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13화
예언 (4)
“후작님! 드디어 놈들이 움직입니다!”
“…….”
꾸욱!
막사 내부에 있던 비도르 후작은 기사의 보고에 주먹을 꽉 쥐었다.
결전의 날.
드디어 놈들의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직접 가 보겠네.”
“예, 알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그렇게 기사의 안내에 따라 성벽으로 나가자, 개미 떼처럼 몰려든 병력 사이로 일천의 인원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모두 로브를 입고 있다.
“……마법사군. 저것이 놈들이 자랑하는 마법 전단인가.”
“그렇습니다.”
호위를 거느리고 다가오는 그들은 명백히 마법사였다.
그 숫자는 저 이십만의 군세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었으나, 전 인원이 마법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위협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마법사들 역시 그 사실을 아는지, 위풍당당한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기사로서는 우스울 따름이었다.
“방비를 전혀 갖추지 않았군요.”
“으음.”
“이토록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 놈들은 아직 에스테반이 가진 석궁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게도 그리 보이는군.”
아마도 앞선 원정군이 정보를 완벽하게 감추는 데 성공한 모양이리라.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던 기사가 은밀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지금이라면 저들의 사분지 일 정도는 죽일 수 있을 것입니다. 병사들에게 기관 석궁을 발사케 할까요?”
하지만 그 물음에 후작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화살을 쏘지 말고 원하는 대로 하게끔 놔두게.”
“예? 하지만 놈들이 노리는 것은 필시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일 터입니다.”
“괜찮네.”
“허, 하나…….”
제아무리 삼중의 성벽이라도 하나가 무너지고 시작한다면 불리한 형국을 맞이할 터.
특히나 그 수가 적은 에스테반측이라면 더욱.
그런데도 후작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쪽이 가진 무기를 드러낼 거라면, 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나을 테니까.”
마치 다른 무언가를 노리는 것처럼.
저들보다 좋은 먹잇감이 다가오리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후우우우우우웅!
“……시작되는군.”
콰과과과과광!
그 순간 급격한 대기의 변화와 함께 마법사들의 공격이 성벽을 강타했다.
순식간에 치솟는 폭발의 섬광과 성벽의 파편들!
발치에서부터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쿠르르릉-!
“……어디, 좋을 대로 해 보게나.”
그러나 그 순간에도 후작의 입꼬리는 내려가지 않았다.
성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말이다.
한편.
콰르르르릉-!
“성공하였습니다.”
마법사의 차분한 목소리에 공작은 성벽을 바라보았다.
피어오르는 연기.
마법 전단의 총공격을 받은 성벽은, 그 일부가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말 그대로 ‘뜯겨 나간’ 수준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단하군.”
공작의 한쪽 눈이 슬며시 찡그려졌다.
“가디언 급 마법사를 포함한 전단의 총공을 받고도 한 번에 무너져 내리지 않았나.”
“삼중의 벽도 벽이지만, 예상외로 놈들이 경도에 신경을 많이 쓴 모양입니다.”
“…….”
연방제국에서는 저런 성벽을 지을 수 있을까?
아쉽지만 철옹성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그 갈트 성조차도. 아마 저런 화력의 공격을 받는다면 멀쩡히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리라.
‘……고작 이종족 따위의 기술력이 그리도 대단하단 건가.’
공작의 상념이 길어질 때쯤, 마법사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왔다.
“하나, 피해가 가장 큰 방향에 화력을 집중시키면 금방 무너뜨릴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몇 번 정도지?”
“대략 한두 번 정도의 공격이라면 가능합니다.”
“한두 번…… 그렇군.”
그렇다면 남은 마력으로 이후의 두 성벽 또한 무너뜨릴 수 있을 터.
상념을 지워 낸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벽을 무너뜨려라.”
“알겠습니다.”
마법사들에게 명령이 전달되자, 또다시 그들이 마력을 움직였다. 그리고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공격이 다시 쏘아졌다.
콰콰콰콰쾅!
이전보다도 피해가 컸는지, 그곳에는 돌가루로 인한 구름이 자욱할 정도였다.
“다시.”
“예, 각하.”
그 모습을 바라보던 공작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재차 격발되는 폭발 마법들!
콰콰콰콰쾅!
“이제 성벽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좋아.”
그렇게 종합 세 번의 화력 집중은 그렇게 놈들의 성벽을 무너뜨렸…….
“음?”
“헛?!”
