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81화
살아가기 위해 (2)
어느 도시의 빈민가.
그곳의 지하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거대한 광장이 존재했다.
오직 세상을 등진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휴식처.
바로, 인공적인 빛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흑마법사들의 은신처였다.
“대장로님!”
노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내부에 있던 이들이 다급히 달려 나왔다.
피죽 한 그릇도 얻어먹지 못한 것 같이 야윈 아이들. 그 얼굴에는 초조함이라는 감정이 가득했다.
“대, 대장로님 혼자 오신 건가요?”
“아저씨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허허, 걱정하지 말려무나. 흔적을 지우면서 오느라 늦는 거란다.”
“저, 정말로요?”
안심해도 된다는 듯 주름진 손이 아이들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 뒤를 이어 왕궁에 함께했던 흑마법사들이 차례로 은신처에 도착했다.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저씨들!”
“스승님, 추격은 전혀 따라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은신처를 알아내려는 최소한의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말자꾸나.”
“아……!”
노마법사는 아이들을 달래며 내부로 들여보냈다.
그런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씁쓸해 보였다.
“최소한 저 아이들만큼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죄송합니다.”
모두 이어진 흑마법사 척살 과정에서 고아가 된 아이들이었다.
어떠한 연고조차 남지 않고 대륙 각지에 버려진 희생자.
어쩌면 그것을 끌어안는 것조차도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라 생각하는 노마법사였다.
“흐읍.”
아이들을 달래 주느라 꿇었던 무릎.
노쇠한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운 그가 흑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자네들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일 수 있겠다만, 아마 추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게야.”
“스승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에스테반의 새로운 왕. 그는 이미 이곳의 위치를 알고 있었네.”
“그, 그게 정말입니까?!”
흑마법사들이 화들짝 놀랐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얼마 전부터 주변을 맴돌던 시선이 느껴졌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기에 내버려 두었거늘, 아무래도 그가 보낸 사람이었던 것이겠지.”
“그, 그런 일이 있었다니…….”
“숙련된 은신이었으니 눈치채지 못할 법도 했을 것이야.”
그런 시선을 노마법사는 눈치채고 있었다.
한 번 경지에 다다른 눈.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범한 삶을 택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피해 갈 수 있을 리는 없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미 그때부터 우리가 올 것이라 예상했던 모양이구나.”
“허.”
감추어진 강경파에 대한 것을 알고 있는 것도 그랬고.
그 이후에 자신을 옭아맸던 언행들 역시 이를 증명하리라.
노마법사가 손을 뻗자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일렁이더니 알약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우웅-
수 겹의 보호막으로 둘러싸인 그것은, 그 견고한 차단막이 무색하게도 사악한 기운을 사방으로 흩뿌리고 있었다.
“……스승님.”
“전반적인 기술은 달라졌지만, 강경파가 연구하던 것이 틀림없구나.”
노마법사의 표정이 굳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는 흑마법사 탄압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강경파와 온건파가 분리되게 된 계기도.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연구하고 있었는지까지.
“……이것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야. 결코 이런 것이 만들어져서는 안 돼.”
그렇게 중얼거리는 노마법사의 머릿속으로 새로운 에스테반의 국왕과 나누었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을 무력화시킬 방도를 찾아내도록.
-……이것은 아티팩트와 다르게 무력화가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나도 알고 있다.
알렌 에스테반.
그는 한없이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무력화시킬 방도를 ‘찾아’내라고 한 것이지.
노마법사는 뛰어노는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것은 기회였다.
그 가치를 증명함으로써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
국왕은 자신들에게 리스크에 상응하는 대가를 짊어지라 말하고 있던 것이다.
-기대하고 있도록 하지.
머릿속으로 재생되는 국왕의 목소리.
눈을 뜨는 것으로 다시금 현실을 직면한 노마법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해 보겠습니다.”
그것이 상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기필코 자신은 이루어 낼 각오가 있었다.
미래에 남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제는 놓아 버렸다 생각한 자신의 미련을 위해서라도.
* * *
흑마법사들이 떠나고.
“뭐, 겨우 귀찮은 일들이 넘어갔네요.”
새로운 집무실에 보관할 서류를 정리하던 조지가 어깨를 으쓱였다.
고작 하루나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정말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뿐이랴?
연방제국에서 벌어진 참극이 가져올 여파는 작지 않다.
앞으로는 말 그대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는 뜻이다.
물론 나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고.
“그런데, 흑마법사들이 알약의 대응책을 가져오는 데에 얼마나 걸릴 거라 예상합니까?”
“3주.”
“허.”
나는 읽어 내리던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답했다.
3주.
그 짧다면 짧은 시간에 조지의 눈매가 좁혀졌다.
“신성제국의 고위 사제들조차 혀를 내둘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놈들은 흑마법사가 아니다. 목수가 세공사의 일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이지.”
“그럼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있다.”
망설임 없이 흘러나온 확고한 대답.
아닌 게 아니라, 사실 온건파의 흑마법사들은 그것을 막아 낼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들의 수장인 ‘대마법사’가 알고 있을 테지.
그러니 알약의 대응책은 이미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는 그들의 노력 여하에 달렸을 뿐이다.
그들의 쓸모를 증명하라고 말했던가?
