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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200화 (200/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00화

전초전 (3)

저벅- 저벅-

풀벌레들조차 고이 잠든 겨울의 긴 새벽.

하지만 지난밤의 고요함을 깨우듯, 어둠을 틈탄 무리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기척 탓에 잠에서 깨어난 동물들은 군세에 놀라 숨을 죽였으나, 그것이 오히려 은밀한 이동을 도와주는 요소가 되었다.

완벽한 침투였다.

“놈들의 상태는.”

“완전히 방심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갈트 성을 통과할 줄은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나는 조지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뒤따라오는 병사들에 시선을 던지며 질문을 이었다.

“보초가 밀집된 위치는 파악했나.”

“각각 서쪽과 남쪽으로 뭉쳐 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방심한 탓인지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숫자는.”

“멀리서 확인된 바로는 남문에 오십. 그리고 서문에 삼십 정도입니다.”

“……아직까지는 여유를 부리고 있다는 건가.”

녀석에게 전달받은 상황은 몇 가지 되지 않았으나, 이후의 일을 그려 나가기에는 충분했다.

“역시 작전이 성공했군.”

“뭐, 그렇게 됐네요.”

전쟁에 돌입했으니만큼 보초를 증원하고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녀석들은 이쪽이 진군하는 데 시간이 걸릴 거라 착각하고 방심하고 있다.

그건 적은 보초의 숫자와 대응을 보면 확실했다.

‘보통은 전투를 목전에 두고 후방을 위협할 관문을 지나치지는 않으니까.’

자신들의 차례가 오기 전까지는 구태여 경계심을 바짝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으리라.

하지만 그것이 상대에게 움직임을 예측 당했다면 소용없었다.

‘그 굳건한 방비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서부를 완전히 비워 버린 지금. 갈트 성에 주둔하는 병력이 얼마나 될까?

삼천? 오천?

어쩌면 그보다 적은 최소한의 병력만이 남았을지도 몰랐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있는 이상, 후방을 신경 쓸 만큼이나 위협적인 숫자가 있을 리는 만무하다는 뜻!

‘게다가 그곳에 나를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것 역시도 안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한 놈을 죽여 버린 현재, 연방제국에 남은 소드마스터는 둘.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황제를 최우선으로 지키는 근위 기사이며.

다른 한 명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아마 적어도 연방제국의 귀족들보다 더 잘 알고 있으리라.

결국 저들은 나를 속였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네놈들은 방비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마저 내버린 셈이다.’

그렇게 갈트 성의 존재는 철저하게 버려졌다.

이상을 알릴 서신조차 도착하지 못했으니, 모든 상황은 내 설계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잘못된 판단으로 낳은 실수를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 주어야겠지.”

그동안의 기다림이 길었던 탓일까?

어둠 속에서 대기하던 병사들의 눈이 번뜩였다.

“일시에 몰아친다.”

* * *

뿌우우우-!

“전군, 돌격 앞으로!”

“돌격!”

“와아아아!”

“돌격하라!”

투두두두두!

아직 태양이 떠오르기 전.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뿔피리가 울리고, 그와 동시에 병사들이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전방에 보이는 저곳, 성벽.

혼을 쏙 빼놓는 뿔피리의 울음소리와 드높은 함성 탓일까? 소란을 느낀 성벽 너머에서는 화들짝 놀란 연방제국의 병력들이 보였다.

“뭐, 뭐야!”

“습격인가?!”

어둠 속에서 더욱 새까맣게 몰려드는 에스테반의 군대는 이 소란의 원인을 보여 주었다.

그렇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언제 여기까지……! 설마 갈트 성이 벌써 뚫렸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삼만의 병사가 이곳까지 왔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리도 없고…….”

“그, 그러고 보니 삼만보다는 숫자가 적어 보이기는 하는데.”

불가능한 일…… 혹은 상정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숫자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어서 내성에 습격 사실을 전하고, 나머지는 놈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화살을 쏘아라!”

“알겠습니다!”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탓일까?

당혹감에 휩싸인 연방제국의 병력들은 허둥지둥 움직이긴 했으나 정작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했다.

아국의 보병들이 성벽에 다다를 때까지도.

그리고 그것은 병력의 사기를 올려 주는 가장 좋은 먹잇감이었다.

“좋아! 놈들이 당황했다!”

