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82화
살아가기 위해 (3)
“갑작스런 방문에도 알현을 허가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한 번 내려놓았던 것을 되찾은 초인.
고작 보름 만에 마주한 노마법사는 그 기세부터가 달라졌다.
예상보다도 빠르게 찾아온 것은 과거의 힘을 되찾은 덕분이었을까?
나는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 눈썹을 잘게 들어 올렸다.
“마나를 저장하는 곳은 심장이라고 들었는데, 이토록 쉽게 비워 내고 채워 넣을 수 있는지는 몰랐군.”
“잘라 내고 비워 냈다 하더라도 극의를 이루어 낸 그릇은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더 이상 노쇠한 노인의 것이 아닌 안광.
“처음부터 제 것이었던 마력을 주워 담았을 뿐입니다.”
“호오.”
그렇게 로브 사이로 드러난 그의 눈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 보였다.
물론 간단한 일도 아니었을 테고 각오를 뒤엎는다는 데에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그러니 저렇게 올곧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겠지.
“뭐, 대충 이해는 가는군.”
나 역시도 회귀 전의 힘을 좇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므로.
“나를 찾아왔다는 말은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았다는 뜻이겠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증명하도록.”
오만한 시선이 노마법사를 꿰뚫었다.
“네놈들의 가치가 나를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한지를.”
“알겠습니다.”
후우우웅!
로브의 소맷자락이 펄럭이며 허공에 검은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직 대마법사만이 사용 가능하다는 아공간의 권능.
그리고 그 속에서 고이 보관되어 있던 알약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하께서도 아실 테지만 이것은 단순히 인간을 재료로 사용한다 해서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렇게 간단했다면 지금까지 만들어지지 않았을 이유가 없을 테니까.”
숱한 전쟁과 빈곤.
혼돈이 만연했던 시기에는 인간이 인간을 먹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와 비슷한 녀석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저 알약은 그러한 존재였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가능케 했던 기술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일순, 정제된 눈빛이 복잡한 감정으로 뒤덮였다.
“강경파가 연구하던 금단의 힘. 바로, 인체의 폭탄화입니다.”
“폭탄화.”
들리는 의미대로라면 말 그대로 인체를 폭발물로 바꾸는 기술이었다.
짐짓 알약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을 것만 같은 이름. 그러나 이를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시체를 폭발시키듯. 인체를 한 줌의 마력으로 변환시킨 것이군.”
“……정확합니다. 흑마법사가 아니면 모를 것을 추측만으로 알아내셨군요.”
내가 그것을 정확하게 짚어 낼 줄은 몰랐는지, 드물게 당혹스러운 기색이 비추어졌다.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놀란 반응이었다.
“시체를 폭발시키는 것은 저들이 완성시키고자 하던 마도(魔道)의 극의였습니다. 그것이 가능해진다면 전장에 나뒹구는 수만 구의 시체가 곧 무기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내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시체에서 어떻게 마력을 만들어 내느냐였다.
모든 마법에는 합당한 매개체가 필요하다. 그것은 상식과도 같은 이야기였으므로.
“하지만 시체에서 마력을 생성해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미 죽은 몸이 흑마법의 근원인 ‘부정적인 감정’을 생산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예, 그렇기에 그들은 새로운 방식을 연구하였습니다.”
그것이 강력한 원념을 시체 그 자체에 남기는 것.
즉,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을 만큼의 감정을 살아 있는 인간에게 새기는 것이었다.
“이 알약에 깃든 기술은 틀림없이 그 기술입니다. 비록 아직 완성된 기술은 아닐지언정 그에 비견되는 단계임이 분명할 테지요.”
“시간이 지나면 시체를 폭발시키는 일도 무리는 아니라는 것이겠지.”
“어쩌면 이미 완성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노마법사의 꽉 쥐어진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연구가 얼마만큼 진행되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강경파와 온건파가 찢어진 것은 수십 년도 더 지난 일이었으므로.
하지만 알약에서 보이는 흔적들은 오직 하나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머지않아 놈들이 원하던 기술이 완성되리라는 것을.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것의 메커니즘이 육신에 감정이라는 낙인을 새기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우웅-!
이윽고.
알약을 뒤이어 검은 균열 속에서 나타난 것은 언뜻 보기에도 내게 익숙한 형태의 물건이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는 그 과정 자체를 틀어막으면 됩니다.”
부식된 해골의 머리통.
흑마법의 가장 기초적인 기물로써 사용되는 그것에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흡수하는 마법진이 덧그려져 있었다.
바로, 2년 전 내가 비도르 남작과 함께 흑마법사들의 은신처에서 발견했던 그것과 같은 물건이었다.
“……호오.”
턱을 쓰다듬는 손가락 사이로 감탄사 비슷한 것이 흘러나왔다.
“알약에 남은 감정이 마력으로 치환되기 전에 그 모든 것들을 빼앗아 온다라…… 적어도 기물의 영향력 내에 있다면 알약의 힘은 철저하게 무력화될 테지.”
“그렇습니다.”
순간, 확신에 찬 눈빛이 올곧게 마주했다.
“강경파와 연방제국의 가장 큰 패착은 에스테반을 돕는 흑마법사가 나타날 거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 될 것입니다.”
오직 흑마법사만이 가능한 최선의 대응법. 그렇기에 상대를 방심하게 만든 가장 완벽한 전략…….
“정답이다.”
그제야 나는 그것이 옳았음을 알렸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쓸모를 증명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 * *
대화가 끝난 이후.
노마법사는 마차에 몸을 실은 채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목적지는 그조차도 모르는 장소였다.
-약조했던 대로 너희를 비호해 주지.
강경파의 폭주를 막는 것으로 그들의 안전을 이룩할 수 있다면 그가 목표했던 바를 완벽히 이룬 셈이다.
