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212화 (212/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12화

예언 (3)

드워프들에 의해 관리되어 온 갈데르드 평야.

그곳은 더 이상 이전처럼 방치되고 버려진 땅이 아니었다.

허리께를 감싸던 이름 모를 잡초들은 말끔하게 관리되어 전경을 해치지 않았으며. 요새를 중심으로는 수도까지 이어지는 넓은 도로가 자리했다.

“드디어 오는가…….”

말인즉.

넓어진 시야 사이로 적군의 병력이 오는 것쯤은, 얼마든지 확인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이십일 만. 혹은 이십만이 좀 안 되어 보이오. 그자가 놈들의 병력을 성공적으로 줄인 것이 틀림없군.”

“예. 아무래도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비도르 후작은 간밤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의 공포를 증폭시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것은, 오직 경지에 이른 흑마법사인 그만이 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크게 다쳐서 돌아온 노마법사. 즉시 대사제를 불러 상처를 치료하게 했으나, 아직 정신이 깨어나지 못한 그였다.

때문에 작전의 성공 여부를 묻지는 못했다.

하지만 저 광경을 보면 당초 원하던 바를 이뤄 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나 여전히 이십만에 가까운 병력이지.”

반대로 이곳. 평원의 요새에서 수용 가능한 인원은 고작 일 만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직접적으로 전투에 나설 수 없는 드워프와 사제를 포함한다면 팔천을 겨우 넘길 수준.

명백히 이쪽의 약세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상관없습니다.”

“음?”

아니, 그딴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전쟁을 좌우하는 것은 숫자라는 절대적인 강함이라고?’

그렇지 않다.

절대적인 강함이라는 것조차 결국 누군가의 잣대로 판단한 것.

‘그렇다면 에스테반이 그 가치관을 깨부숴 주겠다.’

그것이 자신이 그분을 대신하여 이곳에 서 있는 이유였으니까.

“놈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비도르 후작은 굳은 표정의 대사제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시작은 가볍게.

먼 길을 돌아온 손님들을 위한, 선물을 보내 줄 차례였다.

* * *

척-! 척-! 척-!

고작 한 걸음을 내디딘다 하더라도. 대병력이 움직이는 위엄은 천지를 울리고 만물을 긴장케 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병사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각하, 진군으로 누적된 병사들의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슬슬 쉬게 하고 진군을 이어 가시는 것이…….”

“닥쳐라!”

“하, 하지만 이대로 전투에 돌입하면 그 피해 가…….”

“닥치라 했다! 이쪽은 이십만이 넘어가는 제국의 대군이다! 고작 약소국의 병사들 따위가 피해를 입혀 봐야 얼마나 큰 피해가 있겠느냐!”

“…….”

공작의 서슬 퍼런 분노에 수하가 몸을 움츠렸다.

하루가 지났음에도 공작의 분노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할지…… 영문 모를 조급함과 격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당연히 내막을 모르는 수하로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좋지 않다. 벌써 휴식도 없는 진군이 이틀째 이어지고 있어.’

단지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공작의 말이 맞았다.

비단 이곳 국경지대 인근뿐만이랴? 이십만의 대군이라면 놈들의 전 국토를 짓이기고도 남을 숫자였으니.

하지만 이 모든 불안감의 원인은, 전날에 있었던 사태에 있었다.

‘고작 마법 하나에 사 오만의 병력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하물며 아직 깨어나지 못한 인원을 이송하기 위해 병력까지 낭비하고 있다.’

일이천이라면 모를까, 그 병력이 수만이라면 버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당장 놈들이 준비한 무기가 이것이 끝일 리 없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불안감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기가 떨어진 병력들이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거늘…….

‘대체 공작 각하께서는 어찌 이리도 초조해하시는가.’

하지만 이 전투에서 벨리알 공작의 명령은 절대적.

결국 그의 뜻대로 병사들은 진군을 이어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던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

“저건!”

“요, 요새라니…… 대체 어떻게…….”

시기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없어야 정상인 땅 위에 세워진. 갈데르드 평야의 거대 요새 앞으로.

