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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215화 (215/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15화

예언 (6)

고오오오-

“…….”

전장에 감도는 서늘한 침묵.

어느덧 사라진 검은 안개 사이로 드리우던 태양 빛은, 일식이 벌어진 것처럼 무언가에 의해 감춰진 채였다.

철컥- 철컥- 철컥-

“저게…… 대체 뭐란 말이냐…….”

이질적인 음률을 이루며 성벽 위로 모습을 드러낸 그것.

그것은 병사들로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아니.

아마 병사들은 고사하고, 병력을 지휘하는 이들조차 낯설기 그지없으리라.

어찌 보면 대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콰콰콰쾅!

쾅!

“피, 피해!”

“허억!”

자욱한 먼지구름과 함께 땅이 울렸다.

이에 휘말린 병사들의 몸은 형체도 남지 않고 짓눌려졌다.

하지만 그것은 고작 ‘착지’의 충격에 불과했다.

끼이익- 철컥!

부우우웅!

콰직!

“끄아악!”

“내 몸……! 내 몸이!”

먼지구름 속에서 거대한 주먹이 휘둘러지자, 수많은 육편이 허공으로 난무했다.

말 그대로 분쇄였다.

공격 범위에 걸쳐 있던 병사들이 모조리 분쇄되어 버린 것이다!

당연히 볼 것도 없이 절명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쿵! 쿵! 쿵!

“비켜! 놈들이 온다!”

“흐아악!”

이윽고 성벽의 주변을 말끔히 정리한 그것들은,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먼지구름을 헤치고 달려 나왔다.

이를 멍하니 지켜보던 병사들이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일련의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병사들 뿐만이 아니었다.

“놈들이…… 놈들이 저런 것을 숨겨 두었다고…… 대체 어떻게…… 아니, 애초에 저런 가공할만한 위력의 무기가 존재할 리가…….”

허망하게 중얼거리는 공작의 몸이 비틀댔다.

정녕 자신이 보고 있는 이 상황이 현실인 걸까?

순간 자신도 흑마법에 당한게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

하지만 등줄기에 배어나는 식은땀은 이 상황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웠다.

“각하!”

그 순간, 흑마법의 발동을 지휘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던 수하가 달려왔다. 이를 본 공작의 당혹감이 분노로 바뀌었다.

콱!

“크윽!”

“자신 있게 발동시킨 흑마법은 어디에 있지! 성벽으로 올라간 기사들은 무얼 하고! 저건 대체 뭐냔 말이다!”

“저,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고? 네놈이 금룡대의 파견을 종용하고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느냐!”

“고, 고정하시옵소서!”

멱살을 잡혀 숨이 막히는 와중에도 수하는 다급히 대답했다.

“지금은 금룡대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최전방의 진형이 완전히 붕괴해 버렸습니다!”

“뭐라?!”

공작이 고개를 돌려 전장을 살폈다.

이전과 다르게 냉정해진 시야에는 시시각각으로 무너지는 진형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 언제 이렇게까지 전선이 밀려 버린 거지?”

수백의 거인이 전장을 종횡무진 휩쓸고 있다. 병사들은 이에 휘둘리는 먼지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 또한 단편적인 표현에 불과할 뿐이었다.

“공격이 통하지 않아?!”

검은 외골격을 입은 거인들은 병사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오러가 담긴 공격에는 피해가 누적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 위력적인 공격에 기사들이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심지어.

“으…… 으아아아!”

“신이시여!”

거대한 인간이 움직이는 모습은 그것만으로 모두의 전의를 상실시켰다.

인간의 힘으로 대적할 수 없는, 마치 신과 같은 모습으로 그들의 마음을 짓이기며 다가온다.

그래. 저것은 하나의 벽과도 같았다.

마치 성벽이 밀려오는 것만 같은 그 위압적인 모습은, 감히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강자 그 자체였던 것이었다!

‘이, 이대로 있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믿었던 금룡대의 생사는 뻔했다. 그렇다면 슬슬 성벽의 위로 궁수들이 나타날 차례!

이대로 진형이 무너진 채 전투가 이어진다면, 아마 그 피해는 전과 비교할 수조차 없이 커지리라.

