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89화
차단 (3)
“뭐, 뭐야!”
예기치 못한 일에 해적왕의 당혹스러운 시선이 부하에게 향했다.
처음, 큰일이 났다며 방으로 들어온 해적이었다.
“무슨 일이냐!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런 소란이야!”
“그, 그게…… 에스테반에서 오던 선박을 놓치는 바람에…….”
“선박?”
그러고 보니, 선박 하나가 군도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다.
분명 그것을 노획하기 위해 부하들을 보냈었지.
근데 대체 이 소란이랑 선박이랑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놈들이 포를 쏘기라도 했단 말이냐? 아님 상선으로 위장한 군함이었나?”
“그게…… 선박을 갑자기 놓쳐서…… 그래서…….”
“에잇, 답답한 새끼! 비켜라!”
“대, 대장!”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는 부하의 모습에, 결국 해적왕은 방을 박차고 나섰다.
그러고는 소란이 들려왔던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그 순간 해적왕은 부하가 지껄이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선박을 놓치는 바람에 소동이 벌어졌다는, 어째서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는지도 말이다.
“저게…… 뭐야?”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곳에서.
모든 의문이 해소되려 하고 있었다.
* * *
“이야, 역시 대형 범선은 이래서 좋다니까.”
난간의 옆으로 밧줄 하나를 부여잡고 있던 조지는 바닷바람을 즐기듯 여유롭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치 새로운 대륙을 찾아 나선 과거 바닷사람들의 모습이 이러할까?
지금 보여 주는 그 모습만큼은, 정녕 자유롭고 유쾌하다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아래에 펼쳐진 광경은 경악스럽기 그지없다.
쿠구구구구궁!
전속력으로 전진하던 선박이 선착장에 부딪히자, 굉음과 함께 썩은 나무 파편들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해적들이 관리하던 선착장과 강철을 덧댄 선박의 내구도가 같겠는가?
바람을 타고 벼락처럼 꽂힌 선박은, 그로부터 수십 미터를 더 짓쳐 든 뒤에야 자리에서 멈추었다.
“거 정말로 장관이구먼.”
그것이 현재의 상태.
선착장은 말 그대로 초토화된 뒤였던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녀석처럼 유쾌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이익! 대체 이게 무슨 경우냐! 전하의 육체에 문제라도 생기셨으면 어쩔 뻔했느냐!”
아무것도 모르고 뒤따라온 영주는 조타기를 붙잡고 있던 선장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그러나 선장은 시큰둥한 눈빛으로 양손을 보일 뿐이었다.
“내가 직접 관리하는 범선은 이깟 일로 망가지지 않습니다. 선체 위의 충격도 덜하지 않습니까?”
“그게 아니고!”
“전하께서 직접 명령을 내리셨는데 어쩌겠습니까?”
“며, 명령을 내리셨다고? 전하께서?”
“분명 전속력으로 달리라 하셨습니다.”
“이, 이런……!”
확실히.
다가오는 자신들을 발견한 해적선들이 멀리서부터 포위망을 좁혀 오는 상황이었다.
해상에서 갇히게 되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기에 기민하게 빠져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했던 것.
“그렇다고 해서 대뜸 범선을 선착장으로 돌진시키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대개 전속력으로 달리라는 것은 포위망을 빠져나가라는 뜻이지, 냅다 들이받으라는 뜻이 아니었다.
하물며 이곳에는 국왕까지 있지 않았던가?
그건 영주의 입장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동!
솔직히 말하자면 비단 영주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리 생각할 터였다.
하지만 바닷사람 특유의 화끈한 성격을 가진 선장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선박을 포위하기 위해 해적선들이 달려드는 상황에서 무얼 어찌합니까?”
“그, 그건…….”
“저는 명령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애초에 조금만 지체되었다면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목도 모두 틀어막혔을 겁니다.”
“……크윽.”
범선의 손상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오직 실리만을 택한 선장은 당당했다.
심지어 전부 옳은 말이었기에 반박할 거리도 없었다.
“저쪽은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는데요?”
그때 조지가 다가오며 어깨를 으쓱였다.
흔들림이 멎은 선착장 너머에서는 정신을 차린 해적들이 무기를 꼬나쥐고 이곳으로 달려드는 상황이었다.
