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09화
광기(狂氣) (2)
“그래서.”
황제는 낮은 목소리로 싸늘하게 뇌까렸다.
“나는 분명 ‘결과’를 가지고 오라 했던 것 같은데.”
“소, 송구합니다.”
학회장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놈의 고서점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고대 마법의 마법진.
덕분에 일은 무탈하게 풀릴 것 같았으나,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제기랄…… 어떻게 해도 마법이 발동되지 않다니……!’
마법진은 정상적으로 발동할 것처럼 마력을 빨아들이다가도 금세 사그라져 자취를 감추었다.
혹시나 틀린 부분이 있는가 해서 수십 번을 재시도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그렇게 주어진 나흘 동안 결과라고 할 만한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학회장이 아니었다.
“시, 실은 학회에서는 마법진과 관련 정보를 확보하는 데까지는 성공하였습니다.”
“호오,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그렇습니다!”
최대한 그 공을 피력하는 데에 성공한 학회장이 말을 이었다.
“하, 하지만 딱 하나. 작은 문제가 있었기에 마법을 발동시키지 못했을 뿐입니다.”
“작은 문제?”
역시나 황제는 그곳에 관심을 두는 모양이었다.
‘사, 살았다.’
남몰래 반색한 학회장이 손에 든 연구서를 재빨리 펼쳤다.
그러고는 마법진이 해부된 페이지를 짚어 내며 문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저희가 마법 발동에 실패한 이유는 마력의 부족 탓이었습니다! 이곳을 보시면 마법진이 흡수하는 마력의 양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일정 수준을 넘기지 못하면 마법진이 발동하지 못하고 소멸해 버리는 것이지요.”
“마력의 부족이라.”
“하여 저희로서는 그것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시간이 있었다면 이를 개량할 수 있을 테지만…….”
“그렇군.”
황제는 입꼬리를 비틀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대전에 서 있던 마법사 중 한 명이 다가오더니.
학회장의 손에 들린 연구서를 빼앗아 들었다.
“헛……!”
“확인해 보도록.”
“예, 폐하.”
평범한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의 모습에 학회장이 당황했다.
그러나 마법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구서를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자가 한 말은 사실으로 보입니다. 요구하는 마력의 수준이 비정상적으로 높습니다.”
“쉽게 말하면?”
“평범한 마법사가 발동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테지요.”
“그렇군.”
“다만.”
그 순간, 로브 속에 가려진 눈매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올바른 수식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호오, 간단하게 말하면?”
“구성도 형식도, 모두 에스테반에서 공개했던 고대 마법과 유사한 부분이 있으나……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는 트리거가 모조리 빠져 있다는 뜻입니다. 애초에 마법을 발동시키지 못한 것은 마력의 탓이 아니었지요.”
“그렇군. 착각에 불과했다는 건가.”
“상대를 교묘하게 속이기 위한 가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 당신은 뭔데 이 대화에 끼어드는 것이오!”
다급히 소리친 것은 학회장이었다.
그는 새파래진 얼굴로 마법사를 향해 삿대질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 가짜라고? 그럴 리가 없다!’
저것이 자신들을 속이기 위한 장치였다고 하면, 이를 당당하게 과시한 자신의 목숨이 남아나질 않을 테니까.
애초에 그런 것이 방치된 연구실에 있을 리는 없었다.
“그렇군.”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자신들을 엿 먹이기 위한 것이 아닌 이상에야…….
“자네의 말이라면 확실하겠지. 르카고스 후작.”
“그렇습니다.”
“르, 르카고스 후작?!”
로브의 남성이 그 얼굴을 드러냈다.
연방제국의 두 대마법사 중 한 명이자…… 제국의 마법 전단을 관리하는 최고의 전투마법사.
그 이름을 들은 학회장의 얼굴에 경악이 번져 나갔다.
‘정말로 놈의 연구실에서 발견한 것이 가짜였다고……!’
하지만 황제는 그런 자신을 즐겁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진이 가짜였다니 아쉽게 되었군.”
“그, 그것이…….”
“레이튼이라 했던가?”
“그,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
“그렇다면 놈은 어디에 있지.”
“…….”
동시에 바닥으로 머리를 처박은 마법사들 역시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러나 앞장서서 그 행방을 말할 수 있는 학회원은 없었다.
놈이 에스테반으로 도망갔으며, 그 지식과 이론을 토대로 고대 마법을 부활시켰다는 추측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으므로.
물론, 어쨌거나 결과는 똑같았다.
푸푸푸푹!
“컥!”
“흐읍!”
“끄아아악!”
순식간에 나타나 마법사들을 꿰뚫은 검은 창.
이윽고 모든 학회원의 생명을 앗아 간 그것은 그림자 속으로 육신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피 한 방울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듯, 그렇게.
그것이 스스로의 미래를 저버린 자들의 말로였다.
“감히 짐의 명령을 어긴 죗값은, 그 하찮은 목숨으로 받아 가지.”
“…….”
끼이익-
그렇게 정적만이 남은 내부.
황제가 천천히 황좌에서 일어섰다.
“놈들의 내부 상황을 알아낼 방법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놈들의 건방진 태도를 두고 볼 수만도 없는 노릇이지.”
“…….”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틀어박힌 놈들의 병력을 꾀어내야겠군.”
검게 물든 황제의 눈이 길게 찢어졌다.
“슬슬 이 지루한 놀이를 끝낼 때가 왔다.”
그것은 새로운 국면을 암시하는 명령이었다.
