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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93화 (193/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93화

해적 (3)

쏴아아아-

“정지!”

바다를 가르던 해적선이 선착장에 멈추었다.

그러자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단의 기사 무리가 다가왔다.

당연히 경계의 의미는 아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자작님. 난파선에서 나온 ‘보물’들은 모두 회수하셨습니까?”

“대충 보이는 것들은 모두 회수했습니다.”

조지가 선체의 뒤편을 가리키며 어깨를 까닥였다.

그곳에는, 어림잡아도 일 톤은 되어 보이는 마정석과 흑철의 잔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당장 보이는 것들만 주워 온 것이 저 정도다.

아직 그곳에서 난파선의 잔해들을 건져 올리는 해적선들이 남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거의 보물창고에 다녀온 것이라 해도 무방했다.

‘쏠쏠하구만.’

“알겠습니다. 물자들은 저희가 선착장에 내려놓도록 하겠습니다.”

“예, 뭐…….”

“좋아, 허가가 떨어졌다! 모두 움직여라!”

“충!”

조지가 자리를 비키자 기사들이 해적선에 올랐다. 그러고는 내부에 있던 해적 선원들과 함께 물자를 나르기 시작했다.

언뜻 해적과 기사들이 힘을 모으는 것처럼 보였지만, 저들이 모두 같은 태양 기사단 소속이라는 것이 우스울 따름이었다.

‘누가 보면 해적과 왕실이 유착관계인 줄 알겠네.’

그렇게 실없는 소리를 하며 선착장으로 발을 디뎠다.

그 순간 조지가 내리기만을 기다리던 수르트가 다가왔다.

“커흠! 이보시오 보좌관 양반. 무엇 좀 물어도 되겠소?”

“뭡니까.”

“혹시…… 저 난파선에서 나온 흑철들은 어디에 쓸 것이오?”

수르트는 짧은 팔다리를 쭈뼛대며 물었다. 그 모습을 본 조지가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저야 모르죠. 아마 기사들의 무구를 제작하는 데에 쓰이지 않을까요.”

“기, 기사들의 무구? 커흐흠!”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 그건 아니지만…….”

이미 제련까지 끝난 흑철들은 그 용도가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을 원하는 것은 마도 공학의 발전을 연구하고 있는 드워프들!

애초에 에스테반에는 흑철을 다룰 만한 대장장이가 없으니, 헛되게 쓸 바에는 전량을 마도 공학에 투자하자는 것이 국왕의 생각일 터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조지가 모를 리 없었다.

‘근데 그렇게 쉽게 줘 버리면 재미가 없지.’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었으니까.

조지는 그렇게 짐짓 모르는 체하며 말을 이어 갔다.

“뭐, 그래도 회수한 흑철이 워낙 많기도 하고…… 아직 주워 올 만한 양도 많이 남았으니 협상이 있긴 있을 겁니다.”

“협상!”

“또 모르는 일이죠. 드워프들에게 흑철이 돌아가게 될지.”

“그, 그렇군…… 암, 암!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지.”

수르트는 내심 기대감을 내비치며 몸을 꼬았다.

확답은 아니었지만 가능성이라도 있으니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조지의 말에서 이상한 부분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데 아직 주워 올 물량이 남아 있다고 했소?”

“태풍의 영향이 남아 있는 지역은 아직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항해 중인 다른 해적선들이 회수해 올 겁니다.”

“하기야, 흑철을 덧댄 선박들이 그렇게 잔뜩 있었으니 저게 끝일 리가 없겠지.”

그렇다면 그런 선박들을 단박에 무너뜨린 인간의 왕…… 그의 정체는 대체 뭐란 말인가?

수르트는 문득 오묘한 표정으로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인간의 왕과 가까이 지내면서 이상한 점을 보지 못했소?”

“이상한 점이요?”

“그 왜…… 이를테면 눈이 파충류의 그것과 닮았다든지, 그게 아니라면 금색의 비늘 같은 것이 나온다든지…….”

“…….”

조지는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일전에 말했던 용족 신화인지 뭔지 그겁니까?”

“그렇소.”

“참 나.”

하지만 수르트의 표정은 의외로 진지해 보였다.

확실히 그가 보여 주었던 모습들은 범인의 시선으로 보기에도 특별하지 않은 구석들은 없었으니까.

뭐, 그렇다고 해서 알렌 에스테반이란 사람이 드워프들에게 전승되던 신화 속의 용족인 것은 아니었지만.

“정 궁금하면 본인한테 물어보십쇼.”

“…….”

“한입에 잡아먹히지 않으면 다행이겠네.”

“크, 크흠!”

