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91화
해적 (1)
“푸흐흐흐.”
마드라의 총사령관 녹턴 후작은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언뜻 보기에 광소와도 같은 그것.
휘하의 기사가 다가오며 그 이유를 물었다.
“각하,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크큭, 좋은 일? 아, 자네도 한 번 보겠나?”
“예?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후작은 그 의문에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말없이 기사에게 넘겼다.
이에 기사가 조심스레 그것을 받아 들고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건.”
“에스테반에서 보냈다는 답신일세.”
“…….”
기사의 눈썹이 크게 요동쳤다.
그 내용이 도무지 웃음이 날 만한 것이 아니었던 탓이다.
[지랄하지 말고 원한다면 군사를 보내도록.]
과연 무례하다 못해 오만하게까지 보이는 문장.
그러나 단 한 줄짜리 답신 속에는 너무도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건 전쟁이 일어나도 상관없도록 준비했다는 뜻입니까?”
“글쎄? 그건 놈들만이 아는 일이겠네만.”
총사령관은 입가에 지어진 웃음을 유지한 채로 말을 이어 갔다.
“날을 세우는 고슴도치에 불과할 수도 있고, 어쩌면 사냥감이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맹수일 수도 있는 노릇이지.”
“허세와 여유…… 하지만 저들은 실제로 그간 연방제국과의 전쟁을 준비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고슴도치를 예시로 든 것이 아니겠나?”
가시가 있음을 적에게 보이고 위협하는 행위는 단순히 허세라고 치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경고에 가까운 것.
제아무리 강한 맹수라도 고슴도치를 집어삼키려 든다면, 손해를 보는 것은 본인들일 테니까.
“하나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위협에 지나지 않는다.”
녹턴 후작은 정제된 살기를 번뜩이며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적에게 상처를 입힌다고 하더라도 이빨에 짓이겨지는 것은 피할 수 없고, 이는 연방제국이라는 패자(霸者)와의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는 크나큰 상처로 남을 터였다.
그렇다면 반대로 놈들이 이 상황을 기다린 맹수일 경우에는?
그 역시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자신들은 평범한 사냥감이 아닌, 가시를 바짝 세운 고슴도치였으니까.
“먹잇감임을 알아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고, 그 무모함의 말로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
총사령관의 눈동자가 시야에 비치는 전경을 담아냈다.
파도를 가로지르는 이십 대의 전함.
마법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그것들은 바람보다 빠르게 전장을 나아갔고, 그 위에는 마드라의 군사들을 비롯해 연방제국의 정예군들이 칼날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래.
“알아도 막지 못하는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도합 일만의 기습 병력.
그 가시들은 놈들의 입속에서 살점을 갈가리 찢어 놓으리라.
녹턴 후작은 그 순간이 기대되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 * *
나는 북부 점령지에 배치해 두었던 태양 기사단을 불러들였다.
그것도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전부.
그래서일까? 부단장 로데르의 표정에는 무덤덤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신 로데르 캘버를 포함한 태양 기사단 전원은, 국왕 전하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왔습니다.”
“알맞을 때 도착했군.”
최전방에서나 활동하는 태양 기사단이 움직인다는 말은, 곧 전쟁이 벌어진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그들 역시 마드라에서 보내온 서신에 대해 알고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그에 관한 소식은 이미 전국으로 퍼져 나갔을 정도였으니까.
그렇다면 다음 목표는 마드라와의 전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무덤덤함으로 가장한 것은 감히 내 앞에서는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탓이었으리라.
“늦었지만 왕위에 오르신 것을 진심으로 경하드리옵니다. 임무의 지속 탓에 진작 찾아뵙지 못한 불충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됐다.”
나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로데르의 말을 끊어 냈다.
애초에 그곳에 태양 기사단을 배치한 것이 나인데 무슨 불충이란 말인가.
적어도 내게는 성대한 즉위식 따위보다 북부의 안전이 더 중요했다.
“우선은 북부의 상황을 듣지. 상황을 보고하도록.”
“예, 전하.”
로데르는 준비해 왔던 북부의 지도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미탐사를 뜻하는 잿빛으로 채워져 있던 그곳은, 이제는 제법 탐사가 끝난 듯 다채로운 색상으로 덧그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자세한 소식을 전해 들을 수는 없었지만, 눈으로 보기에는 연방제국과 야만족 사이의 전쟁이 거의 끝나 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소강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겠지.”
“그렇습니다.”
연방제국 북부 국경지대에서는 여전히 크고 작은 전투들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전쟁이라 부를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야만족의 땅에 몰아쳤던 기근이 사그라들기도 했을뿐더러, 전사들의 희생이 만만찮았기에 소극적으로 되어 버린 탓도 있었다.
“연방제국 역시 인제 와서 그들을 자극하고 있지는 있습니다. 에스테반과의 전쟁을 대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이득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자각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야만족의 병력은 그쪽에 집중되어 있다는 말인가.”
“아직은 연방제국의 병력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일 테지요. 당분간은 북부가 위협받을 일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
놈들에게는 자신들의 땅을 점령한 에스테반도 그러했지만, 연방제국의 병력 역시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격을 멈춘 에스테반과 달리, 연방제국과는 아직 전쟁을 이어 가고 있다. 그러니 그쪽으로 병력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으리라.
‘덕분에 이렇듯 태양 기사단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있고 말이야.’
연방제국과 야만족 둘 모두의 힘을 소모 시키는 작전은 성공했다.
일단은 북부를 얻음과 동시에 가장 걸림돌이 사라진 셈이었다.
‘게다가 전쟁 중에 후방을 공격당할 위협도 없다.’
대륙과의 교류가 없는 야만족들이, 에스테반과 연방제국이 전쟁을 벌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뭐, 딱히 누군가가 정보를 흘린다 해도 상관은 없다.