물론 저들 역시 선착장에 꼬라박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여전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오히려 좋다.”
그리고 이 상황을 바란 것은, 당연히 선장뿐만이 아니었다.
챙!
나는 허리춤에 매어진 엘베른을 뽑아 들으며 놈들에게 겨누었다.
“선박을 보자마자 달려든 것을 보면 먹잇감으로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지. 그렇다면 거리낄 것은 없다.”
“애초에 살려 줄 생각조차 없었으면서요.”
“당연한 소리.”
입꼬리가 즐거움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바다 위의 골칫거리를 언제까지고 봐줄 이유는 없으니까.”
그 외에도 놈들을 처리해야 할 이유는 많았다만, 무엇보다도 큰 이유는 놈들이 점령한 이 군도가 쓸모 있기 때문이었다.
연방제국의 비호를 받고 있는 군도.
그 공교로운 위치가 탐이 났으니까.
“오랜만에 실력이나 보지. 기사들은 해적들을 처리하고 군도를 탈환한다.”
“충!”
내 명령에 기사들이 육지 위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선착장에 처박은 것에 이어 기사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해적들이 더욱 당황했지만 말이다.
* * *
챙!
서걱!
“으아악!”
“살려 줘!”
해적들은 저마다의 무기를 들고 기사들에 대응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에스테반의 국왕을 지키기 위해 파견된 호위대. 그런 이들을 고작 해적 따위가 이기는 것이 가당키나 할 리 없었으므로.
물론 그 사실을 해적들이 알 리는 만무했다.
“크윽!”
“이런 놈들이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지?!”
놈들이 에스테반에서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고작 배 한 척에 이런 이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해적들이었다.
하물며 이렇게나 잘 훈련된 기사들이라니?
때문에 구축한 방어선은 혼란이 가득했고, 기사들의 손짓에 따라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뭣들 하는 거냐! 뭉쳐서 대응해!”
“대, 대장!”
하지만 그때 정신을 차린 해적왕이 본격적으로 전장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기사들이라 해도 칼침을 놓으면 멀쩡하지 못할 거다! 포위망을 좁히고 한 명씩 줄여 나가라!”
“그, 그래!”
“놈들이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숫자에는 이기지 못할 거야!”
적 기사들의 숫자는 고작 스물.
이곳 군도에 상주하는 해적은 그 수십 배에 달할 정도였다.
먼저 한 명만 처리한다면, 놈들이 받는 압박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나 맞기 전까지는 계획이 있는 법. 수가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가능해!”
“포위를 할 수가 없어!”
서걱-
“큭, 또야!”
“저 새끼가 포위망을 형성할 때마다 나서고 있어!”
“이익……!”
기사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버겁건만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저 은발의 남자는 더욱 그러했다.
기사들이 위기에 빠질 때 즈음만 되면 나타나서 열댓 명의 해적을 죽이고 사라지는 것!
벌써 몇 번째일까?
아까부터 반복되는 칼질에 해적들이 위축되고 있었다.
“크윽! 제길, 이 답답한 새끼들! 비켜라!”
“오오!”
“대장이 직접 나섰다!”
“손님으로 대우해 주려 했건만 이번만큼은 고이 보내지는 않겠다!”
결국 해적왕은 애병인 시미터(Scimitar)를 꼬나 쥐고 전장에 합류했다.
그 모습을 발견한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오호라, 놈이 대장인 모양이군.”
“놈은 직접 상대하시렵니까.”
“그래야겠지.”
“곧 죽을 놈들이 무엇을 재잘대는 것이냐!”
해적왕이 새빨개진 얼굴로 외쳤다. 막무가내인 해적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망만 두터워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자신감은 결코 허세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군도에 밀집된 해적은 이게 전부인가?”
“하!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머저리 같은 질문을 하는군! 안심해라, 이곳에 있는 병력만으로도 네놈들을 죽여 줄 터이니!”
“아직은 더 남았다는 소리군.”
“뭐라…….”
스윽-
“……허억?!”
그런 그조차도 지척까지 다가온 남자의 움직임을 놓쳤다.
아니, 애당초 움직이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눈앞에 다가와 검을 겨누는 그 순간마저도 말이다.
