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78화
끝내 이루지 못했던 소망 (6)
검술의 극의를 넘나드는 최연소의 소드마스터.
마침내 그가 왕위에 올랐다.
그 소식은 순식간에 대륙 전역에 퍼질 만큼 커다란 관심사였다.
그리고 그건, 적어도 4황자와 정쟁을 벌이는 1황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끼이익-
“방금, 놈이 왕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렇군.”
1황자는 문을 열고 나타난 수행원의 목소리에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녀석이 심혈을 기울였는데도 아무런 일이 없었단 말이지?”
통쾌함을 감추지 못하는 웃음소리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챙-
1황자는 손에 든 잔을 와인병에 부딪치며 여유롭게 말했다.
“파악했던 대로, 놈이 이번 대관식에 흑마법사들을 움직였던 것은 확실하겠지?”
“그렇습니다. 실제로 에스테반의 수도에서 자그마한 소동이 일었던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자그마한 소동, 말이지.”
그렇게 폄하할 정도라면, 놈의 계책이 또다시 막혀 들었다는 소리였다.
고작 본래의 목적인 소란조차 똑바로 일으키지 못했을 정도로…….
“후후, 뒤처리는 확실하게 했겠지?”
“네, 말씀처럼 귀족들을 움직여 규탄했고, 권한을 회수하는 쪽으로 움직일 거 같습니다.”
그 말에 1황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드디어 그가 원하던 날이 온 것이다!
이 소식을 들었을 녀석의 일그러질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
“황국의 자손으로서 보기에는 껄끄러운 일이지만…… 뭐, 이번에야말로 아버님께서 놈을 다시 보게 되었을 테니 결과적으로는 즐거운 일이군.”
“황제께서는 이번 계략마저 실패한 4황자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자리는 내 것이 된다는 소리겠지.”
즐거운 일의 연속이었다.
날로 줄어들어 가는 놈의 입지를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왕세자의 즉위를 기념하는 파티라도 열고 싶은 기분이다.
물론 자신을 이 자리에까지 오게 만들어 주었던 ‘까마귀’를 초청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한데 놈들의 목적이 대체 뭘까?’
그 행동은 드물게 근본적인 고민을 남겼다.
그. 혹은 그들의 목적이 권력욕 따위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면 지금까지의 행동이 너무도 현실적이지가 않았다.
아무런 대가 없이 타인을 황위에 올리는 것이, 그의 시선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으므로.
‘그러나 이런 고민을 하기엔 늦었지.’
이미 자신은 궤도에 올랐고, 남은 것은 눈앞의 영광을 향해 달리는 것뿐. 그런 상황에서 도와주는 세력의 진의를 의심해 봐야 의미는 없었다.
……또한 달라지는 것 역시도 없었고.
“4황자를 면밀히 주시한 채로 지켜보라 하라, 이번 기회에 보잘것없는 놈의 숨통을 끊어 내겠다.”
“본부대로 하겠습니다. 하면 흑마법사에 관한 것은…….”
“예정대로 병력을 일으켜 일망타진하겠다.”
1황자의 여유로웠던 표정이 마침내 희열로 변해 갔다.
그래, 이 순간을 위해 자신 역시도 4황자가 모르게 병력을 길러 놓았으니까.
오늘은 이 모든 일의 마침표를 찍는 날이 되리라.
그런데.
드드드드드드-
“…….”
그 순간이었다.
문득, 1황자는 자신이 쥔 술잔이 천천히 흔들리는 것 같다고 느꼈다.
착각일까?
“어이, 이게 대체…….”
쿠구구구!
챙그랑-!
“……!”
처음에는 술김에 느껴지는 착각인 줄로만 알았으나, 와인병이 땅바닥으로 처박히며 내용물이 쏟아지자 그제야 이 상황이 착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옴과 동시에 1황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 기사들! 이게 무슨 일이냐!”
“제, 제가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
수행원이 다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밖으로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미 열린 문틈으로 하얗게 질린 표정의 기사가 들어오고 있었으므로.
“크, 큰일입니다! 4황자가 병력을 일으켜 황궁을 장악하였습니다!”
“……뭐라?!”
갑자기 황궁을 장악했다고?
