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87화 (187/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87화

차단 (1)

알 수 없는 위화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져만 갔다.

“……까마귀.”

황제는 달빛 속에서 중얼거렸다.

온통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그 이름.

그러고는 자신이 몇 시간 동안이나 생각에 잠겨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하, 재미있군.”

애당초 1황자, 루이넬 델 카롯트는 그저 나이만 많을 뿐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 머저리 같은 머리와 하룻강아지 같은 성격이 위협이 될 리가.

덕분에 자신이 물밑에서부터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녀석은 자신의 빈틈을 예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단지 적당한 머리를 얻었는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놈이 얻은 것은 고작 ‘적당한’이라고 표현할 만한 것이 아니었던 것.

그러니 황제의 눈빛은 점차 깊어지고 있었다.

까마귀라…….

끼이익-

그때 그가 있던 방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예의 매혹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던 ‘그 여자’였다.

“폐하, 흑마법사들의 행적들을 모조리 조사해 보았어요.”

“결과는?”

“아쉽게도 의심스러운 정황은 나오지 않았어요.”

황제의 눈썹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를 발견하지 못한 흑마법사는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딱히 다른 누구와 내통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애초에 저희 흑마법사들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쯤은 아시잖아요?”

“…….”

“그런데 인제 와서 흑마법사들의 행적을 조사해 보라니, 이유가 있나요?”

그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

그리고 흑마법사가 뒤로 주춤 물러섰다.

황제의 눈에서 느껴지는 검은 기운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아무래도 1황자에게 정보를 흘리던 놈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지.”

“그, 그게 무슨 뜻이죠? 첩자가 있다는 말인가요?”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지.”

금고에서 발견된 것들은 모두 ‘까마귀’가 1황자에게 넌지시 알려 준 정보들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자신이 흑마법사와 결탁했다는 사실을 알려 준 것부터 시작해서, 알약의 정체까지.

모두 그곳에 적혀 있었다.

말 그대로 내부자가 아니라면 모를 것들을 ‘까마귀’란 놈은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타국에서 보낸 첩자라고 생각했다. 하나 단지 정보를 캐냈다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확실히 알약에 관한 것들은 황제조차 모르고 있던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희에게는 그럴 이유가…….”

“있지.”

황제는 입꼬리를 비틀며 말을 이어 갔다.

“내부에 쥐새끼가 숨어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

그 외에 황궁 내부의 정보를 낱낱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렇게 가정했을 경우는 모든 실마리가 풀린다.

“……온건파.”

“그래.”

바로, 자신들을 막아 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말이다.

황제는 천천히 다리를 꼬며 상황을 되짚어 나갔다.

“마드라를 움직이는 작전을 알고 있는 흑마법사는?”

“……지금으로서는 간부 다섯 정도예요.”

“그렇다면 당분간 놈들을 모두 주시하도록.”

내부자를 색출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한정적인 정보를 이용하여 이를 특정하는 것이다.

이렇듯 속속들이 내부의 사정을 알고 있다면, 필시 간부에 해당하는 저들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을 테지.

그것을 알고 있다면 방법은 간단했다.

“전쟁의 시기를 앞당기겠다.”

“…….”

“마드라에게 곧장 출정을 준비하라 연락을 넣어라.”

아직 준비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흑마법사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이끄는 강경파가 의심받는 이 상황은 석연치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으므로 어쩔 수는 없었다.

그러나 황제는 그렇게 결정하고도 위화감을 떨쳐 내지 못했다.

‘……왜지?’

자신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음에도 머릿속을 잡아끄는 위화감.

그래, 어쩌면 기시감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알렌 에스테반.’

놈을 상대할 때랑 똑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 * *

“뭐라? 연방제국의 황제께서 명령을 내리셨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여기, 통신의 내용을 옮겨 적은 전문이 있사옵니다.”

“이리 줘 보게.”

마드라의 국왕은 들어온 통신의 내용을 다급히 읽어 내렸다.

그런 국왕의 얼굴이 작게 일그러지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쟁이 준비되는 대로 에스테반으로 출격하라고…….”

새로운 황제가 준비하던 계략은 그들 역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에스테반과의 전쟁은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황제의 태도가 바뀐 것이 문제였다.

“분명 전쟁을 벌이기로 했던 것은 모든 준비가 끝난 조금 뒤의 일이 아니었던가? 인제 와서 준비되는 대로 움직이라는 것은…….”

“모르겠습니다. 하나 무언가 계획을 바꾸어야 할 정도의 일이 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연방제국 내부에서 말이지?”

“예, 전하.”

마드라 국왕이 턱을 쓰다듬으며 침착하게 상황을 되짚었다.

‘손바닥 뒤집듯이 바꿀 만한 계획이 아니었거늘.’

연방제국의 새로운 황제.

그가 벌인 참혹한 광경을 아는 이들은 그를 피에 미친 황제로 부를 터지만, 오랜 기간 그가 벌인 계략들을 보아 온 마드라의 국왕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피에 미친 모습은 그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두려운 사람이지만 적어도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의 모습은 이상했다.

명백히.

그리고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우선은 알겠네.”

국왕은 통신의 내용이 적힌 종이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주어진 임무를 실행시킬 뿐, 아무런 힘도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마드라에서는 황제 폐하의 지시에 따르는 것으로 하지. 명분은 잘못된 마법의 수식을 판매한 대응으로 하고.”

