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97화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4)
“으음……!”
“…….”
“허어!”
마탑주는 의자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러셀 후작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물론 이지를 상실한 그 모습을 보고 ‘얌전’하다고 표현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하지만 이전의 태도와 비교한다면, 명백히 얌전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이것이 그 정신 지배라는 것이오?”
“그렇소이다.”
노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 손가락을 까닥여 마력을 움직였다.
그러자 앉아 있던 러셀 후작의 몸이 움찔거리더니, 이내 공허한 눈빛으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 모습을 처음 보는 마탑주로서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광경이었으리라.
“허, 마법의 세계에는 정녕 아직도 알지 못하는 신비한 것이 많이 있구려.”
“그런데 이전이랑은 달라 보이는군.”
나는 마탑주의 말을 무시하며 미간을 좁혔다.
이전에 그가 연방제국의 귀족에게 심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자그마한 암시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것은 그야말로 꼭두각시처럼 ‘지배’를 당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지난번에는 일부러 힘을 조절했던 건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건만.
그런 의문을 품을 무렵 노마법사가 담백한 어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 남자에게 시도했던 것은 정신의 지배뿐만이 아니니까요.”
“다른 마법을 추가했다는 거군.”
“저희 흑마법사들이 ‘상실’이라 일컫는 기술이지요.”
……상실.
이름만 들었음에도 그 효과를 유추할 수 있었다.
“일전에 설명했던 정신 지배의 연장선이겠지. 대상의 정신력을 낮추면 그 효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예, 그렇습니다. 상실은 대상의 이지를 완전히 파괴시키는 흑마법의 일종입니다.”
“그렇군.”
과연, 지배에 최소한의 저항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는 건가.
말하자면 저것은 러셀 후작이라는 존재의 외형과 기억만 남은 인형이라는 소리였다.
“그래서 이전에는 정신을 파괴시키지 않았던 것이군.”
“멀쩡하게 돌려보내야 할 귀족을 백치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나쁘지 않은 판단이다.”
반대로 놈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마드라에서 알 리는 없었다.
뒤처리까지 말끔하게 했으니, 뒤늦게 의심을 품을지언정 아무것도 하지 못할 터였다.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인형이라…….’
재미있군.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로 노마법사에게 말했다.
“하면 이전과 다르게 조심해서 암시를 걸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겠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놈에게서 연방제국의 정보를 빼내도록 하지.”
“심어 놓은 사역마로 알아낼 수 없는 정보들 말입니까?”
“그래.”
연방제국의 황실에 심어 놓은 노마법사의 마력.
언제든지 그곳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이라는 명확한 단점이 존재했다.
이유인즉슨 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퍼져 있는 놈들의 병력 상태나 내부 정보는 알아내기가 까다로웠지. 비록 놈이 마드라의 귀족이라 하더라도, 연방제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테니 쓸 만한 정보 하나쯤은 얻어 낼 수 있을 터다.”
“이해했습니다.”
“정보를 캐내는 것은 전문가를 불렀으니 놈에게 맡기도록 하지.”
“전문가라 하심은…….”
“마침 들어오는군.”
끼이익-
“대체 누구 좋으라고 전문가입니까.”
러셀 후작이 감금된 방으로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조지였다.
노마법사의 묘한 눈빛이 녀석에게 향했다.
‘……저 남자는 단순한 보좌관이 아니었던가.’
한데 정보를 캐내는 것에 일가견이 있단 말인가?
그런 의아함을 품고 있는 노마법사의 귓가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래 봬도 나름대로 쓸 만한 녀석이지. 나머지는 놈에게 맡기면 된다.”
“……일거리에 이어서 또다시 일거리. 차라리 말려 죽이십시오.”
“원한다면.”
“허 참.”
……정말로 이대로 맡겨도 되는 것일까?
아무리 봐도 그의 마음속에는 불안감밖에 없었다.
* * *
그러나 불안감이라는 감정이 바뀌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뭐, 상황에 대한 설명은 들었습니다만. 좋을 대로 물어보면 된다는 소리죠?”
“그렇소이다.”
“잘됐네.”
“……!”
국왕이 떠나자마자 뒤바뀐 눈빛은.
더 이상 장난스럽고 권태로운 그것이 아닌, 냉철한 지략가의 시선이었다.
‘무언가 다르다.’
역시 그저 평범한 보좌관에게 이런 일을 맡길 리가 없지.
스윽-
“…….”
그 의외의 일면이 놀라운 탓이었을까?
노마법사는 저도 모르게 자리를 비켜 주며 조용히 상황을 주시했다.
조지는 개의치 않은 채로 후작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이보쇼.”
“끄윽…… 예.”
“일단은 묻겠습니다만, 마드라와 연방제국의 관계는 정확히 뭡니까?”
그 돌발적인 질문에 노마법사의 눈매가 작게 좁혀졌다.
마드라와 연방제국이 동맹 관계에 있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의도는 애초에 다른 곳에 있었다.
“마드라가…… 연방제국의 지시를 이행하는 대가로 비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비호라면 왕국으로써의 입지를 지켜 주고 주변국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준 것을 뜻하죠?”
“그렇…… 습니다.”
“그렇다면 그 관계는 일방적이고 중요한 정보를 마드라에 알려 주지는 않았겠네요?”
“그것은 아닙니다.”
“하면?”
원하던 대답을 얻어 낸 조지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후작을 쳐다봤다.