그렇지만 그렇게 지껄이는 조지에게도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용족은 아니고 잘하면 그 언저리쯤은 되지 않을까?’

어쩌면 정말로 비늘이라도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조지는 어깨를 으쓱이며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보이는 막대한 양의 마력의 유동을 향해서였다.

* * *

우우우웅-!

저벅-

마탑주가 공간을 찢고 섬에 발길을 들였다.

그러나 그곳에 나타난 것은 공간이동의 권능을 사용한 마탑주 혼자만이 아니었다.

“흐음…….”

위장을 위해 마탑의 로브를 뒤집어쓴 인물. 바로, 온건파의 수장인 노마법사였다.

놀랍게도 그는 아직까지도 ‘당시’의 충격을 떨쳐 내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기사가 순수한 속성의 힘을 다룰 수 있다니……!’

순수한 바람의 원소를 담은 검.

기사가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것도 놀라웠으나, 두 대마법사의 힘을 빌린 일격은 무려 잠잠한 바다에 막강한 태풍을 만들고 적들을 궤멸시켰다.

결코 부무장에 의한 잡기라 취급할 만한 능력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충격적인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힘은…… 적군의 마법을 철저하게 무효화시켰지.’

공간이동이라는 권능 덕분에 적들의 머리 위로 나타나는 데에 성공한 세 사람.

하지만 분명 함선에 펼쳐진 탐지 마법이 닿을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른팔에 감추어진 의문의 힘이 그것을 무력화해 버린 것이다.

그래, 모든 충격의 원인은 그 오른팔에 있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내재 되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건 대체…….’

마법에 통달한 대마법사조차 처음 보는 힘.

마탑주는 무슨 영문인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자신은 아니었다.

이렇듯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충격을 떨쳐 내지 못할 정도로 감정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었다.

“괜찮소?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는구려.”

“……아.”

노마법사는 마탑주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다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둘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마탑주께서는 처음부터 그 힘에 대해 알고 계셨소?”

“전하께서 가지고 계신 원소의 힘 말이오?”

“그렇소. 무모한 작전이라 생각했던 것을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이신 것을 보면, 본디 알고 계셨다는 뜻이 되지 않소이까?”

사뭇 진지한 그 목소리에 마탑주가 털털하게 웃었다.

“허허,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오.”

“……대략적이라는 말씀은?”

“나 역시도 전하께서 지니신 힘이 그 정도로 강력할 줄은 몰랐다는 뜻이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강해졌을 줄은 몰랐다’에 가깝겠지만.

오른팔에 새겨진 문신.

그것에 순수한 원소의 힘을 담을 수 있다 알려 준 것이 바로 마탑주였다.

당시 1왕자였던 국왕이 그 힘을 손에 넣는 것까지 보기도 했고.

하지만 그때는 검술에 속성을 불어넣는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었는데 이번에 보여 준 힘은 달랐다.

무려 마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그 힘을 직접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분명 무언가 성장의 계기가 있으셨을 테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더욱 깊어진 그 눈동자를 보면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정도의 힘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마탑주였다.

“하지만 그 힘의 존재를 몰랐더라도, 난 그 결정을 따랐을 것이오.”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소?”

“나는 이미 그분께 내 모든 것을 바치기로 맹세했기 때문이오.”

“……!”

스윽-

결연하게 쥐어진 주먹이 심장께에 다다랐다.

심장에 걸고 하는 마법사의 약속. 즉, 마나의 맹세였다.

그 의미는 당연히 영원한 종속이었다.

‘에스테반의 국왕에게는…… 정녕 마스터조차 스스로의 일생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인가.’

노마법사는 한 점의 의심조차 없는 마탑주를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졌다.

자신들 흑마법사들을 아무런 편견 없이 이끌어 주기로 했던 남자.

그리고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국왕……!

“우선은 승전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어떻겠소?”

“…….”

마탑주가 다가오는 남자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노마법사는 그제야 상념을 떨쳐 내고 그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었다.

“……알겠소이다.”

그 스스로도 어째서 답답한지 모를…… 그런 상념을 떨쳐 내고서.

“음? 전하는 어디에 있습니까?”

다가온 조지는 이곳에 두 사람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국무회의에서 있었던 안건들을 정리하시느라 조금 늦으실 것이네. 마법진을 열어 두었으니 잠시 후에 도착하실 테지.”

“아, 그러고 보니 마드라의 선전 포고와 관련된 국무회의가 오늘이었지.”

우우우웅-!

“으음. 슬슬 오시는군.”

“역시나 양반은 못 되네요.”

조지가 상황을 되짚은 그때, 포탈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화려한 망토를 휘날리며 한 인영이 나타났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에스테반의 국왕이었다.