“저 거대한 규모와 해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삼중으로 쌓인 벽은 대체…….”

“고작 이년 사이에 저런 것을 만들었단 말인가?!”

병사와 기사들은 눈앞에 있는 것을 보고도 믿지 못했다.

특히나 미스릴 광산을 먼저 틀어막겠다는 공작의 계획을 알고 있는 지휘관들은 더더욱.

‘설마 드워프들이 만든 건가? 놈들의 기술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한눈에 보기에도 여간 단단한 성이 아니다.’

‘어쩌면 저곳을 점령하는 데에만 수일을 소모할 수도…….’

물론, 그러한 동요에 공작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은 당연했다.

그 순간이었다.

“엇?!”

“저게 뭐지?”

문득 멍하니 요새를 바라보던 그들의 눈으로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점인가 싶더니, 이윽고 점점 가까워지는 수많은 무언가가…….

“……그, 그리폰?”

슈우우우우웅!

“뭔가가 떨어진다!”

“대체 어째서?!”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상공을 날아오던 그리폰 무리가 발톱으로 쥐고 있던 무언가를 병력의 머리 위로 떨어뜨렸다.

그러자 정체 모를 그것이 피할 틈도 없이 그들을 덮쳐 왔다.

콰콰콰쾅!

“끄억!”

“이런 제길!”

“괘, 괜찮은가!”

운 없는 연방제국의 병사들 몇 명이 이에 휘말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이를 주시하던 그리폰들은 다시금 몸을 돌려 왔던 장소로 돌아갔다.

그제야 병사들은 날아든 그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 바위?!”

그리폰이 이런 곳에 있는 것도. 하물며 저토록 많은 숫자인 것도 황당하거늘.

돌연 바위를 내던지며 비웃듯 사라지는 모습은 어떠하랴?

병사들은 당황스러움에 대응할 생각조차 못 하고 멍하니 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

“또 온다!”

하지만 멍하니 있기도 잠시.

요새가 있는 방향에서 다시금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찬가지로 발톱에는 바위 같은 것을 잔뜩 들고 있는 채였다.

물론 이번에도 같은 수법에 당해 줄 공작이 아니었다.

“마법 전단은 바위가 떨어지는 곳으로 방어 마법을 펼쳐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우우우웅!

명령을 들은 마법사들이 재빨리 방어막을 펼쳤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곳을 향해 떨어지는 바위들.

콰콰콰콰쾅!

“막았습니다!”

마치 지붕처럼 덧씌워진 방어막 위로 바위가 터져 나갔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으나, 다행히 피해는 이전보다 훨씬 적었다.

문제는 이번에 터진 것이 바위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퍼퍼퍼펑!

화르르르륵!

“포, 폭탄!”

“기름이 담긴 보자기가 묶여 있다! 조심해!”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솟아나자 병사들이 기겁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허공에 설치된 방어막의 형태는 반구형……!

촤악!

화르르르륵-!

“제, 제기랄!”

빗물이 떨어지듯 그곳을 타고 넓게 퍼진 기름 위로 화염이 옮겨붙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화염의 비가 내리는 것처럼.

주변에 있던 병사들의 몸은 반응할 틈도 없이 불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살려 줘!”

그 처참한 지옥도에 공작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무얼 하는 거냐! 방어막 탓에 오히려 기름이 퍼져 나가고 있지 않으냐!”

“죄, 죄송합니다!”

“방어막을 해제하고 수속성의 마법을 사용해라! 어서!”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인원들은 하늘로 날아올라서 저 그리폰을 떨어뜨려!”

“예!”

환수종 몬스터인 그리폰이 인간을 따른다는 말은 들어 본 적 없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이 상황은 명명백백했다.

놈들이 지금 저 요새로부터 명령을 받고 움직인다는 사실만큼은.

“놈들이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제기랄!”

그리고 그리폰들은 또다시 요새 방향으로 사라져 갔다.

아니, 이번에는 완전히 그들을 농락하는 것처럼, 아예 성벽 위에 올라서서 부리로 깃털을 다듬고 있었다.