“예, 전하.”

“전쟁의 준비는 얼마나 끝났지?”

“이제 전쟁에 동원될 물자의 보급만 이루어지면 끝입니다.”

“그렇군.”

넓게 펼쳐진 지도.

마드라의 국왕은 그것을 손으로 짚어 가며 확신했다.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겠지. 하지만 알더라도 쉽사리 막아 내지는 못할 것이다.”

이 전쟁은 오롯이 연방제국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물자가 준비되는 대로 움직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되뇌는 국왕의 표정은 무척이나 굳어 있는 채였다.

* * *

그 소식은 노마법사를 통해 곧장 왕실로 전해졌다.

“뭐, 조만간 쳐들어오겠네요.”

조지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놈들은 모르고 있을 테지만, 이미 두 국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통신은 이쪽이 엿듣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노림수조차 꿰뚫었다는 뜻이 되리라.

“혹시 이럴까 봐 흑마법사들에게 정보 취합을 시킨 겁니까? 저들이 출정을 앞당길까 봐요?”

“아니.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우연에 불과한 것이다.”

“뭐, 그렇겠죠.”

제아무리 선구안이 밝다 해도 전쟁 시기를 앞당기는 것을 예측할 수 있을 리가.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던 조지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가라앉았다.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되겠군요.”

“그래.”

이번 마드라의 출정은 그 전조에 불과할 것이다. 이후에 있을 놈들과의 전쟁의 전초전 말이다.

“한데 전하, 저들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의미가 있겠습니까?”

“무슨 뜻이지.”

“어찌 출정 시기를 앞당긴다고 하더라도, 거리가 있으니 기습으로써의 의미는 전무하지 않겠습니까?”

비도르 후작이 지도의 한 부분을 훑으며 말했다.

에스테반과 마드라의 사이에 자리한 거대한 땅.

바로 연방제국이었다.

“보시다시피 연방제국이 병력을 통과시켜 준다고 하더라도, 이 넓은 땅을 오가려면 모르긴 몰라도 병력의 규모나 종류 정도는 들키기 마련일 것입니다.”

“결국 전쟁하러 온다고 광고하는 꼴이 된다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일부러 기습을 위해 선전 포고도 미루는 상황이 아닙니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하더라도 들켜 버린다면야 의미가 없었다.

명백히 이상함을 느낄 만도 했다.

하지만 쉽게 생각해 보면 정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연방제국을 관통하여 진격하는 육로라면 그렇겠지.”

“육로라면…… 설마?!”

“그래.”

내 손가락이 연방제국의 아래쪽을 짚어 냈다. 남부와 북부 대륙을 가르는 한 개의 물줄기.

바로, 대륙해(海)였다.

“대륙해에서 이어지는 이 물길은 에스테반의 남부까지 이어져 있지. 놈들이 은밀하게 도착할 만한 장소라면 이곳밖에 없을 것이다.”

“하, 하지만 마드라에서 에스테반까지 도착하는 길목은 험준하여, 어지간한 선박으로는 시도조차 어려울 터인데…….”

“배야 새로 만들면 되는 일이지.”

“만든다니…… 그렇게 쉽게 말씀하셔도.”

남부 해안에 즐비한 암초들은 일부 항로를 제외하면 천혜의 바리케이드나 다름없었다.

에스테반에서조차 남부 대륙으로 가기 위해 육로를 주로 이용하지 않던가?

그런 곳을 안전하게 뚫고 올 만큼의 튼튼한 선박이 쉽게 나올 리가 없었다.

하물며 병력들을 이끌고 올 만큼의 양이라면…….

“연방제국이 대량으로 사들이던 흑철이군요.”

“허엇!”

“정답이다.”

놈들이 이전부터 사들이던 흑철.

그것으로 선박을 만든 것이다.

이는 회귀 전의 전쟁에서도 큰 골칫거리로 부상한 문제였다.

‘동부와 남부에서 동시에 몰아치는 바람에 순식간에 방어선이 무너졌지.’

암초들을 믿고 경계하지 않았던 남부에서 병력이 몰아치자, 남부의 관문들이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것은 놈들이 준비하고 있었던 가장 큰 함정이었다.

“아마 이번 전쟁의 목표는 에스테반의 멸망이 아니다. 남부를 초토화시키고 대응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허어…… 확실히 군대 단위로 몰아친다면 남부 해협에 자리 잡은 해적들도 섣불리 건들지 못할 테지요.”

“그래.”

그렇다면 에스테반에서는 그것에 대응하여 피해를 줄이고…….

지금 뭐라고?

나는 슬며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며 후작에게 되물었다.

“방금 뭐라 했지?”

“예? 아, 군대 단위가 몰아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후에.”

“남부 해협에 자리 잡은 해적들의 위협도 받지 않을 거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곳곳에 자리한 군도에는 해적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무모하게 에스테반으로 향하는 군대를 상대하지는 않을 터.

“한데 흥미가 생기는군…….”

“또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아무것도.”

나는 조지의 핀잔에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던 비도르 후작은 문득 불안함을 느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서, 설마 이상한 행동을 하시려는 것은…….”

“걱정하지 마라. 이상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 그렇겠지요?”

그래, 이상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피해 없이 놈들을 막아 내고도 연방제국에 이쪽의 무기를 들어내지 않을 방법이 떠올랐을 뿐.

‘재미있겠군.’

내 입꼬리가 참지 못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