* * *
에스테반이 서부의 성들을 점령하고 한 달여가 지난 시점.
철컥-!
“크, 큰일 났습니다!”
온몸이 땀에 젖은 마법사가 막사의 내부로 들어왔다.
조지와 내 시선이 그곳에 닿자, 마법사가 다급히 외쳤다.
“북부에서 남하하던 놈들의 병력이 국경지대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
일순, 조지와 내 시선이 강하게 얽혀들었다.
* * *
마탑에 잔류한 마법사들의 임무는 놈들의 병력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호기의 설치로 마법의 사정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지금.
남하하는 병력의 움직임은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보고하도록.”
-예, 전하.
연결된 통신 너머의 마법사가 침착하게 보고를 시작했다.
-북부의 대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오늘 아침입니다.
순간적으로 마법구 속에 흐릿한 영상이 비추었다. 남하하고 있는 놈들의 병력을 녹화한 영상.
그곳에 있는 병력들은 현재 에스테반이 점령한 곳이 아닌, 보다 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저 방향은.”
“……확실히 에스테반과의 국경지대가 맞닿은 곳이군요.”
“음.”
마법사를 대신하여 조지가 대답했다.
누가 보기에도 저 움직임은 에스테반을 노리는 움직임이었다.
-국경지대로 다가오는 숫자는 총 이십오만의 대병력입니다.
“이십오만.”
놈들이 마침내, 길고 긴 웅크림 속에서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조지가 나를 바라보며 날카롭게 상황을 짚어 냈다.
“……이쪽을 자극해서 움직이게 할 심산입니다.”
나는 그런 녀석의 진지한 대답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나를 억지로 몰아세우려 하는 노림수라고 할 수 있겠지.”
“벌써 한 달이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았고, 별다른 낌새도 없었으니까요.”
공성전을 위해 보낸 루크 공작은 죽었다.
그리고 큰 움직임이 없었으니, 적어도 놈들이 보기에는 필시 내가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리라.
문제는 이쪽이 계속되는 공격에도 너무나 쉽게 방어하고 있다는 점.
그렇기에 이번 역습은 우리를 뒤흔들기 위한 유인책임이 분명했다.
내가 초조해서 나오면 끌어내 잡고, 나오지 않는다고 하면 그대로 본국을 유린하겠다는 계획.
“예상대로라 해야 할지, 아니면 날카롭다 해야 할지…… 역시나 이런 식으로 나오는군.”
“……즉시 회군하셔야 합니다.”
“음?”
그 순간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제4 기사단장 브롬이 입을 열었다.
나는 녀석을 쳐다보며 눈썹을 까닥였다.
“회군해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브롬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상대는 이십오만의 대병력입니다. 지금쯤 왕실은 놈들의 소식으로 발칵 뒤집혔을 터입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삼만의 선발대는 국왕 전하께서 손수 이끄시는 정예병입니다.”
“급한 불이라도 끄기 위해 일단은 회군을 결정하자는 건가?”
“그렇습니다. 이미 내부에서는 회군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수가 어지간히 많아야 할 말이지. 이십오만이면 당장 에스테반의 전 병력을 다 합치더라도 모자란 숫자였다.
당연히 이를 방어하리란 불가능.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녀석은 더욱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상황은 총력전으로 기울었습니다. 놈들의 반격이 결정된 이상,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것이 네 의견이군.”
“……이 순간만큼은 공국의 후계자인 ‘브라함’이 아닌, 왕실 제4 기사단으로서 간청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군. 실로 합리적인 생각이야.”
사적인 감정을 담지 않은 조언.
지극히 현실적인 말이었다.
애초에 연방제국에 복수하기 위해 투신한 이가 녀석들을 앞에 두고 회군을 청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절절히 전해졌다.
‘그건 오롯이 에스테반을 걱정하는 의미에서 나온 목소리라는 뜻이지.’
나를 따르기로 한 지 얼마 안 됐음에도 이런 모습이라니.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처음 소식을 들고 왔던 마법사가 긴장한 채로 서 있었다.
“통신의 신호를 변경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어디로 연결하면 되겠습니까?”
“왕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우우우웅-!
마나를 움직이는 기척과 함께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이내 원하는 상대가 통신을 받았다.
-국왕 전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소식은 들었겠지, 비도르 후작.”
-애석하게도 듣기 싫어도 들려오게 되더군요.
통신 너머의 후작은 너스레를 떨듯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거기엔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남아 있었다.
-……이십오만. 급히 병력을 끌어모으더라도 턱없이 모자란 숫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힘든 수비가 되겠지요.
“그렇겠지.”
-이미 예상하셨을 테지만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회군을 결정하실 생각이십니까?
“회군이라…….”
부드러운 후작의 물음에, 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물론 그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당연한 것을 묻는군. 회군은 없다.”
-역시나 그러셨군요. 알겠습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전하!”
그 답에 브롬이 대경하여 외쳤다.
“분명 어려운 수비가 될 거라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본국을 내버려 두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이 흐름대로라면 회군을 결정해야 정상이었다.
자신들이 없다면 놈들의 병력을 막아 낼 방도가 없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아마 녀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으리라.
……하지만.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다. 단지 본국의 병력은 그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움직일 뿐이지.”
“하나!”
“이해할 수가 없군. 어째서 아국이 놈들의 공격을 막아 내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거지?”
“예?”
갑작스러운 물음에 브롬이 당황했다.
반대로 나는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이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에스테반의 저력이 이곳에 배치된 이들뿐이라 생각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