“감히!”

쾅!

와르르르-

분노에 찬 공작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 발길질에 맞은 애꿎은 나무상자들이 쓰러졌다.

“당장 수색대를 보내라! 감히 연방제국의 병력을 농락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 * *

상황이 일단락된 이후에도 혼란은 남아 있었다.

놈들이 어떻게 몬스터를 길들였냐는 것은 둘째 치고 그런 하찮은 공격에 예상외의 피해가 막심했던 탓이다.

“……하필이면 보급품에 불이 옮겨붙었군.”

“식량이 든 수레가 절반 가까이 타 버렸습니다.”

이십만이 넘는 원정군의 대병력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만한 보급품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것이 절반 가까이 타 버렸다.

하물며 빠른 이동을 위해 보급품을 최소한만으로 들고 다니던 그들로서는, 뼈아픈 출혈이나 마찬가지였다.

‘……본래라면 현지에서 약탈을 통해 조달하려 했지만.’

공작의 수하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았다.

겨울이 지나지 않은 탓에 황량하게 비어 버린 평야. 이곳에는 도무지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아끼고 아껴도 열흘 치 정도인가…….’

이전처럼 넉넉하게 배급을 이어 간다면 아마도 닷새.

그나마 발견되는 거라고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열매 몇 개가 전부.

놈들이 도사리고 있는 저 단단한 성벽을 넘기 전까지는 마땅한 식량을 얻을 수 없다는 소리였다.

“수색대가 귀환하였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골머리를 썩히는 사이.

급히 보낸 수색대의 일원들이 요새를 살피고 돌아왔다.

“보고드립니다! 요새의 후방은 비교적 성벽이 낮고 방비가 약하나, 지형이 가파르기에 그곳을 뚫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지형이 가파르다고?”

“그렇습니다. 산맥과 이어진 탓에 험준하고 바위가 많아, 마법사의 도움이 없다면 병력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마찬가지로 양쪽 측면도 해자와 지형지물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

본래라면 지형지물은 큰 문제가 없다.

이쪽에는 일손이 무려 이십만이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놈들의 방해를 받더라도 해자를 메우거나 돌을 깎아 내기엔 충분했다.

다만 문제는…….

“하필이면 보급품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공사를 진행할 여유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점령을 위한 정면 돌파뿐이라는 뜻인가.”

하지만 그마저도 길목이 좁아서 한번에 많은 병력을 보내기가 여의치 않았다.

“현재 상황에서는 숫자가 많다 한들 결국 피해는 가중될 것입니다.”

“놈들은 수비의 입장이고, 우리는 공성의 입장이니까요.”

그들이 유리한 것은 압도적인 병력을 토대로 짓누를 때의 이야기.

예상치 못한 복병이 이곳에 숨어 있던 것이다!

“그러니 구태여 이런 곤란한 요새를 점령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상황을 살피는 동안에도 공작의 입장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돌파한다.”

“……!”

단단한 삼중의 성벽?

한 곳밖에 허용하지 않는 공격 범위?

그런 것들은 이 이십만의 병력이라면 충분히 메우고도 남았다.

“제아무리 단단하고 잘 지은 성벽이라도 마법 공격이 지속으로 가해지면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병력을 밀어 넣으면 될 뿐이지.”

공작은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말을 이어 갔다.

반대로 논의를 위해 모인 기사들은 그 발언에 놀라며 몸을 떨었다.

“서, 설마 피해를 받더라도 억지로 점령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일만이든 이만이든.

삼만이든 오만이든.

얼마가 소요되더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남은 병력이라면, 언제든지 에스테반의 본진인 수도까지도 타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느껴진다!’

가려진 이마 속.

자신에게 이런 치욕을 남긴 ‘그놈’의 기운이 바로 저 앞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놈을 잡지 않으면 이 저주를 풀 수 없는 바.

그에게 이곳을 버리고 지나친다는 것은, 처음부터 상정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다!

‘반드시 죽여 주마, 흑마법사!’

공작의 두 눈은 더 이상 흰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붉어져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