대체 어째서?!
1황자는 자신이 들은 것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러니까…… 놈이 지금 황궁을 공격했단 말이냐?”
“그, 그렇습니다. 이미 외부의 성벽들이 모조리 함락당하고 내성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미친 새끼.”
무의식적으로 씹어 뱉은 말이었지만 그보다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감히 아버님이 있는 황궁을 공격했다고…….’
미친 것이 분명했다.
이것은 반란이다.
도무지 장난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죗값은 제아무리 황자라 하더라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소리였다.
‘흑마법사 따위와 어울리더니, 이젠 이성마저 잃어버렸는가!’
하지만 지금 놈의 속셈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1황자가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벌써 외부가 뚫렸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외성을 수비하는 병력은 어쩌고?”
“바, 방어할 새도 없이 뚫렸습니다. 적들의 공격이 너무도 강렬합니다.”
“제기랄, 내성은?”
“앞으로 30분 이내에 뚫릴 것 같습니다!”
“크윽……!”
제아무리 놈이 미쳤다고 해도 황궁에 있는 병력의 질과 양을 착각했을 리는 없다.
일부라곤 해도 녀석도 자신의 군을 움직이고 있었으니……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놈이 이미 그조차 밀어 버릴 전력을 들고 왔다는 것.
그 끝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실각할 거 같으니 반역이라니…… 답이 없는 녀석이군.’
황위의 약탈.
그리고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멸살한다.
결국 자신도 그 목표 중 하나라는 사실 역시도.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1황자는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알약을 매만지며 다급히 수행원을 바라보았다.
“외부에 숨겨 둔 병력을 들여라. 놈이 내성까지 장악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어디론가 급히 움직이려 했다.
수행원이 고개를 조아리며 물었다.
“하, 하면 1황자 전하께서는…….”
“놈에게 지원을 요청하러 가겠다.”
까마귀.
놈들이라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다른 누구도 아닌 4황자를 이 정도까지 몰아붙였던 놈들이었으니까.
그렇게 굳은 표정으로 어디론가 움직인 1황자는 이윽고 금고가 숨겨져 있는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금고 안.
철컥-
“있다.”
놈들과의 통신을 연결시켜 주는 아티팩트가 그곳에 있었다.
늘 저것을 발동시키면 곧장 통신을 받았던가?
지체할 틈은 없었다.
1황자는 익숙한 손길로 통신구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스윽.
치지지지직-
이윽고 약간의 연결음이 지나가고.
“…….”
연결이 되지 않았다.
“뭐, 뭐지?”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항상 놈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통신을 받았고, 오히려 그쪽에서 먼저 통신을 보내오는 일도 허다했으니까.
행여나 외부에 통신을 방해하는 마법이 걸려 있는지를 확인했지만…… 그 역시 아니었다.
“자, 장난치는 것이냐! 빨리 받으란 말이다!”
스윽-!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1황자는 신경질적으로 통신을 연결했다.
치지지직-
뚝-!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통신은 불발이었다.
하지만 이번 것은 조금 달랐다.
불쾌한 연결음이 들려오는 도중, 통신의 신호가 사라져 버렸으니까.
“통신을 거부했다고? 대체 어째서…….”
1황자는 당혹감에 휩싸인 채,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저 반사적으로 통신구의 연결을 시도하며 이 상황을 부정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우웅-!
팟!
“……!”
그렇게 셀 수 없을 정도로 통신구를 쓰다듬던 그 순간.
영원히 연결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통신구가 빛나기 시작했다.
“돼, 됐다!”
1황자는 홀린 듯 통신구를 부여잡았다.
“어이! 어째서 통신을 늦게 받은 것이냐! 가뜩이나 한시가 급한 시기에…….”
-1황자.
“……!”
흠칫-
몸이 순간적으로 잘게 떨렸다.
통신구 너머로 들려온 음성은 그가 알던 ‘까마귀’의 것이 아니었기에.
“누, 누구야, 너?”
-아, 이렇게 인사하는 것은 처음이었던가.
“……까마귀의 수장?”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
기괴하고도 끔찍한…….
마치 철판을 손톱으로 긁어내는 듯한 음성이었다.
