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95화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2)
예로부터 과학을 마법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인간들 사이에서 종종 이루어져 왔다.
그 단편적인 예시가 아티팩트.
즉, 아티팩트란 마법이라는 불가사의의 영역을 실체화시킨 도구였다.
하지만 마도 공학은 그와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단지 마법이라는 힘을 응용했을 뿐인 인류와 다르게, 드워프들이 가진 요정족의 눈은 마력의 본질을 꿰뚫었다.
만물을 ‘이루고’, 끝내는 그 생명마저도 품어 내는 ‘자연’이라는 힘을 그들의 주특기인 공학이라는 이름 아래에 재정립해 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마도 공학. 이름 그대로 마도학을 공학에 녹여낸 그것은, 오직 드워프들에게만 허락된 고차원의 기술이라 할 수 있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모든 마도 공학의 기초는 이 ‘동력원’으로부터 시작되오.”
수르트는 묵빛의 철로 빚어진 심장을 꺼냈다.
그것은 정말로 살아 있는 인간에게서 떼어 내기라도 한 것처럼 일정한 주기에 맞춰 뛰고 있었다.
물론 정말로 살아 움직인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정교하게 짜인 흑철의 외골격들이 위화감 없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를 본 마탑주의 눈에는 이채가 띄었다.
“호오…… 이 율동적인 움직임은 심장 박동을 닮았지만, 실은 내부에 비치된 마정석의 파장을 퍼뜨리기 위해 공명하고 있는 것이군.”
“공명, 실로 정확한 표현이오.”
수르트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에는 각기 다른 고유의 파장이 존재하듯, 마정석 역시 그 법칙을 따른다.
그리고 파장을 알맞게 자극하여 더욱 큰 출력을 내는 것을 공명이라 하는데, 이는 초인에 이른 대마법사들이나 감각적으로 행하는 것이지 결코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서부터 요정족과 인류의 차이가 드러났다.
“마정석에 담긴 파장을 읽고 이를 정교한 공학 기술로 자극 시킨다라…… 그야말로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맞물림이구나.”
파장을 읽어 낼 수 있다 하더라도 이를 완벽한 타이밍에 자극하지 못하면 공명이 불가능하고, 무한하게 반복시키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
어느 한쪽이라도 부족하면 시도조차 불가능한 기술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를 응용하게 된다면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수르트는 묵빛의 심장을 거인의 팔처럼 생긴 철갑 위로 끼워 넣었다.
그러자.
우우우웅-
동력원을 얻은 철갑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녀석의 몸과 동화된 2미터 남짓의 팔이 활성화된 것이다.
“이것이 마도 공학의 첫 번째 기술인 기계화요.”
“허!”
마탑주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토록 거대하고 육중한 팔을 멀리서도 손쉽게 조종할 수 있다니?
그러나 경악스럽게도,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아티팩트는 마법의 성능 일부만을 담아낼 뿐, 자체적인 시너지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 하지만 마도 공학은 아니오.”
“헛?!”
쿠쿠궁!
수르트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팔이 연무장의 바닥을 뒤집어 냈다.
뒤집어 냈다는 표현은 나름대로 정확했다.
말 그대로 무른 땅을 갈아 내는 농기구처럼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긁어 놓았으니까.
‘대단하군.’
그 모습에는 나조차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은 소드마스터인 나를 위해 보강된 연무장. 어지간해서는 바닥에 흠집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튼튼하게 지어진 공간이었으니.
이윽고 바닥을 잔뜩 짓이겨 놓은 수르트가 무덤덤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마도 공학은 동력원이 지닌 마력이 물체의 힘에 간섭할 수 있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 자체로도 동력원과 공학 기술 사이의 시너지가 증폭된다는 말이오.”
“그렇군. 아티팩트가 내재 된 마법의 힘만으로 출력이 결정된다면, 마도 공학은 그 설계에 따라서 수 배 이상의 출력도 만들어 낼 수 있단 것인가.”
“음음, 바로 그렇소.”
