국이나 무역을 진행 중인 아즈란 정도겠군.’

한데 이곳으로 한데 모은 이유는 어째서지?

왕자의 날카로운 분석이 이어졌으나 중앙에 앉은 왕세자, 알렌 에스테반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입술을 떼었다.

“마침 마기아의 손님께서 오셨으니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해야겠군요.”

“관련된 이야기?”

“이것을 보시겠습니까.”

왕세자가 품속에서 작은 알약을 꺼냈다.

“……큭.”

그리고 그것을 인지한 즉시, 왕자의 몸속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

자의가 아닌 생리적인 거부감을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반응한 탓에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연히 발견하게 된 연방제국의 발명품입니다.”

“발명품?”

저 안에서 음차원의 마나가 느껴진다는 것쯤은 왕자도 알았다.

그렇다면 최소한 흑마법과 연관이 된 물건이라는 것.

하지만…… 저건 그런 간단한 게 아니란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흑마법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는 별개로 근본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될 것을 보는 것처럼.

“재미있는 물건이군요. 인간의 육신으로 만든 알약입니다.”

“……!”

“역시 대단하군.”

그 정체를 파악한 것은 자신의 뒤에 서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대마법사 헤임달이었다.

“외람되오나 제가 직접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

알약의 정체에 충격에 빠진 왕자가 눈매를 좁히는 사이, 헤임달은 손짓만으로 그것을 허공에 띄워 제 손으로 가지고 갔다.

이윽고 그것을 살피는 눈은 놀라우리만치 흥미를 띄고 있었다.

그리고 왕자에겐 그 모습조차도 무척이나 충격이었다.

‘그 로드 헤임달이 관심을 가졌다고…….’

“살아 있는 인간을 고통스럽게 죽여서 부정적인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확실히, 인간은 공포나 두려움이란 감정을 살리기에는 가장 적합한 시험체였을 것입니다.”

“…….”

“그리고 그 용도를 한정 짓자면…… 그렇군요.”

스윽-

허공에서 나타난 검은 균열이 그의 손 위로 낡은 고서 하나를 내뱉는다.

익숙한 손길로 책장을 짚어 내자, 마법으로 금기시했던 행동들에 관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재물 삼아 본신의 힘을 강화시킨다.”

“…….”

탁-

가볍게 책을 덮은 헤임달의 눈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것밖에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혼란스러운 얼굴을 한 마기아의 왕자가 중앙에 앉아 있는 알렌 에스테반를 신중하게 쳐다보았다.

“왕세자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살아 있는 인간으로 만든 알약, 그것을 연방제국이 만들었다는 것입니까?”

“분명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온 탓에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하면 왕세자께서는 그 증거가 있습니까?”

“증거라.”

그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웃었다.

“제아무리 비공식적인 자리라 하더라도 이것은 타국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는 안건입니다. 비인도적인 수단과 결과물, 그리고 그 뒤에 흑마법사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예, 옳은 말입니다.”

“애초에 저희를 이곳으로 초대한 이유가 대체…….”

“그러니 증거는 지금부터 찾아봐야겠지요.”

“……예?”

순간, 이해하지 못한 마기아의 왕자가 되물었다.

“증거를 찾아본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증거가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저희도 겨우 습득한 물건입니다. 그것도 몇이 고작…… 이걸로 저들의 본거지까지 알아내긴 요원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를 추적하는 방법은 다양했으나, 기본적인 원리는 결국 그 사람에게 남은 흔적을 쫓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달랐다.

흑마법의 이론으로 의해 만들어진 알약.

마력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다면 모를까 고작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의 출처를 밝혀낼 가능성은 전무했다.

하물며 이것에 존재하는 마력 역시도 알약 자체에서 생성된 것이니 마력을 거슬러 찾는 일조차도 요원하리라.

“하지만 그쪽에서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왕세자의 시선이 왕자의 등 뒤로 닿았다.

왕자 역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바라보았다.

로드 헤임달!

“그에게 허락된 대마법은 물건에 깃든 기억마저도 읽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지요.”

