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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84화 (184/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84화

비열한 수작 (2)

연방제국의 사절단 파견이 결정된 당일.

왕궁으로 불려온 노마법사는 내 물음에 작은 침음을 흘렸다.

“흐음…… 적진에 은밀하게 침투시킬 수 있는 마법의 종류 말씀이십니까.”

“음.”

아무것도 모르는 사절단에게 선사할 함정.

제아무리 대마법사의 마법이라 해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은밀함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했다.

기왕 가장 좋은 것이라면 죽은 1황자를 대체해 놈들의 정보를 가져다줄 마법이 될 테지.

“……그런 것이라면.”

노마법사가 턱을 쓰다듬으며 자신이 아는 흑마법의 가짓수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적절한 것을 찾았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당장 떠오르는 것들은 많습니다만 대표적인 첩보용 흑마법으로는 정신 지배 따위가 있습니다.”

“정신 지배?”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을 조절하여 자신의 행동이 그르지 않다는 암시를 심어 주는 마법입니다.”

본디 흑마법에 대한 것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보니 말로만 들어서는 알기가 쉽지 않았다.

때마침 예시로 들 만한 것이 없나 둘러보던 노마법사가 조지를 바라보았다.

“예시를 들자면 전하의 보좌관께서 첩자라 가정했을 경우, 이 자리에서 비밀스레 오가는 대화를 적군에 보고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입니다.”

“그렇겠지. 함정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려 줘야 할 테니까.”

“예. 하지만 정신 지배를 당한 상태라면 그러한 ‘상식’을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호오.”

아직은 보고하기에 이르다고 생각하게끔 만든다든지, 그게 아니라면 애초에 보고할 가치조차 없는 정보였다고 생각하게끔 한다든지.

자연스럽게 목표물의 생각을 바꾸어, 그 행동을 조종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식 자체가 바뀌었으니 상대방은 조종당하고 있다는 위화감조차 느끼지 못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조종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잘만 하면 가진 정보를 낱낱이 불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입니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문제점 따위가 있는 모양이군.”

“……그것이.”

노마법사가 난처하다는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본디 정신을 지배하는 마법들은 대상의 능력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어쩌면 시도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부터 위화감을 느낄 위험성도 있습니다.”

“요컨대 정신력이 뛰어나면 침식하기가 어렵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일반인의 경우는?”

“그것까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과거의 일을 회상했다.

‘확실히…… 은신처에서 있었던 일 역시 그러했지.’

그곳에 뭉쳐 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힘은 내 육신을 빼앗기 위해 환영까지 준비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조차도 검왕의 정신력 앞에서 무너졌다.

정신 마법도 이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소리였다.

“간단한 지표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내 시선이 입을 가리고 쩍쩍 하품해 대는 조지에게 닿았다.

“부작용은 없겠지?”

“기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시도해 보도록.”

“……알겠습니다.”

우우우우웅!

“어어?”

허공이 잘게 일그러지며 노마법사의 손 위로 검은빛의 마력이 생겨났다.

이윽고 그것은 능숙한 손짓을 따라 녀석의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호오.”

초인의 눈이 아니더라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마력!

하지만 정작 마법을 시전했던 노마법사는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결과는?”

“믿기는 어렵지만 완벽하게 저항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아무리 대마법사라 해도 정신 지배를 원하는 대로 이루어 낼 수는 없다. 하지만 이토록 완벽하게 무효화시킬 줄이야……!

새삼 조지를 바라보는 노마법사의 눈이 감탄 비슷한 것으로 빛났다.

“어지간한 기사보다 월등한 정신력입니다. 일반인이 이 정도의 정신력을 지니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요.”

“그렇군.”

“어, 어라? 뭡니까 방금 그건?”

조지는 하품하다 말고 몰려든 비이상적인 기운에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략적인 감을 잡은 나는 노마법사에게 말했다.

“어쨌든 저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면 파훼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겠지.”

“예, 무예를 갈고닦은 이가 아니라면 변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없다.”

이미 놈들이 누구를 보내올지는 알고 있다.

친히 서신을 통해 점지해 주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놈들이 보내온 사신이 조지만큼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을 리는 없었으니,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녀석은 대륙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인물이었으니까.’

물론 녀석이 정신 지배에 걸릴 거라는 생각 역시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단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했을 뿐.

대략적인 계획을 세운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놈들이 보낸 사절단에 정신 지배를 걸도록 하지. 추가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으레 그렇듯 마법의 특성상 거리가 멀어지면 정신 지배가 풀릴 것입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라.”

“…….”

노마법사의 눈에 의문이 담겼다.

마법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점.

시전자와의 거리가 멀어지면 자연으로 흩어지는 것이 마나이거늘,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인가?

“……지시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내내 지루하다는 듯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보좌관조차도.

짚이는 것이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 * *

연방제국의 사절단이 파견되고, 곧 그들을 태운 마차는 에스테반의 수도로 진입했다.

그러나 마차의 내부는 무척이나 싸늘한 기운만이 풍겨 왔다.

“…….”

국가 간의 대담에 사절로 선출되는 것은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이다.