아직 연방제국과 야만족들의 전쟁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니까.
‘놈들의 입장에서는 양동작전으로 보일 수 있겠지.’
놈들도 머리가 있는지라, 연방제국의 위협을 무시한 채로 에스테반을 노리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적어도 향후 몇 년간은 야만족의 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고,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미 연방제국과 에스테반의 전쟁은 끝이 난 후일 터다.
말 그대로 ‘완벽한’ 성공이라 확신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쪽 일을 해결해야겠군.”
나는 보이지 않게 입술을 깨무는 로데르에게 말했다.
“예상했겠지만 마드라가 공식적으로 선전 포고를 걸어왔다.”
“그들이 고대 마법의 수식을 걸고넘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
“하지만 단독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특히나 먼 거리를 진군해야 하는 경우라면 더욱…….”
“물론 그 뒷배는 연방제국이지.”
“허.”
로데르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아직 마드라가 연방제국의 명령을 받는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밝혀진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로데르가 놀라는 것도 이해는 갔다.
“……그렇다면 연방제국이 쾌속 진격이 가능한 길을 열어 주겠군요. 어쩌면 그들의 군사가 합류하는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그래. 그렇기에 병력들을 동부 국경지대로 이동하라 명령해 두었지.”
“예, 그곳으로 적군이 도착할 테니까요.”
“하지만 동부에 병력을 집결시킨 것은 연막작전이다.”
“……예?”
그게 대체 무슨 연막이란 말인가?
로데르는 자신이 아는 연막작전의 뜻을 되새기며 물었다.
“송구하오나 전하의 의중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동부에 집결시킨 병력은 놈들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고, 전쟁은 오직 태양 기사단으로만 이끌어 간다는 소리다.”
“그, 그게 무슨…….”
“지금부터 태양 기사단은 해적이 된다.”
“……!”
과연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하지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여 주는 것이 편하겠지.
우우우우웅!
그 순간 기다렸던 통신이 도착했다. 발신인은…… 군도에 두고 왔던 조지였다.
스윽-
“말하도록.”
-놈들이 슬슬 에스테반의 연안에 다다르기 시작할 겁니다.
“역시라고 해야 할지, 이미 서신을 보내기 전부터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시기를 보면 그렇겠지요. 효과적인 기습에는 그만한 것이 없으니까요.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로데르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는지 재빨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지?”
“연안이라니…… 이미 적군이 들이닥쳤다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하다.”
“하면 어째서 발견하지 못한…… 아!”
연안과 기습. 그리고 이전에 말했던 해적까지.
그 단어들이 주는 맥락을 눈치챈 로데르가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설마 마드라의 군대가 바다를 통해서 온다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히는 이미 도착했을 테지. 연방제국은 이를 감추어 주었고.”
“이럴 수가!”
로데르는 전율했다.
적어도 놈들이 이미 지척까지 다다랐다는 소식 탓은 아니었다.
단지 동부에 병력을 집결시킨 움직임이 연막이라는 그 말을, 온전히 이해했던 탓이다.
“그, 그렇다는 것은…….”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나 있는 상태라는 소리지.”
나는 통신을 끊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슬 본격적으로 해적질을 시작하러 가 볼까?”
그 눈빛은 먹잇감을 기다리던 맹수의 그것이었다.
* * *
촤아아-!
바다를 나아가는 배는 순풍이라도 단 것처럼 재빨랐다.
녹턴 후작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바람마저 우리를 도와주는군. 에스테반에 상륙하기까지 얼마나 남았지?”
“예, 각하. 대략 이틀 정도 거리입니다.”
“하하! 놈들은 해상으로부터 군대가 오리라곤 꿈에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놈들의 경비함 따위는 단 한 개도 발견하지 못했다.
비단 경비함뿐이랴? 오히려 어선과 같은 작은 선박 한 척조차 보지 못했다.
연방제국에서 출항을 통제한 것도 있지만 이곳이 해적의 권역이었던 탓도 있었다.
즉, 자신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말이었다.
“바다에 눈이라도 달리지 않은 이상 발견할 수 없겠지. 애초에 해무 때문이라도 감시마법 따위가 이곳까지 닿지는 못할 터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들어온 첩보에 의하면 놈들의 병력이 동부로 집중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 기세라면 남부 전역을 무너뜨리고도 여유로울 게 분명했다.
“크흐흐. 오랜만에 제대로 놀아 보겠군.”
후우우웅!
끼기기기긱-!
“엇!”
“갑자기 바람이……!”
그때 막강한 역풍이 불어오며 활짝 펴져 있던 돛이 비정상적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선박에서는 불길한 소리가 연신 울려댔다.
나무가 망가지는 소리였다.
이상함을 느낀 후작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서며 외쳤다.
“무슨 일이냐!”
“바,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바람? 무슨 바람이 이리도 거세게 분단 말인가!”
“그, 그것이…….”
“답답하기는! 돛을 올리고 선체를 점검하면 될 일이 아니냐!”
후작은 눈매를 좁힌 채 명령하며 선실의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런 후작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저 멀리서 몰려들고 있는 검은 구름들이었다.
“태, 태풍!”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도 없던 기상 상태가 이리도 급변해 버리다니?
제아무리 날씨가 변덕스러운 바다라 하더라도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저것은 아무리 잘 봐줘도 그냥 넘어갈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일단 본국에 연락을 넣어라! 태풍을 만났다고!”
“아, 알겠습니다!”
그런 다급한 외침에도 태풍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시시각각 함선들을 노리고 다가왔다.
마치, 자신들을 집어삼키는 것이 제 목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제길……!”
마침내 다가온 태풍이 스무 척의 함선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