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79화
끝내 이루지 못했던 소망 (7)
늦은 밤.
수십 년의 세월을 정리하는 국왕의 집무실은 새벽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불이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곳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
말 그대로 아주 잠시였다.
나는 작은 노크를 남기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알렌 에스테반.”
“당장 바쁘지 않으시다면 나머지는 천천히 하시지요.”
“…….”
사실 이미 집무실의 내부는 지난 수일 동안 말끔하게 정리된 채였다.
당장 내가 사용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이제 남은 것은 그간의 세월을 증명하는 작은 기물들 뿐.
다만 마무리가 밤이 늦도록 끝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지나간 세월이 길었던 탓이리라.
“……그래, 소식은 들었다.”
정적 속에서 드러난 근심 어린 목소리.
“연방제국의 4황자가 황제의 목을 치고 권력을 잡았다 하더구나.”
“예, 그렇습니다.”
금기를 어긴 흑마법사들을 앞세운 4황자는 막강했다.
고작 몇 시간이 지나기 전에 놈은 황궁을 장악했고, 그 경악할 소식은 에스테반은 물론이고 이미 주변국들에까지 퍼져 나간 상태였다.
물론 거기에는 ‘용병’으로 알려진 암흑가의 정보책들이 톡톡히 역할을 했다.
그 때아닌 소동을 접한 일부 국가의 사절들이 파티 중 급히 자리를 떠나기도 했으나…….
“너는 4황자가 그리 움직일 것을 알고 있었느냐?”
아버님은 당연하다는 듯 내게 그것을 물어 오셨다.
물론 내 대답은 부드러운 미소뿐이었다.
“놈들과의 전쟁이 머지않았다는 신호입니다. 4황자…… 아니, 이제는 황제가 된 녀석으로써는 선택이 따로 없겠지요. 철권통치, 그것만이 살길이니까요.”
“…….”
“이제 놈의 최우선 과제는 전쟁을 통한 반대 세력의 숙청과 정통의 확립일 겁니다. 뭐…… 성공한다면야 확실한 반석에 올릴 수 있겠군요. 대륙 일통이란 그런 것이니.”
“…….”
“하지만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
그 괘념치 말라는 목소리에 아버님이 놀라셨다.
“갑자기 그게 무슨 뜻이냐.”
“아버님께서는 이런 시기에 왕위를 넘긴 것을 후회하시며, 책임감을 느끼고 계시잖습니까.”
“……허.”
속내를 들켰다는 듯 미간에 골을 만드시는 아버님.
예상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마음이 어찌 편할 수 있겠는가.
아들을 믿는 것과는 별개로 외교적으로 무척 힘들 시기임은 분명했다. 오랜 기간 왕좌를 지켜온 그로서도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이었으므로.
실제로 그 탓에 급히 자리를 떠난 사절단도 있지 않은가?
‘하물며 이번에는 마기아에서 사람이 찾아오기도 했지.’
그야말로 격변하고 있는 정세!
하루하루가 다를 것이다.
“어차피 놈이 권력을 잡는 것은 정해진 미래였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이 좋습니다.”
“뭐?”
“보십시오. 놈은 조급해 있지 않습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신성제국을 통해 점점 포위망을 좁혔고, 1황자라는 패를 이용해서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거기까지라면 그럴 수 있다.
전 역사의 놈이라면 웃으면서 주어진 권한을 놓을 수 있었겠지.
긴 시간 자신의 욕망을 깊게 삼키고 버텨 온 녀석이었으니만큼, 더 뒤로 일을 획책하려 했을 거다.
하지만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반역을 일으켰다.
그 말은 더 이상 물밑에서 조종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 놈을 결정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것은 나라는 존재였다.
결국 그 대척점에 있는 내가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놈을 움직인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채 링 위로 올라오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그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을 뿐입니다.”
“…….”
놈들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리고 에스테반을 찾아온 마기아에게도 말이다.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아버님께 말했다.