……어야 했을 텐데.
“어, 어째서! 어째서 아직도 멀쩡한 것이냐?!”
경악스럽게도 먼지구름 사이로 보이는 성벽의 형태는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은 채였다.
공작은 당혹감을 드러내는 마법사를 보며 낮게 으르렁댔다.
“어찌 된 것이지? 분명 한두 번만 더 공격하면 무너질 거라 했던 것 같은데?”
“아, 아니, 이럴 리가 없는데……!”
마법사의 이마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족히 성벽 두세 개는 거뜬히 무너뜨릴 정도의 화력이 분명했는데…….’
하지만 그런 것치고 저곳은 이상하리만치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이 황당한 상황을, 마법사라 해서 어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지식을 아득히 벗어난 상황을!
“아, 아무래도 이런 상황에 대비해 대마법사가 농간을 부린 것 같습니다! 다음번의 공격으로 반드시 무너뜨려 보이겠습니다! 바, 반드시!”
“오냐. 반드시 말한 대로 무너뜨려 보여야 할 것이다.”
“예, 가, 각하.”
다음 마법을 준비하던 일천의 마법사들 사이로 긴장감이 흘렀다.
다들 노한 공작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다.
우우우웅-!
마법사들은 있는 마력, 없는 마력을 모조리 끌어올려 마법진을 완성시켰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력의 마법. 놈들의 왕성을 파괴하기 위해 준비했던 파괴마법이었다.
‘비장의 순간에 쓰려했던 마법을 이곳에서 공개하는 것이 아깝긴 하지만…….’
이거라면 절대 성벽을 지켜내지 못할 터.
그들은 자신에 가득 찼다.
이윽고 그것이 준비된 순간,
“발사!”
발사의 명령이 떨어졌다.
슈우우우우웅!
콰콰콰콰콰쾅!!
이제껏 없던 섬광이 평원을 뒤덮는다.
“크윽!”
그리고 멀리 떨어진 그들조차 몸을 휘청일 정도로 강한 진동이 일었다.
“됐다! 이 정도 화력이라면…….”
“서, 성공했나!”
모든 이들의 이목이 쏠린 성벽.
그리고 이를 감추던 먼지구름이 옅어지기 시작하자, 마법사들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
정말로 성벽을 이루던 벽돌들이 무너졌다.
그들의 눈에 보이던 석재는 모조리 무너져 내렸고, 흔적도 남지 않고 먼지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다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너져 내린 것은 겉면의 ‘석재’ 뿐이었다.
“저, 저건…….”
무너진 석재 속에 감춰져 있던 잿빛의 벽돌들.
마치 겉을 감싸고 있던 석재는 처음부터 장식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멀쩡…… 하다고…….”
고고한 윤곽과 거친 벽면에는 조금의 흠집도 없는 채였다.
“설마!”
그래. 무너져 내린 석재는 보여 주기 위한 꾸밈일 뿐, 진정한 성벽이 아니었다.
“……마력을 소요시키기 위한 미끼.”
저 잿빛의 벽돌들이야말로, 비로소 드워프의 기술력이 응축된 성벽이었다!
* * *
“껄껄, 멍청한 인간들! 보기 좋게 속았군.”
수르트는 마법 공격으로 인해 무너진 석재를 바라보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보이는 놈들의 표정이란…….
“처음엔 무너지는 듯 보이니까 즐겁게 마력을 쏘아 댔겠지! 하지만 진짜 성벽이 나온 뒤에는 역시 저리도 얼빠진 표정을 짓는군!”
그래. 무너질 거라는 가능성을 일부러 보여 줌으로써 놈들이 힘을 빼도록 만든다.
당연히 이 모든 전략은 우연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처음 성벽을 만들 때부터.
-기왕이면 먼지가 많이 흩날리는 자재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지. 실제로 성벽을 이루는 카이멘툼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말이야.
……아니.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네놈들이 가진 최강의 건축술일 터다.
그보다 더 이전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성가신 놈들의 마법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남자의 계략이었던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보란 듯 속임수에 걸린 저들을 보고 어찌 웃음을 참을 수 있겠는가?
“오냐, 이것이 네놈들이 우습게 여기고 도전한 요새의 힘이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힘을 마주한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별로 없다.
뿌우우우우!
“크흐흐! 오는군!”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예상대로 정공법을 택했는가?
좋군.
모든 게 예상대로 흘러가는 상황.
