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83화
비열한 수작 (1)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 황제 폐하시여, 말씀하신 대로 에스테반에 본국의 뜻을 전하였나이다.”
그렇게 말하는 귀족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음에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그날 밤의 일로 죽은 이들의 숫자가 대체 얼마나 되던가?
눈앞에 있는 남자는 피와 시체로 탑을 세운 인물이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떨리는 것을 주체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반응은?”
나직이 되돌아온 목소리에 귀족이 눈을 질끈 감았다.
“소, 송구하오나 아직 답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
무덤덤하게 답한 남자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감히 황국의 요구에 답신하지 않는다니…… 하루를 기다렸건만 이 이상 나를 기다리게 할 셈인가.”
“…….”
아뿔싸!
그것만으로도 심기를 거스르게 만든 모양이었다.
이럴 때면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귀족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에스테반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조차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 황국의 확고한 뜻을 전달하라 했던 것 같은데, 당최 어떤 식으로 지껄여 놓았길래 그런 건지 궁금하군.”
“그,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스윽-
남자의 손이 가볍게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러자 귀족의 머리 위로 검붉은색의 창날들이 생성되었다.
“……!”
슈우우욱!
퍼퍼퍼퍽!
“크, 크어어억…….”
이윽고 온몸을 관통하는 수십 개의 창.
이상함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귀족은 그렇게 형체조차 남지 않은 채로 허공에 붙들렸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은 더욱 깊이 고개를 숙이며 다음 타깃이 자신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짐의 뜻을 똑바로 전달했다면 놈들이 답신을 미룰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터.”
“…….”
“그렇다면 그 죄는 죽음으로 갚아야 할 테지, 경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만연한 정적.
창날을 타고 흐르는 핏물이 그들의 발치에 닿았으나, 이 상황에서 움직일 간 큰 인간은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검은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다가와서 시체를 치운다.
누군지도, 무얼 하려기에 시체를 조심스레 포장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음 서신을 보내야겠군.”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황제가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감히 에스테반 따위가 우리의 것을 멋대로 이용하는 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으니.”
라이덴 델 카롯트.
황위 찬탈 이후 웅크리고 있었던 그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뚜벅- 뚜벅-
남자의 거침없는 발걸음은 적막 위를 걷는 듯 고요함 속에서 위엄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부끼는 금빛의 망토.
그 뒤를 따라 나태한 기척이 함께하고 있었다.
“상황은.”
“연방제국 측에서 강력한 항의의 의사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당장 어제에 이어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군.”
“뭐, 오늘은 조금 더 협박성이 다분한 서신이긴 했지만요.”
나는 그런 조지의 말을 들으며 조소를 지었다.
올 것이 왔다고 해야 할지…… 도리어 이렇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시원섭섭할 뻔했다.
“갈데르드 평야의 소유권을 반환하라니. 우스운 이야기지.”
미스릴 광산이라는 천금의 가치를 지닌 땅.
한참 무역이 진행되고 있는 그것을 못 본 채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
황위 찬탈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앞뒤 분간 못 하고 고개를 기웃거리는 것을 보아서는 말이다.
물론 놈들이 주장한 ‘명분’은 계약의 불합리함이었다.
“소식은 들었을 테지만, 연방제국 놈들이 소유권 이전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자 한다.”
“…….”
“정확히는 무능한 선황이 멋대로 저지른 일이었다며 계약 자체를 무효로 만들고자 하고 있지.”
드넓은 대전으로 나열한 귀족들.
회귀 이후에는 처음으로 소집한 국무회의였던가?
이를 굽어보는 왕좌(王座)에 앉은 나는, 다리를 꼰 채로 여유롭게 턱을 괴었다.
“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
“…….”
꿀꺽-
목젖 너머로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과 가벼운 어투였으나, 사안이 사안이었던지라 도무지 가볍게 들리지 아니한 탓이었다.
그 속에서 가장 먼저 서두를 땐 것은. 이제는 엄연한 중역의 자리를 차지한 비도르 후작이었다.
“전하, 국가 간의 계약이 일방적인 통보로 무효되는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아뢰옵니다.”
“어린아이처럼 유치하게 주었던 것을 뺏는 경우도 없었지.”
“그렇습니다.”
그것은 신뢰의 영역이었다.
문제를 일으킨 국가가 이후에도 그리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는 것처럼.
함부로 계약을 어기는 것은 결국 제 살을 파먹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치들이 주었던 땅에서 나온 미스릴 광산.
우연이 따라 준다면 배가 아픈 것에 그칠 테지만, 이후에 벌어졌던 드워프들의 구출까지 생각한다면 모든 판이 짜여 있었다고밖에는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어제, 놈들이 보내온 통신에는 그 모든 것이 자작극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있었지.”
“사실 에스테반에서는 이미 드워프를 확보해 두었고, 연방제국의 땅에 미스릴 광산이 있다는 것까지 확인해 두었다는 것이군요.”
“그래.”
거기까지가 놈들의 입장.
그것이 입바른 사탕발림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그에 대해서는 해 주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뭐,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까지 험한 말을 할 수는 없으니.’
그렇기에 나는 조금은 부드러운 어투로 감상을 내뱉었다.
“참으로 머저리다운 생각이지. 딱 어울리는군.”
“…….”
최대한 순화시켜서 한 말이었다.
나름대로 서늘해진 분위기를 보면 충분히 성공적이었던 것 같았다.