“…….”

대마법사인 헤임달이 ‘현자’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게 된 이유.

그리고 진정한 힘.

상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충격과 당혹감이 몰아닥쳤다.

‘독심술? 아니, 그렇다고 해도 헤임달의 정신력을 뚫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대체 국내에서도 최고 기밀 중 하나인 것을 그가 어떻게?

찰나, 여러 가정이 떠오르고 또 떠오른 뒤에 지워져 갔다. 하지만 도무지 결과를 도출해 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상대가 그것을 알아낼 방도가 없던 것이다.

그렇게 두 감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왕자가 내놓은 대답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감추어진 사실을 꿰뚫어 본 남자에 대한 의심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어깨를 으쓱일지언정 속내를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가 아니겠지요.”

“중요합니다. 적어도, 마기아와 제게 있어서는.”

“아니요.”

왕세자는 단호하게 말하며 그를 주시했다.

“적어도 대륙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이 알약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

왕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들이 이곳에 불려오게 된 이유를 깨달았다.

연방제국에서 제작되었다는 알약.

그가 말한 대로 로드 헤임달의 능력이 있다면 이 알약의 정체를 꿰뚫어 볼 수 있었으므로.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기아로 하여금 이것의 정체를 밝혀내게 하고, 그 증인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까?”

“정확히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던 것이 아닙니다. 응당 그리되어야 할 일이라 생각했을 뿐이지요.”

명백한 긍정이었다.

마기아.

마법사들의 왕국인 그들에게는, 마법적 금기를 엄수하고 이를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기에 마법사의 왕국이며, 그들이 마나의 종주라 불릴 수 있는 이유였으므로.

그러니 자신들이 손을 들어 준다면, 그 무엇보다도 완벽한 증거와 증인을 얻는 셈이 되는 것이었다.

‘마기아의 특수성을 이용하려 하다니.’

그러나 그것이 그들이 일국의 손을 들어 주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왕자는 에스테반의 왕세자를 노려보았다.

“마법으로 인한 분쟁을 최소화하는 것 역시도 우리의 의무입니다. 오히려 모종의 방법으로 로드 헤임달의 능력을 알게 되신 왕세자께서 일을 꾸몄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연방제국의 명예를 실추하기 위해서.”

“가시렵니까.”

“관련된 일은 마기아에서 따로 조사하겠습니다. 능력에 관한 사실은 불문에 부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아렌델의 왕세자께서도 역시.”

에스테반이 어떻게 헤임달의 능력을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영문도 모른 채 이용만 당해 주는 것은 사양이었다.

특히나 저 남자처럼 수상한 이에게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한데 괜찮겠습니까?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을 텐데 말이지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간 변했을 에스테반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까지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

발걸음을 멈춘 왕자의 눈이 순간적으로 크게 뜨여졌다가 이내 작아졌다.

갑작스레 찾아온 마기아의 사절단.

그 의도야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수준이었을 테지. 하지만 상대가 그것을 먼저 언급한다면 말은 달랐다.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동생의 피가 이어진 나라.

이곳을 증오하던 현왕께서는, 반대로 한없이 그리운 여동생이 잠든 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

그러니 자신을 이곳으로 보내면서까지 확신을 하고 싶으셨을 테지.

자신의 여동생이 낳은 자식에 대해서 말이다.

한데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부탁을 거절하고 자리를 떠난다?

그것도 상대가 진의를 눈치챈 지금?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에스테반이야 저 약의 정체를 굳이 밝힐 필요는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건 하나의 패에 불과했으니까, 모르는 척 돌아가 다른 건수를 잡으면 될 뿐이다.

하지만 이쪽은 다르다.

마나의 종주가 자신들의 의무를 저버린다, 심지어 국왕의 대리를 맡은 자신이.

이것의 파장은 어떨까.

아니, 그 이전에 바로 뒤에서 눈을 새파랗게 뜨고 있는 헤임달. 저분이 과연 그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저렇게 대놓고 흥미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는데?

