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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207화 (207/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07화

광기(狂氣) (1)

[성국의 창은, 오직 로에나를 등진 배교자들과 이를 돕는 흑마법사에게 향할 것이다.]

신성제국의 대륙을 놀라게 한 선언이 있던 그날 밤.

비도르 후작은 왕실로 통신을 걸어온 그들과 국왕을 대신하여 담화를 나눴다.

-에스테반이 원하는 대로. 성국 역시 이 전쟁을 단순한 갈등만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오.

“그렇다면 교황께서는 본격적으로 전쟁을 지원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이라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그렇소이다.

통신구 너머의 상대는 후작도 익히 알고 있는 가르덴 대사제.

어찌 보면 고지식하고 막힌 면이 있는 두 사람이었으나. 그런 두 사람이 만나고 나니 대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먼저, 일전에 파견되었던 성국의 치료 사제와 별개로, 직접적인 전투를 돕기 위한 병력을 추가로 파견할 예정이오.

“병력이라…… 병력의 파견이라면 성기사들도 포함된 전력입니까?”

-성기사 뿐만 아니라 사제들 역시 포함될 것이오.

“그렇군요.”

그리고 그 첫 번째는 병력의 출전.

단순한 동맹국의 입장이 아닌, 하나의 참전국으로써 움직이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비도르 후작이 누군가?

‘파견이라 함은 전쟁에 개입하겠다는 뜻이지만, 어디까지나 이쪽에 힘을 더해 주겠다는 말이다.’

잔머리의 달인인 조지를 업어 키웠으며, ‘그’ 국왕의 밑에서 수년간 굴러 온 남자.

더는 이전처럼 수동적으로 움직이기만 할 뿐인 하급 귀족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런 후작에게 있어서 그들의 진의를 읽는 것이란 무척이나 손쉬운 일이었다.

“아직 대사제들의 의견이 모두 통합된 것은 아니라는 말씀으로 보입니다만…… 혹시나 제가 틀렸습니까?”

-…….

“역시나 그렇군요.”

침묵은 곧 긍정.

비도르 후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성제국의 상황을 짚어 냈다.

“명분은 만들었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필요성도 생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조차 ‘파견’이라는 명목으로 주도권을 넘겨준다는 말은, 아직 상황을 지켜보자는 대사제들의 의견이 우세하다는 뜻이 되겠지요.”

-……부끄럽지만 실로 그러하오.

가르덴 대사제는 미안하다는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국제 정세라는 것이 그랬다.

-본디 이번 결정 이전에 파견되기로 한 것은, 어디까지나 흑마법사들을 심판하기 위한 성기사들 뿐이었소. 애초에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한들, 그것이 최선이었지.

“교황께서는 이 싸움이 대륙전쟁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셨군요.”

-성국이 병력을 일으킨다면 연방제국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오.

애당초 에스테반이 연방제국을 상대로도 승리를 이어 갈 수 있는 이유는 기습도 기습이었지만, 단지 그들이 여유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작 삼만의 선발대에 놀라 병력을 일으킬 리는 없으니까.’

그들은 북부 대륙 절반을 집어삼켰을 정도로 막강한 제국.

그리고 가진 땅은 에스테반과 비교하면 수십 배의 크기!

북부에서 남하하는 대병력과 더불어 병사를 일으킨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 수가 백만에 달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에스테반이 곤란해진다.’

물론 그 속에 에스테반을 위한 배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에스테반의 국왕 전하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성국의 목표가 한곳으로 좁혀질 수 있었소.

“본래는 흑마법사의 말살을 위해 흩어졌어야 할 병력을 파견에 집중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하오. 지금 성국이 파견코자 하는 성기사들은 모두 말살 작전에 동원될 인력이었지. 거기에 사제들을 더하기로 결정된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병력을 일으키진 못하더라도, 가능한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르덴 대사제로서는 그 사실이 못내 미안한 것이었고.

하지만 후작으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는 이야기였다.

“한데 어째서 도움을 결정하시고도 에스테반에 죄송을 표하시는지요?”

-……음?

“허허, 설마 에스테반이 더욱 적극적인 도움을 바라고 있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그, 그건…….

통신 너머로 상대의 당황한 기척이 느껴졌다.

당연히 그리 생각했을 터다.

북부 대륙의 절반을 지배하는 제국와 약소국의 싸움.

