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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90화 (190/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90화

차단 (4)

“……이런 것?”

나는 진지하게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조지에게 물었다.

그러자 녀석은 품속에서 자그마한 지도 하나를 꺼내더니 지형을 살피기 시작했다.

“해적질이라 해서 한 번에 그칠 필요는 없겠죠.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에스테반의 병력이 소리 소문없이 이곳을 점령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해적으로 둔갑한 에스테반의 병력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일거에 몰아친다.

그 모든 전제조건은 바로 그 누구도 몰래 에스테반의 병력이 이곳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놈들의 기습 공격을 역으로 되받아치고 전력까지 숨길 수 있으니까.’

거기까지가 이번 작전의 개요.

그렇기에 녀석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하면 이곳을 아예 요새화시키는 것은 어떻습니까?”

“해적인 척한 채로 병력을 주둔시키자는 말이냐?”

“정확히는 전진기지로 사용하자는 뜻입니다. 아주 비밀리에 말이죠.”

“……전진기지.”

“뭐, 이를테면 요런 느낌이겠죠.”

녀석이 지도를 따라 손가락을 쭉 긋자, 에스테반의 동부에서부터 이어진 진격로가 대략적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반대로 폴른스타 군도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예의 진격로보다 더욱 짧은 구간이 그려졌다.

바로, 연방제국의 최심부인 수도로 향하는 진격로였다.

‘과연.’

나는 눈썹의 끝을 까닥이며 녀석의 의도를 이해했다.

이곳에 전진기지를 짓는 것만으로 해도 놈들의 최심부로 가는 길이 열린다.

게다가 북부 점령지에서 훈련 중인 병사들은 언제든지 연방제국으로 짓쳐 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비록 해상을 건너 움직여야 한다 한들, 에스테반의 본대와 더불어 총합 세 개의 선택지가 주어지는 셈인 것이다.

무엇보다 녀석들은 아직 이곳이 자신의 편이라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그렇게 되면 어느 쪽이 허고 어느 쪽이 실인지, 놈들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 있다.’

수적으로 불리할 것이 분명한 판국에서 가장 먼저 전략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결코 적지 않을 테지.

숨겨 둔 패의 유용성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남부에서 절대로 병력이 오지 않을 거라는 놈들의 작전을 역으로 이용하는 건가.”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만.”

“나쁘지 않군.”

이곳에 남은 기반시설을 이용한다면 마냥 허무맹랑한 소리도 아니었다.

아니, 상황을 고려하면 오히려 그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작전이다.

말 그대로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을 녀석이 정확하게 짚어 낸 거라 할 수 있으리라.

“좋아, 그렇게 하지.”

“뭐, 결정되었네요.”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생기겠군.”

“당위성에 관한 문제 말입니까?”

“그래.”

이전의 작전은 해적의 탈을 쓰고 마드라의 군대를 막아 내는 것.

그 이후야 어떻게 되든 이쪽의 전력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면 족했다.

그러나 이곳에 전진기지를 세울 것이라면, 보다 치밀한 작전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해적들이 마드라의 군사들을 건드릴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거기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연방제국의 의심을 차단할 수 있단 소리겠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좋은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요.”

“물론.”

이전보다 귀찮기야 하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에스테반은 더 이상 버티기만 하던 이전의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얻었으니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드워프들을 불러오도록 하지. 선장에게 일러 녀석들을 마중 나가라 하도록.”

“알겠습니다.”

나는 몸을 돌리며 조지에게 명령했다.

그러고는 주변의 광경을 눈에 담으며, 미래의 모습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 * *

“전진기지라…….”

군도에 도착한 드워프들은 작전을 듣자마자 주변을 둘러보며 견적을 짜기 시작했다.

과연 드워프라고 해야 할지……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어수룩하게 행동하는 녀석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책임자로 온 수르트는 벌써 모든 설계가 끝났는지 곧장 나를 찾아왔다.

“말씀하신 바는 알겠소. 이곳에 병력이 주둔할 곳과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할 방벽을 세워 달라는 뜻이겠지.”

