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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217화 (217/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17화

영혼을 태워 불사르리라 (1)

“……뭐라고?”

황제는 들은 것을 의심하며 나직이 되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금방의 보고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저, 전멸입니다! 에스테반으로 진입한 이십오만의 대병력과 모든 마법 전단의 전멸을 확인하였습니다!”

“…….”

이십오만 대군의 몰살.

그 믿지 못할 소식을 이해했기에, 도리어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스륵-

“폐, 폐하!”

황제는 허물어지듯 황좌에 몸을 기댔다.

“……전멸? 내 병사들이 놈들에게 패배했다고?”

혼란스러운 정신은 자신이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초점 잃은 눈빛은 자신이 있는 장소를 망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적어도 황제에게 있어서 전멸의 소식은 그런 의미였다.

“대체 어째서…… 내 계획에 이상은 없었을 터인데…….”

난생처음 겪어 본 철저한 패배.

스스로를 제어할 수조차 없는 분노와 무력감…… 그 모든 것들이 모두 라이덴 델 카롯트라는 남자에게는 생소한 일이라는 소리였다!

대전엔 살얼음이 에일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종종 이런 일이 있었다면 모를까. 이 상황은 자리에 있는 귀족들 역시 겪어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억지로 주입시킨 충성심과도 밀접한 것.

결국 눈치 빠른 르카고스 후작이 눈짓하는 것으로 귀족들을 모두 내보낸 뒤, 홀로 황제와 마주했다.

“로카고스 후작.”

“예, 폐하. 제가 듣고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황제는 눈동자만을 치켜올려 남자를 바라본다.

“공작은.”

“……그건.”

“말해라.”

짧은 문답은 도무지 대화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상대는 황제가 원하는 대답을 즉각 내놓았다.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연락 수단을 동원했으나 벨리알 공작의 생사 여부는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살아남은 마법 전단이 있는지도 불투명합니다.”

“대마법사인 그대조차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가.”

“면목이 없습니다.”

대마법사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지는 못한다.

매개체도 없을뿐더러, 상대가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을지도 모른 상황에서 장거리 통신을 연결하기란 불가능했고.

“……어떻게든 통신이 복구되기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키겠습니다.”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때가 되었다고 해도 통신을 받으리라는 보장은 없겠지.”

“…….”

또한 그것이 바람일 뿐이라는 점 역시도 자명했다.

“놈은 죽었다.”

황제는 확신을 담으며 뇌까렸다.

서쪽에서 감지된 강렬한 섬광과 지진을 가볍게 상회하는 흔들림.

그것은 이전에 감지되었던 유성보다 수 배는 강력한 위력이었다.

과연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 내고도 살아 있을 수 있을까?

……행여나 살아남았다 해도 이곳 본국까지 멀쩡하게 귀환할 수 있을까?

애초에 그 대적자인 소드마스터가 적 마법사의 캐스팅을 막아 내지 못한 시점에서 결과는 정해져 있었을 테지.

그 결말은 대륙 최강의 전투 마법사인 로카고스 후작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더 이상 놈들의 경거망동을 가벼이 넘기면 안 되겠군.”

“…….”

“제국 마탑의 탑주를 불러와라. 아직은 이르지만 ‘그것’을 억지로 깨우겠다.”

“폐, 폐하?!”

참담한 패전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냉정함을 유지하던 로카고스 후작이 경악했다.

제국의 또 다른 대마법사.

그를 이곳으로 불러내 ‘그것’을 깨우겠다는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던 탓이었다.

“폐하!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예정대로라면 앞으로 2년은 더……!”

우우우웅!

“……!”

하지만 그 순간, 다급히 말을 이어 가던 후작의 몸이 굳었다.

황제의 옆에서 번쩍이는 붉은빛의 수정구.

“그 신호는……!”

최전방과 이어져 있는 그 비상 연락망으로부터 통신이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놈들이 움직였나 보군.”

무거운 정적 속. 황제는 얼굴 근육을 왈칵 일그러뜨리며 손을 뻗었다.