당연히 동맹국의 참전을 누구보다 바라는 것이, 상식적인 전후 관계였으므로…….

그러나 이쪽의 생각은 달랐다.

“말씀하신대로 성국이 움직인다면 곤란해 지는 것은 에스테반일 것입니다.”

-그, 그건 그렇소만…….

“그렇기에 처음부터 국왕 전하께서는 성국의 참전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겠지.

비도르 후작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정정했다.

“처음부터 신성제국이라는 변수는 상정해 두지도 않았습니다. 이 전쟁은 우리 에스테반의 힘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

모든 상황은 ‘그’의 손으로부터 제어되어야 하고.

그 외의 상황을 바꿀 만한 변수는 모조리 차단한다.

‘그것이 나의 군주께서 내리신 결정.’

설령 그것이 아군의 도움이라는 이름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것을 믿고 따르는 비도르 후작의 눈에는 한 치의 의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생각하십시오. 어차피 성국에서 출발하는 인원들이 전장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오랜 시간을 소요하게 될 것입니다.”

-그, 그렇소. 이보다 많은 병력을 파견한다면,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릴 것이오.

“그렇다면 말씀하신 대로, 소수의 인원만을 보내는 것으로 빠른 지원을 결정하는 편이 에스테반에도 이득이 될 테지요.”

-……허.

상대는 잠시 침묵으로 일관했으나, 이 상황을 납득한 것처럼 보였다.

뭐, 오히려 좋다는데 그쪽에서 할 말이 있을 리가.

‘그러고 보니, 이러한 성격도 점차 그분을 닮아 가는군.’

후작의 어깨가 으쓱여졌다.

“어쨌거나 고급 병력인 사제와 성기사들을 지원해 주신다고 하면, 거절할 이유는 없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그들을 에스테반의 수도로 보내 주십시오.”

-알겠소. 에스테반의 뜻이 그러하니 그리 전달해 두겠…… 음?

그 순간, 가르덴 대사제는 방금의 대화에서 문득 이상함을 느꼈는지 의아함을 표했다.

-그대들이 점령한 연방제국의 서부가 아니고 수도로 말이오?

“그렇습니다.”

-아, 혹시 왕실의 병사들과 함께 이동하게 만들 생각이오? 하지만 분명 그곳의 병력은 모두 그대들의 국왕께서 출전시킨 것으로 아는데…….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다만, 그 또한 국왕 전하의 뜻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국왕의 뜻.

제아무리 내의를 짐작해 보려 해도 의미는 없으리라.

‘어쩌면 예지에 가까운 그 통찰력을, 범인이 알아차릴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그렇게 통신의 연결이 끝나고.

후작은 점차 꺼져 가는 마법구를 바라보며 굳은 눈빛을 남겼다.

* * *

“신성제국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현 상황을 짚는 목소리는 즐거움을 논하는 것처럼 태연자약했다. 하지만 정작 그 내용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제국의 공작이 죽고, 놈들은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지.”

찰랑-

연방제국의 황제는 꼬고 있던 다리를 바꾸며 입술을 핥았다.

그러자 복부까지 차오른 목욕물이 비명을 지르듯 크게 요동쳤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누구를 보내야, 놈을 죽여 버릴 수 있을까?”

“…….”

“그쪽부터 말해 보지 않으련?”

“…….”

목욕 시중을 들기 위해 대기하던 시녀들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런 그녀들의 눈은 모두 검은 안대로 철저하게 가려져 있었다.

“쯧.”

언뜻 기괴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모습에 황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죽거렸다.

“눈깔만 막아 둔 줄로만 알았거늘, 귓구멍까지 막힌 모양이군.”

물론 한낱 시녀 따위가 감히 황제에게 의견을 내비칠 수는 없다.

심지어 저 기괴한 안대를 차게 만든 것도 자신이었고.

그럼에도 변덕을 부리는 것은, 그만큼이나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그렇게 황제는 침묵 속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열기를 만끽했다.

잠시 후.

-황제 폐하. 회의의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그렇군.”

첨벙-

수행원의 목소리에 황제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시녀들이 다가오며 수건을 들이밀었다.

“폐하, 닦을 수건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입으실 옷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필요 없다. 알아서 하지.”

툭-

“……아.”

황제가 거슬리는 것을 치워 내듯 시녀의 손을 쳐 냈다.