“가능한가.”

“커흠! 우리 일족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소.”

수르트가 가슴팍을 탕탕 두드리며 호언장담을 했다.

하지만 허세는 아니었다.

실제로 놈들이 지난 시간 동안 터득한 요새 건축의 노하우는 이미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으니까.

하물며 기반 시설과 물자가 존재하는 이곳이라면 더더욱.

“선장이란 인간에게 이미 이곳의 상황을 얼추 들은 뒤요. 해적들이 관리하던 곳이었다지?”

“그래.”

“그렇다면 더욱 간단하오.”

그 말이 무슨 뜻인가 해서 보고 있으려니, 녀석은 조지가 두고 간 지도를 흘겨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대장간의 상태를 보면, 노획한 철을 이용할 줄만 알았지 직접 광물을 건드릴 수준은 아니었소. 말인즉, 이곳 군도 주변으로 밀집된 섬들은 모두 개발되지 않은 공간이나 다름없다는 소리겠지.”

“호오, 시설만 보고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모양이군.”

“크흠……! 어쨌든 이곳의 자원을 이용하면 광물을 번거롭게 조달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오.”

적어도 드워프들에게 있어서는, 자원을 실어 나르는 것보다 직접 캐내어 사용하는 편이 빨랐다.

게다가 그런 광물이 즐비해 있을 테니 그 시간도 현저하게 아낄 수 있다.

녀석이 말하는 바는 그런 것이었다.

“하물며 이 솟아오른 암석들조차 그들에게는 거치적거릴 뿐이었겠지만 우리 드워프들에게는 아니오.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요새의 방어력이 보강될 테니까.”

“하면 어떤 방식으로 요새를 건설할 생각이지?”

“섬의 중앙을 관통하는 대공동을 만들 것이오. 겉으로만 보아서는 요새화가 진행되었는지 모를 형태로 말이오.”

“그렇군.”

폴른스타 군도의 중심이 되는 섬은 거대한 암석이 솟아오른 형태였다.

거대한 바위 섬.

그것의 중앙을 비워 낸다면 아마도 대규모의 병력들이 상주해도 모자람 없는 공간이 확보되리라.

문제는 거기에서 이어질 작업의 난이도였지만…….

‘저렇게나 자신 있어 하니 걱정은 없어 보이는군.’

마법도 없이 그런 대규모의 작업을 해낸다니, 역시나 그 이름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곧장 작업에 착수하도록.”

“허, 벌써 돌아가는 것이오?”

“상황을 조율할 사람을 남기고 가지.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를 통해 해결하도록.”

“이번에야말로 우리 일족의 저력을 보여 주고 싶었건만…… 일단은 그리하겠소.”

그렇게 수르트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리를 뜨자, 일손을 배분하던 조지가 다가왔다.

“일단은 당장 해적질에 필요한 것들을 갖추는 데에 인력을 중점적으로 투자하죠.”

“해적선의 보수작업 말이지.”

“뭐, 그렇죠. 요새도 요새지만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면 곤란하니까요.”

“마침 좋은 생각이다.”

어찌 되었든,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선박이 필요했으니까.

“그건 네 녀석이 알아서 하면 되겠군.”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곳에서 네놈이 상황을 정리하란 말이다.”

“……허 참.”

녀석이 왈칵 얼굴을 구기며 김빠지는 소리를 냈다.

“……진짭니까? 아니죠?”

“아닐 리가.”

“…….”

애써 상황을 부정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남기 싫다고 입술을 비쭉여 봐야 현실만 자각하는 꼴이었다.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오랜 경험에서 나온 해결법.

결국 조지는 실소를 지으며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일단은 선장을 불러서 내륙까지 움직일 준비를 하라 이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이미 마탑주에게 통신을 넣었으니.”

“설마 공간이동입니까?”

“그래.”

“쓰읍.”

그렇게 불만을 터뜨리던 조지는, 어깨를 으쓱이며 뒷말을 이었다.

“뭐, 다녀오십시오. 이쪽은 알아서 하고 있겠습니다.”