‘안 돼!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된다!’

공작은 재빨리 생각을 정리하며 지시했다.

“우선 재빨리 후퇴한다! 병력들은 물리고 마법사와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기사들을 이용하여 놈들을 하나하나 격파하겠다!”

“부, 불가능합니다! 놈들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이 새끼가! 그러니까 뒤처진 병사들을 버리더라도 나머지를 물리라는 말이다!”

“그, 그런……!”

말 그대로 남은 이들을 미끼로 삼고 재정비에 나서자는 뜻이었다.

말 그대로 졸전이었음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말!

“지,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그 핏발 선 공작의 눈빛을 수하가 이겨 낼 수 있을 리는 없었다.

“후퇴하라!”

둥-! 둥-! 둥-!

“공작 각하의 명령이시다! 어서 자리에서 벗어나!”

“……!”

“뭐, 뭐라고? 후퇴?! 어째서!”

돌연 내려진 후퇴 명령.

힘겹게 거인에게 저항하던 병사와 기사들은 황망하게 외쳤다.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설마 우리를 두고 가겠다는 말이야?!”

사실 나타난 거인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지휘가 무너지니 족히 만에 가까운 수의 병사들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고.

그 말은 즉, 그 많은 숫자가 희생양으로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말도없이 바로 물러서는 기사들을 보며 그 사실을 깨달았다.

“제기랄! 이런 인간 같지도 않은 새끼들아!”

콰직!

“컥!”

덩달아 꽁무니를 내빼는 병사들. 오러를 쓸 수 있는 자가 없어진 이상, 그들이 버틸 방법은 없었다. 오직 일방적인 학살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적어도 그들은 나은 편이었다.

“끄…… 끄어억…….”

“사, 살려…….”

아슬하게 스쳤기에 육신의 일부만을 잃어버린 병사들.

그들은 목숨을 건진 대가로 온몸에 엄습하는 고통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한때는 치솟았던 아드레날린조차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아직도 남은 흑마법의 여파에 직접적인 공격까지. 제정신을 차릴 수 있을 리가.

“사, 살려…….”

“안 돼!”

쿵!

촤아악!

그리고 그사이, 다가온 거인의 형상이 꿈틀대는 병사들을 자비 없이 짓이기기 시작했다.

다친 부위를 부여잡은 채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병사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런 씨발…….”

너무도 억울했다.

차라리 의미 있는 죽음이었다면 모를까, 이대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도 비통한 처사였다.

“……컥!”

그리고 그들의 목숨이 모두 끊어지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힘없이 버려진 자들의 최후.

최소한 그 끔찍한 고통만큼은 빠르게 사라졌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으리라.

“…….”

“후작님.”

그리고 그 모습을 냉정하게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놈들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재정비를 하려는 모양입니다.”

“보고 있네.”

로데르가 비도르 후작에게 다가가며 상황을 보고했다.

후작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이런 상황에서 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을 테니까.”

그 누가 저들을 제국의 대병력이라 하겠는가?

혼란과 공포가 가득한 그 뒷모습은 그야말로 그림에 그려지는 듯한 패잔병의 모습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그들에게서 제국의 위명(偉名)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되리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을지도 몰랐다.

“이것은 예언일세.”

누구도 이곳을 넘볼 수 없다.

이 땅. 그들의 백성과 물자. 하다못해 작은 풀 한 포기라 하더라도.

놈들이 이곳을 짓밟을 미래는 오지 않는다.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그러니 그대로 이루어진다. 단지 그뿐이지.”

후작은 손을 휘저어 마법사들을 불러냈다.

“모든 준비가 끝난 것 같으니 연락을 넣어 주게.”

“예, 각하.”

“그리고 성내의 전 병력은 골렘과 함께 놈들의 후방을 뒤쫓는다.”

슬슬 무대의 피날레가 다가온다.

그리고 그 순간이 되면, 연극은 완성되고 모든 무대가 마치리라.

정해진 각본대로.

그리고 한편의 예언과도 같은 그분의 뜻대로.

* * *

“제기랄…… 제기랄……!”

