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211화 (211/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11화

예언 (2)

짧은 하루가 지나고 야심한 밤이 찾아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지난 행군의 피로를 씻을 수 있는 안식의 시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이어질 전투에 잠 못 드는 긴장의 연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같은’ 감정으로 바뀌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까가가가각-!

“…….”

털썩-

무언가 기괴한 소음이 들려온다 느낀 순간, 병사들은 하나둘씩 자리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진지의 외곽에서부터 시작된 조용한 이변.

동시에 그 영문 모를 이변은, 빠른 속도로 권역을 뒤덮기 시작했다.

“뭐, 뭐야?”

“에스테반의 습격인가?”

그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자, 비로소 병사들도 소란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나 그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다, 달빛이…….”

사방에서 몰아친 어둠이.

“사라지고 있다…….”

이미 온 군대를 뒤덮고 사신의 낫처럼 드리운 상태였으니까.

까가가가각-!

“……!”

이전의 기괴한 소음은 산 자를 움켜쥐는 사신의 손길이었을까?

마치 그들 전체를 짓누르기라도 할 것처럼.

달빛이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은 그 공간은 점차 일그러지고 있었다.

한 줄기 빛조차 남지 않고 사방이 옥죄여지는 공포 속.

그 기이한 현상에 혼란은 순식간에 내부를 잠식해 나갔다.

“저, 저게 뭐야!”

“흐아아악!”

“도망쳐!”

혼비백산에 빠진 병사들이 본능이 이끄는 대로 자리를 벗어난다.

하지만 무저갱과도 같은 심연 속에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 앞이 안 보여!”

그저 같은 자리만을 쳇바퀴처럼 돌고.

절망을 느끼며 쓰러져.

또다시 넘어지고 넘어져, 심연 속을 헤매일 뿐…….

“……도망치려 해도 소용없다.”

노마법사는 그 전경을 시선에 담으며 뇌까렸다.

하지만 실상은 저들이 느끼는 것과 다소 괴리감이 있었다.

내리쬐는 달빛.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던 병사들은 처음부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서 있었으며. 내부를 휘어잡던 공포와 혼란은 온데간데없이 정적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들이 느끼는 혼돈과 심연. 그리고 두려움.

그 모든 원초적인 감정들은 애초에 스스로가 만들어 낸 공포에 기인한 것.

……그래.

놈들은 지금 심연이란 환각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들은 이 자리에 선 순간부터. 남자의 정신 지배에 걸려 있던 것이다!

-네 조국이 될 땅을 지켜 내라.

그것이 군주께서 내리신 명령.

“그것이 감히 이 땅에 발을 들인 네놈들에게 어울리는 형벌이다.”

콰직-!

그 모습을 고고하게 바라보던 노마법사가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권역의 영향 속에 있던 병사들의 몸이 발작하듯 꿈틀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환각 속에 사로잡혀 있던 그들의 정신이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네놈이었군. 이 소란의 원인이.”

“……!”

“이전에 느꼈던 기척은 착각이 아니었나.”

그 순간 등 뒤에서부터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섬광과 같은 칼날이 노마법사의 목을 노리고 쏘아졌다.

쑤우욱!

서걱-!

그리고 반응할 틈도 없이 잘려 나간 노인의 목.

검을 휘두른 주인공은 이변을 느끼고 움직이던 벨리알 공작이었다.

“……쯧.”

그러나 노리던 목표의 목을 베어 냈음에도 벨리알 공작의 좁혀진 눈매는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분명 잘리는 느낌이 있었다. 실제로 나는 네놈이 반응하지 못한 순간에 목을 베어 냈지.”

“…….”

“하나 놀랍게도 그 거무죽죽한 기척은 사라지지 않았다.”

벨리알 공작의 날카로운 눈빛이 허공을 훑었다.

“그것이 저 병사들에게 걸려 있는 사술(邪術)의 정체더냐?”

“틀렸다.”

스스스스스-

공작의 눈빛이 닿은 곳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놀랍게도, 목이 잘렸을 것이 분명한 노마법사가 그곳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당연히 목에는 어떠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채였다.

“예상보다 더욱 멀쩡한 모습이군.”

