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18화
영혼을 태워 불사르리라 (2)
뚜벅- 뚜벅-
황성의 지하.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추측과 소문만이 무성한 그곳
그 누구의 출입도 허가되지 않는 그 지하 감옥에 무거운 발걸음이 메아리쳐 울렸다.
“로카고스 후작.”
“…….”
고오오오-
후작은 어둠 속을 주시했다.
이곳을 밝히는 광원은 하나도 없다. 또한 어둠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위치도 거리도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이름을 불린 로카고스 후작의 눈에는 보였다.
저 어둠의 저편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거대한 마력의 주종이.
“이런 곳에 계셨습니까.”
“오랜만에 만나는군. 삼 년 만이던가.”
공대가 아닌 하대.
그 누가 대륙 최강의 전투 마법사에게 편히 말 할 수 있을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는 한때 로카고스 후작의 사형이었던 남자이자.
“마탑주님.”
제국 마탑의 주인이기도 하였으니까.
스윽-
파앗!
이윽고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어두웠던 공간이 환히 밝혀진다.
지하 감옥을 밝힌 것은 마탑주의 가벼운 손짓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나를 부르셨다 하였기에 이곳에 온 거겠지.”
“…….”
“그리고 폐하께서 나를 필요로 하셨다는 것은, 드디어 그를 깨울 시간이 다가왔다는 뜻일 테고.”
이윽고 드러난 그의 얼굴은, 갑작스러운 빛에도 개의치 않고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그 시선이 제 어깨 너머를 향한 것은 이후의 일이었다.
“아, 이미 그의 봉인은 풀어 두었네.”
“제가 한 번 확인해 보아도 되겠습니까?”
“물론.”
마탑주가 몸을 틀어 내며 자리를 비켰다.
그제야 후작은 마탑주에게 가려져 있던 무언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연.’
그곳에 있는 것은 제국의 마지막 소드마스터인 금룡대의 기사단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봉인이 풀어졌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사지가 강하게 결박되어 있었다.
후작은 가까이 다가가며 그를 봉인한 사슬을 어루만졌다.
촤르르륵-
“…….”
그러자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는 사슬.
그것은 일반적인 사슬이 아닌 대마법사의 마력으로 제작된 것.
봉인이 풀렸으니 남자를 결박한 사슬 역시 사라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자가 이렇게 묶여 있는 것은, 그 자신을 제어하기 어려웠던 탓이었다.
“당시의 그는 일종의 폭주 상태와 비슷했다고 들었습니다.”
“경지에는 올랐으나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신이 무너져 내린 것이지. 그 결과가 본능밖에 남지 않은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이고.”
“하면 이제는 정신을 되찾았다 할 수 있습니까?”
후작의 진지한 시선에 마탑주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은 이르지만, 아예 효과가 없었다고는 하기 어렵겠지. 정확히는 적아를 구분할 정도의 정신은 되찾았으려나.”
“자칫하면 이전과 같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군요.”
“내 마법이 잘 들었기를 바라야 할 뿐이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일순, 후작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단 한 번만 놈을 무너뜨리면 그만입니다. 이곳에 있는 세 초인의 힘이라면 간단한 일이지요.”
제어할 수 없는 소드마스터의 힘.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단지 놈들과 맞붙는 한순간뿐이다.
적군의 수장이자 모든 전쟁의 근원인 알렌 에스테반의 전투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후의 일을 걱정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어도 상관없다.
“누구도 대륙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제국의 의지를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누가 되었든.”
“그렇군.”
그런 후작의 결연한 목소리에 마탑주가 미묘한 시선으로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그거참 기대되는 일이군. 부디 원하는 대로 잘 풀리기를 바라지.”
“음?”
무언가 묘한 말투였기에 로카고스 후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허, 아무것도 아닐세.”
이에 마탑주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렇다면 나는 마력이 회복될 때까지 쉬고 있겠네. 아무래도 어려운 봉인을 풀어서인지 피로감이 몰려오는군.”