“바쁘지 않으시다면 잠시 움직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시간에 말이더냐?”
“어차피 이대로라면 밤새 이곳에 계실 테니까요. 그럴 바엔 차라리 그 시간을 제게 주시지요.”
“…….”
대답은 없었으나 그것이 긍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미련, 혹은 걱정.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이곳에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나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따라오십시오.”
“……그래, 알았다.”
더 이상 타인의 뒤를 쫓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을.
이제는 이 집무실을 떠나갈 인물.
당신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 * *
한밤중,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왕궁 구석에 있는 마구간이었다.
“여기는?”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나는 천천히 마구간을 거닐며 그곳을 둘러보았다.
이윽고, 구석의 한 편에서 낯선 형체의 말 두 필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녀석은…… 레버넌트군.”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암, 이런 녀석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지.”
비록 어둠 속이었지만 아버님의 눈에서 이채가 도는 것이 보였다.
그 특이한 잿빛 갈기나 유령마라는 이름도 그러했지만, 기본적으로 말 중에서는 가장 빠른 품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평소 아버님께서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시는 취미가 있다면, 그것은 승마였다.
제아무리 알려지지 않은 품종이라 해도 알아보지 못하시는 것이 이상하다는 소리다.
“설마 이것을 내게 선물로 주는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허.”
고이 메여진 고삐를 어루만지시는 그 눈빛이 덤덤하지만 무척이나 기뻐 보이신다.
연방제국 인근에 자생하기에 당분간 구하기 쉽지 않을 녀석.
심지어 길들기도 어려운 녀석이니만큼 그 특별함이 더해진다.
‘왕국 상단에서도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고 했던가.’
나는 천천히 말에 오르며 아버님을 바라보았다.
“따라오십시오.”
“음? 오늘은 이 녀석들을 보여 주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느냐?”
“새 말을 얻었다면 타 보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습니까.”
“음, 옳은 말이지.”
말씀하지는 않으셨지만 내심 본인도 그리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골머리 쌓으며 집무실에만 계셨을 테니, 그 피로를 풀기엔 딱 좋을 것이다.
아버님은 곧장 말에 오르셨고, 이내 우리는 말을 몰아 달리기 시작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지만 숙련된 기마술은 능숙하게 왕궁을 벗어나게 해 주었다.
“엇!”
그렇게 순식간에 다다른 왕성의 정문.
멀리서 일행을 발견한 기사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성문을 열어라!”
“열어라! 어서! 국왕 전하와 선왕께서 통과하실 것이다!”
“알겠습니다!”
끼이이익-
드워프들에 의해 보수된 성문은 엄중한 보안장치가 가동된 뒤에야 열렸다.
그렇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이것까지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성문의 잠금장치를 푼 기사들. 또한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들의 뒤를 쫓아 호위 진형을 형성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어둠 속에서 신원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을 테지만 그런 과정조차 없었다는 말이다.
‘대체 무엇을 준비했기에…….’
선왕의 머릿속에는 또다시 의문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버넌트는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투두두두두-
그렇게 한참을 달렸을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움직임은 어느덧 여명이 밝아 올 때가 되어서야 멈추었다.
아버님은 나를 따라 말에서 내리시며 물어보셨다.
“처음 보는 곳이구나. 여기는 어디지?”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평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님께서는 의아한 눈치셨다.
모르긴 몰라도 레버넌트의 속도로 한참을 달려왔으니 제법 거리가 있을 터.
아닌 새벽에 이런 곳까지 온 연유가 궁금하실 법도 했다.
하지만.
“저쪽을 보시지요.”
“음? 허어……!”
손가락이 향한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 모든 의아함이 씻은 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건…….”
평원의 낮은 언덕 사이로 솟아오르는 태양.
그 찬란한 빛은 정처 없이 흩뿌려진 나무들에 가려 안개처럼 바스러졌고, 이내 더욱 높이 솟아오르자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이름조차 없는 평원의 모습은, 이 순간만큼은 한 폭의 그림처럼 황홀한 광경이 되었다.
