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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210화 (210/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10화

예언 (1)

“…….”

그것은 브롬으로서는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아니, 그 누구도 이십오만의 대병력을 앞에 두고 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을 테지.

나 역시도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라.”

“…….”

굳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브롬에게. 그리고 결단을 기다리고 있을 비도르 후작에게.

“에스테반은 절대로 지지 않는다.”

“……!”

……라고.

다만 그렇게 확신을 심어 줄 뿐이었다.

-그럼 결정되었군요.

통신 너머로 후작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국의 수비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루기 전까지 이곳은 무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맡기겠다.”

-전쟁이 끝난 후에 뵙겠습니다.

답은 필요치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후작과의 통신을 끊었다.

그러고는 브롬과 조지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놈들은 그것이 자신들을 위한 승부수라 여기는 모양이다만…….”

“…….”

“오히려 이쪽이 더 수월해지겠군. 놈들의 주력급 병단 하나가 비워졌다는 소리니까.”

“!!”

“그렇다면 원정군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준비하면 된다.”

마지막 순간.

기다리는 그때가 다가올 시기까지.

“놈들의 심장부를 짓이길, 최후의 전투를 위해.”

* * *

국왕이 회군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소식은 에스테반의 내부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무려 삼만의 정예병과 소드마스터. 그 빈자리는 무엇보다도 쓰라릴 것이 분명했기에,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상황을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물자를 실어라!”

“동부까지 이송하려면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후작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병사들은 물론이고.

“수상 각하, 전군이 출정할 준비가 끝났습니다.”

“음.”

수놓은 듯 나열한 은빛 갑주의 기사들까지…… 오직 그 끝에 승리라는 영광이 있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저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국왕 전하께서 이루신 에스테반이다.’

비도르 후작은 날 선 기세의 병사들을 바라보며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오롯이 그 남자가 이루어 낸 노력의 결정체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후작으로서는 조금의 걱정도 들지 않았다.

신성제국에서 보낸 지원군이 도착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먼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전쟁의 준비로 어수선한 와중에 심려를 끼치는 것이 아닐지 걱정되오.”

성기사와 사제들을 직접 이끌고 온 인물.

그는 놀랍게도 신성제국의 대사제인 가르덴 대사제였다.

“아닙니다. 오히려 곧장 전장으로 향하게 되어서 송구할 따름이지요.”

하지만 비도르 후작은 이미 예상하였다는 듯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며 이후의 일을 정리할 뿐이었다.

“직접 지원군을 이끌고 오셨다는 말씀은, 곧 그들과 함께 전장으로 나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전투는 그대들의 지시를 따르되, 세세한 움직임은 효율을 위해 직접 지휘하겠소.”

“예, 그렇다면 그 부분은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정면에 나설 수는 없다는 점을 부디 양해해 주시오.”

“충분합니다.”

애당초 사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후방의 지원뿐.

거기에 성국에서 후작위(位)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 대사제가 정면에 나섰다가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었다.

물론 이 역시도 예측 가능한 범위 내의 움직임이었다.

“전장에서 사제가 발휘하는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는 알고 있습니다. 도리어 그 덕분에 아군의 사상자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무척이나 감사한 이야기이지요.”

“……사상자를 줄일 수 있다면.”

“그렇습니다.”

대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후작과의 대화에서 자그마한 의문점을 느꼈다. 정확히는 이전의 통신 때부터 느끼던 근본적인 궁금증이었다.

“배교자들의 대병력이 에스테반을 노리고 다가온다는 사실을 들었소. 그 규모와 시기까지 모두.”

“예, 사실입니다.”

“하나 그대들은 그 이전부터 우리 성국의 지원군을 수도로 불러냈지. 마치 이런 일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또한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그렇게 느껴지셨습니까?”

“게다가 방금의 말투도 그러했소.”

대사제의 날카로운 눈빛이 후작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대는 성국의 지원군 덕분에 놈들을 막아 낼 수 있을 거란 말이 아닌, 오직 사상자를 줄이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소.”