* * *

저벅-

“어서 오십시오, 전하.”

“여기서 무얼 하고 있지.”

공간이동의 마법진에서 걸어 나온 나는, 세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며 무덤덤하게 물었다.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 쑥덕거리고 있는 그 모습이 수상하기 그지없었던 탓이다.

스윽-

그때, 문득 조지가 다가오며 내 왼팔의 소매를 들추었다.

“……뭐냐.”

“아니 뭐, 역시 별 건 없었네요.”

무슨 개소린가 싶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녀석이 어깨를 으쓱였다.

“혹시 비늘이라도 나 있나 싶어서요.”

“…….”

점점 녀석에 대한 한심함이 커져만 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좁혀지는 눈매만으로 설명은 끝났을 테니, 구태여 입 밖으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 쓰잘데기 없는 기행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까.

“그보다, 내가 없는 동안 있었던 상황을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조지는 선착장이 있는 방향을 향해 눈짓하며 보고를 시작했다.

“우선은 발견된 영상석을 일부 잔해 와 함께 놈들이 회수하기 편하도록 내륙 쪽에 흘려 보냈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해독까지 끝났을 겁니다.”

“그렇군.”

탈출했던 배에 설치되어 있던 영상석은 에스테반의 무고함을 전해 줄 중요한 증거였다.

놈들은 운이 좋게 영상석을 회수했다 생각했을 테지만, 그 모든 것이 내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를 테지.

“나머지 잔해는 해적들이 회수하고 있고, 아마도 가라앉은 일부 마정석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회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잘했다.”

마정석과 흑철.

놈들이 가지고 온 물자 중에서도 가장 값비싼 보물들이었다.

특히나 연방제국이 쓸고 간 바람에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흑철은 더더욱.

단 한 번의 해적질로 얻었다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회수한 흑철과 마정석은 들키지 않도록 즉시 이송하지. 준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두 대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공간이동이 있으니 편리하군.”

“…….”

무언가 핼쑥해진 표정의 조지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밀리에 무언가를 이송하기에는 공간이동만 한 것이 없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국무회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국무회의?”

“귀족들이 의문을 품고 있을 것이 아닙니까. 마드라가 선전 포고를 했음에도 군사를 보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서요.”

“뭐, 그렇기는 하지.”

실제로는 이미 기습 작전을 펼쳤고 모조리 수장됐지만.

어쨌든 아무것도 모르는 귀족들의 눈에는 마드라가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리라.

실제로 덕분에 에스테반 내부에도 혼란이 적기도 했고.

“그래서 이쪽에서 먼저 통신을 보내기로 했다.”

“서신이요?”

“그래. 움직일 ‘생각조차 안 하는’ 우리 마드라의 국왕에게 말이지.”

나는 이송을 준비하는 두 마법사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정작 내용을 알지 못하는 조지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지만.

“슬슬 움직인다.”

“……예, 알겠습니다.”

물론 나도 입 아프게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고.

‘어차피 조만간 알게 될 테니까 말이야.’

* * *

황제와의 통신을 마친 마드라의 국왕은 조용히 눈을 감고 상념에 빠져 있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것을 잃게 생겼다.

-정예병을 잃은 손해가 막심하군. 실망이 크네.

-…….

바로, 연방제국의 비호라는 강력한 무기를.

어떻게 생각하면 마드라의 입장에서는 국왕의 목숨보다 큰 것을 잃은 셈이었다.

타다다다닷-!

철컥!

“에, 에스테반으로부터 통신이 도착했습니다!”

그때, 수행원이 다급하게 방으로 들어왔다.

국왕의 방에 기별도 없이 드나드는 것은 엄중히 벌해야 할 일이었으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었다.

“통신? 놈들에게서?”

“그, 그렇습니다!”

“……이리 내 보게.”

국왕이 한숨을 내쉬며 통신의 내용이 담긴 종이를 받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것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귀국이 먼저 선전 포고를 한 지도 제법 시간이 지났건만.]

[긴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그 군세를 찾아보기가 어렵군.]

[혹시 바쁜 일이 있다면 이쪽에서 도움을 줘도 괜찮다만?]

“이, 이 씨발 새끼가……!”

콰당-

후욱 후욱.

그의 숨이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명백한 조롱에 의한 분노.

거기에 앞선 황제와의 통신으로 생긴 감정이 격화된 것이다.

“찌…… 찢어 죽이…… 커, 커억!”

순간 그가 자신의 화를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그리곤.

“구, 국왕 전하!”

뒷목을 부여잡은 국왕이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졌다. 수행원이 황급히 상태를 살폈지만, 이미 늦었다.

“마, 맙소사……!”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국왕의 몸이, 축 늘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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