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77화
끝내 이루지 못했던 소망 (5)
“커, 커억……!”
숨통을 압박해 오는 듯한 위엄이 흑마법사들을 짓눌렀다.
공기를 대체하듯 사방으로 촘촘하게 엮인 마나의 역장.
이 가공할 영역 속에서 자유로운 것은 오직 한 남자밖에 없었다.
“이런 장소에서 테러라니, 그러면 안 되지 않는가.”
“끄, 끄으으윽…….”
흑마법사들은 아득해지는 시야 속에서 허공에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마, 마탑주……!”
“자네들까지 친히 내 얼굴을 기억해 주다니, 감동할 따름이군.”
대마법사는 웃었다.
타국의 세력.
즉, 이 축제를 저지할 괴한들이 침입할 것이라 확신하셨던가?
그 때문에 자신이 수도를 오가는 인물들을 ‘전부’ 확인하기까지 했으나, 상황은 정말로 그분이 예상했던 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흑마법사라…… 참으로 예상에서 어긋나는 일이 없군.”
그때, 기사가 멀리서 달려오며 고개를 숙였다.
“마탑주님, 근방의 인파를 모두 뒤로 물렸습니다. 반경 100m 내는 안전합니다.”
“수고했네.”
여유로이 상황을 둘러보자, 어느덧 광장은 미리 대기해 있던 기사들에 의해 통제된 상태였다.
어찌나 깔끔하게 움직였던지 일말의 혼란조차 없다.
말 그대로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자, 그렇다면…….
“자네들에게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를 묻지 않으면 안 되겠지.”
“크윽…… 얕보지 마라!”
스스스스스!
일순, 바닥에 짓눌려 있던 흑마법사들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몰아치는 강대한 마력의 파장!
마탑주의 옆에 서 있던 기사가 눈을 번뜩이며 검을 내뽑았다.
챙!
“조심하십시오, 마탑주님! 놈들이 무언가 수작을 부리려고 합니다!”
“허허, 가만히 놔두게.”
“예?!”
놀란 반문이 돌아온다.
하지만 그렇게 도리어 기사를 물리는 마탑주의 눈은 흥미로 빛나고 있었다.
‘그렇군. 저것이 바로.’
알약.
녀석들이 입안에 숨기고 있던 그것을 깨물자, 허무하게 제압당하던 지금까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막대한 힘이 솟구쳤다.
체내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마력의 흐름은 대마법사에게 훤히 드러난 채였다.
‘말로 전해 들었을 때보다 재미있는 물건이었군.’
살아 있는 인간으로 만든 알약이라 했던가?
마탑주는 그 흐름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
알약이 어떻게 흑마법의 힘을 끌어올리게 되는지, 또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그분께서는 이런 상황을 기다리고 계셨는지도 몰랐다.
“크큭!”
녀석들은 자신의 내부가 낱낱이 파악 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저 웃고만 있었다.
“어떠냐, 이게 바로 우리의 진정한 힘이다.”
“흐음.”
“지금 우리의 몸속에 흐르는 마력은 세간에 존재하는 마나 따위와 다르다. 대마법사인 네놈조차도 겪어 보지 못한 성질에 일일이 간섭할 수 없을 테지.”
흑마법사들의 손에서 칠흑빛의 구슬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 눈이 살기로 번뜩였다.
“어디, 그 잘난 마법으로 한 번 막아 보아라!”
칠흑빛의 구슬은 작게 분열하며 무수한 탄환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대마법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닌,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들의 목적은 처음부터 혼란을 만들어 내는 것뿐.
공격이 통하지도 않을 대마법사는 안중에도 없던 것이었다.
“……그렇군. 마력을 장악하여 간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인가.”
마탑주가 손을 내저었다.
이윽고 그 손짓에 따라 허공에 아로새겨지기 시작한 마법진은 흑마법사들의 눈에도 무척이나 생소했다.
그리고 그것에 의문을 품은 순간, 사방으로 뻗어 나간 탄환들이 주변의 건물을 강타했다.
퍼퍼퍼퍼펑!
“크흐흐, 됐…… 뭐, 뭐라고?!”
흑마법사들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분명 건물들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내었어야 할 자신들의 마법이, 그저 붉은 불똥만을 남기고 바스러졌다.
마치 폭죽처럼.
그 흔적만을 남기고 소멸해 버린 것이다.
“……보호막?”