“음.”

툴툴대긴 해도 그 능력을 발휘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곳의 일이 본국의 일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을, 녀석 역시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이 중요한 장소에 놈을 남겨 두고 가는 이유 역시도 말이다.

“다녀오지.”

“예.”

이미 그 이상의 확답은 필요치 않았다.

* * *

우우우웅-

팟!

“…….”

공간을 찢고 익숙한 감각 속에서 눈을 떴다.

마찬가지로 익숙한 풍경이 망막에 맺히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집무실이 된 국왕의 집무실이었다.

“국왕 전하아아아아!”

철컥-!

그때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수척해진 후작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마탑으로부터 귀환의 소식을 들은 것인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수준이었다.

“전하! 어찌 아무런 소식도 없이 그렇게 떠나실 수가 있습니까! 그것도 호위 기사 일부만을 데리고 움직이시다니요!”

“오자마자 자비가 없군.”

“그렇게 농담으로 넘어가실 일이 아닙니다!”

후작은 그로부터 숨 한 번 고르지 않고 장장 수십 마디에 걸쳐 잔소리를 이어 갔다.

그 내용은 대부분 ‘이제 국왕이 되셨으니 자중하셔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초인의 귀를 아프게 할 정도로 잔소리가 이어지나 했더니, 이번에는 아예 애걸복걸하듯 빌기 시작했다.

“신은 그때부터 잠도 잘 이루지 못했습니다! 언질조차 없고 연락도 되지 않는 상황을 전하께서는 이해하십니까?!”

“…….”

“차라리 저와 상의를 하셨다면 신중을 기할지언정 훼방을 놓지는 않았을 터입니다! 부디 다음부터는 이렇게 급작스럽게 행동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결국 이어지는 잔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저대로 놔둔다면 바닥에 엎드려 울기라도 할 것 같았으니까.

‘……일부러 벼르고 있었나.’

물론 상의도 없이 움직인 것은 조금 미안하지만…… 촌각을 다투는 사안이었기에 급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다음부터는 조지 대신에 데리고 다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녀석에게는 잡무를 맡겨 놓고 말이다.

“아, 이, 이럴 때가 아니지!”

그렇게 정신을 차린 후작은 다급히 무언가를 내밀었다.

에스테반의 양식으로 보이지는 않는 한 장의 서신.

나는 시선만 돌려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건 뭐지.”

“마, 마드라에서 온 최후통첩입니다! 오늘 아침에 왕실로 도착하였습니다!”

“호오.”

마드라에서 말인가?

흥미가 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그것을 건네받은 뒤에, 대충 봉투를 뜯어내고 내용물을 살폈다.

[귀국 에스테반은 성실하게 임했어야 할 대륙 회의를 욕보이고 수많은 국가를 농락하였소.]

[마드라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막대한 재산을 소모하여 귀국에 협조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수식과 조롱뿐이었소.]

“막기 위해 협조하기는 무슨.”

다음 내용은…….

[그럼에도 이후에 이어진 항의에 귀국이 응하지 않는바.]

[돌아오는 12월의 첫날까지 제대로 된 수식을 공개하고 부정으로 획득한 재산을 반환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드라에서는 귀국을 적대하고 억지로라도 재산을 반환받을 것을 이 자리를 빌려 선포하는 바요.]

“훗.”

한 국가에 공식적으로 보냈다기에는 미사여구도 서두도 없이 작성된 서신.

여지를 남기긴 했다지만, 그것이 결국 놈들이 바라는 방향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비도르 후작.”

“예, 예?”

“답신을 보낼 준비를 하도록.”

“저, 전하…….”

후작은 그 말에 곧장 몸을 떨었다.

꼭 해적에 관한 이야기를 지껄였을 때처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뭐라고 보내면 좋을까.”

……그래.

마땅히 보낼 만한 말이라면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지랄하고 자빠졌네.’ 정도면 충분하겠지.”

“……!”

고상한 서신에는 고상한 대답으로.

저들의 수준에 맞는, 참으로 어울리는 답신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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