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96화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3)
“……흑철을 거래하고 싶으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광산의 관리자는 사뭇 당혹스러운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그것은 갑작스레 사람이 찾아온 탓도, 그 방문객들에게서 느껴지는 의문스러운 위압감 탓도 아니었다.
“흑철이라…… 우선 광산에서 나오는 흑철은 모두 거래처가 정해져 있습니다.”
“나도 안다.”
“그, 그렇습니까?”
“마드라에서 모조리 사들이고 있었을 테지. 웃돈을 주고 말이야.”
“아, 예, 일단은 그렇습니다.”
문제는 거기에서 발생했다.
그 거래처인 마드라에서 일어난 혼란은 이미 남부 대륙에까지 퍼진 상태.
때문에 광산의 관리자 역시도 이후의 일을 고심하고 있었다.
아마 그러한 상황에서 나타난 새 거래처가 반가우면서도 조심스러웠을 테지.
‘이걸 팔아야 해 말아야 해…….’
신뢰를 택하자니 불안하고, 실리를 택하자니 마드라와의 거래가 걸리는 상황!
그리고 방문객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놈들에게는 더 이상 무언가를 거래할 여력이 없다. 머지않아 광산의 거래마저 완전히 끊기게 되겠지.”
“하지만 마드라는 엄연한 국가입니다. 그렇게 쉽게 거래를 끊어 버릴 리가…….”
“없다고 생각하나?”
“…….”
순간, 자리에 앉아 있던 방문객의 로브 사이로 핏빛의 눈이 드러났다.
우뚝 얼어붙은 관리자의 귓가로 또다시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군. 무언가를 거래할 여력이 없단 말은 그럴 경황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놈들에게 그만한 돈이 없다는 소리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소식을 듣지 못했나 보군. 주변 국가들이 마드라에게 채무 반환 소송을 걸어왔다는 소식을.”
“채, 채무?! 그게 정말입니까?!”
쿠당탕!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관리자가 북부 대륙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 그러고 보니 이상했어.’
마드라는 구태여 웃돈을 쥐여 주면서까지 흑철을 구매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하물며 별달리 돈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는 점 역시도 마찬가지.
한데 만약 그것이 그들에게도 무리한 거래였다고 한다면?
단지 모종의 이유로 손을 벌려 가면서까지 흑철을 사들였다가 이 지경이 되어 버린 거라면?
말할 것도 없이 자신들과의 거래는 파탄이 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동안, 광산은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재정난에 휘말릴 테지.
그가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상황이 그렇게 치닫기 전에 자신들은 움직여야 했다.
‘……일방적으로 거래를 중단하는 것은 미안하긴 하지만 상황이 그런 이상 어쩔 수 없다.’
그들은 판매자지 자원봉사자가 아니니까.
그렇게 순식간에 생각을 정리한 광산의 관리자가 방문객들을 바라보았다.
“거, 거래를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군.”
방문객은 그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여유롭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또 다른 남자가 무언가를 건넸다.
“……계약서.”
하지만 그 내용을 확인한 관리자의 몸이 흠칫 떨렸다.
“이, 이건…….”
시세보다 월등히 높은 거래가.
그들이 제시한 계약서에 적힌 금액이, 마드라가 얹어 주던 웃돈보다도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믿지 못하는 눈으로 바라보던 그 순간이었다.
“거래는 신뢰와 돈으로 움직이는 것이지.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터다.”
“……!”
이건 제안이자 압박이었다.
자신들이 아닌 그 누구와도 거래하지 마라…… 그리하면 앞으로도 신뢰에 비롯한 관계를 이어 갈 수 있을 거라고.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 예, 그, 그렇습니다요!”
관리자는 다급히 남자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스스로 깨달은 덕분이었다.
“좋군.”
그렇게 흡족함을 표한 방문객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건을 회수하는 것은 이쪽에서 알아서 하지. 광산에서는 거래일이 다가오면 물량을 정리해 두기만 하면 될 뿐이다.”
“예, 알겠습니다! 하면 마지막으로 어디에서 오신 분들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어디에서 왔느냐라…….”