보통은 대병력을 막아 낼 일을 먼저 걱정해야 정상이거늘. 그 시선은 이어질 병력의 희생만을 향해 있었다.

궁금증의 이유는 그것이었다.

처음부터 패배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 어지간한 자신감이 아니라면 시도조차 못 할 언행이오. 놈들의 병력 수준을 들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태도지.”

“하하. 그렇군요.”

“하면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비로소 대사제는 통신을 나눌 때부터 느끼던 의문점을 입에 담았다.

“그대들은 정녕 이 전쟁의 승리를 확신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허.”

망설임 없는 긍정에 대사제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마주한 후작의 눈에는 티끌만 한 부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분께서 이루신 것들. 나는 그 위대한 행보를 의심치 않는다.’

오직 그가 승리를 의심치 않았기에. 또한 자신 역시 그렇게 믿고 있었기에.

“그분께서 그리 말씀하신 이상. 에스테반은 패배하지 않습니다. 결코.”

마치 정해진 예언을 말하는 것처럼.

다가올 영광을 입에 담기를 주저하지 않은 것이다!

* * *

두두두두두-!

병사들의 발굽 소리와 함께 붉은 연방제국의 깃발이 펄럭였다.

또한 에스테반과의 국경지대였던 초목을 지나는 그들의 기세는.

금방이라도 일대를 불태울 것처럼 흉흉했다.

총합 이십오만의 대병력.

그들은 움직임만으로도 천하를 진동시킬 만큼, 가공할 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벨리알 공작 각하.”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인물은 다름 아닌 벨리알 공작!

제국의 세 공작 중 한 명이자, 대 연방제국의 총사령관이었다.

수하는 공작이 이끄는 말의 옆구리로 붙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이곳부터는 놈들의 땅입니다. 앞으로 하루하고 반나절 거리에 첫 번째 관문이 보일 것입니다.”

“그렇군.”

“하나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진군을 멈추고, 날이 밝는 대로 이어 가심이 어떻겠습니까? 그때 동안 정찰대를 움직여 놈들의 상황을 파악게 하겠습니다.”

“음.”

벨리알 공작은 해가 저무는 붉은 지평선의 너머를 바라보았다.

높은 산맥이 주를 이룬 이곳은, 평상시보다도 빠르게 해가 지고 있었다.

게다가 한겨울의 시기가 겹쳤으니, 이토록 이른 일몰도 납득 갈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수하는 공작의 시선이 태양을 향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각하?”

“……거뭇한 바람이 부는군.”

“예?”

“아무것도 아니다.”

“…….”

평소와 다른 그 모습에 수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긴 시간 그와 함께해 왔음이 분명했으나, 명백히 낯선 모습이었다.

‘설마 긴장하셨나?’

하지만 공작의 긴장한 모습은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는 북부의 야만족들과 대치하는 상황에서도 냉정함과 특유의 예리함으로 전쟁을 이끌어 갔던 총사령관이었으니까.

애당초 고작 이따위 약소국과의 전쟁에서 긴장할 리는 없다는 소리였다.

스윽-

“멈춰라.”

다행히 그 낯선 모습은 잠시였는지.

이내 공작이 손을 들어 올리며 평소와 같이 명령을 하달했다.

“공작 각하의 명령이 떨어졌다! 멈춰라!”

“멈춰라!”

이히히히힝!

그러자 순식간에 진군을 멈춘 병사들.

그 절도 있고 군기 가득한 모습을 확인한 공작이, 이내 수하를 바라보았다.

“병사들이 묵을 진지를 확보하고 정찰대를 파견한다. 만에 하나라도 놈들이 습격해 올 가능성이 있으니, 보초를 세우는 것을 잊지 말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하루하고 반나절 거리에 놈들의 성이 있다 했던가?”

“그렇습니다…… 아!”

수하가 재치 있게 지도를 꺼내 들고 공작에게 넘겼다.

그러고는 성이 있는 위치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

“이곳이 놈들의 첫 번째 관문인 에덴 성입니다.”