“하, 하지만 이렇게 넓은 범위에 어떻게!”
흑마법사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믿지 못하고 주춤했다.
표정은 침묵이 길어질수록 거무죽죽하게 굳어 갔다.
그러나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도 못했다.
우우우웅-
“…….”
자신들의 몸을 물리적으로 막고 있는 그것.
마치 두 공간을 분리해 놓은 듯한 경계선에 가로막힌 탓이었다.
“어리석긴, 쏘아진 마력을 간섭하지 못한다면 그냥 막아 내면 될 뿐이다.”
“고대의 마법……!”
앱솔루트 배리어.
그것은 공기의 흐름마저 차단해 내는 궁극의 마법이었다.
* * *
“와아, 방금 폭죽이라도 터뜨린 건가?”
“제법인데.”
“광장의 방향이었지?”
번쩍임과 함께 형형색색의 불꽃이 튀는 장면은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것이 괴한에 의한 테러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전무했다.
질서정연하게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기사들.
그들은 조금씩 떨어지라는 듯, 소란이 일지 않게끔 축제 인파를 통제하고 있었으니까.
“수고했다.”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마탑주가 미소를 머금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길거리에 거니는 사람들의 마나를 측정하고 위험분자를 발견하는 일이 결코 간단할 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대마법사의 능력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힘.
이윽고 그 중심부에 도착한 나는 바닥을 뒹구는 다섯 명의 흑마법사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알약을 먹은 모양이군.”
“예, 아마 저것은 부정을 끌어다 쓴 대가로 보입니다.”
“부정이라.”
그럴싸한 이름이군.
허공을 연신 움켜쥐며 꿈틀대는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다만 내게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회귀 전 연방제국의 병사들이 종종 보여 주던 비현실적인 광경이었으니까.
‘부작용을 줄이지 못한 하등품은 병사들에게 먹인 것이었나.’
그 역겨움에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허어……!”
잠시 후에 도착한 아렌델의 왕세자와 마기아의 왕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침음을 흘렸다.
“정말로 흑마법사군요.”
“알약…… 그 섬뜩한 기운이 놈들에게서도 느껴집니다.”
눈에서는 실핏줄이 터져 흰자가 붉게 물들었고, 온몸의 핏줄은 꿈틀대는 것처럼 요동쳤다.
몸에 남은 흔적만 보더라도 얼마나 끔찍한 알약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물며 저 구울과 같은 행동들은 뭔가?
그야말로 비인도적인 수단이 아닌가!
“연방제국…….”
마기아 왕자의 표정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마나를 대표하는 왕국의 이로써 이러한 폭거에 치가 떨린 것이다.
하지만 뒤따라온 로드 헤임달의 관심은 그런 흑마법사들이 아닌 이 공간 자체에 있는 듯 보였다.
그는 간단히 손을 대봤다.
스윽-
……단단하다.
허공의 어딘가, 두 공간의 경계를 어루만지는 손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왕자는 느끼지 못했을 테지만, 이것은 분명 고대 마법으로 만들어진 방어막이었다.
그것도 이전에 선보였던 대마법에도 꿇리지 않을 수준의.
“…….”
나는 그런 신중한 표정의 헤임달을 바라보다가 마탑주에게 말했다.
“마력의 추적은.”
“한 달 사이의 움직임이라면 가능할 것입니다.”
전생에서는 마기아의 힘을 빌리지 못한바, 그로 인해 준비해 둔 알약과는 별개의 추적 방법이었다.
놈들은 저마다 통신을 위한 아티팩트를 지니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한다면 이들이 어떤 경로로 이곳까지 왔는지 추적할 수 있으리라.
한 달이라는 시간이라면 충분했다.
“시작하도록.”
“예, 전하.”
팟-!
대마법사의 홍채가 크게 열리며 만물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추적의 마법이 발동되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 이미 그 결과를 짐작하고 있었다.
“크레타에서 온 자들입니다.”
“연방제국 수도의 서부였군.”
“예, 전하.”
“그렇다면 정답은 나와 있었나.”
진의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 순간, 마법을 발동한 것은 마탑주 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상황은 이해했으리라 믿지. 자, 그럼 알약에 담긴 기억은 어떻지?”
나는 묵묵히 마력을 회수하는 헤임달에게 말했다.
그는 왕자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이쪽으로 향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내 머릿속을 헤집는 듯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 * *
“에스테반의 왕세자 전하와 그 보좌관께서 입장하십니다!”