“예, 그리하십시오.”
“그럼 이만.”
그렇게 마탑주가 공간 이동의 마법진을 펼치더니, 그 저편으로 사라졌다.
로카고스 후작은 마탑주가 떠나간 공간을 바라보다가 금룡대의 기사단장을 주시했다.
우우우웅!
품속에 넣어 둔 마법구가 울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치직-
“무슨 일이지. 급한 일이 있을 때만 통신하라고 말해 두었을 텐데.”
-후, 후작님! 큰일입니다!
“큰일?”
무언가 불안한 예감에 후작의 몸이 잘게 떨렸다.
그리고 상대는, 기어코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에스테반의 병력이 수도를 급습하였습니다! 삼만의 병력입니다!
“……!”
통신 너머로 울린 목소리가 감옥 내부에 메아리치듯 전달되었다.
* * *
연방제국의 수도.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침범도 불허했던 절대자의 땅, 헬리오스.
“종을 울려라!”
“어서 내부에 소식을 알려! 어서!”
땡 땡 땡!
“얼씨구. 많이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요지부동이라 생각했던 우리가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왔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
성벽 위로 보이는 놈들의 병사들은 명백히 혼란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거쳐야 했을 수많은 관문.
하다못해 그 주변의 영지에서조차 이 사태를 미리 경고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
“뭐, 저 모습을 보면 작전은 성공한 것 같군.”
에스테반에서는 그만한 일을 가능케 할 마법 전력이 없을 거라 생각했을 테니 말이지.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즐겁다는 듯 웃음 지었다.
그때, 저 멀리서 병력을 이끌던 총사령관이 다가왔다.
“전하.”
“병력의 준비는?”
“언제든지 공성전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군.”
살기를 갈고닦던 브롬이 낮게 대답했다.
한때는 그들이 섬기던 황제의 땅도 놈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장소가 된 지 오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곳까지 당도했으니, 한 시라도 빠르게 움직이지 않고서야 진정이 되질 않았을 테지.
하지만 녀석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공성전이라.”
“즉시 병사들을 진군시키겠습니다. 놈들이 병력을 수습하고 대비책을 갖추기 전에.”
“아니. 그럴 필요 없다.”
그래. 이곳을 무너뜨려야만 하는 것은 녀석뿐만이 아니었다.
내 모든 것들을 망가뜨리고 심연의 밑바닥을 마주하게 만든 황제.
나를 이곳까지 서게 만든 그자가 저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공성전 따위에 시간을 낭비할 만큼 여유롭지 않으니까.”
“예?”
나 역시도 지금까지 억누르던 살기를 주체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즉시 병력을 출전시켜라.”
나는 성벽 너머로 보이기 시작하는 황궁을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순간부터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겠다.”
슈우욱-!
“엇!”
전조도 없이 흐릿해진 신영에 브롬이 놀람을 표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구보다 앞서서 움직이기 시작한 내 몸은, 점차 성벽과 가까워졌다.
“이, 이런! 뭔가가 다가온다!”
“마법사!”
“일단 쏴라!”
슈슈슈슉!!
저 멀리, 이상을 감지한 이들로부터 마법이 쏘아진다.
나름 수도를 지키는 방위군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날아오는 수많은 마법을 마주하고도 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왔다.’
그리고 과거와 마찬가지로 놈들을 적대하게 되었다.
그저 달라진 것이라고는 내가 서 있는 장소가 밀리고 밀리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벼랑 끝이 아니라는 사실과.
스릉-
마침내 이 검이 놈들의 위로 새겨지리라는 사실이었다.
우우우웅!
“…….”
“……!”
일순. 수천수만 배로 가속된 세계에서.
화르르륵!
뽑힌 검 위로 핏빛의 불 무리가 환하게 타오른다.
슈우우욱!
이윽고 휘둘러진 검은 전력을 다한 채로 놈들을 향해 폭사했다.
콰과과과과광!!
콰르르릉!!