“대, 대체 어떻게…….”
“그렇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으니 직접 나서는 수밖에.”
푹!
“끄, 끄어억…….”
살을 파고드는 촉감은 흐릿했고, 그를 내려다보는 핏빛의 눈빛은 선명했다.
단 일격.
어찌나 비현실적이었던지 몸이 허물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이 찔렸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가 없었다.
털썩-
“대, 대장!”
“대장이 당했다!”
“도망쳐!”
순간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해적소굴.
해적들은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흩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방어선을 뚫는 전투는 어느 순간 일반적인 토끼몰이로 바꿨다.
아니, 애초에 시작부터 그러했다. 해적들은 몰랐겠지만.
“거참, 역시라 해야 할지…….”
그리고 그 속에서, 조지의 혀 차는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
군도 곳곳에 퍼져 있던 해적들이 모조리 정리된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전하,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해적들을 모조리 정리했습니다.”
“수고했다.”
일부 이상함을 감지한 해적들이 선박을 통해 탈출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모두 정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놈들은 어디로 가든지 범죄자 신세를 면치 못할 테니.
굳이 따지자면 연방제국은 놈들의 우군과도 같은 것이었지만…… 뭐, 애초에 놈들에게도 생각이 있을 테니 그쪽 방면으로 가지는 못할 터였다.
‘꼼짝없이 놈들에게 척살 당할 테니까.’
그 관계가 드러나고 싶지 않은 이상 놈들이 멀쩡히 살아 돌아갈 가능성은 없었다.
“남부의 골칫거리였던 해적들을 이리도 쉽게 정리하시다니…….”
그 와중에 멋모르고 따라온 영주는 볼을 꼬집어가면서까지 이 상황을 믿지 못했다.
제아무리 기사들이라곤 해도 저들은 해상전의 프로였으며, 그 수가 무려 천에 달했다.
영지를 좀먹는 해적이란 존재는, 무능해서 놓아 두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물론,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놈들이 세력을 키운 것은 연방제국의 비호가 있던 덕이다. 알게 모르게 주변국을 압박해서 토벌군을 파견하지 못하도록 막아 왔지. 혹은 토벌군이 형성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언질 주거나.”
“그, 그렇습니까?”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해적에 불과하다는 소리지.”
정규군 따위에도 당하지 못할 버러지들. 내 입장에서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놈들이 맹수의 등에 업혀 위세를 떨치는 것도 여기까지였다.
게다가 영주는 모르겠지만, 데리고 온 기사들도 평범한 왕실의 기사들이 아니었다.
‘역시 인간을 상대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군.’
그들은 브롬의 아래에 있던 용병들이자, 이제는 제4 기사단인 붉은 매 기사단에 속하게 된 이들이었다.
가진 무력조차 일반 기사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며 특히나 수많은 실전 경험은 그들의 경지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준다.
해적들이 수상전의 프로였다면, 이들은 난전의 프로.
심지어 거기에 기사왕의 교육까지 더해지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런 녀석들에게 뒷배와 지휘부를 잃은 해적의 잔당들은 상대할 가치조차 없었으리라.
“그나저나 해적들의 기지라…….”
나는 시야에 닿는 군도의 모습을 눈에 새겼다.
해적들의 손에 관리되고 있던 이곳은 전체적으로 낡긴 했지만, 기반이 될 만한 시설들이 제법 존재했다.
이를테면 대장간이라던가, 조선소라던가…… 그저 기착지 정도가 아닌 엄청난 규모.
그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의외라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도 연방제국과의 거래가 있었던 덕분인가.’
“슬슬 드워프들도 항구에 도착했을 겁니다. 불러와서 보수를 시킬까요?”
“그래야겠지.”
“뭐…… 본격적으로 해적질을 하려면 말이죠.”
나는 상념을 깨는 조지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 기반 시설들은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물자를 비롯한 예상보다 많은 기반들.
애초 목적은 이곳에서 해적으로 둔갑하여 마드라의 침입을 막는 것이었으나, 이것들만 있다면 그 이상의 것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군사를 정비하는 것보다는 수월할 터였으니까.
그때 조지가 입을 열었다.
“이런 건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