한 국가의 대표로써 나설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위세를 나타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에스테반으로 파견된 에슐라 백작의 머릿속에는 그깟 영광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게 다시 한번의 기회가 왔다……!’

2년 전.

당시 이 자리에 찾아왔을 때만 하더라도 자신은 연방제국의 미래를 이끌 맹수였다.

4황자가 보는 앞에서 합의를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으며, 고작 쓸모없는 땅덩어리 하나만을 내주고 내란 주도를 잠재운 수완가로 취급받기까지 했다.

그래, 분명 그랬어야만 했으나…….

‘하필이면 그곳에서 미스릴이 발견되다니!’

얼마 뒤에 들려온 소식은 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서늘하게 만들었을 뿐이랴?

어느새 자신은 허무하게 미스릴 광산을 내준 머저리가 되어 있었고, 더 이상 4황자는 자신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그나마 ‘쓰레기’ 취급을 받고 죽지 않았던 것이 다행일까?

그런 와중에 마침내 4황자가 황위를 찬탈했다.

그 소식은 미스릴 광산의 소식보다도 더욱 심장을 조여 왔다.

‘꼼짝없이 죽임을 당할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놀랍게도 황제가 된 4황자는 자신을 살려 주었다.

심지어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때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었다.

바로, 다시금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이다.

그러니 에슐라 백작의 머릿속에는 영광 따위를 논할 여유가 없었다.

‘성과를 만들지 못하면, 이번에야말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지금까지 보여 준 새 황제의 행보를 보면 확신할 수 있었다.

틀림없이, 그리될 거라는 사실을.

“백작님,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

“저들이 저희를 환영할 이유가 없거늘, 수도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흐음…….”

“필시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수행원의 경계에 백작이 마차의 창문 밖을 살폈다.

사절단 행렬의 가장 앞에 선 마차. 그곳에 있는 이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귀족이었다.

“……조지 헤그메스 자작.”

평민 출신에 맞게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니만큼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국왕의 최측근이자 실세 중 한 명인 직속 보좌관이라 했던가?

확실히 그런 인물을 보낸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런 의문은, 왕실의 만찬에 초대된 이후에도 남아 있었다.

“……음식의 수준이 예사롭지 않군.”

“예, 이 정도라면 황실의 만찬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불청객을 맞이한다기에는 너무도 호화로운 대접.

부유해진 왕실의 재력을 자랑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치기에는 너무도 유치하고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적어도 갈등을 빚고 있는 두 국가 사이에서는 말이다.

‘……뭐지? 이 찝찝함은?’

생겨나는 위화감은 차차 머릿속을 잠식했다.

그렇게 백작의 생각은 깊어져만 갔고, 이내 시간이 흘러 마침내 회담의 시간이 다가왔다.

* * *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에슐라 백작은 자리를 떠나는 보좌관을 보며 침을 삼켰다.

어찌 보면 자신의 목숨이 걸린 자리.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를 상대하게 될지에 온 신경이 집중된 채였다.

‘역시 수상인 비도르 후작이 오게 되겠지?’

기억 속에 남았던 그때의 모습은 분명 ‘사람 좋은 인상’이었다.

물론 남작이었을 때의 일이라고는 하더라도 그 모습이 변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호재다!’

심약한 이를 구워삶는 것만큼이나 손쉬운 일이 있을까?

에슐라 백작의 눈이 번뜩인 그 순간이었다.

철컥-

“……!”

문이 열리자, 익숙한 모습의 사내가 회의장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모습은 중년의 것이 아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젊은 남자의 것이었다.

“구, 국왕 전하?”

“우리는 초면이 아닌 것 같다만.”

2년 전에 자신과 독대했던 1왕자.

상대는 이제는 국왕이 된, 알렌 에스테반이었다.

백작이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제기랄, 하필이면……!’

양 국가의 회담이니만큼 국왕이 참석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첫 회담부터 국왕이 직접 참석하다니?

백작은 최대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에스테반의 국왕을 뵙습니다. 아직 국왕이 되시기 전에 조찬을 가졌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 오랜만이군. 한데…….”

“예?”

“이번에는 4황자께서 보이지 않으시는군.”

“…….”

비죽거리는 입술과 여유로운 말투는 분명 조롱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동요해서는 안 된다.

“그때의 일은 단순한 일탈 같은 것이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으신 것으로 아뢰옵니다.”

“혹시나 해서 직접 찾아와 봤는데 아쉬운 일이군.”

“전하께서 그리워하셨노라고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국왕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이 마음대로 하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비꼬는 의미인지는 본인만이 알 터였다.

그 순간, 문득 국왕의 뒤로 낯선 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집사나 수행원쯤 되는 사람인가?’

삐쩍 마르고 흉흉한 그 모습은 이 자리에 있기에 너무도 어울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거기에까지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기에 백작은 곧장 시선을 돌리며 국왕을 쳐다보았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뒤, 그는 준비했던 말을 내뱉었다.

“이미 아실 테지만, 이곳으로 온 것은 갈데르드 평야를 반환받고자 하는 황제 폐하의 뜻을 전달해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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