‘대, 대체 어떻게 이런 목소리가…….’
하지만 1황자는 급히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이, 이럴 때가 아니다! 4황자! 놈이 기어코 군사를 일으켰다!”
-아, 소식은 들었다. 그렇다고 하더군.
“그렇다고 하더군이 아니다!”
꾸욱-
통신구를 꽉 쥔 1황자의 손아귀가 하얗게 질렸다.
손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외성이 뚫리고, 이제는 내성이 뚫리기 직전이다! 내성까지 장악당하면 막대한 피해가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내 목숨도 보전할 수 없다고!”
-흐음.
“빨리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말해라! 첩보에 밝은 네놈들이라면 분명 이 상황을…….”
-어째서 해결법을 말해 주어야 하지?
“뭐, 뭐라고?”
어째서 그리해야 하느냐고?
당황한 탓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내, 내가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
이어지는 문답 속에서 위화감 같은 것이 싹텄다.
그러고 보니 어째서 놈들이 자신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지?
놈들의 목적은 하나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하, 하지만 놈이 군사를 일으킨 것은, 네놈들이 일을 이 지경까지 부추겨서…….”
뭐라고?
“……!”
문득 당혹감에 내뱉던 말은 곧 이상함을 피어나게 했다.
오히려 놀란 것은 그 본인이었다.
‘이 지경까지 부추겼다고?’
그들은 자신을 도와서 4황자를 몰아내려 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 과정은 둘 사이에서 싸움을 붙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싸움을 붙인다.
즉, 혼란을 유도한다.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면, 녀석들의 의도는 처음부터 다른 곳에 있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네놈들 설마!”
툭-
데구루루르-
저도 모르게 놓친 통신구가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무척이나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흐흐흐, 어떻게든 버텨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재미를 위해서도, 더욱 막심해질 피해를 위해서도.
버틸 수 있다면 말이지.
뚝-
연결이 끊긴 수정구는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던 빛마저 꺼진 채였다.
-으아아아아악!
-막아! 막으라고!
“…….”
이제, 황궁에서 들릴 정도로 소란은 가속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1황자의 귀에는 단지 먹먹이는 소리처럼 울릴 뿐이었다.
-괴, 괴물들이다! 도망쳐!
“…….”
본능적으로 흘러나오는 비명조차도 그렇게.
그는 풀려 가는 다리를 느끼며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 * *
“국왕 전하, 4황자가 황궁을 장악했습니다.”
탄생연회와 대관식이 끝난 지도 몇 시간이 지난 시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연회장은 이전의 열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고요한 적막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홀로 남아 잔을 기울이는 남자는 이제 ‘왕세자’라는 허물을 벗은 이었다.
“그리고?”
“황제와 1황자를 비롯한 이들이 모조리 죽임당했습니다. 위협이 되지 않을 황비와 황녀들까지도.”
“그야말로 피바람이 불었군.”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의외라고 해야 할지.
놈의 성격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조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 아비까지 죽이고 황제로 거듭나는 일은, 회귀 전에도 벌어지지 않았으니까.
“자신에게 방해가 될 이들은 모조리 죽인 모양이군.”
“그런 모양입니다.”
“1황자는 마지막까지 애써 주었겠지.”
“뭐, 최대한 분전했다고는 하네요. 황궁의 일부까지 무너뜨렸다고 하니, 제법 피해가 누적되었을 겁니다.”
“제법 쓸모가 있었군.”
연회가 끝난 이후 국왕이 된 나.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황제의 자리를 찬탈한 미치광이…… 모든 것이 회귀 전과는 달랐다.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 역시 회귀 전과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리라.
“이제는 새로운 국면에 다다랐다는 것인가.”
재미있겠군.
끼익-
나는 연회가 끝난 뒤에도 앉아만 있던 의자를 밀어냈다.
그러고는 보고를 이어 가던 조지에게 말했다.
“수고했다. 앞으로는 일이 바빠질 테니 가서 쉬고 있도록, 원한다면 휴가를 다녀와도 좋다.”
“어디 가시렵니까.”
“음.”
나는 고요한 분위기를 만끽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길었던 여정의 종지부를 찍으러 가겠다.”
그런 내 시선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국왕의 집무실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