털컹!
수르트는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뿔고동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슬며시 부딪친 책상이 덜컥이며, 그 위에 올려져 있던 값비싼 마정석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 일족의 첫 실험체가 된 것을 환영하마!”
떨어진 그것들은 결과물을 ‘완성’하고 남은 부산물에 불과했을 뿐이니까.
그의 미소에 함지박만 한 미소가 걸렸다.
* * *
뿌우우우우!
“각자 위치로!”
적들의 진격 신호와 함께.
마법 공격의 여파를 피해 성벽 아래로 물러섰던 병사들이 움직였다.
“놈들이 온다!”
“놈들의 전군이 몰려오고 있다!”
숱한 전쟁사에서 나오던 개미 떼란 표현이 이러했을까?
몰려드는 놈들의 병력은 우스갯소리로라도 만만하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욱 수월해진 것만은 확실했다.
“놈들의 마법 전력은 당분간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걱정하지 말고 자리를 지켜라!”
에스테반과 비교하면 막대하다고 할 수 있는 놈들의 자랑, 마법 전단이 병사도 아닌 고작 성벽 따위에 모조리 소요된 탓이었다.
그런 연방제국의 병력들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역시나 그리폰이었다.
캬아아아아악!
“그, 그리폰이다!”
“제기랄! 또다시 놈들이 나타났다!”
“대체 몬스터들이 에스테반을 어찌 돕는단 말이냐!”
요정족과 교감한 그리폰들은 오직 에스테반의 명령만을 따른다.
그리고 이 땅은 요정족의 것.
제 친우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번거로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슈우욱!
화살도 마법도 닿지 않을 높이를 활강하던 그리폰들이 발톱에 들고 있던 것들을 정해진 위치에 던지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크헙?!”
“아잇! 에퉤퉤! 이게 뭐야?”
“이런! 이번에도 기름이 담긴 보자기잖아!”
일정 간격을 두고 흩뿌려진 기름을 본 병사들이 눈을 부릅떴다.
일전에 당한 화공이 떠오른 것이다.
그것은 분노에 휩싸여 있던 공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쯧! 마나가 남은 마법사들은 어서 날아올라라! 그리폰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아!”
“알겠습니다!”
마법사들이 다 죽어 가는 얼굴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마력을 억지로 끌어올린 탓에 낯빛은 점차 어두워졌다.
하지만 재빠른 대응 덕분이었을까? 그리폰은 멀찍이 상공을 배회하다 포기하고 아무렇게나 기름만을 내던질 뿐이었다.
물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기름이 던져진 부근을 경계하면 놈들도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
정작 폭탄을 기름 위로 던지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기름을 뿌려댔다 한들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깟 계략에 두 번은 당해 주지 않는다.”
공작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기름이 묻은 인원들을 뒤로 빼내면 놈들의 화공도 아무짝에 쓸모없으리라.
“기름이 묻은 물품은 걷어 내면서 열을 맞춰 전진하라!”
그 순간이었다.
“쏘아라!”
퓨퓨퓨퓨퓩!
“뭐, 뭣이?!”
성벽과는 아직 1킬로미터 남짓 남은 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병사들을 향해 화살을 쏘아 대기 시작했고, 경악스럽게도 화살은 그대로 제국병의 진형으로 내리꽂혔다.
“어떻게 이 거리에서 화살을……!”
놈들이 부리는 몬스터도. 상상 속에나 나올 법한 저따위 성벽도. 일 킬로미터를 나는 저 화살도.
모조리 현실과 동떨어진, 이질적인 것만 같았다.
“설마 처음부터 우리가 이곳에 오기를 바랐다면…….”
“크, 큰일입니다! 아직 허공에는 마법사들이 있습니다!”
“헉!”
다급히 고개를 들자, 불안한 예감대로 인영이 하나씩 추락하기 시작했다.
당장 마력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마법사는 마법사.
그 존재를 최우선으로 저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다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병사들의 공중에 있는 마법사들이 맞을 정도라면 당연히……!
퍼퍼퍼펑!
화르륵-!
“으아아아아! 부, 불이!”
“이런!”
그들의 진형 곳곳에 불화살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만연하는 화염.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을 타격한 그것은, 기어코 기름이 뿌려진 장소를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키에에엑!
캭캭!
그리고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마법사들이 제거된 순간, 다시금 그리폰들이 그들의 상공을 점한다.
이를 지켜보는 공작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