꿀꺽-
시선이 흔들리는 가운데, 남자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군. 일단은 북부의 약소국에서 찾아왔다 해 두지.”
* * *
척-
“마지막이군.”
나는 눈앞에 보이는 광산의 입구로 발을 디디며 지도를 확인했다.
남부 대륙에 존재하는 흑철 광산의 위치.
지도에는 그중에서도, 마드라와 거래를 이어 가는 광산들이 표기되어 있었다.
“이제 남은 곳은 이곳뿐인가. 많기도 하군.”
“마드라도 어지간히 바쁘게 움직였던 모양입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작전이 진행되었다는 소리겠지.”
놈들이 선박에 덧씌운 흑철의 양은 드워프들이 탐을 낼 정도로 많았다.
연방제국 대신에 끌어모았다곤 하더라도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그 말은 바꿔 말하면 우리가 눈치채기 전부터 이미 작전이 진행 중이었다는 소리다.
“애초에 마드라가 오래전부터 흑철을 거래해 왔다고 지껄였다던가.”
왕실 상단의 관리인이 전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흑철 광산의 주인이 그렇게 증언했다면 확실할 테지.
물론 그조차도 끝이 아니리라. 놈들이 선박 따위에 흑철을 모조리 사용했을 리는 없으니까.
……뭐, 그렇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고작 푼돈으로 놈들이 일궈놓은 거래처를 뺏을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군.”
오히려 이쪽에서는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는 시간을 확인한 뒤에 광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슬슬 움직이지. 귀찮은 손님들까지 처리하려면 밤이 늦어질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마탑주가 내 뒤를 따라붙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광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멈춰라!”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일행의 앞길을 막아서는 무리가 있었다.
기사 여덟에 귀족으로 보이는 인물 하나.
“잘 만났다! 네놈들이 우리 마드라의 거래를 방해한다는 세력이냐!”
바로, 통신을 받고 대기하고 있던 마드라의 졸개들이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흑철 광산을 빼앗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남부 대륙에 있던 인물을 파견한 것이겠지.
“……오호라.”
하지만 이 상황을 기다린 것은, 놈들 뿐만이 아니었다.
“귀찮은 손님이라 생각했더니 생각보다 고위급 귀족으로 보이는군. 놈은 누구지?”
“마드라 왕비의 아비, 러셀 후작입니다.”
“그렇군. 이거, 의외의 소득인데.”
“무엇을 종알종알 지껄이는 것이냐!”
챙-!
후작의 호통에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척 보기에도 느껴지는 위협이, 단순히 으름장을 놓기 위해 기다린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
“감히 마드라가 혼란에 빠진 틈을 노리다니! 더 볼 것도 없다! 반쯤 죽여 놓고 천천히 뒷배를 물어 주지!”
“과연 예상대로인가.”
예상대로라 할지 당연하다고 할지.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태도에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뭐, 어차피 우리가 없었더라도 거래가 파기되었을 것이 아닌가.”
“네까짓 놈이 대체 뭘 안다고!”
내 이죽거림에 후작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거래였다! 감히 네놈들 따위가 건들 만한 거래가 아니란 말이다!”
“하기야 연방제국에 빌붙기 위한 조건이니 중요하게 여길 만도 하겠군.”
“……뭐, 뭣이?!”
“꼬라지를 보면 어떻게 해서든 흑철의 무역이라도 해서 제국의 지원을 유지하려고 했을 테지. 그러니 사람을 보낸 건가.”
“네, 네놈!”
녀석이 말을 잇지 못하고 연신 삿대질을 이어 갔다.
연방제국과의 마지막 연결고리. 그 짐작대로 마드라는 마지막 희망이나마 지키기 위해 급히 사람을 보내 광산의 앞을 막고 있었다.
감히 자신들이 일구어낸 거래처를 빼앗은 세력을 몰아내고, 다시금 거래권을 되찾기 위해서…….
하지만 그건 마드라의 고위 귀족들이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한데 그런 중요한 사실을 녀석들이 어찌 알고 있는 것인가!
“설마 네놈들의 배후는……!”
“뭐, 시답잖은 이야기는 그만하고.”