길게 펼쳐진 붉은 카펫.
그 위를 여유로이 거닐듯 이 축제의 주인공이 연회장으로 발길을 들였다.
뚜벅- 뚜벅-
“……허어.”
조금의 어색함도 엿보이지 않는 당당한 표정.
어긋남 없이 정연하고 이목을 잡아끄는 걸음걸이.
걷는 모습만으로도 위엄이 넘친다는 것은 이런 광경을 뜻하는 것일까?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저분이 바로…….”
“에스테반의 왕세자……!”
게다가 그 외형조차 범인의 상상을 초월했을 정도였으니.
어느덧 잠잠한 음악과 함께 몸을 움직이던 이들은 춤을 추는 것도 잊은 채로 멍하니 왕세자를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지한 기색으로 왕세자를 쳐다보는 시선이 있었다.
“왕세자.”
자신이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
마기아의 왕자는, 테라스에 걸터앉아 곱씹듯 그 이름을 뇌까렸다.
‘방심하면 안 될 상대라고 생각했건만, 생각 이상이었다.’
그가 보여 준 모습들은 물론이고 그 능력까지.
왕세자는 자신이 예상한 것을 월등히 뛰어넘는 인물이었다.
하물며 그 정보력은 어떤가?
고대 마법을 부활시킨 것부터 시작하여 알약의 일까지. 단지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두려운 행보였다.
마법의 종주국인 자신들조차 모르던 사실들을 알고 있는 것을 보아서는,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밖에는 짐작할 길이 없었다.
“로드 헤임달.”
왕자는 나지막이 대마법사를 불렀다.
“기억을 읽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알약의 기억 속에서 본 것을 자세히 들려주십시오.”
“……예, 전하.”
그러자 조용히 상념에 잠겨 있던 대마법사가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은, 한 폭의 지옥도와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은밀하게 감추어진 흑마법사들의 공방.
그 속에서도 가장 최심부에 숨겨진 방에는 수많은 철창이 줄지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을 사육하는 시설이었다.
“공포와 절망감. 그리고 분노는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감정이었습니다.”
“…….”
“그중, 혹자는 무력함에 지배당해 그 상황조차 순응하고 있었지요.”
그런 그들에게 내려진 형벌은 ‘공포’였다.
더 이상 부정적인 감정을 생산하지 않는 이들은 때가 되자 어딘가로 끌려갔고, 반대로 남은 이들은 자신의 차례가 될 것에 두려워하며 다시금 몸을 떨었다.
그렇게 끌려간 이들은 누군가의 시험체가 될 뿐이었다.
“흑마법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분주하게 명령을 내리며 산 채로 인간을 기계 속에 집어넣었고, 이윽고 피가 튀며 그들의 로브가 붉게 물들었습니다.”
“…….”
“시야가 흐려지고 기억은 거기에서 끝이 났습니다.”
심지어 그 뒤에 있을 평안한 안식조차 흑마법사들의 수작으로 인해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대마법사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부정으로 검게 물든 눈.
욕망으로 번뜩이는 입술.
얼굴로 튄 피를 슬며시 닦아 내며 혓바닥을 움직이는 남자가 있었다.
“라이덴 델 카롯트.”
“…….”
바로, 연방제국의 4황자였다.
거기까지 들은 마기아의 왕자는 손을 들어 올려 헤임달의 말을 막아 냈다.
“우리는 용무가 끝났으니 본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마법사가 손을 휘젓자 테라스에는 두 공간을 연결하는 포탈이 생성되었다.
먼저 헤임달이 그곳으로 발길을 들였고, 이윽고 왕자 역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왕자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
테라스의 안쪽으로 비추어지고 있는 남자.
이 시간이 지나면 공식적으로 왕위에 오를, 에스테반의 새로운 군주를 향해서.
“여기까지 내다 본 것인가.”
금기라는 절대적 부정을 저지른 연방제국의 4황자.
그것을 막아 내는 것은 마기아의 의무이기도 했으나, 마기아의 왕자에게는 가장 정치적인 무기이기도 했다.
‘정의’라고 불리는.
무엇보다도 강력한 정치적인 무기가.
“……아무래도, 협력할 수밖에 없겠군.”
아버지의 관심 별개로 자신 역시 에스테반에 관심이 생겼다.
왕세자 역시 이를 바라고 있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