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94화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1)
“여, 여봐라! 밖에 아무도 없느냐!”
“무슨 일이십니까.”
수행원의 억지로 비틀어 낸 목소리에 기사들이 문밖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런 여유도 잠시였다.
“이, 이런!”
“전하?!”
눈을 까뒤집은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국왕의 육신.
그리고 그 옆에서 허둥지둥 상태를 살피는 수행원의 모습까지…… 국왕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에는 그만한 장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 상황을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였다.
“전하!”
“괘, 괜찮으십니까!”
기사들이 수행원을 지나쳐 국왕에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황급히 맥박을 확인하며 생존 여부부터 살폈다.
“……!”
“……!”
심장 박동이 서서히 미약해지고 있다.
기사들은 경악스러운 눈빛을 교환한 뒤에 재빠르게 행동에 나섰다.
한 명은 의원을 부르기 위해 방문을 박차고 나갔고, 다른 한 명은 응급처치용 포션을 꺼낸 뒤에 국왕의 입으로 흘려보냈다.
그러면서도 수행원을 다그치며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
“대체 전하께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나, 나도 모르겠네! 갑자기 전하께서 서신을 보시더니 쓰러지셨네!”
“서신 말입니까?”
순간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은 기사.
하지만 국왕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확인했다.
“……에스테반?”
“에, 에스테반……! 쿨럭!”
“전하!”
“전하!”
그때, 기사의 중얼거림이 흘러나오기가 무섭게 국왕이 깨어났다.
그 모습을 확인한 기사와 수행원이 반색했다.
얼굴이 많이 창백하긴 했지만 깨어난 것이 어딘가?
“다행이다! 이제 의원의 치료만 있으면…….”
“끄윽…… 에, 에스테반…… 이 개새끼들이…….”
“예?”
“감히…… 감히 네놈들 따위의 허섭스레기들이 나를 욕보이다니……!”
“가, 갑자기 무슨…….”
“……오냐, 알렌 에스테반. 네놈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렷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깨어난 국왕이 허공을 노려보며 삿대질하기 시작했다.
……꼭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것처럼.
금방이라도 칼을 뽑아 들고 휘두를 것처럼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황한 수행원과 기사가 국왕의 팔을 붙잡았다.
“전하! 고정하십시오!”
“이리 놔라! 지금 당장이라도 놈을 죽이고 폐하의 신임을…… 커억!”
“저, 전하!”
그 순간, 숨이 막히는 듯 가슴을 치던 국왕이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리를 곧추세운 채로 천천히 경직했다.
“이런!”
이제는 더 이상 의원을 부른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수행원은 기사를 붙잡으며 비명과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신관을 불러! 어서!”
“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국왕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몸뚱어리와 함께 죽음이라는 늪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으니…….
새로운 해가 시작되기까지 불과 며칠을 앞둔 날.
마드라에 닥쳐온 참사는 그렇게 연이어 몰아쳤다.
* * *
난데없는 소식이 에스테반에 전달된 것은 그 직후였다.
“마드라의 국왕이 급사했다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묻는 내 말에 첩보를 가지고 온 에드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당하시겠지만 그렇습니다. 사망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연방제국에서 죽였을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없습니다. 급히 신관들까지 수소문했던 것을 보면,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던 것으로 파악됩니다만…….”
문득, 내용을 전달하던 그의 목소리가 조심스레 가라앉았다.
“……아마 그 이유는 화병일 거라 제2 기사단에서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쯧, 그 양반 참 안타깝네.”
나는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알던 마드라의 국왕은 이제 막 마흔 살이 되는 인물이었다.
그야말로 급사할 나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몸 관리 좀 잘하지, 젊은 사람이 화날 일이 뭐가 있다고.”
“…….”
마주한 에드워드의 표정이 여러 의미로 석연치 않았다.
마치, ‘네 나이로 그런 소리를 하냐’고 묻는 것만 같은 눈빛…….