“보고하라.”

-폐, 폐하! 큰일입니다!

“에스테반의 국왕이 진격을 시작했나.”

의도대로 놈을 본진으로 유도하지 못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

상대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침착하게 물었다.

하지만.

-그, 그게 아닙니다!

통신구 너머에서 들려온 경악한 목소리는, 그의 예상보다 더욱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왔다.

-아렌델이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동부의 국경 지대를 기습적으로 넘으며 제국의 심판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아렌델이 움직였다고?

어째서?

-출진하며 빠진 공백으로, 동부 국경 지대의 성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함락당했습니다! 급히 군사를 지원해 주셔야 합니다!

“지금 그게 대체 무슨…….”

황제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놈들이 에스테반에 동조할 이유가 무어가 있단 말인가? 갑작스럽게 은원관계가 생기지 않은 이상에야 후방을 기습할…….

‘은원관계?!’

……!

그 순간.

황제의 머릿속으로 가능성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이 품고 있을 만한 유일한 은원관계.

그래, 무언가가 어긋나고 있다고 처음으로 느낀 그때의 계책 하나가.

콰당탕!

“폐, 폐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북부에서 도착한 급보이옵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새파랗게 질린 표정의 기사가 들이닥쳤다.

“야만족의 땅을 가로지른 병력이 수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에스테반이 점령지에서 육성하고 있던 병력들입니다!”

이를 바라보는 황제의 눈동자가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크게 요동쳤다.

그것은 생소한 감정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감정.

* * *

철컥- 철컥-

도열한 기사들이 발을 맞춰 움직였고, 그때마다 소름 끼치도록 청명한 쇠갑옷 소리가 전장에 울렸다.

하지만 그것은. 병력의 지휘를 맡은 로메르트 변경백의 눈에는 하나의 의지처럼 보일 뿐이었다.

“이것이 내가 짊어지게 될 목숨의 무게인가.”

나직이 울리는 목소리.

이윽고 시선을 돌려 바라본 곳에는 그 뒤를 따르는 병사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더 이상 검을 들기에 적합지 않은 노병도 있을 것이고, 고작 전장에서 아스러지기에는 안타까운 젊은이들도 있을 것이다.

“평화란 결코 인간의 뜻대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

하지만 그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념만큼은.

“……그렇기에 이들은 검을 들었다.”

모두 다르지 않으리라.

고오오오-

차갑게 불어닥치는 겨울바람.

더 이상 연방제국의 아성에 두려워하는 병사는 없다.

오직 이곳에는 미래를 위한 발걸음만이 있을 뿐이고, 발돋움하는 확신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 역시 망설이지 않았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희들과 함께 싸울 것이니!”

내 가족을 위해 적들을 베어 내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그 피 위에 평화라는 초석을 세우라고.

“진격하라!”

마침내 그곳에서, 전투의 마지막 신호탄이 발사된 것이다!

그리고 같은 시각.

“기습적으로 후방을 점거한 아렌델이 동부를 교란하고.”

탁-

“대병력이 빠져나간 후에 들이닥친 병력은 북부를 완전히 마비시켰지.”

탁-

연방제국을 배경으로 그려진 거대한 지도. 각각 동부와 북부에 놓인 붉은 말은, 마치 핏물을 뒤집어쓴 사신처럼 보인다.

탁-

“…….”

이어서 나는 남부에 세 번째 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부 해안에 숨겨 둔 병력은 놈들의 시선과 관심을 잡아 둘 미끼가 되어 줄 터다.”

“…….”

“여기까지. 이것이 우리 에스테반이 설계한 최후의 작전이지.”

그렇게 완성된 지도 위에는, 어느덧 놈들의 숨통을 끊어 둘 포위망이 구축되어 있었다.

현재 에스테반의 삼만 정예병이 주둔하는 서부를 포함하면 동서남북의 네 방향 모두가 동시에 공격받는 구도가 된 것이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군.”

