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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202화 (202/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02화

운명을 가르는 선택 (2)

치지직-!

툭!

“…….”

순식간에 끊어져 버린 통신.

“그렇다고 화를 낼 것까진 없지 않나? 상처받게.”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린 조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마법구를 내던졌다.

그러자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마법구의 빛이 천천히 꺼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안절부절 어쩔지 몰라하던 기사가 다가왔다.

“죄, 죄송합니다, 자작님. 제가 이상한 것을 건드리는 바람에…….”

“죄송하다뇨?”

“그 탓에 적군의 수장이 이곳의 상황을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후에 벌어질 작전 역시도…….”

“아아.”

……실수로 통신을 연결했던 것 때문에 그런 건가?

조지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신경 쓰지 마십쇼. 어차피 통신이 없었더라도 상황을 인지하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후우…….”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잘되었다고나 해야 할까.”

“예?”

그 의미심장한 말에 기사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조지는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마침 놈들을 어떻게 꾀어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이쪽에서는 원하는 대로 상황을 끌어나가기 위해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그때 예상치 못하게 이곳에 걸려 온 적군의 통신.

자칫 당황했다면 점령의 정보만 내준 채로 아무것도 얻어 내지 못할뻔했으나, 조지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오히려 저들을 도발하고 무대에 세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솔직히 우연이었지만 뭐 어때.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쨌든 그들에게 있어서 이 통신이 기회인 것은 틀림없었다.

조지는 설렁설렁 외투를 저며 입으며 말했다.

“나머지는 대충 정리하고 나오십쇼. 저는 먼저 갑니다.”

“앗……! 곧장 국왕 전하를 만나 뵈러 가시렵니까?”

“일단은 루크 공작에 대한 것도 보고해야 하고요.”

“예, 알겠습니다.”

기사가 문밖으로 나가는 조지를 보며 경례했다.

조지는 그것을 보지도 않은 채 어깨 위로 손을 휘적거리며 사라졌다.

문득, 남은 기사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역시 헤그메스 자작님이야. 부하의 실수를 감춰 주기 위해 거짓말까지 해 주시고……!”

……정말로, 정말로 의외의 이야기였지만, 조지는 왕실의 기사들에게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

단숨에 귀족이 되었음에도 거만해지지 않은 태도. 그리고 아랫사람에게도 가리지 않는 존댓말. 마지막으로 무뚝뚝함 뒤에 숨어진 그 자상한 모습까지.

또한 그는 무려 국왕이 직접 선택한 보좌관이었다.

심지어 방금 전 적국의 공작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지 않았던가?

기사들의 눈에 비치는 조지는 능력이 있으나 검소한 귀족 그 자체였던 것이었다.

“소문을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대단하신 분이다.”

그렇게 기사는 ‘어디의 누군가’가 들으면 화낼 소리를 지껄이며 눈을 빛냈다.

물론 단편적인 모습밖에 보지 못한 그들이 알 리는 없었다.

때때로 보여 주는 그 자상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단지 귀찮기에 터치하지 않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같은 시각.

“……흐음.”

왕궁에서 서류를 살피던 비도르 후작은 불편한 듯 몸을 꿈틀거렸다.

연신 그것이 반복되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발테르 공작이 눈매를 좁혔다.

“괜찮은가? 아까부터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네만.”

“아니 그게…… 갑자기라 해야 할지, 어쩐지 불쾌한 느낌이 들어서…….”

“불쾌한 느낌? 무언가 잘 못 먹기라도 했는가?”

“후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탈이 날 만한 별다른 음식을 먹은 기억은 없는데…… 기분 탓이려나?

후작은 몸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회의가 끝나면 의원이라도 찾아가 봐야겠군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네만 괜찮으면 상관없다만…….”

그렇게 공작의 걱정스러운 눈빛 속에서 회의는 이어졌다.

그러나 회의가 끝난 이후에 찾아간 의원 역시도, 그 영문 모를 불쾌함의 원인을 알지 못했다.

“계속해서 속이 좋지 않고 불쾌함이 치솟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정확히는 문득 짜증이 치솟는다고 해야 할지.”

“허어, 저로서는 도무지 모르는 증상이군요. 비슷한 병을 찾아보려 해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제를 찾아가 봐야 하나…….”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

* * *

며칠의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성에서도 루크 공작이 이끄는 5만 병력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형태가 다소 의외라면 의외였다.

“세 갈래로 나뉜 것은 맞는데, 한쪽의 병력은 상대적으로 적군요. 어림잡아서 5천 정도려나요.”

“저건 무슨 생각일까.”

나는 당당하게 나뉘어 진군하는 병력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진심으로 궁금했다.

나를 상대하기 위해 병력을 치우칠 거라는 예상은 했다만. 저건 오히려 한쪽을 완전히 포기한 모양새가 아닌가?

심지어 그 5천 쪽이 본대였던 모양인지, 양쪽으로 갈라지는 나머지 병력에는 공작의 깃발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도발하는 건 아니겠죠?”

“…….”

에이, 설마.

어쨌든 이쪽에 소드마스터가 있단 사실을 알 텐데 저런 방식으로 도발을 하겠는가?

당장에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아니면 역으로 소드마스터를 다른 방향에 배치하게 만들려 했다던가.”

“그럴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황당할 노릇이군.”

5만이나 되는 숫자를 이끌고 왔으면서도 고작 5천이라니.

웃기게도 너무도 무성의해서, 오히려 저 무리가 진짜처럼 보일 정도였다.

정말로 저것이 공작이 지휘하는 정예병들이라든가…….

그런데 예상외라 해야 할까?