조금의 상처도 없는 그 모습에, 벨리알 공작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처음부터 베이지 않았던 것이렷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군. 그대가 베어 낸 것은 마력으로 만든 사역마에 불과하니.”

“그렇다면 말은 빠르겠지.”

그 익숙하리만치 추악한 힘.

그리고 자신들을 공격한 모습까지.

“그래. 네놈이 바로 그 온건파의 수장이었군.”

북부에 있던 공작은 황제가 흑마법의 힘을 빌리고 있다는 사실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물론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모를 리는 없었다.

이번 전쟁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지 오래였으므로.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황실에 바퀴벌레처럼 들끓는 흑마법사들의 기운을 익히 알고 있었다는 점과.

눈앞의 노인에게서는 그것을 초월한 힘이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간단했다.

‘이미 한참 전에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다.’

신성제국의 대응을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역시나 에스테반을 돕고 있었나.

공작의 눈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럼에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그 힘이 비정상적으로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제아무리 경지에 이른 마법사라고 해도 이십오만의 병력 전체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 하물며 그것이 현자라 불리는 마기아의 대마법사라 하더라도.”

“…….”

“헌데, 네놈은 대체 무슨 사술을 사용한 거지?”

“어찌 그것이 궁금하지? 어차피 그대는 나를 베어 내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것밖에 하지 못하잖는가.”

“대답해 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군. 명료한 답이다.”

스윽-

검을 든 공작의 오른팔이 천천히 당겨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후에 듣지. 답은 시체를 해부한 뒤에 확인해도 늦지 않으니까.”

콰과광!

공작의 신형이 흐릿해짐과 동시에 내디딘 땅이 폭발하듯 갈라졌다.

촤좌좌좌좍!

어느덧 나타난 공작으로부터 수십 갈래의 검격이 쏘아졌다.

우우우웅-!

이번만큼은 공격을 허용할 생각이 없는지 노마법사는 손을 뻗어 마법을 사용했다.

콰과과과광!

챙그랑!

“흡!”

공작과 노마법사의 사이를 가로막은 검은 보호막.

하지만 언뜻 검격을 흡수할 것처럼 보였던 그것은 몇 차례 지나지 않아 깨어져 나갔다.

그리고 이어진 검격이 노마법사를 덮쳤다.

촤좌좍!

“큭…….”

“역시나 그랬군!”

사방으로 튀는 피.

순식간에 넝마가 되어 버린 노인의 몸을 보며, 공작이 콧잔등을 씰룩였다.

“어째서 공격을 피하지 않았지? 정말로 공격을 막을 생각이 있었다면 단거리 텔레포트로라도 몸을 빼냈을 텐데?”

“…….”

“아니, 사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 옳겠지.”

충격에 한쪽 무릎을 꿇은 노마법사가 침묵했다.

반대로 공작은 구덩이에 빠진 사냥감을 보는 것처럼 여유롭게 입술을 비죽였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여유로웠다.

“……이십오만의 병력에 사술을 걸기 위해서 이미 모든 마력을 소모했을 테니까.”

적은 모든 마력을 소진한 마법사.

그렇다면 백병전의 달인인 소드마스터가 이기지 못할 리는 없었으므로.

“그렇다곤 해도 신기할 노릇이군. 저 사술은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대마법사에게 허용된 수준의 마법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

“뭐, 계속 그렇게 침묵을 이어 가더라도 상관없다.”

스릉-

“앞서 말했던 것처럼. 시체에 그 답을 물으면 될 뿐이니까.”

공작이 노인의 목에 드리운 검을 찔러 넣었다.

……아니. 찔러 넣으려 했다.

“……!”

하지만 목에 작은 생채기만을 남긴 검은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그것은 움찔거리고 있는 그의 신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짓을 한 거지?”

공작이 눈동자만을 돌려 다급하게 노인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노마법사는 상처가 만연한 몸을 일으켜 공작과 시선을 마주했다.

“……네놈.”

“확실히 그대의 말대로 나는 모든 마력을 사용했다. 모아 둔 흑마법의 힘 역시도 모두.”

오직 복수만을 위해 음차원의 마나를 모았던 그때처럼.

단지 이번에는 조국이 된 땅을 위해 힘을 모아두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이십오만의 병력을 농락했던 정신 지배의 정체.