처우는 여전히 나빠지지도 좋아지지도 않겠지만, 그것만이 한때는 흑마법사들을 이끌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머지는 그들이 안고 가야 할 숙제일 뿐이었다.
다만 그것이 전부일 것으로 알았건만…….
-한데 그것으로 끝인가.
-……아티펙트의 제작이라든지,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해 주십시오.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아니지.
그때의 국왕은 분명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고작 그것으로 만족하느냐는 뜻이다.
-……!
-진짜 원하는 것은 따로 있지 않나? 나의 ‘비호’가 겨우 그 정도일 거라 생각했나?
노마법사는 상념을 정리하며 마차의 벽면을 쓰다듬었다.
홀린 듯 이 마차에 오르게 된 것은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은 탓이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겠다고 말하는…… 그 실로 오만함이 깃든 눈빛.
하지만 그만큼이나 그 ‘오만’이라는 단어에는, 저도 모르게 따를 수밖에 없는 신뢰 역시 담겨 있었다.
‘이상한 일이구나…… 무엇 하나 알지 못하는 남자에게 믿음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니…….’
흑마법사의 탄압이래.
또한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이후로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 무척이나 어색했다.
이번 일에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애당초 원했던 것은 왕실의 힘을 빌려 강경파를 막는 것뿐이었으니.
조금 더 과욕하자면 이 계약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면 좋을 거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쪽에서는 몰래 왕실을 돕고, 식량 따위를 지원받을 수 있다면 최선이다.’
신성제국과의 동맹관계를 맺은 에스테반이.
그 이상의 리스크를 지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그가 말했던 ‘만족’은 무엇이지?
그의 눈으로 보기에, 자신들은 아직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이 향하는 그곳에 그 정답이 있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디로 가는지를 여쭈어도 되겠소이까.”
결국 노마법사는 참지 못하고 맞은편에 앉은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얼마 전 자신들을 국왕에게 안내해 주었던 직속 보좌관.
하지만 그는 불편하다는 듯 힐끔 자신을 쳐다보고는 대강 대답했다.
“금방 도착합니다.”
“……알겠소이다.”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다.
응당 흑마법사에게 향해야 할 부정적인 시선과 관심.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근데 혹시 흑마법 중에는 컨디션을 회복시켜 주는 마법이 없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멀미 때문에 죽을 것 같아서요.”
“…….”
그의 불편하다는 기색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닌 이 마차에 있었다.
단순한 멀미였던 것이다.
노마법사로서는 그것이 더욱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 남자도 그러했지만…… 이들은 흑마법사라는 존재를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인가?’
저 모습을 보니 확실했다.
저들은 자신들이 흑마법사인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마치 세간에 비추어지는 흑마법사의 인식이 어떤지 아예 모르는 것처럼.
‘이건 대체…….’
자신들을 평범한 사람으로 대우해 주고 있던 것이다.
“도착했습니다.”
그 순간 마부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맞춰 시커먼 낯빛의 보좌관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갑시다.”
“……알겠소.”
끼이익-
마차의 문이 열리고 환한 햇빛이 눈가로 쏟아졌다. 그것에 적응하려고 눈을 감은 것도 잠시.
노마법사는 마차의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눈을 부릅떴다.
“……여기는?!”
작은 담장 사이로 보이는 고즈넉한 마을.
그 속에 쌓여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품들과 정리되지 않은 마법 도구들은 이 마을의 용도를 짐작게 했다.
적어도 초인의 경지에 오른 그의 머리로는 말이다.
“이곳은 오늘부터 그대들이 살게 될 장소입니다.”
“……!”
“이곳은 왕실의 직할령이 된 땅입니다. 근방의 모든 것들은 왕실의 관리하에 놓여 있으니 불편함은 없을 테지요.”
확신을 가져다준 것은 보좌관의 목소리였다. 다만 지금의 그에게는 들리지 않을 뿐이었다.
* * *
“흑마법사들에게 살 곳을 제공해 주고 그들의 힘을 빌린다…….”
비도르 후작은 깊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확실히 리스크는 있지만 돌아오는 이득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 놈들의 힘을 얻는 것은 고대 마법을 부활시키는 것만큼이나 도움이 될 터다.”
“암흑가에 맡겨 놓은 상회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조달했다 했던가요? 그들이 큰일을 해 주었습니다.”
나는 후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방제국을 제외하면 누구도 갖지 못한 힘.
게다가 놈들과는 다르게 그것을 비밀리에 숨길 수 있을 테니, 모르긴 몰라도 단순히 이득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할 터였다.
“심연 속에서 구원받는 것만큼이나 충성심이 생기는 일은 없지.”
그것을 살 장소를 제공해 주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다면 수지타산이 맞는 일이었다.
조만간 그곳에 준비된 물품들을 확인하는 순간, 영원히 내게 충성을 바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리스크가 있을 거라고?”
그럴 리가.
그들을 포용함으로써 생기는 리스크라는 것은 결국 내게 해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말인즉 해가 되지 않을 거라면 리스크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소리다.
“놈들을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더라도 문제는 없다.”
“……혹, 신성제국 때문입니까?”
“그래.”
신성제국과의 동맹을 맺은 에스테반.
하지만 그 관계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은 신성제국이 아니었다.
주도권은 에스테반에 있었다.
물론 흑마법사의 존재가 밝혀지는 즉시 그들은 사람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저들의 처단이냐…… 하면 그건 아니겠지.”
저들이 성국에게 더 큰 대의를 줄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쪽에서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그 역시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자, 그럼 이쪽은 충분히 마무리됐고…….”
나는 방금 전에 왕실로 들어온 소식에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시선이 향한 곳에는 연방제국으로부터 보내진 한 장의 서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