비록 아티팩트와 마도 공학의 용도가 다르다고 한들 비교 대상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둘 모두 기술의 집약체라는 공통점이 존재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저것을 실생활에 녹여낸다면 어떨까?
‘아마 아티팩트 이상의 쓸모를 만들어 낼 수 있겠지.’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인 아티팩트보다 월등한 쓸모를 자아낼 수 있는 것!
과연 연방제국이 어떻게 해서든 얻어 내려 했던 기술다운 위용이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면 섭섭하지 않겠소?”
그때 수르트의 당당한 목소리가 상념을 깨웠다.
“아직도 보여 줄 것이 남았나.”
“물론이오. 아직 첫 번째 기술이라 하지 않았소?”
“하지만 가지고 온 것은 저것이 전부일 텐데.”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이오. 그렇다곤 해도 대략적인 설명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소?”
“흠.”
어느덧 묵빛의 동력원을 꺼낸 녀석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 동력원이 어째서 심장 모양인지 생각해 본 적 있소?”
“어째서 심장 모양이느냐고?”
글쎄. 마법사도 아닌 내가 알 리가 있나.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모름을 시인했다.
“……추측건대, 구조를 간단히 하기 위해 심장의 형상을 빌려온 것이 아니겠나? 이미 완성된 완벽한 설계도가 존재하는 셈이 되니까 말이네.”
하지만 마탑주는 과연 그 이름답게 적합한 추론을 꺼내 들었다.
수르트가 조금은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반은 맞는 이야기요.”
“절반 말인가?”
“그렇소. 완성된 구조를 참고하여 만든 것은 정답이지만,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를 밝혀내지는 못했으니까.”
“목적이라…… 그렇군.”
일순 마탑주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것은 심라만상의 진리를 꿰뚫는 대마법사의 눈이었다.
“드워프씩이나 되는 이들이 완성된 구조를 참고했다 하면, 필시 그렇게 만들었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 테지. 오히려 그 방법 외에는 이루지 못할 목적이 있었는가.”
“흠…….”
“그렇다면, 생물에 가까운 무언가를 모방한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길이 없군.”
“……!”
수르트는 이제 완전히 경악한 표정이 되었다.
마탑주는 그것을 보며 뿌듯하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허허, 아무래도 내가 맞았는가 보군.”
“정답이오.”
마도 공학의 최종 목적은 자연에서 비롯된 생명체를 모방하는 것.
즉, 인공 생명체의 제작이었다.
“심장이라는 것은 뇌와 함께 생명체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손꼽히는 것이오. 그렇기에 일족의 선조들은 일부러 그 구조와 역할을 모방했지.”
“제작된 생명체를 이상 없이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그렇소.”
으레 마법이 그러하듯 시전자의 명령을 따르며. 또한 자율적인 판단하에 동력원을 토대로 움직이는.
……그렇게 완성된 생명체는 분명 그들이 모방한 인간과 닮아 있었으리라.
“우리 일족의 선조는 그것을 ‘골렘’이라 불렀지.”
“골렘……!”
마탑주는 무언가 힌트를 잡았다는 듯 눈을 번뜩였다.
골렘.
그것은 먼 고대, 이제는 일부밖에 남지 않은 문헌 속에서 등장하는 전설 속 병기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 * *
마탑주는 수르트가 떠난 뒤에도 마도 공학에 관한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골렘이라…….”
연방제국에서 데리고 온 레이튼과 함께 고대학을 연구하기 시작한 입장에서 그 이름이 주는 충격은 무척이나 거대했으리라.
나조차도 그가 이렇게나 깊은 상념에 빠진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물건인가?”
“……음? 아! 예, 그렇습니다.”
마탑주는 문득 정신을 차리며 아는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고대 문헌 속에서 등장하는 골렘은 전략 병기에 준하는 취급을 받았습니다.”
“호오, 그래?”
지금에 와서는 전략 병기라는 이름이 소드마스터나 대마법사 따위의 초인을 뜻하는 단어로 변질되었으나, 과거에는 말 그대로 병기 그 자체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곤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위명(偉名)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수 미터의 거대한 몸집…… 기본적으로 가진 내구성과 힘도 그러하지만, 기본적으로 병기인 이상 인간과 다르게 감정 따위에도 휩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전략 병기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특히나 마법이 극도로 발전했던 고대의 전장이라면.
