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85화 (185/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85화

비열한 수작 (3)

“갈데르드 평야가 옛 에스테반의 땅이었다고는 하나, 지고한 역사 속에서 연방제국의 것이었던 시기가 더욱 길며.”

모두의 시선 속에서, 긴장한 에슐라 백작이 좋을 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더욱이 그것은…….”

“그만.”

“예?”

그리고 국왕이 입을 열어 그것을 제지했다.

당황한 에슐라 백작이 반문했다.

“전하?”

“이런 자리에서 곧장 본론이라니, 섭섭한 일이군.”

“그, 그건…….”

‘이런 자리’라고 칭하기에는 양국 간의 사이가 흉흉한 참이었다.

무엇보다도 대화의 주제조차 막대한 이권을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제길, 꼴에 여유를 부리는 건가.’

하지만 에슐라 백작이 이래라저래라할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회담의 주도권이 그에게 있지 않은 이상은 더더욱.

“하면 전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선 가볍게 한잔을 걸치고 시작하지. 몰래 손님이 왔을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 둔 것이 있거든.”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은 어찌 되었거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 회담의 끝이 자신의 목을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회담이 끝나도 지금처럼 여유로울 수 있는지 보겠다.’

그렇게 속으로 답답한 심정만 삭힐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에스테반의 국왕이라는 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말을 돌리는 것과 번거로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 * *

처음의 딱딱했던 분위기도 준비해 두었던 술이 나오자 어느 정도 풀어졌다.

제국의 백작조차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값비싼 것이 나왔던 탓이다.

덕분에 내내 경계만을 하고 있던 백작도 점차 술에 젖어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처음 한 잔을 마신 순간부터 정해져 있던 것일지도 몰랐다.

“부족해 보이는군. 한 병을 더 가지고 오라고 하지.”

“커, 커흠! 전하의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야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손을 내저었다.

어느덧 그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어려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하지만 신호를 받은 조지가 술을 가지고 오는 것보다, 그림자처럼 조용히 상황을 관망하던 노마법사가 움직이는 것이 더욱 빨랐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실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정신 지배가 끝났군.”

“예, 그렇습니다.”

마력에 예민한 사람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운용.

그는 이 자리에 온 순간부터 줄곧 에슐라 백작의 정신을 침식하고 있던 것이다.

“호오.”

그 증거로 에슐라 백작의 눈빛은 술이 아닌 마약에 취한 것처럼 흐릿한 상태였다.

나는 천천히 다리를 꼬며 놈의 상태를 확인해 나갔다.

“이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보이는군. 이게 바로 정신 지배인가.”

“본래라면 이 정도까지 완벽한 지배 상태가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대상의 정신력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지요.”

“역시나 술을 먹인 것이 유효했다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마저 술잔을 털어 넣는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역시도 설계의 일환이었다는 것쯤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타국의 사신이 국왕이 건넨 술잔을 들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만에 하나의 변수도 배제하기 위해 술을 마시게 했지만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군.”

“저 역시도 이렇게 완벽한 성공은 처음입니다.”

“당연히 마법의 지속이 풀리지도 않을 테지.”

“아마 신관이 관여하거나 죽지 않는 이상은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호오.”

신성제국과 적대 중인 연방제국에 신관이 있을 리 없으니,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뜻이리라.

그나저나 정신 지배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흥미가 돋는 것이 느껴졌다.

“입을 열게 하는 방법은?”

“시전자가 마력을 제어하면 손쉽게 열 수 있습니다.”

우우우웅-

노마법사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놈의 뇌 속으로 잠식한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료와 술을 마시는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라는 인식을 심었습니다. 어떤 정보를 내주더라도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테지요.”

“그렇군.”

쉽게 말하면 백지에 그림을 그린다는 느낌이겠지.

언제든 상황에 맞게 정신을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제는 정신 지배의 이용 방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에슐라 백작.”

“……큼, 무슨 일이십니까?”

“현재 연방제국의 상황에 대해 말해라. 4황자가 집권한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지?”

“…….”

이제는 완전히 폐쇄된 국경 너머의 첩보.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정보였기에 술을 들고 오던 조지 역시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녀석은 흐릿한 눈빛으로 손을 내저으며 지껄이기 시작했다.

“4황자……! 노, 놈은 피에 미친 악귀입니다! 놈이 집권한 뒤로 귀족들의 대부분이 처형되었고, 황궁은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처형된 귀족의 비율은?”

“60%에 육박할 정도입니다.”

“음.”

60%. 아무리 봐도 내전으로 죽었다기에는 정상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보통이었다면 나라가 전복되거나 아니면 그대로 쓰러졌어도 이상치 않을 수치.

그럼에도 밖으로 돌릴 힘이 있다는 것은 도히려 연방제국이 얼마나 강한 국가인지를 상징하는 듯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들의 반발이 심했겠군. 그러니 반발하는 이들을 모조리 죽였겠지.”

“그, 그렇습니다.”

에스테반에서 벌어졌던 일과는 사뭇 달랐다.

내가 2왕자파의 썩은 뿌리들을 제거했을 때 귀족들의 반발이 없었던 이유는 그만한 실적과 명분이 있어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놈은 정반대.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이들을 모조리 죽임으로써 반발할 상황조차 만들지 않았고, 이에 대립하려 든다면 마찬가지로 죽였다.

공포 정치.

말 그대로 가지고 있는 ‘힘’을 무기로 휘두른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이라 하면…….

“흑마법사군.”

“…….”