“이대로 붙어라!”

기사들의 외침이 닿은 순간, 병사들이 기민하게 움직이며 공간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 직후 성벽에 도착한 병사들의 손에는 성벽을 기어오를 수 있는 사다리가 들려 있었다.

“사다리를 놓아!”

“흐읍!”

쿠쿵!

칼질에도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끔 육중하게 제작된 사다리가 성벽에 걸쳐졌다.

그리고 대기하던 병사들이 그것을 타고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제기랄, 지원은! 그리고 궁수들은 대체 뭘 하는가!”

“여, 여기 있습니다!”

“굼뜨기는! 무얼 하고 있나! 어서 사다리를 오르는 놈들을 쏘란 말이다!”

“알겠습니다!”

마침내 혼란 속에서 성벽 위로 도착한 궁병들이 배치된 즉시 황급히 화살을 재고 성벽의 밖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퓨퓨퓩!

촤좌좌좍!

“큭! 화살이다!”

“방패를 들어 올려라!”

한 차례의 화살의 비. 파죽지세로 나아가던 에스테반의 병력이 잠시 주춤하였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잠시일 뿐.

쐐애애애액!

푹!

쿠당탕!

“커억!”

“끅!”

“저게 뭐야!”

매서운 속도로 날아든 ‘무언가’가 성벽 밖으로 머리를 내민 궁수들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 족족 반동으로 뒤로 처박히는 시체들!

놀란 병사들이 재빨리 몸을 숙이며, 날아든 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바늘…….”

“아, 아니, 이건 화살이잖아!”

고작 이십 센티미터 남짓의 화살은 언뜻 보기에 화살이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하지만 그 속도는 또 뭔가?

어찌나 빨랐던지 그 궤적을 눈으로 좇기도 힘들다. 그렇기에 피하거나 쳐내는 일조차 요원했다.

그것은 뒤늦게 투입된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수가 너무 많다!

‘대,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병사들의 이마로 차게 식은 땀방울이 흘렀다.

그리고 한 병사가 조심스럽게 성벽의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러곤 믿지 못할 장면을 두 눈에 담고 입을 쩍 벌렸다.

“맙소사……!”

보병의 뒤를 호위하듯 서 있는 궁수들.

그들은 자리에 선 채로 다음 목표물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허접한 것에서 이런 위력이 나온다고?”

마치 발리스타처럼 고정된 채로 화살을 쏘아내는 원통.

그것이 흩뿌리는 화살은 말 그대로 성벽 위를 뒤덮을 만큼이나 막대했다.

수백. 아니, 수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화살을 쏘아내는 것은 고작 몇 대의 원통이었다.

“기관 석궁. 이것이 바로 에스테반과 드워프의 저력이지.”

어느덧 조용해진 성벽의 위.

에스테반의 기사들은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놈들이 견제를 포기했다!”

“내부에 있는 놈들은 오합지졸일 터! 병사들은 즉각 백병전에 돌입한다! 궁병은 끝까지 상황을 주시하며 성벽을 견제하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방해 없이 성벽에 오른 병사들은, 황망함에 물러서는 적군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

완벽하게 훈련되고 엄선된 에스테반의 본대를 상대로 놈들이 버틸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 광경은, 비단 이곳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서걱-

콰직!

“크아악!”

“버틸 수가 없다!”

“살려 줘!”

또 다른 성의 어느 광경.

그곳에서 역시 일방적인 학살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력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닌 병력을 나누고, 각자 정해진 성을 일시에 몰아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각기 일만으로 나뉜 에스테반의 병력.

날이 밝기 직전. 그들이 손에 넣은 것은 도합 세 개의 성과 물자들이었다.

이것 역시도 연방제국이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 * *

전투가 모두 끝난 뒤에도 병력의 피해는 거의 없을 수준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애초에 놈들이 대응하기도 전에 몰아쳤을뿐더러, 그 숫자에서부터 차이가 났으니…….

‘정확히는 성벽을 막아 내려던 그 숫자조차 급히 징집한 오합지졸에 불과했지.’

애초에 놈들의 목적은 연방제국의 본대가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버텨 내는 것.

하지만 그조차도 시작부터 어긋났으니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으리라.

한편, 성을 점령한 것 외에도 의외의 소득 역시 존재했다.