“쉽게 말하면 놈들이 그런 불명예를 얻으면서까지 미스릴 광산을 탐내고 있다는 말이다.”
“혹은 신성제국과의 동맹에서 미스릴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하고 있을 터입니다.”
“음.”
“한데 전하, 본래부터 반환의 의무는 없겠으나 이를 무시할 경우는 어찌 되는 것입니까?”
한 귀족이 물었다.
내 어깨가 절로 으쓱여졌다.
“간단하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바뀌는 것은 없을 뿐.”
“…….”
질문을 던졌던 귀족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린 귀족들의 표정은 굳었다.
……그래.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놈들과 적대하게 될 미래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그 말이.
앞서 내뱉었던 놈들에게 향한 적의보다도 섬뜩했기에.
“뭐,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던 일이나 다름없지.”
“그 말씀은…….”
“놈들의 요구는 무시한다. 그렇게 알고 있도록.”
“……!”
조금의 완곡함도 없는 강경한 대응.
이전이라면 자국민인지 연방제국의 귀족인지도 모를 이들의 반발을 받아 내야 했을 터였으나…….
“예, 전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곳에 남은 이들은 오직 에스테반의 국익만을 생각하며 무언가를 각오한 듯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즉위 이후 첫 국무회의의 주제가 연방제국의 수작이라…….’
이로써 두 국가는 ‘공식적으로’ 엇갈린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 끝이 어딜 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과정만큼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게 되겠지.
이번 회의는 그 선언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즐겁지 아니할 리가 없었다.
***
국무회의 이후 결정된 거절의 의사.
순화되고 순화된 메시지는 곧장 놈들에게 보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놈들은 무척이나 기민하게 반응을 보내왔다.
“빠른 시간 내에 공식으로 사절단을 파견하겠다고 합니다.”
“사절단? 누구 마음대로.”
“그거야 모를 일이죠.”
조지가 얄밉게 어깨를 으쓱였다.
“뭐, 협박이 안 통하니 이제는 직접 명분을 만들려는 심산이겠지만요.”
그 말대로였다.
상식이 있다면 갈데르드 평야를 넙죽 줄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 터였다.
피차 양국 모두 전쟁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상, 더 이상의 협박이 통할 리도 미지수였고.
그러니 개중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사절단을 보내려고 하는 것이리라.
“일단 사절단을 보내고 나면 양국 간의 공식적인 논의로 번지게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끼워 맞추기에 따라서는 우리가 협상에 응하려 했다고 떠들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겠죠. 그 이후에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가며 땅을 내놓으라고 할 겁니다.”
“음.”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라면…….
“꺼지라고 전하도록.”
당연히 그게 전부였다.
사절단?
선전 포고를 하러 오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었다만, 그게 아니라면 놈들을 상대하는 데 소요될 자원들이 아까울 노릇이다.
게다가 그 의도가 다분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구태여 귀찮게 놈들을 상대할 필요는 없다.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말한다면 오히려 환영이지. 이미 모든 대비는 마쳐 있는 상태니까.”
“나쁘지 않네요. 그럼 정말로 꺼지라고 전할까요?”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전하도록.”
나는 그렇게 말하며 녀석이 들고 온 보고서로 시선을 던졌다.
연방제국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녀석에게 맡겨 놓았던 지시였다.
“그나저나 놈들이 마을의 생활에 착실하게 적응하고 있는 모양이군.”
흑마법사들은 갑작스레 제공된 보금자리에 경계하면서도, 이내 그 뜻을 깨닫고 사는 곳을 옮겼다.
그와 동시에 제공된 각종 식료품과 생필품.
당연히 한시가 급했던 만큼 기꺼이 그 도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건 내게 있어서도 긍정적인 일이었다.
“혼란이 있었지만 상황을 이해한 듯 보였습니다. 아마 이대로 가만히 놔둔다면 알아서 도움을 바치러 올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군.”
이해관계가 일치한 상황에서 이쪽에서 손을 내밀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
‘해당 마을은 일종의 공방으로써 놈들에게 제공하는 시설이 될 것이다.’
귀한 마도구 따위를 구해다 놓긴 했어도, 놈들이 가진 희귀한 가치를 생각하면 값싼 투자라고 할 수 있었다.
오히려 투자 따위라고 말할 것도 없다.
흑마법사들의 수장인 ‘대마법사’에게 더 없을 만큼의 빚을 지워둔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가만.’
그렇게 흑마법사들의 거처를 떠올린 그 순간이었다.
“흑마법사라, 재미있겠군.”
“예? 뭐가요?”
문득 내뱉은 말에 조지가 의문을 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을 정리하며,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조만간 사절단을 보내온다고 했던가?”
“연방제국요? 뭐,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기꺼이 환영하도록 하지.”
“허.”
손바닥 뒤집듯 바뀐 태도에 조지가 눈을 크게 떴다.
“해코지라도 하실 생각입니까?”
“비슷하다면 비슷하겠지.”
거기까지 말했다면, 녀석 역시 그 뜻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었다.
“흑마법으로 대응하실 생각이군요.”
“그래.”
나는 순순히 대답하며 녀석의 짐작이 맞았음을 인정했다.
이쪽이 가진 카드는 온건파의 수장이자 그 정점에 달한 대마법사.
비록 힘을 되찾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연방제국에 도사리고 있는 강경파의 누구보다 강하리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그 수준을 직접 겪어 보았던 나로서는 말이다.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맞이해 주어야겠지.’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함정.
놈들은 스스로 그 속에 발길을 들이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