“…….”

공작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국경지대와 인접한 성을 공작이 모를 리는 없었다.

병력의 규모와 성벽의 구조. 그리고 그곳에 비치된 수성용 발리스타의 개수까지.

솔직히 말하자면 의기양양하게 지도를 꺼내든 수하보다도 잘 알고 있으리라.

그럼에도 지도를 꺼내기를 기다린 것은. 다름 아닌 그 옆으로 있는 작은 ‘공간’ 때문이었다.

“이곳이 갈데르드 평야군.”

“예? 아, 그렇습니다. 놈들이 드워프들을 데리고 간 곳이지요.”

“현재 놈들의 국왕이 이끄는 병력은 움직이지 않고 있겠지.”

“본국에서 보내온 소식에 따르면 확실할 것입니다.”

이쯤 되자, 제아무리 눈치가 없는 인간이더라도 공작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혹 공작 각하께서는 이곳을 노리고 계십니까?”

“그래.”

공작의 주름진 눈이 길게 휘어졌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놈들이 훔쳐 간 연방제국의 땅……!

“하, 하지만 당장 이곳의 우선순위는 높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만…….”

“모든 만물은 연방제국의 것. 어차피 이곳 역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우리와 하나 될 테지.”

“그, 그렇습니다.”

“하나 그곳에 있을 드워프와 미스릴을 생각하면 쉬이 지나치기 어렵겠군.”

감히 허락도 없이 점거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징벌을 피해 가기 어려울 터나.

그곳에서 생산되고 있을 물건들을 생각한다면 빠르게 탈환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었다.

‘미스릴이란 중요한 전략 물자이니 말이야.’

물론 놈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그곳은 워낙 방비가 삼엄하여 밝혀진 정보가 하나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를 노리고 함정을 파 두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기껏해야 약자의 발악일 뿐이다.”

공작은 오만하게 고개를 들며 눈앞에 펼쳐진 군세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런 귀중한 땅을 가만히 놔두었을 리도 없다 해도 이 이십오만의 병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테니까.

“모든 만물은 하나 된 제국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단지 그 첫 번째 목표가.

갈데르드 평야가 될 뿐이었다.

“아아……!”

그리고 그것을 이끄는 것은, 벨리알 공작.

제국의 대병력을 이끄는 총사령관이자 소드마스터인.

‘……검성(劍聖)!’

대륙 제일이라 불리는 연방제국의 첫 번째 검이었다.

* * *

한편 그런 군세를 주시하고 있던 시선이 있었다.

“……이토록 먼 거리에서도 본능적으로 기척을 감지하는가.”

공중을 딛고 서 있음에도 한 점 흔들림 없는 움직임.

“과연 대단하군, 벨리알 공작.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은 육감이었다.”

로브 사이로 드러난 앙상한 손은, 줄곧 무언가를 갈망하듯 까닥여지고 있었다.

아마도 갈망하는 것은, 저들의 목숨일 테지.

“하지만 상관없다.”

온건파들을 이끄는 노마법사.

그의 몸을 휘감은 감정은 분명 분노였다.

그는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우웅-!

이윽고 노마법사의 몸이 흐릿해지다가 이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 그의 몸은 어느덧 지상으로 내려앉은 채였다.

본래라면 저들의 존재 따위는 그들 흑마법사들과 무관했다.

병력이 쳐들어왔다면 은신처를 옮기면 그만이었고, 자신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살아갈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곳은 자신들의 터전이 되어 줄 장소였고, 그가 만들어 준 자신들의 ‘존재 의미’ 그 자체였다.

만일 그런 소중한 장소를. 정녕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빼앗고, 이를 망가뜨리기 위해 온 것이라면.

“……감히 이 땅을 침범하고 유린하기 위해 온 자.”

노마법사는 온몸을 휘감은 분노를 느끼며 입을 열었다.

“내 모든 것을 바쳐 불사르리라.”

명백히 자신의 적이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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