아무래도 놈들은 진짜 미쳐 버린 모양이었다.

“사자가 오는데요?”

나는 조지의 보고에 성벽으로 향했다.

그러자 저 멀리서 백기를 들고 당당하게 다가오는 기마 한 대가 보였다. 놈은 어느 정도 성벽과 가까워지자, 자리에 멈춰 선 채로 우두커니 기다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와서 대화를 하자는 모양이군요.”

그 황당한 태도에는 조지조차도 실소를 참지 못했다.

“어떻게 할까요? 놈들은 모르겠지만 드워프제라면 얼추 화살이 닿을 정도는 될 것 같은데.”

“이대로 화살 꼬치로 만들어 놈들에게 보내는 방법도 있겠지.”

“역시 화끈하시다니깐.”

“하지만 재미있군.”

“예?”

나는 눈초리를 휜 채 천천히 성벽의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지는 엉겁결에 따라붙으며 표정을 찌푸렸다.

“설마 직접 가시려고요?”

“당연하지.”

“허.”

피차 서로를 향한 살수가 오가는 두 국가.

이대로 놈을 죽이는 것도 그다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은 아니었으나, 대화를 시도하고자 하니 흥미롭지 않겠는가?

“그런 재미있는 상황을 놓칠 수 있을 리가.”

“…….”

이에 조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녀석 역시도 다를 바는 없었다.

“그런 즐거운 자리에 저를 떼어 놓고 가시려 하다니.”

유유상종이었다.

* * *

여유로이 백기를 들고 서 있던 크렐 자작.

하지만 그는 성문에서부터 다가오는 일행을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본 지휘관은 루크 공작 각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온 크렐 자작이오.”

“그래.”

고저 없는 목소리. 감정 한 올조차 비치지 않는 핏빛의 눈동자.

상대방은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으나, 그 정체를 모른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었다.

“무슨 흥미로운 소리를 지껄일지 벌써부터 기대되는군.”

“……큭.”

알렌 에스테반!

크렐 자작은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서 다른 귀족도 아니고 놈이 나올 줄이야.’

적국의 사람이니만큼 극진한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었지만, 상대는 무려 국왕이었다.

게다가 대륙에 이름을 떨친 그 소드마스터……!

“먼저 루크 공작께서는 감히 연방제국의 영토를 침범한 그들의 무모함과 어리석음에 감탄을 아끼지 않으셨소. 하지만 파멸의 두려움을 떨쳐 낸 용기에는 마땅히 감복하신바. 하여, 한 가지 제안을 보내시어 그대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는 바요.”

“호오. 제안?”

“……그렇소.”

그는 평소 상대방과의 심리전을 즐기는 달변가였으나, 그런 사람의 면전에 대고 심리전을 걸 만큼의 배짱이 있지는 않았다.

바로 목이 잘릴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에 뒤늦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이 오천의 병력으로, 그대가 이끄는 병력을 상대해 주겠소.”

“흐음.”

“이미 그대들이 나눈 병력의 규모는 파악해 두었지. 이 성에 고작 삼천의 병력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 역시도.”

꿀꺽 침을 삼킨 자작이 말을 이었다.

“예상컨대, 초인의 힘으로 숫자의 불리함을 이겨 내려는 목적이었을 테요.”

“그러니까 어디 다른 데로 가지 말고 맞서 싸우자고?”

“다른 성의 상황이 불안하다면 도망가도 좋소. 그 경우에는 비웃음을 면하기는 어렵겠지만.”

“호오. 도발에는 도발로 응수하겠다는 거군.”

명백한 도발이었다.

제아무리 수성의 이점이 있더라도. 그리고 초인의 힘이 있더라도.

너 따위는 오천의 병력이면 충분하다는 그런 뜻.

“그건 꽤 재밌을 거 같군.”

“……!”

하지만 상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 그렇게 말해 주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보일 정도로.

“좋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도록.”

“배짱을 부리는 것도 지금뿐일 것이오.”

“그거야 결과를 보면 아는 일이고.”

“큭.”

결국 먼저 맞붙은 시선을 피한 것은 크렐 자작이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요. 실낱같은 기회라도 붙잡은 그대들에게 행운을 빌지.”

“그쪽도.”

투두두두-!

왔던 길을 황급히 되돌아가는 자작의 뒷모습.

어쩌면 이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던 걸까?

그 모습이 언뜻 안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안 죽여도 됩니까?”

“놈을?”

“예.”

즐거운 구경에 빠져 있던 조지가 물었다.

한껏 건방진 소리를 지껄인 저 사자를 살려 주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애당초 놈을 죽이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뭐, 그렇겠죠.”

“그렇다면 그 대화에 응하는 것도 한 방법일 테지.”

이 성에서 자신들과 맞붙자 했던가?

그 자신감의 근원이 궁금했다.

놈들의 시시한 도발은 둘째 치고, 당최 무슨 수를 준비했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는 소리였다.

“어차피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시기만 다를 뿐, 놈들 모두 남김없이 불태워져.

이름 모를 땅에 처참히 묻히게 될 테니 말이다.

* * *

“놈이 도발에 응했습니다.”

“자신이 있어 보이던가?”

“오히려 각하의 제안을 가소롭게 여기고 환영하는 눈치였습니다.”

“잘했다.”

루크 공작은 차가운 두 눈으로 성벽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겨울의 태양은 지평선의 너머로 흐릿하게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를 뒤덮은 흑색의 먹구름들.

그 모습이 마치, 전운이 드리움을 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군에게 하달하라.”

“말씀하십시오.”

“날이 밝는 즉시 공성전에 돌입한다.”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

공작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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