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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205화 (205/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05화

최후의 제안 (1)

그 예상대로.

퍼져 나간 흑마법사의 소식에 신성제국의 내부는 발칵 뒤집혔다.

“연방제국이 흑마법사를 전장에 세웠다고……!”

“게다가 그 힘을 사용하여 성국의 사제들을 죽이려 했다더군!”

“감히 악의 하수인들을 내세운 것도 모자라서 사제들을 해하려 들다니!”

암암리에 유지되던 냉전.

저들이 자신들의 황제를 신격화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놈들이 보인 행동은 본격적으로 신성제국과 그 교리에 반기를 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전과 다르게 겉으로만 배교자라 치부하며 혀를 차는 것으로 넘어갈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쿵! 쿵! 쿵!

정숙함이 감돌아야 할 순백의 복도 사이로 다급하면서도 거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막아 세우지 못했다.

전당의 문을 지키고 있는 성기사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챙-!

“……!”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교차한 백색의 두 검.

이곳을 넘을 방법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전당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비켜 주세요. 성하께 직접 드릴 말씀이 있어요.”

“불가능합니다. 전당의 내부에서 흑마법사에 관한 회의가 진행 중이니, 송구하오나 이후에 찾아와 주십시오.”

“지금 당장이 아니면 안 돼요.”

“그렇다면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가 드릴 수 있는 답은 그게 전부입니다.”

“…….”

성녀, 유리엘은 앙다물어진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이곳을 지나는 것을 방해받은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 그녀는 언제나 중요한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성국 내에서 그녀가 하지 못하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기사들은 여전히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변수를 만든 것은 아마도 공공연하게 드러난 흑마법사라는 존재 때문. 그것이 성녀를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성녀님.”

“대사제!”

그 순간 등 뒤에서부터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을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당연히 그 정체는 가르덴 대사제.

친할아버지처럼 여기며 따르는 그의 목소리를 헷갈릴 리는 없었다.

“……어?”

하지만 고개를 돌린 그때, 성녀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대, 대사제? 표정이 왜 그래?”

“…….”

전에 없을 정도로 굳은 얼굴.

자신에게만 보여 주던 다정한 표정은 어느덧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마, 맞다!”

멍하니 대사제를 바라보던 성녀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마침 잘 됐어. 대사제도 회의에 늦은 거지?”

“……성녀님.”

“나를 전당의 안쪽으로 데려가 줘. 흑마법사들에 관해 성하께 꼭 전해 드려야 할 말이 있어.”

“그건 불가능합니다.”

“뭐?”

순간, 당혹감에 할 말을 잃어버린 성녀.

“어째서 대사제까지…….”

“그것이 성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

비로소 자신을 막은 의지의 정체를 확인하자, 그 몸이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서, 성하께서 내가 전당에 들어오기를 원치 않으셨다고?”

“그렇습니다.”

“역시 그때 말한 성국의 ‘진실’ 때문이야?”

에스테반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던 그들의 비밀.

자신을 이토록 막아 낼 정도라면 그런 이유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예상대로 대사제에게서는 자그마하나 동요라는 감정이 엿보였다.

“성녀님. 혹시 에스테반의 국왕으로부터 비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셨습니까.”

“듣지 않았어.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모를 리가 없잖아.”

“…….”

“말해 줘. 대체 나한테 숨겨야 하는 비밀이 뭐야. 왜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 거야?”

너무도 완강한 목소리와 눈빛.

가르덴 대사제는 말없이 손을 내저어, 문을 가로막던 성기사들을 물려 냈다.

스윽-

하지만 금방이라도 열릴 것 같았던 문을 다시금 막아 낸 것은 그 자신이었다.

“성녀님께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돌아가십시오.”

“……!”

그녀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동그랗게 떠졌다.

믿고 있었던 대사제에게마저 배신당한, 그런 충격에 빠졌다.

‘죄송합니다. 성녀님.’

그러나 대사제라고 해서 이 상황이 마냥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성국이 감춰온 진실을 말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신앙심이라는 무형의 결속력을 위해 행해 왔던 잔혹한 일들.