적어도 두 사람의 시야에 비친 것은 그러했다.
저벅-
나는 아버님께 다가가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근방의 주민들은 이 광경을 고결한 태양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명소 같은 것이지요.”
“고결한 태양…….”
“아버님께 이 광경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그러냐? 한데 어째서…….”
“글쎄요.”
어깨를 으쓱이며 의뭉스럽게 웃었다.
“……그렇군.”
그러자 아버님께서는 짚이시는 것이 있는지 더 이상 묻지 않고, 그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실 뿐이었다.
언젠가, 비가 오던 그날 적었던 작은 소망을 상념 속에서 떠올리면서.
-당신과, 태어난 아들과 함께 일출을 보고 싶었소.
그녀의 묘비 앞에 놓아 둔 편지 하나.
어느덧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기억이거늘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겠지.
아마도 이렇게 감성적으로 되어 버린 것은 불현듯 찾아온 마기아의 손님 탓이었으리라.
“고맙다.”
그제야 나는 아버님의 웃음을 볼 수 있었다.
국왕으로써의 웃음이 아닌.
이제는 아비로서의 진정한 미소였다.
하지만 이걸로 만족하시면 곤란하시지.
“뭘요, 이것이 시작입니다.”
“음?”
“다음번엔 제국의 무너지는 황성을 배경으로 보여 드리죠.”
짐짓 농담처럼 들리는 말이었으나 그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정말로 그리 만들어 주기라도 할 것처럼.
* * *
여전히 축제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수도의 거리를 지나쳐 왕궁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정오에 가까워진 시점이었다.
“전하, 오밤중에 어디를 갔다 오셨습니까.”
비도르 후작이 나를 발견하고는 복도 끝에서부터 달려왔다.
나는 모습을 가려 주던 외투를 벗은 뒤, 팔에 걸고는 그를 지나쳤다.
“아버님과 다녀올 곳이 있었다.”
“아아, 그렇습니까?”
어디인지는 말해 주지 않았으나 무언가 일이 있었다는 것만은 짐작한 모양이다.
후작은 뒤를 따라붙으며 간밤에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연방제국에서 들어오는 소식이 끊겼습니다. 아마 대외적인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국경은 물론이고 통신까지 모조리 차단한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반란이 일어나고 황족이 모조리 참살당했다는 소식이 퍼져 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물론, 내 탓으로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소식이 되어 버렸다만…….
그렇게 생각하면 놈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마 국경의 폐쇄가 끝나면, 놈은 연방제국의 혼란을 수습한 인물로 둔갑해 있을 터다.”
“예? 대체 어떻게…….”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본모습을 감추어 왔으니까.”
공식 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해도, 평소 놈이 보이던 언행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이를테면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쓰는 품행이라든지.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의 주특기인 간책뿐이었다.
“그러니까, 내부를 먼저 다스리기 위해 국경을 폐쇄했다는 뜻입니까?”
“정확히는 반란의 소식이 멀리 퍼지지 않도록 조절했다는 뜻이겠지. 연방제국의 땅은 넓으니까 말이야.”
“하긴…… 수도와 그 주변을 봉쇄하고 타국에서 소식을 듣지 못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효용성이 있겠군요.”
“음.”
나는 발걸음을 옮겨 집무실로 향하려다가, 문득 그곳이 왕세자…… 정확히는 이전 집무실 방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그곳으로 갈 필요는 없을 테지.
십 년 동안 사용했던 국왕의 집무실이 아닌 그곳으로 향하려 했다는 것은, 회귀 이후 지난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는 바를 시사하는 것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손님이 와 있습니다.”
“손님?”
“아침에 찾아와서 전하를 뵙게 해 달라고 하더군요.”
후작이 고개를 가까이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흑마법사입니다.”
“그렇군.”
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드디어 미끼를 물었나.”
격변하는 정세.
그 속에서 남은 이들은 단지 흐름에 따라 편승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흑마법사라고 해도 다를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