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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99화 (199/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99화

전초전 (2)

“뭐라! 에스테반에서 선제타격을?”

“그게 정말인가?!”

그 가공할 소식은 에스테반을 넘어온 대륙을 경악게 했다.

누가 보아도 조금의 승산조차 없는 난쟁이와 거인의 싸움.

그럼에도 에스테반이 먼저 전쟁의 서막을 연 것은, 분명 정상적으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아렌델의 왕세자만은 아니었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인가.”

왕세자는 손에 쥔 서신이 꾸깃하게 일그러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결연하게 굳어지는 두 눈빛.

마찬가지로 그에게 소식을 전달한 자이트 공작 역시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전쟁…… 정말로 그들이 연방제국에 선전 포고라는 폭탄을 던졌군요.”

“놀라운 일이지만 없을 법한 일은 아니었네. 오히려 응당 벌어져야 했을 일이었을 테지.”

“예, 그라면 분명 그리 행동했을 테니까요.”

1왕자. 아니, 이제는 에스테반의 국왕이 된 그가 가지고 있던 ‘증오’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깊이는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하물며 수차례나 직접 대화를 나눈 그들조차도.

그러니 어쩌면 이 상황은 당연한 미래였을 지도 몰랐다.

“……연방제국.”

감히 아렌델을 위협하고 집어삼키려 했던 자신들의 적.

그들이 겪은 것은 극히 일부였으나, 그것만 해도 놈들이 뿌려 놓은 업보는 결코 가볍지 아니하였으니까.

으드득-

왕세자의 주먹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어졌다.

“점검 중인 아렌델의 병력은?”

“겨울이 지나가면 곧장 움직일 수 있을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래, 겨울이 지나가면…….”

동맹국이 전쟁을 일으킨 지금.

한때 큰 위기를 맞았던 아렌델이 당장 병력을 움직일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아렌델은 마지막까지 패를 숨기고, 그 등으로 변수라는 비수를 꽂는다.”

그 또한 남자가 바라 마지않던 상황일 테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왕세자의 시선이, 남자가 있을 그곳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아렌델을 구원하고 이 상황을 설계했을, 에스테반의 국왕이 있는 곳으로.

* * *

연방제국에서 서부.

그러니까 에스테반과 마주한 그곳은, 험준한 산맥 지형이 주를 이었다.

인접한 천혜의 산맥에서부터 뻗어 나온 산세. 그 외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고지대.

그것이 에스테반과 연방제국을 갈라놓은 국경지대였다.

그리고 이를 틀어막고 있는 성벽이 바로, 철벽의 성이라 불리는…… 첫 번째 관문인 갈트 성이었다.

“갈트 성…… 이곳만 넘으면 본격적으로 제국령에 들어갈 수 있네요.”

“그래.”

미리 수색대를 정리해 둔 에스테반의 병력들은, 아무런 피해 없이 이곳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기를 일반 병사가 넘을 수 있답니까? 족히 30미터는 넘어 보이는데요.”

조지가 눈앞의 성벽을 쳐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경이로운 높이와 겉보기에도 단단한 그 보이는 금속을 둘렀으며, 마법으로 보강한 덕분에 어지간한 공성 병기에 흠집조차 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과연 철벽의 성이라 불릴 만한 이유가 있단 건데…….”

고개를 끄덕인 조지의 시선이 이번에는 주변으로 닿았다.

하지만 막막해지는 것은 주변을 둘러보아도 마찬가지.

“……오직 힘으로만 뚫을 수 있다는 건가.”

고지대를 완벽하게 점거한 그 성벽은, 기지를 발휘하여 무너뜨리는 일도 요원할 것처럼 보였다.

제아무리 마법을 사용했다 해도 저런 성벽을 만든 것이 그저 놀라울 정도였다.

그렇게 조지가 감탄사를 흘리는 사이, 어느덧 정찰을 나갔던 기사들이 돌아왔다.

“뭇 기사들의 이정표이자 아스테반 왕국을 이끄시는 국왕 전하께 인사드리옵니다.”