그리고 그 대척점인 흑마법사들을 처리하며 굳건하게 다져온 입지…….

과연 그 잔인한 진실을 이 순수한 소녀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단지 원치 않은 일에 휘말려야 했던 평범한 소녀가?

아마 그녀는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없는 죄책감 속에 빠질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가능성이 아니라 확신할 수 있다.

가르덴 대사제, 그가 지금까지 지켜본 소녀의 모습은 정녕 그러했으니까.

‘그러니 노인은 성녀께서 이 앞으로 지나가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적어도 이 회의가 끝나기 전까지.

진실을 아는 이들이 이후의 대책을 세우기 전까지는 말이다.

철컥-

“……!”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전당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대사제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 역시도 문이 열려 버린 것에 놀랐으니까.

타닷-!

“성녀님!”

멍하니 문을 바라보던 성녀가 정신을 차리고는 그곳으로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나열한 대사제들을 지나쳐 재빨리 남자의 앞으로 멈춰 섰다.

신의 대리인 아델 드 로에나.

그들이 성하라고 부르는, 남자의 이름이었다.

“성하.”

“예, 성녀님. 말씀하십시오.”

“흑마법사들에 대해 긴히 알려 드려야 할 것이 있어요.”

“……그렇습니까?”

교황은 한없이 부드럽게, 그리고 자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속에는 숨길 수 없는 난처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성녀는 주변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하나씩 옷자락을 정돈하기 시작하는 대사제들. 그들은 이미 자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죄송합니다, 성녀님. 이미 흑마법사들에 대한 처우는 결정된 상태입니다.”

“……설마.”

“성국은 악의 하수인인 흑마법사들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하여 기에나의 뜻에 따라 대륙을 정화하기 위해, 그들을 심판키로 결정하였습니다.”

“……!”

심판. 말이 좋아 심판이지, 그것은 일종의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이단과 배교자들을 척살하고자 하는 성국 최후의 단죄.

말인즉, 흑마법사 말살 작전이 또다시 펼쳐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안 돼요!”

“성녀님?”

성녀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으나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현재의 흑마법사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 있어요. 강경파와 온건파. 말살 작전 이후 하나였던 흑마법사의 세력이 이념에 따라 분리되어 버렸죠.”

“그게 무슨…….”

“강경파는 자신들을 멸망시킨 성국에 강한 복수심을 품고 비윤리적인 일을 자행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벌해야 마땅하지만…… 온건파는 아니에요!”

성녀가 다급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교황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온건파는 다르다. 즉, 그들은 저희가 아는 흑마법사들과 다른 부류라는 것입니까?”

“맞아요. 그들은 누구보다 평화롭게 살기를 원해요.”

그것은 그녀가 직접 두 눈으로 본 진실.

당시의 1왕자는 죽은 흑마법사를 가리키며 그녀에게 저항을 포기한 약자를 처리하는 것이 성국에 있어 옳은 방향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오랜 고민이었어. 하지만 정답은 정해져 있었지.’

나뉜 온건파와 강경파.

정말로 그들이 앞장서서 처리해야 할 부류는 정해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성녀는 누구보다 다급했다.

“무고한 희생을 이어 갈 수는 없어요. 흑마법사라고 다 똑같은 악(惡)이 아니에요.”

“...”

단 한 명의 무고한 희생자라도 내서는 아니 된다.

그들 모두가 죄를 지었을 리도 없었고, 고작 흑마법사라는 이름으로 그들 모두를 단죄하는 것도 옳지 않았다.

그것이 성녀의 생각.

“성하께서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열어 두고 계신다면, 부디 이번 척살령을 철회해 주세요.”

“…….”

“성하……!”

간절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교황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무고한 희생이라고.’

성녀는 흑마법사와 신성제국의 안에 숨겨진 ‘진실’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을 비호하고자 하는 것은, 필시 자신들과는 다르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소리겠지.

‘……만들어진 성녀와 신앙심.’

하지만 어쩌면 그녀는 누구보다 성녀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교황은 눈치를 보고 있던 대사제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눈빛은 여태껏 없었던 싸늘함을 담아내고 있었다.