그러자 수건을 들고 있던 시녀가 당황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때, 하필이면 시녀의 얼굴을 가리던 안대가 비스듬하게 어긋났다.

“……앗!”

갑작스레 쏟아진 빛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황급히 안대를 고쳐 쓰던 시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가슴팍이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황제의 육체였다.

“호오?”

……그리고 일순.

멈춘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두 눈이 마주쳤다.

“봤군.”

“폐, 폐하…… 그것이…….”

“건방지게 안대를 벗지 말라는 짐의 명령을 어긴 것도 모자라, 황제의 육신을 두 눈으로 본단 말인가.”

“하, 한 번만 자비를…….”

콰직!!

촤아악!

“꺄아악!”

살이 찢겨 나가는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시녀의 비명이 들렸다.

여전히 눈을 가린 다른 시녀들로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들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입술조차 벙긋 움직이지 않았다.

괜히 나섰다가는 자신의 목숨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것이었다.

‘사, 살려 줘…….’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

마치 지옥에 갇힌 듯한 공포심.

그녀들의 눈을 가린 안대는 황제의 명령인 동시에 생명을 이어 주는 동아줄이었다.

“나중에 알아서 치워 두도록.”

“……예, 폐하.”

황제는 그런 시녀들을 뒤로하고 욕실을 나섰다.

그러고는 여유롭게 몸에 튄 피를 닦아낸 뒤, 옷을 입어 나갔다.

이윽고 대전으로 도착하자 나열해 있던 귀족들이 고개를 숙였다.

“……하나 된 제국에 무한한 영광을. 카롯트의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보고하도록.”

“예, 폐하.”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제국의 서부를 감시하던 브레체 백작이었다.

“이번에도 놈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후로 통신이 끊어진 것을 보면 갈트 성까지 점령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상 범위 내에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기껏 내부까지 침입해 오고도 가만히 있는다라…….”

“역시 저희가 예상한 대로, 놈들의 선발대가 공작에게 큰 피해를 입은 것처럼 보입니다.”

“…….”

황제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어찌 가용했는지는 모르지만, 그쪽으로의 정보는 말 그대로 완전히 끊겼다.

상식적으로 쉽지 않은 일, 그렇게 제대로 된 정보가 전해지지 않기에 지금의 소리도 그저 예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초인들의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약을 삼킨 공작이 남긴 흔적.

그것을 이제 막 소드마스터에 오른 놈이 감당할 수 있었을 리 만무했다.

물론 공작과 흑마법사가 죽은 것은 예상외였으나 그만큼 착실하게 놈들의 세력을 짓이겨 놓았을 테니, 문제는 없었다.

“……한데 들려와야 할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군.”

“…….”

“분명 고대에 사용되던 디텍션 마법이라 했던가? 놈들의 진형과 숫자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마법의 완성은?”

“그, 그것이…….”

이번에 황제의 시선이 향한 곳은, 제국 마탑의 간부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고대 마법의 연구를 담당하던 학회장은 황제의 시선에 급히 고개를 숙였다.

“시, 실은 이론대로라면 진즉에 색적 마법을 개발하고도 남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습니다.”

“변수?”

“사실은…… 색적 마법을 연구하던 학회원이 마법의 정보와 함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원체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은 기억하지만 갑작스레 사라졌을 줄은…….”

“하.”

행방불명되었다고?

그리고 그것을 이제야 알았다고?

“분명 관련된 명령을 내린 것이 한 달 전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만?”

“소, 송구하옵니다!”

“여기서 네가 지껄여야 할 것은 사죄가 아니다.”

흠칫!

학회장의 몸이 떨리는 동시에, 황제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감히 제국 마탑에 소속된 주제에 의무를 저버리고 도망가다니 실로 건방지군.”

“그, 그렇습니다.”

“사라진 학회원이 고대 마법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했지. 찾아내라.”

“……!”

“나흘을 주지.”

어떻게든 찾아내서, 고대의 탐지 마법을 부활시켜라.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그렇지 못하면, 네놈들을 죽이겠다.

“…….”

애써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 있던 학회장의 머리 위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놈의 이름은?”

“놈의 이름은…….”

학회장은 늦을세라 재빨리 대답했다.

“레이튼……! 황실의 옛 수도 트레카에 살던 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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