이곳에 도착할 때만 해도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새 늪에 빠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그것도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는 무저갱 같은 늪에.

마치 짜 놓은 듯한 상황.

‘처음부터 이렇게 되기를 바란 것이냐……!’

그렇게 상대는 그 사실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발걸음을 멈춘 채로 망설이던 왕자의 뒤로 알렌 에스테반은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이쪽에서도 부탁하는 처지니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

“기브 앤 테이크. 그것이 모든 외교의 시작이 아니겠습니까.”

“…….”

방심했다.

상대는 그 신성제국마저 꾀어낸 인물이었거늘…….

왕자는 결국 대마법사를 쳐다보며 입술을 악물었다.

“로드 헤임달, 알약의 기억을 읽을 수 있습니까.”

“알약에 담긴 부정적인 감정까지 함께 밀려올 테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웬만해서는 현자인 그의 정신력에 조금의 흠집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시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대마법사가 알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회의실 내부에 작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대마법사의 로브가 바람을 따라 작게 펄럭이더니, 점차 강렬해지는 마력을 따라서 휘몰아쳤다.

그때였다.

“…….”

헤임달은 시전하려던 마법을 중단했다. 어느덧 장내에 불어오던 바람이 멎어 있었다.

이에 다른 이들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을 때, 단 두 명만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특히나 마법을 중단했던 헤임달.

그는 무척이나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은 일견 다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강한 흑마법의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외부입니다.”

“외부라면?”

“……광장입니다.”

“광장.”

탄생일을 맞아 화려한 야경이 피어난 거리.

그의 시선 끝에 있는 광장이라고 함은 분명 이 시간에도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수도의 광장을 뜻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현자는 ‘흑마법’이라며 이상의 원인을 확신했다.

그렇다면 말인즉.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왕자의 다급한 눈이 섬뜩함을 불러일으키는 알약에 닿았다.

흑마법과 연방제국. 그리고 새로운 국왕이 탄생하기 직전에 벌어지는 소동까지.

일련의 상황들이 멀찍이 떨어져 있다기에는 너무도 상황은 명백했다.

“……설마!”

대관식이 진행되는 날에 사건이 터진다면 백성들을 불안감에 질리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연방제국으로선 시간을 벌기 그보다 좋은 일이 없을 거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아렌델의 왕세자 역시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하고는 표정을 굳힌 상태였다.

하지만 반대로.

“흐음.”

정작 이 사건을 누구보다 먼저 걱정했어야 할 알렌 에스테반의 표정은 좀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그때.

“오후 7시 13분.”

“……뭐?”

찰칵-

주머니 속에 든 회중시계를 여닫은 왕세자의 수행원, 조지는 누군가의 반문에도 평온하게 말을 이어 갔다.

“예상보다 빠른 공격이군요. 일이 벌어진다면 본격적으로 대관식이 진행되는 그 순간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말이죠.”

“시기는 상관없을 거라 말했을 터다. 저들은 사건을 일으켜 혼란을 만든다는 목적만 이루면 되니까.”

“후우, 그 변수도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래서, 말했던 것은 다 처리했나?”

“물론이죠.”

잠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대화가 이어지더니.

끼익-

이윽고 알렌 에스테반이 옆에 뉘어 있던 검을 패용하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로드 헤임달과 아렌델의 왕세자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직 초대된 손님이 한 분 도착하지 않았지만, 슬슬 때가 된 것 같으니 구경이나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그게 무슨…….”

“아무래도 초대되지 않은 손님이 이제야 도착한 것 같아서 말이지요.”

그 순간.

쿠구구구구구궁!

“……!”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왕자를 덮쳤다.

아니, 착각이었다.

다만 급격한 마나의 흐름이 뛰어난 마법사인 그를 자극시키고 떨리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대마법사…….”

흑마법의 기운이 느껴진다 점지했던 그곳.

그 광장에는 기다렸다는 듯 막강한 마력의 움직임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드디어, 대망의 축제가 시작되었군요.”

왕세자는 느껴지는 기운에 흡족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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