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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80화 (180/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80화

살아가기 위해 (1)

“국왕 전하께 방문 소식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잠시만 이곳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

“자세한 것은 알현 신청의 결과가 나오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맙소.”

끼이익-

철컥-!

흑마법사.

혹은 악마의 하수인.

그것은, 신의 뜻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족속들을 뜻하는 멸칭이었다.

역사에서 이르기를 그들은 부패한 감정을 다루고 간악하고 잔혹한 마법을 쓴다 했든가?

그것이 꾸며진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흑마법사들의 존재가 부정적으로 비추어진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

때문에 왕성을 찾은 그들은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었다.

“왕성이라니.”

“……이건 미쳤어.”

휘황찬란한 응접실에 홀로 남은 흑마법사들.

“스승님…… 아직까지는 경비가 느슨한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초조함의 시선이 향한 곳은 스승이라 불린 노마법사에게였다.

처음 말을 꺼낸 흑마법사는 잘게 떨리는 팔을 부여잡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도망자의 신세입니다. 세간은 저희를 악마 따위로 취급하고 있고, 그 속에 숨은 사정 따위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

“그런 흑마법사가 왕실에 직접 찾아오다니요?”

게다가 에스테반의 새로운 국왕은 신성제국과도 연이 닿은 인물이었다.

이대로라면 그들 모두, 사정을 말하기도 전에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엇……!”

그때, 마저 답답함을 토로하려던 흑마법사는 문득 말을 멈추었다.

노인의 앙상한 팔이 결연하게 굳은 것을 보았던 탓이다.

“……스승님.”

“그래, 나도 알고 있단다.”

그 말대로.

자신들이 이곳에 있는 것은 큰 위험부담을 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확실히 말하면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하면 어째서……!”

“내가,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지.”

또한 그렇기에 신성제국과의 끈을 가지고 있는 그를 찾아오기도 한 것이고.

노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같은 시각.

“일단은 응접실에 고이 모아 두었습니다만.”

조지는 응접실 열쇠를 손가락으로 돌리며 내게 보고했다.

“혹시 모르니까 문이라도 잠가 놓을까요? 기사를 배치한다든지.”

“필요 없다.”

“어차피 이곳까지 찾아온 거라면 도망가지도 않을 테니까요?”

“그래.”

게다가 놈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이미 알고 있으니 그럴 걱정은 없었다.

물론 딱히 도망쳐도 상관은 없다.

회귀 이전에 발견된 은신처들은 모조리 기억하고 있다.

4황자가 흑마법사들을 내세우고 있다는 첩보를 전해 들은 직후로는 그 주변을 감시하게 만들기도 했고.

그렇기에 놈들이 도망간다면 찾아내면 될 뿐이었다.

“뭐, 애초에 도망간다 해도 손바닥 위에서 놀아날 뿐이지만요.”

마치…… 직접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찾아가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스륵-

조지가 어깨를 으쓱이며 반대 손에 든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갈아입을 옷이었다.

“10분 후에 놈들을 집무실로 불러내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밖에 사람들은?”

“물리도록.”

“예, 뭐, 알겠습니다.”

나는 욕실로 들어간 뒤에 옷을 벗어 나갔다.

밖에서는 목욕 시중을 들겠다며 찾아온 사용인들이 대기하고 있었으나, 당연히 방 안까지 들어오게 두지는 않았다.

국왕이 된 이후에도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점은 변하지 않았으므로.

쏴아아-

나는 간밤의 일을 미적지근한 물로 씻어 내리며 중얼거렸다.

“흑마법사라…….”

가장 깊은 심연에서 모습을 감추어야 할 흑마법사들.

그런 그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연방제국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있었기에.

보다 정확히는.

그것이 시사할 여파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탓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이쪽에서는 이용해 주어야겠지.”

나는 미끼를 문 채로 당겨지기만을 기다리는 흑마법사들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피식 올렸다.

거슬리는 장애물들을 치워 내기 위해 황위를 찬탈한 4황자. 덕분에, 일이 편하게 돌아가게 생겼으므로.