내 시선이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런 내 눈매는 어느덧 호선을 그리며 휘어져 있었다.

“마기아의 대마법사, 로드 헤임달.”

“…….”

시선이 마주한 그는 감정 변화를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묵묵히 다물어진 입술은 명백한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호오. 어째서지?”

“이 모든 것들이 우연이 아닌 필연에 의해 벌어졌다고 한다면, 에스테반의 국왕께서 내다보신 미래는 통찰의 수준이 아니게 될 것이니까요.”

그 말대로였다.

정세를 읽고 대비하는 것만으로 이런 작전을 세울 수 있을까?

단지 이것이 예측과 고찰만으로 가능했을 일일까?

‘아니.’

이곳을 찾아온 손님인 헤임달은 확신했다.

인간은 당장 오늘도 내다보지 못하는 미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것은 현자라 불리며 칭송받는 대마법사 그 자신 역시도.

그럼에도 상황은 모든 아귀가 맞아떨어지듯 계획대로 흘러갔다.

연관이 없을 것 같았던 각각의 행동들은 나비효과처럼 상황을 만들어 냈고.

결국 에스테반은 전투를 앞두고 원하는 형세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곳을 찾아온 그로서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으리라.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면, 당신께서는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일 테지요.”

“…….”

“그렇다면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했습니까.”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게 하였습니까.

대마법사의 순수한 호기심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간단한 질문이군.”

이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을 내놓았다.

“끊임없는 증오. 조금도 빗겨 가지 않은 적의.”

“…….”

“그리고 나의 모든 것들을 불태워서라도 이루고 싶은 복수의 일념이다.”

그렇기에 내가 이곳에 있다.

그렇기에 전장에 섰고, 최후의 전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은 나의 의지였다.

“……그렇군요.”

그 진심을 이해한 것일까?

이윽고 생각에 잠긴 듯 골똘히 잠겨 있던 두 눈이 뜨여지기 시작했다.

“저들의 병력이 응집하지 못하도록 네 방향을 압박하는 작전은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더욱더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필시 이루어져야 할 과제가 남아 있지요.”

“놈들의 수도를 단숨에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저희에게 부름을 요청하셨을 것입니다.”

주름진 피부 사이로 드러난 눈이 총명하게 반짝였다.

“마기아로 하여금 서부에서 수도까지의 통신을 완벽히 장악하기 위해 말이지요.”

“정답이다.”

놈들이 각지의 병력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수도를 타격한다.

그것이 최종 작전의 전말.

이 땅 위에서 벌어질 최후의 전투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기아에서는 도움을 승낙했다.

무척이나 호쾌한 대답이었다.

어쩌면 그가 이곳으로 직접 방문한 순간부터 정해져 있던 결정이었으리라.

“지금 이 순간부터. 놈들의 통신은 우리 마기아의 손 위에 놓여 있게 될 것입니다.”

결정되었다.

그렇게 헤임달은 마기아에서 데려온 마법사들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마지막이 다가오는군.”

이번 전투가 양국의 운명을 결정지으리라.

또한 지난 모든 일은 이곳에서 그 결실을 맺으리라.

“그렇다면 나 역시도 더 이상 힘을 숨길 필요는 없겠지.”

내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겠다.

마침내 다가온 최후의 순간이었다.

* * *

“음?”

성벽을 지키던 연방제국 수도의 병사들이 교대를 위해 움직인 시각.

문득 저 멀리서부터 먼지구름이 이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지?”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처음에는 관심.

그리고 의아한 듯 그곳을 주시하던 병사들이 이내 보인 반응은 경악이었다.

“저, 저게 뭐야!”

투두두두두!

열을 맞춰 달려오는 수천수만의 군세는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각에 수도를 지나는 군단이 있다는 보고를 들은 적은 없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저, 적습이다!”

“에스테반의 군사들이 수도를 노리고 쳐들어왔다!”

땡땡땡-!

그제야 무탈하게 하루를 보냈어야 했을 성벽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예기치 못한 기습에 당황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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