“회의는 끝입니다. 이만 모두 돌아가 주십시오.”

“서, 성하……?”

“결정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마땅한 단죄를 받게 될 것이고, 성국의 의지는 로에나의 뜻대로 이어질 것입니다.”

“……!”

이례적인 단호함에 모두가 놀란 가운데. 교황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다리가 풀린 성녀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 싸늘한 눈빛은 바뀌지 않은 채였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그것은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은 물론이고 대사제들까지 모두.

아니, 비단 감추어진 진실을 알지 못하더라도 이것이 옳지 않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

적어도 성국을 이끌어야 하는 자신으로서는 결단코.

그때였다.

“서, 성하!”

전당의 입구에서부터 한 사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스테반의 국왕께서 급히 통신을 보내셨습니다!”

“…….”

알렌 에스테반.

마치 신이 내려 준 운명인 것처럼 두 남자는 정상에서 만나게 되었다.

교황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 * *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반갑다고 해야 할지, 둘이 통신을 나누는 것은 처음이군요.”

“…….”

교황은 남자의 목소리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너무도 공교로운 타이밍.

‘운명…… 인가.’

내내 닫혀 있던 교황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에스테반의 국왕께서 통신을 주신 것은, 필시 흑마법사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자 하심이었을 테지요.”

-예, 정확합니다.

마법구 너머로 긍정이 되돌아온다.

하지만 구태여 직접 통신을 연결하면서까지 할 말이라면…… 그건 아마도.

“그들의 처우에 대해 여쭙고자 하십니까?”

신성제국의 결정과 관련된 것.

그러자 마법구 너머의 상대가 피식 웃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티가 났습니까?

“당신은 이미 신성제국의 진실을 알고 계시니까요.”

-뭐, 그렇다면 말은 빠르겠군요.

알렌 에스테반.

마법구 너머에서, 그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추십시오. 흑마법사들을 멸살하는 것은 신성제국에게도 좋지 않은 선택일 것입니다.

“…….”

마치 이 상황을 모조리 꿰뚫고 있는 것처럼.

상대는 처음부터 그 외의 가능성을 상정하지 않고 있었다.

교황의 목소리가 차츰 떨려왔다.

“그게 명백한 내정간섭임은 알고 말하시는 거겠지요.”

-물론. 하지만 필요한 일이지요.

“……그들의 처지를 동정해서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만.”

-예, 말씀하신 대로. 저는 서로의 이득을 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득이라 하심은.”

-현재의 성국을 움직이는 것은 신앙심이 아닌 철저한 이익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 역시 마찬가지. 흑마법사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 이득이 된다면, 성국의 대사제들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택할 것입니다.

“…….”

-이번 결정 역시 그러한 이유로 내려졌을 테지요.

쉽게 말하면, 성국이 그들을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뜻.

그것을 타국의 국왕이 짚은 것은 씁쓸한 일이었으나.

“잔혹하지만 그것이 진실이지요.”

역사 속에서 감추어진 그들의 역린.

만약 그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그것을 직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그렇기에 선택지는 없었다.

‘그것을 인정하면 신성제국의 모든 것이 무너진다.’

신성제국이 세운 역사의 무게.

한낱 교황에게는 그 불합리함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도,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럴 무너트릴 만한 일이 있다면, 그들을 살려 둘 당위성이 생긴다는 뜻일 테지요.

“……그 말씀은?”

-저희 에스테반이 그 당위성을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황께서는 제 제안을 따를 생각이 있습니까?

그제야 교황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신실한 사제인 교황.

그 역시도 성녀와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희생을 자아내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렇기에 당위성을 만들어 준다는 남자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우선. 말씀해주십시오. 당신은 어째서 그들을 비호하고자 하십니까.”

-뭐, 그들이 신성제국으로부터 해방된다면, 저에게도 이득이 생길 테니까요.”

“……이득이 생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더욱 의문이 깊어진 그 순간이었다.

-아,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보이지 않는 수정구의 너머.

지금 저 상대가 웃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온건파의 세력은 제가 직접 숨겨 주고 있었으니까 말이지요.

“……!”

그 경악할 고백에 교황의 눈이 부릅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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