게다가 아무리 잘 쳐 줘도 화병 원인의 절반 이상은 서신에 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크흠!”
하지만 애써 하고 싶은 말을 참아 낸 에드워드가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했다.
“어쨌든 이번 국왕의 급사 덕분에 적당한 핑곗거리가 생긴 것은 틀림없습니다.”
“어째서 마드라가 침공해 오지 않았느냐에 대한 핑곗거리 말이지.”
“그렇습니다.”
“뭐, 따지고 보면 좋은 타이밍이기는 하군.”
일명 ‘해적’ 작전에 가담한 인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백성들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들 탓에 심력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국왕의 죽음에 관한 소식이 퍼지면, 아마 전쟁이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심할 수 있으리라.
‘솔직히 얼굴조차 모르는 양반의 죽음보다는 그쪽이 중요하긴 해.’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알아서 둘러대도록. 이를테면 선전 포고 직후부터 마드라 국왕의 기력이 쇠하고 있었다, 라던지.”
“거기에 이후에도 마드라의 침공이 없을 거라 확신하는 내용을 함께 퍼뜨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군.”
실제로 놈들은 이제 전쟁을 이어 갈 의지가 없을 테니까.
앞으로도 영원히.
* * *
그렇게 제2 기사단이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있는 사이.
폴른스타 군도의 요새화 작업은 비밀리에, 그리고 신속히 진척되고 있었다.
“우선은 내부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소.”
마탑주의 도움을 받아 왕실로 온 수르트는 완성된 설계도와 함께 작업 상황을 보고했다.
“당장 선착장에 댈 수 있는 선박은 여덟 대. 군도 내부에는 삼천 병사가 머무를 만한 공간이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 상황일 뿐, 차차 공간을 넓혀 나가게 된다면 육천가량이 머물러도 넉넉할 공간이 확보될 것이오.”
“그렇군.”
“그리고 시기에 관한 이야기오만…….”
수르트는 무언가를 골똘히 계산하더니, 이내 답을 내놓았다.
“기반이 제법 있으니 머지않아 병력을 상주시켜도 될 거요. 물론 시설은 내륙보다 열악하겠지만, 대략 한 달 정도를 생각하면 얼추 맞을 것이오.”
“……한 달이라.”
나는 구체적으로 다가온 시간에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비록 육천이라는 숫자가 전쟁의 규모와 비교해서 많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작업의 방대함을 생각하면 그 속도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애초에 그따위 척박한 장소에 육천이나 상주시킬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
마탑주조차 기껏해야 삼천이나 사천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요새를 예상했으니 말이다.
“커흠……! 뭐,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인제 와서 새삼 놀라다니 그대답지 않구려.”
녀석은 그런 내 심경을 눈치챘는지 은근슬쩍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선조들의 유산을 깨우친 우리 일족에게는 사실상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 일이었지.”
“선조들의 유산, 마도 공학을 말하는 것이군.”
“왜 아니겠소? 모두 그대가 흑철을 지원해 준 덕분이오.”
그 순간, 수르트의 눈빛이 무언가를 기대하는 사람처럼 변했다.
“……혹 관심이 있다면 직접 확인해 보시겠소?”
“흐음.”
“바, 바쁘면 어쩔 수 없다만…… 우선은 그대가 없었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던 기술이 아니겠소?”
변명처럼 변한 목소리였지만.
녀석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재촉하듯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 한 번쯤은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암, 그렇고말고.”
“…….”
“저, 정 바쁘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좀…….”
피식.
나는 그 모습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져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녀석이 왜 그렇게 나를 보채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지간히도 흑철이 가지고 싶었나 보군.’
흑철과 관련된 언급이 없는 것이 내내 불안했는지, 내가 마도 공학을 직접 확인하고 나면 흑철의 소유권을 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뭐, 솔직히 말하면 이쪽에서는 드워프에게 주는 것이 도리어 이득이었지만…….
녀석들로서는 내 생각까지 알 방법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저 제안은 조금 끌리는데.’
