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86화
비열한 수작 (4)
“……에슐라 백작, 그에게 걸려 있던 정신 지배가 풀렸다.”
노마법사가 감고 있던 눈을 번뜩였다.
이윽고 그의 손에서부터 검은빛의 마력이 공명하기 시작하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널리 퍼져 나갔다.
우우우웅-
촤르르르륵-!
막대한 마력의 흐름에 옷자락이 펄럭였으며 공방을 채운 연구지들은 여기저기로 비산했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흡!”
그리고 비로소 운용하던 마력의 양이 절정에 달해서야 마법이 실현되었다.
만연하는 파동!
마침내 노마법사는 찢어진 공간을 건너 약속된 그곳으로 발걸음을 들였다.
‘남자’가 기다리고 있을 그곳으로.
“전하, 그에게 걸어 두었던 흑마법의 힘이 소멸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드디어 죽었는가.”
“그렇습니다.”
누가, 어떻게 죽은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으나 오만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린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에슐라 백작!
놈이 죽기까지의 시간은 이미 계산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나는 현재의 시각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예상했던 대로군. 연방제국에 도착해서 보고를 하자마자 죽여 버린 모양이지.”
“시기를 고려하면 그리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추가로 얻어 낸 정보는?”
“아쉽게도 ‘암시’를 통해 정보를 얻어 내기에는 틈이 없었습니다. 애당초 그럴 목적도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노마법사는 아쉬움을 달래며 나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내 앞으로 놓인 반구형의 낯선 물건을.
“이 정도의 거리에서 마력의 운용을 성공시켰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입니다. 적어도 그곳에 침투시킨 마력은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수백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까지 마력이 소멸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마법 역시 성공적으로 유지되었다.
별 게 아니라 생각될 수 있으나, 방금 그가 행한 것은 기존 마법의 상식을 완전히 뒤바꾸는 행동이었다.
물론 정작 가장 놀란 것은, 그 본인이었다.
‘정말로 이런 것이 가능할 줄이야…….’
마법을 움직이고 유지시켜 주는 매개체인 마력은 시전자와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면 천천히 대기 중에 사라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가까울수록 마력의 운용이 수월하고 정밀해진다.
마법사들이 ‘공명 거리’라고 명명한 이것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기에, 대마법사조차 피해 갈 수 없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분명 자신은 그 섭리를 거스르고 마력 운용에 성공했다.
‘마력 공명 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려 주는 아티팩트…….’
바로, 국왕의 보좌관이 국경지대로 가는 길에 설치하고 온 저 낯선 물건 덕분이었다.
노마법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마력의 운용이 무척이나 까다롭고 높은 수준의 마법 사용이 제한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기존 마법의 운용법을 완전히 뒤엎을 정도의 발명품이 분명합니다.
“그렇겠지.”
“저조차도 이런 것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늘…… 아마 연방제국 역시도 이런 식으로 첩보활동을 이어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음.”
이에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간에 공개되지 않은 기술.
회귀라도 하지 않는 이상에야 그것을 짐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물론, 이후에 기술이 드러난다 해도 이미 늦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마법사가 운용하는 마력을 놈들이 알아차릴 수 있을 리는 없지.’
심지어 같은 계통인 흑마법의 기운이 만연한 황궁.
그곳에서 대마법사가 은밀하게 운용하는 한 줌의 기운을 알아차리는 것이란, 평생에 걸쳐도 요원한 일이리라.
나는 공명 증폭기라고 임시로 이름을 붙인 아티팩트를 어루만지며 턱을 괴었다.
“당분간은 이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집중하면 된다는 건가.”
“사역마처럼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력을 심어 놓은 인간을 숙주 삼는다면 주변의 정보를 얻어 내는 일 정도는 가능할 것입니다.”
“나쁘지 않은 이야기군.”
애초에 정신 지배라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그것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정신력 수준을 생각해야 했고, 앞선 설명처럼 무예를 익힌 상대라면 마법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이후에 들은 설명대로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암시의 효과가 약해진다고 했지.’
유효한 지속시간은 대략 반나절 정도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마냥 만능으로 취급할 수만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차라리 그런 식으로 장기간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일단은 연방제국과 마드라 사이의 정보를 얻어 오는 것이 좋겠지. 얻을 수 있는 선에서 정보들을 캐내라.”
“예, 알겠습니다.”
“그때까지 공명 증폭기의 사용은 네놈이 맡고 있도록.”
털컥-
나는 공명 증폭기를 노마법사에게 밀었다.
“흠……!”
얼떨결에 아티팩트를 넘겨받은 노마법사가 그것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정말로 이것을 제가 맡아도 되겠습니까? 무척이나 귀한 것이 아니었는지…….”
“아직은 세간에 드러나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 귀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
씨익-
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야.”
“아아…….”
노마법사는 새삼 감탄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조지의 어깨는 으쓱여지고 있었다.
“뭐, 역시 직접 움직인 보람이 있었군요.”
“그렇다는 뜻이겠지.”
나는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며 적당히 대꾸했다.
평화의 끝을 알리는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
‘이제 당분간은 정보가 취합되기만을 기다리면 될 뿐이다.’
전운의 혼탁한 구름을 기다렸다는 듯, 드디어 모든 퍼즐의 조각들이 하나로 모이고 있었다.
***
마탑의 연구실에서 가장 엄중한 보안을 요구하는 최심부.
그곳에 발길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은 무척이나 한정되어 있었으나, 국왕의 보좌관인 조지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끼익-
“…….”
당당하게 연구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조지는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연구 기록들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장치들.
그 속에서 익숙하다면 익숙한 이국적인 외형의 남자를 발견했다.
“바쁩니까.”
“……아, 이런!”