* * *

“즉위하신 국왕께서…… 알현을 허가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뭐, 일단은 그렇습니다.”

권태로이 이야기하는 보좌관의 모습에 흑마법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바라고 이곳까지 오기는 했으나 정말로 만날 수 있을 줄은 몰랐던 탓이다.

‘이곳에서 붙잡히는 것도 각오했건만…….’

저 모습을 보면 일단은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애초에 잡을 거라면 이곳에서 체포하지, 집무실까지 들이지는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스윽-

흑마법사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보좌관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었다.

‘우리를 경계하지 않는 건가?’

이전에 자신들을 이곳까지 안내했던 사용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 보좌관은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대우는 뭔가?

자신들을 감시할 기사는 물론이고 저 평온한 태도까지.

경계하고 혐오하는 모습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다.

당연히 세간의 멸시를 받아 온 흑마법사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으리라.

‘혹시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나?’

‘……설마.’

그렇게 의문이 깊어져 갈 무렵.

보좌관은 국왕의 집무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국왕께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들어가십쇼.”

“……안내해 줘서 고맙습니다.”

끼이익-

일순의 시간이었으나, 문이 열리는 그 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

이윽고 그들은 바라 마지않던 사람을 마주할 수 있었다.

“뭇 기사들의 이정표이자 에스테반 왕국을 이끄시는 국왕 전하께 인사드리옵니다.”

알렌 에스테반.

오만하고 차디찬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 그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흑마법사들을 이끌고 온 ‘스승’은 다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전하, 저희는 에스테반에서 숨어 지내는 흑마법사입니다. 쇤네는 이 아이들을 이끄는 스승으로서…….”

“본론만.”

“……예?”

“시간을 들여서까지 자기소개 따위를 할 필요가 있나?”

“그, 그게, 저희는 흑마법사기에…….”

“그것이 본론보다 중요하다면 계속 지껄이도록.”

“…….”

주름진 얼굴에 당혹감이 물들었다.

자신들은 흑마법사다. 어쩌면 이렇게 마주하는 것조차도 혐오감이 들 수 있는.

그러니 먼저 자신들의 출신을 낱낱이 밝힘으로써 숨기는 것이 없음을 나타내려 했건만, 상대는 그딴 것쯤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을 끊어 냈다.

마치, 자신들이 ‘흑마법사’인 것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물론 자신들의 자기소개를 듣기 싫다는 표현일 수도 있었으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왜냐하면.

‘……역시 이분이 아니라면.’

세간에 퍼진 새 국왕의 미담들.

적어도 그가 들을 수 있었던 국왕의 모습이라면, 자신들을 그저 내치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했으니까.

“……하면 무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전하께서 즉위하신 간밤에 연방제국에서는 큰 사단이 일어났습니다.”

“4황자가 반란으로 황권을 잡았지.”

“이미 백성들에게까지 퍼진 소문이니만큼 그 진위를 의심치는 않습니다.”

늙은 노마법사는 각오하듯 마른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믿으시기 어려우실 테지만, 4황자가 황권을 잡은 데는 흑마법사들의 힘이 주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

스스로 칭하길 강경파들의 태동. 그것이 숨어만 있던 이들을 왕성까지 찾아오게 만든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조심스레 국왕의 얼굴을 살핀 노마법사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진실을 접하고도 조금도 변하지 않은 남자의 낯빛.

오히려 시큰둥해 보이는 것이, 언뜻 지루하게 보일 정도였다.

때문에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건가 싶었던 노마법사가 황급히 다음 말을 하려 했으나…….

“그리고?”

“예?”

“고작 그런 말을 하려고 내게 찾아온 것은 아닐 텐데.”

남자는 그다음 말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흑마법사들이 당혹감에 휩싸인 것은 당연했다.

“사, 사실 말살 작전 이후 대륙의 흑마법사들은 두 세력으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흐음.”

“먼저 신성제국의 감시가 상대적으로 덜한 에스테반에서 활동하는 온건파와…….”