드워프 기술의 꽃인 마도 공학.
그 존재를 알고 있던 것과는 별개로 정확히 어떤 기술이냐 묻는다면, 나조차도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귀 전의 연방제국이 마도 공학의 존재를 밝혀내긴 했지만, 온전한 기술을 얻지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녀석들은 이미 삶의 의지가 없었으니.
드워프들을 거둔 현재에도 녀석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겼을 뿐 직접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녀석들이 가진 비장의 무기니까.’
하지만 지금 녀석들이 이룬 것은 ‘온전한’ 기술이었다.
연방제국조차 끝끝내 얻어 내지 못했던 그런 위대한 기술.
“좋다 한 번 보도록 하지.”
“저, 정말이오? 잘 생각했소!”
그런 것을 보여 주겠다고 한다면 나야 환영이었다.
반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한데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름 재미있군.’
노예로 부려지던 그 드워프들이 마지막까지 감추었을 정도의 비기를.
내게 직접 보여 주겠다며 보채는 이 상황이.
* * *
그렇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자리를 떠난 수르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준비가 끝나감을 알려왔다.
나는 만나기로 약속된 장소인 내 개인 연무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것은 수르트가 아니었다.
“뭇 기사들의 이정표이자 에스테반 왕국을 이끄시는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마치 구경꾼처럼 평온한 자세로 서 있는 마탑주.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며 못마땅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따위 허례허식은 그만하지.”
“하하.”
“마탑으로 돌아간 줄 알았더니 이곳에 있었군.”
“마도 공학 시연을 돕는 김에 관람을 허락받았습니다. 이런 위대한 기술을 직접 보지 못한다면 평생 한이 남지 않겠습니까?”
“그렇겠군.”
마법사의 정점에 오른 이후에도 마법사 특유의 학구열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 그는 바뀐 시야로 바라보는 세상이 즐거웠는지,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연구와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고 있었다.
아마 그런 마탑주에게 마도 공학이란 고대 마법만큼이나 새로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모양이지.
“그래서, 놈은 어디에 있지.”
나는 기이한 물건들이 자리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탑주에게 물었다.
정작 수르트가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자 마탑주는 공간 이동의 포탈이 열린 곳을 가리키며 부드럽게 웃었다.
“마지막 준비물만 가지고 온다고 하였습니다. 아마 이렇듯 시연해 보이는 것은 처음이기에 전하께 보다 많은 것들을 보여 드리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렇군.”
마치 그 모습이 투자 유치를 받는 장사꾼 같아 보이는 것은 왜일까.
나는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마탑주의 옆으로 섰다.
그때 마탑주가 마침 잘 되었다는 듯이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마드라의 국왕이 급사했다고 하더군요.”
“화병으로 죽었다더군. 젊은 양반이.”
“허허, 전하께 직접 들으니 싱숭생숭한 기분이 드는군요.”
괴리감이 생긴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사십의 나이는 화병으로 죽기에 젊은 것은 분명했다.
솔직한 심정을 말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조금은 의외입니다.”
“의외?”
“예. 사실은 전하의 성격이시라면, 마드라의 국왕이 급사한 틈을 타서 무언가 이득 같은 것을 노리실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군.”
나는 미적지근하게 반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한 나라의 수장이 갑작스럽게 죽은 것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상황도 없었으니까.
이득을 볼 거라면 그런 틈을 노리는 것이 최선이기는 했다.
그러나.
‘나는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내 입꼬리가 말없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마탑주 역시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다른 생각이 있으셨군요.”
“글쎄.”
모호한 말과는 다르게, 당연히 놈들의 심장을 후벼 팔 계획은 생각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고 올 이득 또한 계산해 둔 상태.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지금은 우선 상황을 즐기는 게 어떤지.”
“하하, 그렇군요. 이런 구경은 쉬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딱딱한 말은 즐거움이 끝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마도 공학의 정수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
나 역시도 이 시간을 기다려 왔음이 분명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