허둥지둥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남부 대륙인 특유의 선명한 이목구비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죄송합니다, 자작님께서 오신 줄도 모르고 그만…….”
“상관없습니다.”
“자리가 이렇다 보니 대접해 드릴 것이 마땅치 않지만…… 우선 들어오십시오.”
그는 마탑 소속 연구원들에게 지급되는 하얀 가운을 벗으며 의자를 꺼내왔다.
“자작님께서 이곳까지는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공명 증폭기의 실전 사용 결과가 나왔습니다.”
“공명 증폭기…… 아, 마력 공명 거리를 늘려 주는 장치를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이국적인 외형의 연구원은 머쓱하게 웃었다.
자신의 발명품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던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도리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으리라.
‘공명 증폭기는 그의 연구 도중에 파생된 부가적인 발명품에 불과하니까.’
대마법의 길로 발걸음을 들였던 노마법사조차도 경악했을 정도의 물건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결과물이었다.
오히려 이를 발견한 연구원이 잠시 잊고 있었을 정도의 물건.
아마 그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세기의 연구라며 눈을 부릅떴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 그도 그럴 수밖에 없나.’
조지는 나태에 잠긴 눈 너머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엘 바르도.
그는, 당시의 1왕자가 직접 움직이면서 구해 주었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학자였으니까.
“결과가 나왔다고 하셨지요. 어떻게 되었습니까?”
“운용에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습니다. 이곳에서 연방제국의 수도까지 마력이 유지되었을 정도니까요.”
“으음…… 대략 수백 킬로미터 정도까지는 안정권에 있다는 뜻이군요. 그렇다면 연결되는 기기의 개수를 늘린다면 그 이상의 거리도 가능하겠군요.”
엘 바드로는 자기만의 생각에 빠진 듯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학자 특유의 습성이 그대로 남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지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마탑은 지낼 만합니까?”
“예? 아아, 국왕 전하께서 지원해 주시는 덕분에 편히 지내고 있습니다.”
연방제국의 공작원들에 의해 연구에 차질을 빚고 있던 엘 바르도.
당시의 1왕자는 마탑이 정리되자마자 그를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자신을 구해 주었던 귀인의 정체가 1왕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찌나 놀랐던지…….
“연구에만 열중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당시 연구를 빼앗길 뻔했을 때는 정말 어떻게 되려나 싶었지만…….”
이렇듯 마탑의 수석 연구원이라는 영광스런 자리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로 미래는 모를 일이다.
그렇게 감상을 떠올리던 엘 바르도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어쨌든 그분께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았다면 다행입니다. 혹시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공명 증폭기가 더 필요합니다.”
이미 효용성이 밝혀진 이상 원활한 작전을 위해서라도 개수를 늘릴 필요가 있었다.
“그렇군요. 어느 정도나 필요하신지요.”
“300개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300개나 말씀이십니까?”
학자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 정도라면 연방제국 전체를 뒤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모든 설비와 기술이 마탑에 있으니까요.”
대마법사와 현 국왕의 지원 덕에, 에스테반의 마탑은 거의 제국 마탑에 버금갈 수준으로 발전했다.
하물며 마도구를 제작하기 위한 원자재들까지 국산화가 된 지 오래 아니었던가?
제아무리 300개나 되는 양이라 해도 기간 내에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럼 조만간 받으러 오겠습니다.”
“예, 자작님. 완성되는 즉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조지의 눈으로, 아까 전 학자가 들여다보고 있던 연구의 결과물이 눈에 들어왔다.
[……보석을 통한 마력의 증폭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단지 마법 사용이 수월해지는 것이 아닌, 위력 그 자체가 강해지는 것으로. 배율은 대략…….]
자칫 연방제국이 독점하게 될 뻔했던 비운의 연구.
[……목표치인 3.45배에 근접할 정도였다.]
그들은 머지않아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 분명했다.
***
자욱한 먹구름과 빗물이 내리는 황궁.
오늘따라 대전의 기둥에 새겨진 비릿한 혈향이 지독하다고 느끼는 황제였다.
“황제 폐하, 마침내 대마법사께서 금고의 잠금을 해제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 반가운 소식이 들어왔다.
황제는 느껴지는 피 냄새를 만끽하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래?”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압박해 오던 1황자.
놈이 소중하게 여기던 금고가 있었다는 것을 이미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곧장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오래된 금고는 허락받지 않은 자가 건드리면 즉각 폭파되도록 만들어져 있었으니까.
당연히 이제는 아니었지만.
“마지막까지 귀찮게 하더니 얼마나 대단한 것이 들어 있는지 궁금하군. 당장 가지고 오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잠시 후, 황궁의 사용인들이 일 미터 남짓의 금고를 통째로 들고 왔다.
황제는 오만하게 눈짓하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열어라.”
“예, 폐하.”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금고 문이 열리고 마침내 그 안에 잠자고 있던 물건들이 드러났다.
하지만 일순, 이를 바라보는 황제의 눈썹이 작게 까닥여졌다.
“서류?”
보물 따위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놈이 중요하게 여기던 금고였으니 그에 상응하는 물건이 들어 있을 거라 예상했던 그였다.
그런데 이게 뭔가?
내부에 쌓여 있는 것은 고작 무언가가 적힌 종이들뿐이 아닌가!
뚜벅- 뚜벅-
“……!”
사용인들이 황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섰다.
황제가 직접 다가오기 시작했던 탓이다.
스윽-
그렇게 황제는 금고 내에 있던 서류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음미하듯 아주 느리게 그것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
그 순간이었다.
반복되는 단어들 속에서 이질감 따위를 느끼게 된 것은.
“……까마귀?”
황제의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가려진 긴 자상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