흑마법사들의 능력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당연히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하지만 구태여 그런 행동을 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을 염두에 둔 탓이었다.
‘……계약관계. 그러나 어디까지나, 나는 구원자의 입장에 있어야 한다.’
리스크를 짊어지고 흑마법사들을 포용한 구원자.
모든 관계의 시작은, 그것으로부터 뻗어 나가게 될 것이니까.
물론 그 ‘리스크’조차 이미 모든 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부디 귀찮음을 감수한 만큼 쓸모가 있었으면 좋겠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에 조지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일전에 놈들에게 시켰던 것은?”
“착실히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지의 보고에 흡족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슬슬 또 다른 결실을 맛볼 시간이 되었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품속에 들어 있던 통신구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즉각적으로 통신이 연결되며 잊지 못할 목소리가 맞은편에서 들려왔다.
-불러 주셔서 영광입니다, 친애하는 국왕 전하.
까마귀. 그 기괴하고도 공허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 * *
발테르 공작은 공작위를 받은 이후에도 일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여전히 재무부에 들어오는 서류는 꼼꼼히 확인했고, 직접 처리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나 근래에는 아예 재미를 붙인 듯싶었다.
“허허, 또 무역의 요청이 들어오다니.”
사방에서는 무역을 빙자한 미스릴 구걸이 쏟아지고 있었고, 몇몇 국가는 그 틈을 노려 고대 마법과 드워프제 무구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틈을 노렸다 뿐이지 어디 경쟁자가 한둘이겠는가?
앞선 선왕의 탄생일로 에스테반의 위상을 재차 확인하게 된 지금에서. 일이 조금 바빠지는 것 정도로는 그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음! 이 정도 조건이면 나쁘지 않고…… 이대로라면 황금의 땅이라고 불리는 남부 대륙의 국가들을 뛰어넘는 것도 얼마 걸리지 않겠구나…… 으음?”
그런데 이상했다.
최근…… 그러니까, 2왕자파가 몰락한 이후부터 유독 눈에 띄는 서류들이 있었다.
때마침 그의 눈에 들어온 것도 그런 부류였다.
“이번에는 또 다른 이름이군. 왕궁에 물건을 납품하는 상회 중에 이런 곳도 있었나?”
어느새인가 고정적인 지출이 되어 버린 어느 납품 계약.
매번 다른 상회의 이름으로 납품되었기에 무척이나 눈에 띄었다.
게다가 그 조건 역시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생필품을 이만큼이나 많이 사들인단 말인가? 게다가 이번에는 평소의 몇 배씩이나?!”
그랬다.
매번 납품되는 물품은 필요량보다 월등히 많은 개수.
그에 비해 가격은 터무니없이 저렴하다.
재정에 밝은 발테르 공작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왕세자…… 아니, 이제는 국왕이 되신 그분의 명령으로 진행된 계약이라는 사실이었다.
‘대체 뭐지?’
지금까지는 이상함을 느낄지언정 확인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너무도 많은 양이었다.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어쩌면 착오가 있었을 수도 있으니 직접 확인해 보아야겠군.”
물건의 수량을 잘못 기입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황급히 바로잡아야 하리라.
공작은 재빨리 외투를 입고 최종적으로 물건이 도착하는 왕실의 창고로 향했다.
척-!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이보게, 이번 주에 왕실로 납품된 물건들은 이미 정리되었는가?”
“아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으음, 잘됐군. 직접 한번 확인해 보겠네.”
“예, 각하.”
탐색 아티팩트로 공작의 전신을 훑은 기사들이 물러서며 고개를 조아렸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허가가 떨어지자 공작은 재빨리 내부에 정렬된 수레들을 살피며 물건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공작은 원하던 물건이 담긴 수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 있군.”
스윽-
조심스레 수레 외부를 감싼 가리개를 들추었다.
하지만 내부에는 서류에 적혀 있던 수량이 고스란히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양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그 저렴한 가격은 대체 뭐지? 애초에 이 많은 양을 어디에 쓴다고.”
결국 공작은 창고의 관리인을 불러 물건이 어디로 보내지게 될지를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너무도 허무했다.
“송구하오나 저 역시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단지 국왕 전하의 명령대로 움직인다는 것밖에는…….”
“허어.”
다시 원점이었다.
일단은 저것이 왕궁이 아닌 외부로 반출된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나마 다행이리라.
“흠, 그분이시니 당연히 계획이 있으시겠지만…… 나로서는 의중을 짐작하기 힘들군.”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시세보다 월등히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상회‘들’.
공작의 의문은 깊어져만 갔다.
* * *
그로부터 보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겨울.
변함없이 무탈하게 지나갈 것 같았던 오후는 누군가의 소식 덕분에 활기를 띠었다.
“흑마법사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렇군.”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3주 후로 예상했던 흑마법사들의 방문이었다.
탁-!
나는 펜대를 내려놓고 무표정하게 감상을 내뱉었다.
“2주 하고도 하루. 예상보다 빠른 시기에 도착했군.”
“안으로 들일까요?”
“음.”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놈들이 가지고 왔을 것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기도 했고, 그 이상으로 궁금한 것이 있기도 했기에.
“각오를 다잡았나 보군.”
뚜렷하게 느껴지는 기척.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것은 어두운 밤하늘 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주변의 어느 것보다도 밝게 스스로를 태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