“신성제국의 적수인 연방제국에서 활동하는 강경파가 있었을 테지.”

“……!”

순간.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온 말에 흑마법사들이 경악했다.

“지, 지금…….”

“왜? 내가 그것을 모르리라 생각했느냐?”

“그건…….”

되돌아온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그도 그럴 것이 강경파에 대한 사실은 흑마법사들만이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제법 연식이 있는 이들만이 알고 있을 법한.

‘여, 연방제국조차 모르고 있던 사실을 대체 어떻게……!’

세간에 퍼진 소문조차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했단 말인가?!

하지만 상대는 여전히 시큰둥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찾아온 이유도 뻔한 일이지. 연방제국에 가담한 흑마법사. 그들의 존재를 경고하고 강경파의 난동을 막아달라 요청하는 것.”

“…….”

“내 말이 틀렸나?”

“……아니요. 틀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속내를 드러내게 된 노마법사가 힘없이 말을 이어 갔다.

“연방제국의 4황자는 틀림없이 강경파의 힘을 주축으로 이후의 일들을 해결하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역으로 흑마법사들의 입지를 좁히는 자충수가 될 테지요.”

전장에서 활약하는 흑마법사.

하물며 그들은 거리낌 없이 ‘금기’를 악용하는 강경파였다.

그 잔혹한 모습은 결국 또다시 흑마법사들을 탄압하는 원인이 될 가능성이 컸다.

물론 가만히 숨어만 있는다면 온건파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 이후에는 더 이상 미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방법도.

앞으로 자라나게 될 그들의 후예 역시도.

그렇기에 에스테반의 국왕을 찾아왔다.

“그런 일은 벌어져서 안 됩니다. 잘못을 바로잡더라도 어긋난 방향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호오.”

“그리고 전하께서는 이를 바로잡을 힘이 있으십니다.”

신성제국이라는 막강한 연줄.

그리고 전운이 감돌고 있는 연방제국과의 관계.

남자는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렇군.”

국왕의 눈매가 처음으로 흥미라는 감정을 내비쳤다.

“죄 없는 이들에게까지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건가.”

“한때는 쇤네 역시 분노를 표출할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는 방향은 옳은 길이 아닙니다.”

“역시 공동묘지에 은신처를 만든 것은 네놈이었나.”

“……그것까지도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인제 와서 숨길 이유는 없었다.

공동묘지의 아래에 은신처를 만들고 힘을 비축하던 것.

그리고 그곳에 공간이동의 마법을 새겨 놓은 것.

놀랍게도 이 늙은 마법사는 역사의 탄압 속에서 초인의 경지에 다다른 남자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복수는 증오의 연쇄를 낳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제게는 더 이상 이전의 힘이 없습니다.”

“적어도 내 눈에도 그리 보이는군.”

각오와 함께 스스로 절개한 힘의 근원. 그의 몸속에는 한 톨의 마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증오의 고리를 끊어 달라는 뜻이겠지. 그렇기에 모든 정보를 숨기지 않고 내주었고.”

“감히 말씀드리건대, 그렇습니다.”

“하지만 곤란한 일인데.”

“예?”

놀라는 노마법사의 눈에 국왕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다.”

그래.

그들이 전해 준 정보는 이미 국왕이 알고 있던 것이었다.

하물며 강경파를 처단하고 온건파를 두둔하는 것은 신성제국의 뜻을 전면으로 부정한다는 것.

자칫 지금의 관계마저 잃어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무리에 가까웠다.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흑마법사들이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저희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역시나 이해가 빨라서 좋군.”

척-

“……!”

노마법사는 자신에게 건네진 물건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자그마한 알약.

그것은 분명, 흑마법으로 만들어진 재앙이었다.

“간단한 일이지.”

그리고 국왕은 여유로이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네놈들에게 그만한 쓸모가 있음을 증명해라.”

위험부담과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온건파를 도와야 할 이유.

그 쓸모를, 몸소 증명하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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