말을 타고 달리는 공작의 입에서는 연신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부아가 치밀어 참을 수 없었다.

“병력의 피해는!”

“순간의 교전으로 삼만이 죽거나 실종되었습니다. 놈들의 거인이 후방을 뒤쫓고 있으니 아마 추산 피해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젠장! 감히 에스테반 따위에게!”

공작은 수하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더 들어 봐야 좋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았던 탓이었다.

‘저 의문의 거인 따위만 없었어도…… 아니, 마법사들이 성벽을 무너뜨리기만 했어도 이따위 추태를 보이지는 않았을 터다!’

말이 좋아 삼만이지, 성벽에서 쏟아지는 화살과 추격으로 인해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저 삼만의 병력 중 고급병력이 얼마나 될까?

금룡대부터 시작해서, 저격당한 마법사. 그리고 거인을 막기 위해 움직였던 기사들까지.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머리가 아파질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더욱 절망적인 사실은.

기사와 함께 거인들을 처리해야 할 마법사들이 아직 마력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점과.

자신의 힘 역시 여전히 봉인 당한 채였다는 점이었다.

“마법은! 마법은 대체 언제쯤 사용할 수 있는 것이냐!”

“그것이…… 그리폰들을 견제하기 위해 무리하다가 마나홀에 손상을 입은 모양입니다. 당분간은 아마도…….”

“하!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놈들이군!”

챙!

“…….”

차디찬 쇳소리가 울리자, 수하의 몸이 움찔했다.

“차라리 놈에게 이 책임을 묻겠다. 당장 마법 전단의 지휘관을 불러와라!”

“……예, 각하.”

공작이 칼을 내빼며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외치자, 수하가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물론 이전처럼 우려를 덧붙이지는 않았다.

구태여 그 화를 감내할 만큼 용기 있는 인물은 아니었기에.

“에스테반의 국왕! 힘을 되찾는 날. 이 수모는 반드시 갚아 주겠다!”

그 모습을 보며 공작은 끝끝내 참았던 말을 씹어 뱉었다.

투두두두두-!

잠시 후.

마법사들을 찾아갔던 수하가 뒤따르던 기마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각하! 큰일입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도착한 것은, 본보기로 처형될 예정이었던 마법사가 아니었다.

“놈은 어디에 있지? 놈이 감히 내 명령을 거부한 것이냐?”

“그, 그것이 아닙니다! 지금 평원의 아래에서 에스테반의 병력이 나타났단 말입니다!”

“뭐?”

……에스테반의 병력?

잘못 들은 것인지 의심하며 반문했다. 그러나 또다시 수하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분명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듯 선명했다.

“오, 오만의 병력이 평원의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놈들이 지금 방어선을 구축하고 퇴로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양방향에서 적을 맞이해야 합니다!”

공작은 할 말을 잃은 채로 멍하니 입을 뻐끔댔다.

* * *

“이, 이런!”

“에스테반의 병사들이다!”

“슬슬 오는군.”

제3 기사단.

아르곤 기사단의 단장 에드워드는, 방어선을 향해 다가오는 연방제국의 병사들을 보며 차갑게 눈빛을 굳혔다.

“……과연 후작님의 말씀대로다. 자만심인지 눈앞의 성에 눈이 멀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이쪽에 병력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 같군.”

그 만연한 혼란은 한눈에 봐도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만약 저게 연기라면 저들은 모두 왕립 극단의 주역으로 손색이 없을 거다. 그는 그를 위해서라면 추천서도 써 줄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유인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군.”

저들을 뒤쫓고 있는 골렘과 화살은 자세히 보면 일정한 방향으로 놈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저들의 모습을 보건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모양.

그렇다면 말은 간단했다.

“전 병력은 들어라!”

챙!

뽑힌 검이 태양 빛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났다.

오만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에드워드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놈들의 병력이 이 땅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아직 십오만이 넘게 남은 대군과의 충돌.

후방에서 요새의 병력이 돕는다 하더라도, 무모한 행동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이 에스테반을 침범한 저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이미 하늘에서는, 두 개의 태양이 대지를 비추고 있었으니까.

“출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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