“이렇다 할 비싼 물건은 없었지만…… 뭐, 수성을 위한 무구나 식량 등의 물자는 제법 노획할 수 있었습니다.”

“수성을 위한 무구?”

“그 왜, 화살 같은 것들 있지 않습니까?”

“그렇군.”

조지는 성을 점령한 이후 즉시 물자를 확보해 나갔다. 그리고 그 양은 과연 연방제국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

‘역시나 미리 서부에 물자를 비치해 두었군. 전쟁이 나기 이전부터.’

어림잡아도 에스테반의 삼만 병사가 몇 달을 먹어도 남을 만큼의 풍족한 양이다.

그런 것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빼앗기게 생겼으니, 모르긴 몰라도 놈들의 이가 바드득 갈릴 테지.

나는 가소롭다는 듯 실소를 지었다.

“기왕 놓고 간 물건은 고맙게 써 주지.”

하물며 원정군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값진 보상이었다.

물자의 관리가 무척이나 중요한 상황에서 이토록 많은 양이라면 필연적으로 도움이 될 테니까.

뭣하면 대마법사의 권능을 이용해서 물자를 이송하는 계획까지 세웠건만, 그럴 필요조차 없어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놈들의 대응이었다.

놈들의 병력이 얼마나 일찍 도착하느냐에 따라 계획이 달라질 터였으니.

“움직이고 있는 병력의 소식은 들어왔나.”

나는 물자의 양이 기입된 종이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러자 조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막 북부를 벗어나서 서북부에 다다랐다고 합니다. 이곳과는 대략 한 달 하고도 보름 거리입니다.”

“그것은 본대의 이야기겠지. 슬슬 주변 영지나 수도에서 지원군이 파견되었을 텐데?”

“그 부분은 황궁에 심어 둔 사역마로 정보를 얻긴 했습니다만…….”

녀석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거리상 루크 공작이 직접 이끄는 오만의 군대가 가장 먼저 당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루크 공작이라…….”

놈은 연방제국의 세 공작 중 하나이자, 군사를 담당하는 카롯트의 사령관이었다.

본인 역시 상당한 실력의 기사라고 했던가?

나는 그 익숙한 이름에 즐겁다는 듯 눈썹을 까닥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긴 했군. 본인이 직접 움직인다니 말이야.”

“본대가 도착하기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고, 서부는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놈들을 맞이하는 것은 이 성들이 되겠군.”

거리상으로는 대략 일주일.

또한 전투가 아닌 전쟁에서 숫자의 차이는 절대적이다.

오만의 병력이라면, 수성의 이점을 포함하더라도 부담스러운 숫자임에는 분명했다.

특히나 루크 공작 본인의 군대라면 훈련 역시 충분히 되어 있을 터.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재미있군.”

나는 이번 전투에 일부러 참여하지 않았다.

놈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크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었음에도 말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증명이었다.

나는 전투가 끝난 뒤에 휴식을 취하고 있던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저들은 본디 연방제국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있었다.”

“뭐, 그렇지요. 그래도 대륙에서 제일 큰 국가 중 하나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어떻지?”

“…….”

조지가 말없이 주위를 둘러본다.

녀석의 시선에 닿은 병사들은, 모두 지난 전투를 상기하며 승리의 여운을 즐겼다.

그 누구도 이어질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은 채로.

“이제 모두 알겠지, 해 볼 만한 상대라는 점을. 그리고 그렇게 이쪽의 사기가 진작된 것에 반해, 놈들은 일주일의 진군으로 어느 정도 힘을 소진한 상태고.”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얻어 낸 세 개의 성.

5만의 병력을 3만이 막아 내는 것은 까다로울지 모르나 그것을 세 갈래로 나뉘도록 유도한다면, 의외로 막아 낼 만하다는 소리였다.

“천의 병사만으로 오천을 막아 내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다. 수성의 이점이라는 건 그런 것이지. 게다가 굳이 세 등분으로 나눌 필요조차 없고.”

“전하께서 계시기 때문이군요.”

“그래.”

나라는 존재가 있는 이상, 다른 쪽에 힘을 더 실어 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숫자는 거의 엇비슷할 정도가 될 터.

여기서 관건은 멍청이가 아닌 이상에야 이 사실을 놈들 역시 알고 있으리라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놈들을 끌어내는지가 관건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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