“그러니 지금 내게 남은 것은 텅 비어 버린 심장뿐이지.”

“…….”

“하나 그대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군.”

노마법사가 제 심장께를 가리키며 차갑게 말을 이었다.

“마법사에게는 마력이 없어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

그 말에 재빨리 머리를 굴리던 공작의 표정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신으로.

그다음에는 의문으로.

마지막으로. 최후에 이르러서는 경악으로.

“그, 그건…….”

“그래.”

마력이 없어도 마법을 사용할 마지막 수단.

“마력 역류라는 부작용과 쌓아 둔 경지를 잃을 각오로, 대기의 마력을 흡수하는 것이다.”

“이, 이런 미친……!”

담담하게 말을 잇는 노마법사의 머릿속으로 작은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마탑주께서는 그것이 평생에 걸친 족쇄가 되더라도. 정녕 그분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을 것이오?

언젠가. 마탑주가 심장에 걸고 충성을 맹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렇게 묻는 자신의 말에 상대는 망설임 없이 답했었지.

-그렇소. 그것은 내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사명이니까.

다만 그것이 이제 자신의 차례가 될 뿐이었다.

자신의 조국이 되었고, 자신의 사명이 되었을…… 그뿐만인 이야기였다.

스스스스스스-

“그리고 이것이 나의 답이오.”

저벅-

“다, 다가오지 마……!”

흐릿해지는 시야를 뒤로하고, 노인은 공작에게 손을 뻗었다.

이윽고 육신에 남은 한 줌의 마력까지 모조리 불태워.

마지막 마법을 그곳에 남겼다.

“크윽, 대체 무슨 짓을……!”

“…….”

공작의 이마 위로 선명한 검붉은 낙인이 새겨졌다.

그리고 노마법사의 손등에도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것을 주름진 손으로 쓸어내리던 노인은, 그제야 비로소 환히 웃을 수 있었다.

“그대를 직접 상대하는 것은 예상 밖의 이야기였지만, 덕분에 잘되었소.”

이 또한 사명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땅의 안위와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서라도.

‘나의 주군이시여.’

이것으로 우리가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라도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스스스-

“잘 있도록.”

이윽고 품에 숨겨 두었던 공간 이동 마법의 스크롤을 찢었다.

그러자 곧 그 육신은 흐릿해지며 공간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십오만의 병력을 가두었던 심연까지도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공작의 이마에 남은 낙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으아악……! 히, 힘이…… 내 힘이 사라지고 있어……!”

그것은 양면의 저주.

자신의 힘과 상대의 힘을 동시에 봉인하고 억제하는, 최후의 마법이었던 것이었다.

* * *

공작이 싸늘하게 물었다.

“피해는?”

“…….”

그 분노에 찬 물음은 이번 사태에 대한 격노가 아니었다.

언뜻 히스테릭과도 같다고 수하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유를 모르는 수하로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우려만이 앞설 뿐이었다.

“사, 사망자는 없습니다. 다만 병사들의 사기가 급감했으며, 일부는 사술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혼수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피해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대략 오만의 병사가…….”

“…….”

한순간에 오 분의 일이나 사라져 버린 전력. 공작은 손에 든 칼자루를 꽉 쥐며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손아귀에서는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본래라면 가루가 되어 흩어졌을 검도. 허약한 듯 부르르 떨리고 있는 몸도 명백히 이전과는 달랐던 것이었다!

“감히…… 감히 이 나를…….”

일개 평기사나 다름없어진 육신의 힘.

스스로의 처지를 이해한 공작은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이를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은, 이 꼴을 만든 ‘놈’을 죽여 힘을 되찾는 것뿐이었다.

“……병력을 움직여라. 날이 밝는 것을 기다리지 않겠다.”

“가, 각하…….”

“명령이다!”

“아, 알겠습니다!”

노호령을 들은 수하가 급히 자리를 떠나갔다.

그리고 외부는 진군의 준비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흑마법사 주제에…… 감히…….”

하지만 공작의 핏발 선 눈은, 여전히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의도치 않은 이 상황 속에 놀아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나의 답이오.

그런 공작의 머릿속으로, 지워지지 않는 환청이 들려왔다.

심연의 저주.

그 영향은 단순히 가볍지 아니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