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92화
해적 (2)
휘이이잉!
콰과과과과!
“히익!”
“뭐라도 붙잡아! 떨어지면 죽는다!”
선체를 연신 강타하는 거센 바람.
끝도 없이 이어진 태풍은 마드라와 연방제국의 정예병들마저 두려움에 질리게끔 만들었다.
애초에 그들의 체면이 이토록 망가진 적이 없었다.
“크윽! 배를 우현으로 돌려라! 어서 태풍을 빠져나가야 한다!”
“아, 알겠습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녹턴 후작이 마법사들에게 외쳤다.
그러자 마력을 쏟아부은 선체가 잠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아주 잠시였다.
“부, 불가능합니다!”
“뭐라!”
“태풍의 영향으로 동력부에 이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제기랄! 어떻게든 고쳐 보란 말이다!”
“어, 어떻게라 말씀하셔도…….”
마나를 이루는 것들은 대기 중에 고루 퍼져 있는 원소.
때문에 마법은 강한 태풍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상식과 같은 것이었으나, 직접 상황을 겪는 것이 처음인 이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 허둥댐은 곧 참사로 이어졌다.
끼기기기긱!
“이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심해지는 태풍에 또다시 선체가 기울었다.
이번에는 그것도 모자라 높게 몰아친 파도가 갑판 위를 휩쓸었다.
쏴아아아!
콰직!
“으아아악!”
“이럴 수가!”
흔들림과 물살에 못 이긴 병사들이 어두컴컴한 파도의 아래로 사라졌다.
눈대중으로만 어림짐작해도 반절 이상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누가 본다면 오합지졸들의 군상이라 하겠으나, 이곳에 있는 이들은 엄연히 정예병이었다.
그런 그들조차 버티지 못할 정도로 막강한 파도라는 뜻이다.
‘제기랄……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몰살이다.’
적을 만나서 무너진 것도 아니고, 고작 태풍 따위에 영문도 모르게 일만의 병사가 수장되게 생겼다.
그 책임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 전체에게 지워지겠지.
그런 상황은 결단코 사절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악몽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콱!
“후, 후작 각하?”
마법사가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은 후작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다른 선체들과의 연결을 끊어라.”
“아, 안 됩니다!”
“어서!”
지금 스무 척의 함선을 이끄는 것은 그들이 타고 있는 메인 동력원이었다.
수없이 많은 마정석으로 마력을 충당하고, 이를 나머지 열아홉 척의 배에 전달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연결된 마력의 연결을 끊어 낸다면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들이 타고 있는 함선 한 대는 말이다.
“명령이다. 당장 연결을 끊어라.”
“그, 그건……!”
“이런 멍청한! 이대로 돌아가도 우린 모두 죽어!”
“…….”
“명심해라! 허무하게 죽어 버리느니, 최소한 살아남아서 뒷일이라도 도모해야 한다!”
“으으…….”
강력한 비바람 속에서도 핏발 선 눈은 마법사의 뇌리에 고스란히 각인되었다. 그것은 광기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자신에게는 일말의 책임조차 없어야 한다는 집착과도 같은 그것.
“…….”
우우우웅!
결국 마법사는 동력원을 조작해 후발 선박들과의 연결을 끊어 냈다.
그 모습을 본 녹턴 후작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모든 마력을 집중해 전속력으로 전진하라! 어서 이 태풍을 빠져나간다!”
“아, 알겠습니다!”
촤아아아아!
한 척에 집중된 마력은 태풍 속에서도 제 역할을 독특히 해냈다.
바람을 거스르면서 차츰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허억…….”
“헉, 헉……!”
그렇게 영겁 같았던 시간이 지나가고, 마침내 그들이 탄 함선이 태풍의 영향에서 벗어났다.
남아 있는 병사들이 기진맥진한 채로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피해는?”
“……열아홉 척의 함선과 구천칠백가량의 병력을 잃었습니다. 아마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통신 장비를 비롯한 마도구와 나침반 등이 모두 망가졌습니다.”
“그렇군.”
기사는 그런 녹턴 후작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후발 함선들과의 연결을 끊으라던 그 이기적인 명령을 기사 역시 들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후작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본국으로 돌아가기까지의 물자는 충분히 남아 있는 상태겠지?”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되었다.”
그래.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운이 나빴을 뿐이었으니까.
애초에 병사란 존재는 그에게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제길.”
다만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공적을 세울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 아쉬울 뿐…….
후작은 갑판 위를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일을 꾸미는 건가.’
이 상황에서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는 방법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어필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미 보내 버린 통신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그 역시도 놈들의 계략이었다고 표현하면 그만이었으니.
그러면 이제 필요한 것은 면책을 위한 업적뿐.
‘마지막 통신은…… 심상치 않은 태풍을 만났다는 것이었던가.’
긴급했던 상황 속에서 있었던 일을 되짚는다. 그러고는 전후 관계를 짜 맞추며 적당한 핑계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기지를 발휘하여 태풍을 뚫고 나와, 최소한의 병력으로라도 놈들의 도시를 타격했다.’
마력의 연결을 끊었다는 사실만 알리지 않는다면 완벽했다.
오히려 그것이 아니라면 스무 척의 함선이 허무하게 전멸당한 일을 포장할 방법은 없었으니.
아마 적당한 피해를 입히기만 하더라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남아서 작전을 이끈 장군으로 취급받을 수 있으리라.
‘물론 남은 병력을 모조리 희생해서라도 피해를 입히기는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모든 계획을 짜낸 녹턴 후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였지?’