스릉-
나는 녀석의 말을 끊어 내며 천천히 검을 뽑기 시작했다.
저물기 시작하는 태양 빛에 반사된 청록빛의 칼날.
그제야 녀석은 그 정체를 깨닫고는 눈을 부릅떴다.
“에, 에스테반의 국……!”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하는 것으로 하지.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슈욱-!
콰직!
“크악!”
거의 수십 미터나 떨어져 있던 위치.
그러나 순식간에 목을 잡힌 러셀 후작이 단말마의 비명을 남겼다. 곁에 있던 기사들이 반응할 틈도 없었다.
나는 그대로 손아귀에 힘을 주어, 녀석의 목을 압박했다.
“끅……!”
……그리고 녀석의 몸이 축 늘어졌다. 다만 죽은 것은 아니고 기절했을 뿐.
나는 그것을 뒤로 내던지며 나지막이 말했다.
“마탑주.”
“예, 전하.”
우우우웅-!
부르는 내 목소리에 마탑주가 마력을 움직였다.
그러자 익숙한 형태의 마법진이 러셀 후작을 감싸더니, 이내 그 몸과 함께 천천히 소멸했다.
그 모습을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기사들이 눈을 부릅떴다.
“네, 네 이놈! 방금 그것은……!”
“후작 각하를 어떻게 한 것이냐!”
“아, 걱정하지 말도록. 죽은 것은 아니니까.”
정말로 죽은 것은 아니었다.
대마법사의 권능을 이용해 ‘조금’ 낯선 장소로 이동시켰을 뿐이었지만.
그러나 나머지 기사들에게 그런 호사를 누리게 해 줄 생각은 없었다.
“예로부터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펴라 했지.”
서걱-
“……!”
몰아치는 검은 기사들을 무참히 베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도록 단칼에 목을 날려 버렸다.
마치 그 비명을 듣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말하는 것처럼.
“연방 제국의 앞잡이들을 용서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단 1초.
기사들이 무력하게 죽어 나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으므로.
“…….”
스윽-
나는 죽은 기사의 망토 자락으로 검을 닦아 내며 말했다.
“슬슬 움직이지.”
“예, 전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탑주가 손을 휘저으며 뒤를 따라붙었다.
이번에는 공간 이동의 마법진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사들의 시체가 있던 땅이 움직이며, 넝마가 된 육신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이 몸을 뉜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살아생전 관리하던 병장기도. 그 핏자국마저도.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을 뿐이었다.
* * *
“흐억……!”
가쁜 숨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린 러셀 후작은 문득 자신의 몸이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오는 시야 사이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이건 뭐냐…….”
처음 보는 장소.
온몸을 휘감은 검은빛의 쇠사슬.
은은한 조명 빛조차 반사되지 않는 그 불길한 색상.
……그래.
자신은 지금, 허공에 붙들린 채로 묶여 있는 상태였다.
후작의 머릿속으로 경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게, 게 아무도 없느냐! 여긴 대체 어디냐!”
상황을 회피하듯 아무리 외쳐 보았지만 정신이 흐릿했다.
자신이 어째서 이곳에 와 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고, 그저 이 상황이 위험하다는 불안감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하지만 그 외침에 응한 것은 그가 자부하던 가문의 기사들이 아니었다.
“반갑소.”
“누, 누구냐!”
기척도 없이 다가온 노인의 목소리에, 후작이 경기를 일으키듯 몸부림쳤다.
이에 노인은 아무런 감정도 비추어지지 않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괜한 힘을 빼지 마시오. 아무리 움직여 봐도 소용은 없을 테니.”
“대, 대체 이건…….”
“그리고 아무런 생각할 필요도 없소.”
“무슨……!”
스윽-
노인의 주름진 손이 귓가에 닿자, 우수수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신의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부터 그대의 정신은, 나의 지배 아래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을 터이니.”
“뭐라고…….”
그것이 그의 기억에 남은 마지막 목소리였다.
우웅-!
“……!”
무언가가 머릿속을 자극했다고 느낀 순간.
그의 눈빛이 죽은 것처럼 흐릿해지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