얼마든지 앞장세울 수 있는 병기의 효용성은 말할 것도 없을 터였다.
‘뭐, 게다가 재료만 있으면 무한히 생산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을 것이고.’
그 사실을 알기에 저토록 놀라고 있다.
뭐, 그런 뜻이리라.
“그렇다면 자네가 보기에는 어떻지? 문헌의 내용을 토대로 보면 골렘이 현대의 전장에서도 활약할 수 있을 것 같나?”
“제 생각에는…….”
마탑주가 작은 고민 끝에 대답을 내놓았다.
“확실하게 적들의 허를 찌를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을 거라 장담합니다.”
“그렇다면 정해졌군.”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놈들에게 흑철을 보내 준다.
‘우리 쪽에 필요 없는 물건을 건네주고 생색을 내는 것이 외교지’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바깥에 있던 사용인을 부른 뒤, 미리 작성해 두었던 서류를 건넸다.
“물자를 갈데르드 평야로 이송하겠다. 관련된 내용은 재무부가 알고 있을 테니 알아서 하라 그러도록.”
“알겠습니다.”
그렇게 지시를 받은 사용인이 나가자, 마탑주가 의아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물자는 흑철을 뜻하는 것이지요?”
“음.”
“공간 이동으로 옮긴다면 간단할 터인데, 구태여 재무부에게 이송을 명하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내 시선이 마탑주에게 향했다.
“자네는 나와 함께 움직여야 하지 않나.”
“예? 제가 말입니까?”
순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마탑주가 멍하니 되물었다.
그러나 이내 앞서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슬슬 마드라의 혼란을 이용하시겠다는 뜻이군요.”
“그래.”
놈들에게 닥친 혼란.
얼렁뚱땅 넘어가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기회였다.
‘그리고 이 틈을 타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라면…….’
아마도 ‘그것’이 있을 테지.
나는 즐겁다는 듯이 외투를 갈아입으며, 마탑주에게도 같은 것을 건넸다.
아무런 무늬도 그려지지 않은, 평범한 잿빛 로브였다.
……명백히 수상한 복장이었다.
* * *
“가, 각하! 이웃 국가들에서 즉시 재무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국왕.
마드라에 닥쳐온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고 있었다.
“대, 대체 어째서……!”
“연방제국과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사실을 놈들이 눈치챈 것 같습니다!”
“제기랄!”
쾅-!
보고를 들은 귀족이 책상을 내리치며 나지막한 욕설을 남겼다.
연방제국이라는 강력한 뒷배를 가지고 있던 그들은 여러 국가에 손을 벌려 가며 사업을 확장했다.
대륙 곳곳의 광산을 사들인 것도 그 일환.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들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으로 치닫았고, 국왕까지 급사한 지금에는 마드라를 믿지 못한 이들이 손을 떼려고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하다못해 마땅한 지도자라도 있었다면……!’
물론 이 혼란을 중재할 후계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후계자라는 게 이제 막 젖을 뗀 갓난아기에 불과했다!
그렇게 유일한 장남은 나라를 이끌어 갈 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그 위의 공주들은 서로 권력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으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
덕분에 죽어 나가는 것은 공작을 비롯한 고위 귀족들.
즉, 이곳 회의장에 있는 이들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자본을 빼냈다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것이오.”
“애초에 그 많은 채무를 즉각 반환하라니, 죽으라는 것과 똑같지 않소!”
“조금만 기한을 달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징벌을 빙자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이런……!”
하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풀어내 보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부는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누구 하나 이 상황을 타개할 방도를 떠올리지 못했으니까.
“크, 큰일 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무슨 일인가!”
“남부 대륙의 국가들과 계약해 두었던 흑철 광산들이 거래를 중지하겠다며 통보를 보내왔습니다!”
“뭐, 뭐라!”
연방제국과 그들을 잇는 최후의 마지노선인 흑철 무역. 그 마지막 희망이 붕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