에스테반과 연방제국의 사이.
누구의 눈도 닿지 않는 이곳의 위치를 짐작하는 일은 어려웠다.
특히나 지금처럼 각종 집기가 먹통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는 더더욱.
이를테면 지표가 되어 줄 폴른스타 군도가 보이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다.
‘……폴른스타 군도?!’
그러다 문득 잊어버리고 있던 사실을 기억해 냈다.
이곳이 다른 어느 곳도 아닌 해적들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들에게는 이제 병력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비, 비상! 좌현으로부터 미확인의 선박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해적! 해적선이다!”
땡땡땡땡!
연신 울려 대는 종소리와 병사들의 고함이 녹턴 후작의 귓가에 울렸다. 그러나 후작은 그 소리를 인지하지 못했다.
이미 모든 신경은 좌측에서부터 돌진해 오는 선박들에 붙잡혀 있었던 탓이다.
“……씨발.”
콰과광!
나지막한 욕지거리와 함께 두 선박이 부딪쳤다.
후작의 몸은 충격에 못 이긴 채로 바닥에 허물어질 뿐이었다.
* * *
“……그래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마드라의 국왕.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난파선에서 회수한 영상석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모두’ 설명하도록.”
“예, 전하.”
마법사가 긴장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태풍을 만났다는 통신이 본국에 도착했던 시점에서, 정말로 함선을 집어삼킬 정도의 태풍이 발생했던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아마 근 삼십 년간 해안에서 관측된 태풍 중 가장 강력한 수준이라 판단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 스무 척의 함선들이 태풍에 휩쓸렸고, 죽은 녹턴 후작의 명령으로 메인 동력원만이 그곳을 빠져나오는 데에 가까스로 성공하였습니다.”
쾅!
움찔-
“…….”
“이어라.”
“……예, 전하.”
마법사는 국왕이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그 차가운 눈빛에 마지못해 설명을 이어 갔다.
“이후 살아남은 함선은 운이 나쁘게도 폴른스타 군도의 영역에 발길을 들였고, 이를 발견한 해적들의 습격으로 모든 병력이 전멸…… 그 이후 마정석을 비롯한 모든 물자들이 약탈당하였습니다.”
“태풍에 휩쓸린 난파선들까지 모두.”
“그, 그렇습니다.”
“찢어 죽일 놈.”
국왕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것이 메인 동력원에 배치되어 있던 영상석에 담긴 내용의 전말.
문제는 그 영상석을 처음 회수하고 해독한 곳이 연방제국이라는 사실이었다.
“녹턴 후작, 그 빌어먹을 작자가 벌인 추악한 행각을 연방제국이 모조리 알게 되었다.”
“그, 그건…….”
“감히 귀한 스무 척의 함선을 모조리 잃어버린 것도 모자라서, 병력까지 버리고 혼자만 살아남을 계획을 세웠지.”
“…….”
“그 탓에 죽은 연방제국의 정예병만 오천이 넘어간다. 감히 병력을 빌려 간 주제에 말이야.”
아마 놈이 이곳까지 살아 돌아왔다면, 분명 영상석까지 제거하여 모든 증거를 지워 버렸을 터였다.
그나마 증거라도 남은 이 상황이 불행일지 다행일지는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계획을 망쳐버린 마드라에게 불행이 될 거란 사실 하나는 자명했다.
적어도 모든 책임을 지게 생긴 국왕에게는 말이다.
“제기랄…… 하필이면 그 상황에서 해적을 만난다니…….”
차라리 일을 저지를 거면 완벽하게 저지르지! 이게 대체 뭔가?
국왕은 절망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병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즉각 방향을 확인하고 그곳을 빠져나왔어야 했다.
한 척만 덩그러니 움직이는 선박을 해적들이 노리지 않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저, 전하, 연방제국 측에서 해적들에게 말을 똑바로 전하지 못한 탓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슨 소리냐.”
“군함의 수량만 일러줄 게 아니라 아예 해적질을 금지했다면, 습격을 당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
막무가내나 다름없는 핑계였지만 그만큼이나 이 상황을 납득하고 싶었다.
국왕으로서도. 그리고 마법사로서도 말이다.
하지만 결국 의미는 없었다.
“……그래서, 연방제국 측에서는 무어라고 하던가.”
“마드라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애초에 에스테반의 짓이라고는 생각지도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렇겠지.”
그만한 수준의 태풍을 강제로 일으킨다?
에스테반에 있는 대마법사 하나로는 결단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만에 하나, 둘이 있었다 해도 가당키나 한 일이었을까?’
역시 아니었다.
태풍을 일으킬 만큼의 바람의 원소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닌 이상에야 상정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다.
갑작스럽게 생긴 태풍은 의문스러웠으나, 이것만큼은 정말로 운이 없었다는 소리였다.
“애초에 바다에 눈이라도 달려 있지 않은 이상 우리의 접근을 알아차릴 수도 없는 일이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정말로 혹여나 에스테반이 이번 일의 배후일 가능성은?”
“……저희 측의 마법사들 역시도 그 의견에는 부정적입니다.”
“그렇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운이 없다는 말로 넘어갈 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쪽으로써는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만 했다.
그것이 국왕의 자리든.
……혹은 책임자의 목이든.
“……연방제국의 황제 폐하께 통신을 넣어 주도록.”
“알겠습니다.”
마법사가 떠난 뒤에도 국왕의 한숨 소리는 깊어져만 갔다.
이번 일은 자연재해.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