“상황은.”

“역시나 주변 구역들은 공간 이동이 모조리 차단된 상태였습니다. 이곳에 오랫동안 발을 묶겠다는 의도가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군.”

뭐,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이어질 전투에 공간 이동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할 터입니다.

마법이 만연했던 과거와 달리, 현시점에서 공간 이동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숫자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남들 몰래 경지에 오른 ‘그’와 비슷한 경우를 생각하더라도 일곱이나 될까.

하지만 지금 녀석들의 경계심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에스테반에 공공연히 나타난 대마법사. 가장 먼저 그 권능을 제한시키는 것은 당연하리라.

게다가 놈들이 경계하는 것은 마탑주 뿐만이 아니었다.

“성벽을 억지로 뚫고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그것 또한 놈들이 준비한 함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겠지.”

에스테반에 나타난 또 하나의 초인이자, 백병전을 지배하는 소드마스터인.

나를 견제할 수단을 생각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성벽을 주시했다.

“최악의 경우엔 이미 저곳에 놈들의 병력 일부가 도착해 있을 수도 있겠지.”

“대마법사가 데리고 온 상대측의 소드마스터가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앞장서서 성문을 뚫었다가는, 놈들에게 고립될 것이다.”

대마법사와 소드마스터라는, 두 전략 병기에 의해서 말이다.

물론 지금의 나에게 초인 두 명을 상대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블라도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긴 했어도 경지에 오른 소드마스터 하나를 압도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가진 무력은 마지막까지 감추어야 할 비장의 카드였다.

가장 좋을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놈들의 병력을 짓이겨 주어야 하니까.

“그조차도 놈들의 심리전일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은 조심해서 나쁜 것은 없겠지.”

“그렇다면요?”

“하나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다.”

나는 후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동부에 집결시켜 두었던 3만의 선발대.

“성벽을 우회해서 진입한다.”

그것이 내가 내린 답이었다.

“……뭐, 아무리 생각해도 후방에 적을 남겨 두는 꼴이 될 것 같지만.”

드물게 조지의 눈빛에 의심이라는 감정이 서렸다.

“다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죠. 일단 그렇게 하겠습니다.”

“음.”

나는 몸을 돌리고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휴식은 이제 끝이다. 본격적으로 놈들의 땅을 짓이겨 놓도록 하지.”

“충!”

“그리고 브롬.”

“예.”

내 부름에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제4 기사단장 브롬이 다가왔다.

“붉은 매 기사단에게는 새로운 지시를 내리지.”

“하명하십시오.”

“이곳에 숨어서 입구를 살피고 있어라.”

“……저희끼리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명령에 브롬은 당황한 듯 머뭇거렸다. 내부에 소드마스터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을 그 역시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하겠습니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나는 녀석의 대답에 흡족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고는 기사들과 함께 사라지는 녀석들의 모습에, 천천히 말에 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최후의 전쟁이 시작된다.”

또한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번뜩이는 두 눈빛은.

놀라우리만치 냉정한 분노를 담고 있었다.

* * *

“놈들이 성벽을 우회하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갈트 성의 성주는 기사들의 보고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허를 찔렸다는 듯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정말로 놈들이 그냥 지나쳐 가는 것이겠지?! 병력을 남겨 두지 않고?”

“예, 틀림없습니다. 모조리 지나쳐 가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에스테반의 국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크흐흐, 다행이군!”

털썩-

안심한 성주가 뒤로 쓰러지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손수건을 들어 식은땀을 닦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삼만의 병력이 이곳까지 왔을 때는 정말이지 어찌 되려나 했지만……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나 주니 우리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지.”

“구태여 시간을 들여가며 이 철옹성을 뚫는 것은 무리라 판단한 모양입니다.”

“위험부담도 있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놈들이 무모하게 연방제국을 선제타격 할 수 있던 것은, 어디까지나 병력이 북부로 밀집되어 있을 거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재 황실에서 내려온 추측.