노마법사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인제 와서 미스릴 광산을 노린 진정한 목적이 뭐지.”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그것은 가장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놈들이 제아무리 에스테반에 생긴 미스릴 광산을 아니꼽게 생각하더라도 그것을 반환하라는 것은 생떼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국제적으로도 지탄받을 일이었고,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손에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도 정해진 일이었기에.

‘특히나 4황자, 놈의 행동을 생각하면 더욱 이상한 일이지.’

그딴 것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겼다?

놈들이 그렇게 해서라도 에스테반에 사절단을 보냈다는 것은 그 외에도 노리는 것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일련의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에슐라 백작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반환의 결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관이 없다, 라.”

“이번 갈데르드 평야의 반환은 받아도 좋고 받지 않아도 좋은 것. 만약 광산을 되돌려 받는다면 그 자체로도 최선일 것이고…….”

만일 반환을 거부한다면.

“주변국을 사주하여 에스테반과의 전쟁을 붙일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

이야기를 듣던 노마법사와 조지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있던 나는 나직이 중얼거릴 뿐이었다.

“역시 주변국을 이용하려 했군. 지리상으로 생각하면 마드라를 이용하려는가.”

“서, 설마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당연한 말이다.”

당황한 조지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놈들의 힘을 깎아 먹으려 했던 것처럼 4황자 역시 신성제국이라는 동맹국을 가진 이쪽의 힘을 깎아 먹으려 할 것이다.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은 한정적.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에스테반을 빠르게 무너뜨려야 이후 신성제국과의 전쟁에서 피해가 적을 테니까.

“그런 놈의 생각이야 뻔한 일이지.”

내 입꼬리가 짙게 올라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지가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주변국과의 전쟁이 힘겨울 것 같지는 않지만, 발목을 잡히면 곤란해질 것입니다.”

“문제는 없다.”

“생각하신 것이 있습니까?”

“당연한 말을 하는군.”

계획을 모조리 알게 되었다면, 그에 맞춰 대응하면 될 뿐이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변수조차 하나하나 지워 나가면 된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도…….

“놈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아깝게 사용하면 안 되지.”

그래, 지금까지 내가 준비한 것들은 연방제국을 위한 선물이었다.

놈들을 짓이기고 무너뜨리기 위한 것들.

그런 소중한 요소들을 먼저 선보일 수는 없었다.

콱-!

“커, 커억!”

나는 에슐라 백작의 얼굴을 손으로 뒤덮으며 조소를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제 발로 찾아온 네놈들을 당장 죽이고 싶다만, 아쉽게도 아직 쓸모가 남아 있으니 그러지는 못하겠군.”

“끄윽!”

“회담은 끝이다. 이대로 돌아가라. 특별히 국경지대까지는 마중할 사람을 보내 주지.”

“아, 안 됩니다!”

그러자 놈은 힘겹게 발버둥을 치면서 절규했다.

“저, 저는 이대로 돌아가면 분명 황제에게 죽임당할 것입니다! 놈의 입장에야 반환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해도, 저는 아닙니다!”

“네놈은 최선책을 이끌지 못하면 죽는다는 말이군.”

“그, 그렇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예…….”

나는 놈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며,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네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니까.”

“……!”

그것이 끝이었다.

노마법사가 손을 휘젓는 것으로 놈의 정신이 뒤바뀌었고, 놈은 초점 없는 눈빛으로 고개를 조아리더니 회의실의 밖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지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면 저는 에슐라 백작을 국경지대까지 마중 보내겠습니다.”

“음.”

그렇게 백작을 뒤따라가는 조지의 손에는 어느새 낯선 형태의 아티팩트 하나가 들려 있었다.

* * *

에슐라 백작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처박았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고 해서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놈들이 갈데르드 평야의 소유권 반환을 거부했다는 말이군.”

“그, 그렇습니다, 폐하.”

전쟁을 일으켜서 놈들의 힘을 갉아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으나, 그대로 미스릴 광산을 가지고 온다면 훨씬 큰 전력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최선책’이라고 명명한 것이나, 결과적으로는 사절단으로 보낸 에슐라 백작은 아무것도 이루어 내지 못했다.

“갈데르드 평야를 준 것도 모자라서 되돌려 받지도 못했다라…….”

“폐, 폐하…….”

“그렇다면 만회하지 못한 죗값은 목숨으로 받아야겠군.”

“……!”

콰직!

콰지직!

“끄아아아아악!”

에슐라 백작의 몸이 이리저리 뒤틀리더니, 이내 자연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각도로 꺾이기 시작했다.

그 기형적이고 잔혹한 모습에 귀족들은 눈을 부릅떴다.

아니, 정확히는 눈을 피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것이다.

털썩-

“치워라.”

“예.”

싸늘하게 가라앉은 대전의 분위기.

비로소 시체가 밖으로 치워지자, 황제의 비릿한 미소가 짙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차선택만이 남았나.”

“…….”

“마드라에게 전해라. 놈들에게 정식으로 선전 포고를 하라고.”

“명을 받들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귀족이 재빠르게 대전을 달려 나갔다.

행여나 자신에게 불똥이 튈 것이 두려웠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꿈틀-

흑마법사들이 끌고 나가던 에슐라 백작의 시체에서 문득 은밀한 기척이 느껴졌다.

그것은 시체의 머릿속에서부터 꿈틀대더니 이윽고 허공으로 녹아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력!

놀랍게도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소멸하였어야 할 대마법사의 마력이 아직 유지되고 있던 것이었다!

“…….”

“…….”

하지만 흑마법사들은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보다 월등한 경지의 마법사가 부리는 마력을 일개 흑마법사가 감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므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