“흑철을 거래하는 것 외에도…… 많은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연방제국에서는 상황을 설명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아렌델이 멸망 위기에 처했을 시기에는 상황을 주시하라며 야만족들의 규모를 일러 주기도 했고…… 에스테반의 침공 명령을 받았을 때는 적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제공 받기도 했습니다.”
“즉, 연방제국의 정보보다는 그때그때 필요한 정보를 받았다고 알아들으면 됩니까?”
“정확합니다.”
“그렇다면 직접적으로 놈들에 관해 묻는 것은 의미가 없겠군. 주변의 상황을 물어서 유추하는 수밖에 없나.”
“헛!”
노마법사는 조지의 혼잣말에 잠시 숨을 들이켰다가, 이내 침착하게 표정을 관리했다.
그러나 아주 잠깐에 불과했던 그 당혹감은 여전히 숨기지 못한 채였다.
‘그토록 짧은 시간 만에 알아낼 수 있는 정보의 범위를 특정해 냈다고…….’
일전의 에슐라 백작과는 다르게 그는 이미 백치나 다름없는 상태.
생각하는 것에 어떠한 저항도 없다 보니, 대답을 듣는 것은 더욱 간단할지 모르겠으나.
그 대답을 내놓기까지의 과정에서 어떠한 판단도 개입시키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즉, 자신이 모르는 정보는 깊게 생각해 보지 못한다.’
만약 그 상태로 올바르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가는, 계속해서 알지 못한다는 대답만을 내놓았을 터.
그렇다면 원하는 정보를 확보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를 행해야 했으리라.
그랬다간 오히려 조금만 생각해도 떠올릴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을 놓치고 지나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국을 다투는 정보전에서 그 차이는 컸다.
“연방제국이 마드라에게 침공을 요구한 이유는 뭡니까.”
“에스테반의 힘을 갉아먹으라고…….”
“놈들이 양동 작전으로 동부에 병력을 보냈다면, 더욱 수월하게 갉아먹을 수 있었을 텐데요.”
“그런 의견을 제시하기는 했습니다만…… 애초에 에스테반의 남부를 습격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면서 계획을 반려하였습니다.”
“……더욱 큰 이득을 볼 수 있음에도 물러섰다? 연방제국이 단순히 군사적 충돌을 우려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 부분은 내내 의문으로 남아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후작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확신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럴 경황이 없었나 보군.’
그렇다면 놈들은 아직 야만족을 견제하기 위해 북쪽에 병력을 집중시킨 상태인 건가.
조지는 알아낸 정보를 차곡차곡 수첩에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에스테반에 군사를 보내는 것은 더 이상의 습격이 진행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 이후라고 생각했을 테지. 야만족 역시 병력을 완전히 뒤로 물리지 않았으니까.”
“허……!”
“반대로 서부는 완전히 비어 있겠군. 연방제국과 에스테반 사이에 전운이 감돌긴 하지만 아직 적대적 관계로 돌아서지는 않았으니.”
그러고는 정확히 현 상황을 짚어 냈다.
진리에 다다른 노마법사조차도 놀랄 정도로 냉철하게.
“……우리가 먼저 쳐들어올 일이 없다고 확신한 건가.”
그렇게 계속해서 진실에 접근해 나가는 조지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 * *
그로부터 만 하루가 지나고, 조지가 왕실로 복귀했다.
“이것이 놈에게서 알아낸 정보들입니다.”
책상 위로 내민 수첩.
얼추 눈대중으로 봐도 적은 양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내용을 확인했다.
“그렇군.”
그러고는 눈매를 좁히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병력을 어디에 배치했는지.
그 수는 어느 정도이며,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그것이 단순한 추측이 아닌, 얻어 낸 정보에 기반한 첩보에 가까웠던 탓이다.
하물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만약 그 정보가 틀렸다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오차가 있는가.
혹은, 그런 사실로 상정할 수 있는 놈들의 계획은 무엇인가.
녀석은 그 모든 것들을 계산하여 노트에 정리해 두었다.
그것은 더 이상 예상이라 부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흡족하게 입꼬리를 비틀며 녀석에게 시선을 던졌다.
“수고했다.”
“……예, 뭐, 엄청나게 수고했죠. 잠도 못 자고 혹사할 정도로.”
녀석이 삐딱한 태도로 소파에 몸을 기댔지만, 오늘은 어쩐지 그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일을 잘하면 없던 호의라도 생기는 모양이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다시금 수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놈들이 서부를 대비해 놓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도 적혀 있군.”
“아, 그거요? 확증은 없지만 제법 합리적인 추측 아닙니까?”
“이유는?”
“거기에 적혀 있을 텐데…… 뭐, 일단 설명하자면 개연성입니다.”
누구보다 에스테반의 힘을 깎아 놓기를 바라는 연방제국이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병사를 보이는 것으로 으름장을 놓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말이다.
“마드라를 믿고 있었다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지.”
“아무래도 그렇죠.”
정말로 믿고 있었다면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게 도와주었어야 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라이덴 델 카롯트.
놈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태도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것은, 조지뿐만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의견이 일치했군.”
“역시 전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군요.”
“당연한 것을.”
‘놈’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신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나는 의자를 돌려 등 뒤에 걸린 대륙 전도를 바라보았다.
그중에서도 동부 국경지대에 꽂혀 있는 붉은색의 핀이 눈에 들어왔다.
현재, 그곳에 모여 있을 에스테반의 병력들이.
“에스테반이 절대로 침공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내가 놈들을 방심시키기 위해서만 동부에 병력을 몰아넣었을까?
정말로 에스테반은 연방제국이라는 사신을 막기 위해서만 움직이고 있었을까?
“대체 언제까지 우리가 공격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