다른 말로 하면, 놈들에게는 마음껏 활개 치고 다닐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북부에 묶여 있는 병력과는 다르게, 대마법사라는 존재는 공간에 구애받지 않지.’

정작 이곳에는 놈들을 견제할 수단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야.

성주는 그렇게 실컷 조소를 흘렸다.

“어쨌든 긍정적인 일이다. 덕분에 놈들의 기세를 잠시 주춤하게 만들 수도 있었고.”

“하나 똑바로 막아 내지 못했다는 질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어허! 우선은 내가 살아야 질책을 듣는 것이 아니겠느냐!”

새로운 황제의 잔혹함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죽은 뒤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오히려 자신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모습만 보여 준다면, 정상참작을 받아 낼 수 있으리라.

‘이제 후방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서 놈들을 혼란스럽게 만들면 되겠지.’

상황을 계산한 성주가 기사에게 명령했다.

“일단 놈들이 다른 곳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각 성으로 전달하도록. 아마 놈들의 공작으로 통신은 여전히 끊겨 있을 테니, 한발 먼저 파발을 보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호위를 붙이는 것이 좋겠지.”

애당초 병력을 잔뜩 데리고 움직이는 녀석들로서는 파발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으리라.

“……완벽한 계획이다.”

성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수건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파발이 정상적으로 빠져나가는 것만 확인한다면, 일신의 안위를 도모한다는 모든 계획은 완성되리라.

* * *

다그닥- 다그닥-

“이럇!”

어둠을 틈타 움직이는 일단의 무리는, 성주의 명령으로 이동 중인 파발들이었다.

처음 성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적의 매복에 긴장하던 그들이었으나.

성이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움직인 지금, 이제는 제법 안정되었는지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가 되었다.

“멍청하기는, 나 같았으면 성벽 앞에 병력을 놔두고 갔을 텐데.”

“그러니까 말이야.”

적의 연락망을 봉쇄하는 것만큼이나 효율적인 전략은 없었다.

그럼에도 놈들은 완전히 입구를 비우고 다음 성을 향해 나아갔다.

“아마 병력을 남겨 두는 것도 아쉽다는 뜻이겠지. 그게 애써 모은 병사의 전부일 테니.”

“흐흐, 약소국의 저력이 어디 가겠나.”

이곳까지 왔다면 그들이 사로잡힐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평소보다도 더욱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는 그들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그래, 약소국의 저력이지.”

쐐애애액-

서걱-!

“……!”

어둠을 가르는 섬광과 함께, 선두에서 달리던 기마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그와 동시에 졸지에 장애물이 되어 버린 고깃덩이에 가로막혀, 다른 기마들 역시 그곳에 엉겨 붙기 시작했다.

영문 모를 상황에 낙마한 기사들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폈다.

“무, 무슨 일이야!”

“갑자기 날카로운 무언가가 날아와서…….”

“……날카로운?!”

그 순간 섬뜩한 감각과 함께 그들의 몸에 닭살이 우수수 돋았다.

어느덧 사방은 알 수 없는 무리에 포위당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놈들의 정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붉은 매 기사단……!”

서걱-

푹!

“커헉!”

“너, 너무 강하…… 크헉!”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무자비한 날붙이는 그들의 몸을 갈가리 찢어발겼고, 그렇게 파발들은 어딘지도 모를 장소에 조용히 파묻히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브롬은, 얼굴을 가리던 붉은 갑주를 벗으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명심해라. 놈들이 나오는 것은 지켜보되, 이 구역을 빠져나가게 해선 안 된다.

마치 상황이 그렇게 될 것이라 확신하는 남자의 목소리.

분명 그는 이런 미래조차 그려 냈을 것이다. 정확히는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고 봐야 할 테지.

“……아직 초인들의 증원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후방을 습격할 병력은 없었다는 사실조차도.”

그렇다면 단순히 이렇게 움직였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는 소리였다.

당연하지만 추측은 간단했다.

“이 모든 계획이…… 정말로 찰나에 떠올린 기지란 말인가.”

조용히 전율하는 브롬의 눈빛은, 병력이 나아가고 있을 방향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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