“……!”
그리고 닿은 모든 것들을 정화하듯 불태우고, 파괴해 나간다.
마주한 인간도. 성벽도.
태양 빛이 어둠을 가르고 그림자를 몰아내는 것처럼.
일검이 가른 세상에는 그 어떠한 부정조차 남지 않았다.
“이것이 복수를 위해 갈고닦은 나의 힘.”
어느덧 놈들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 주었던 성벽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된 상황.
그 뒤로 삼만 정예병의 거칠고 패도적인 전의가 느껴졌다.
“나머지는 병사들에게 맡기도록 하지.”
나는 여전히 타오르는 핏빛의 오러를 정면으로 겨누고. 그곳에 있을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제 내가 직접 가겠다.”
……라이덴 델 카롯트!
* * *
“마, 말도 안 돼!”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외부로 공간 이동을 개시했던 로카고스 후작.
그러나 그가 본 것은, 막대한 힘에 의해 멈추어 버렸던 시공간과 흔적도 없이 소멸한 성벽이었다.
그런 그의 머릿속으로 전설 속에서나 보았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일검에 산을 가르고 바다를 증발시킨다.
바로, 대륙의 역사 속에서 일컬어지는 그랜드 마스터의 묘사였다.
“저것이 어떻게 이제 막 초인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란 말이냐……!”
후작은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몸이 떨리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당혹감은 잠시였다.
‘그래……! 애초에 놈 혼자서 저런 짓을 벌일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소드마스터의 힘을 연구해 본 적 있는 그가 잘 알고 있었다.
순수한 오려 만으로 저런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게다가 놈의 공격 속에서는 알 수 없는 원소의 힘이 느껴지고 있다.
‘그 말은, 놈이 지금 눈속임을 하고 있다는 뜻이렷다!’
무언가 모종의 힘을 빌렸을 테지.
하지만 문제는 성벽 쪽.
급습 속에서 시간을 끌어 줄 성벽이 사라졌다는 말은, 곧 수도가 장악당하리라는 뜻과도 마찬가지였다.
“큭!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슈우우욱-!
하늘에서 지상을 괄목하던 후작의 몸이 우뚝 기울었다.
이윽고 그 몸이 빠르게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목표는 황성을 향해 돌진하는 한 남자였다.
“흠!”
우우우웅!
까가가각!
기괴한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서부터 수 미터의 얼음벽이 솟아올랐다.
마법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슈웅!
얼음벽이 선 위치를 기점으로 사방을 둘러싼 보호막.
그것은 안과 밖을 철저하게 갈라놓고,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또 하나의 다른 차원을 만들어 냈다.
공간을 움직일 수 있는 대마법사의 권능이었다.
“호오.”
순식간에 사방이 가로막힌 남자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유명한 얼굴이군. 전투 마법사의 아버지, 로카고스 후작이라 했던가?”
“알렌 에스테반.”
여유로운 상대의 목소리.
로카고스 후작이 으르렁대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 성벽에 무슨 짓을 한 거지?”
“보았던 대로 무너뜨렸다만.”
“아무리 봐도 그것을 네놈의 힘 하나로 벌였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공간을 둘로 나누어 버렸다.
이곳에서라면 다른 외부의 힘이 개입할 가능성은 없으니까.
괜히 소드마스터와 정면으로 대치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말해라, 네놈이 보였던 그 힘의 정체가 뭐지?”
“솔직하게 대답해도 믿지 못하니 답답할 노릇이군.”
“하!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를 부리는가.”
아무래도 상대는 현재 상황을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로카고스 후작이 이를 악물었다.
“이곳은 대마법사의 권능으로 만든 공간. 오직 외부와 연결된 것은 시전자인 나의 마력뿐이지.”
우우우웅!
강렬하게 요동치는 마력.
그리고 찢어진 공간의 저편에서, 한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알렌 에스테반의 입술이 길게 휘었다.
“마지막까지 숨겨 두었던 소드마스터군.”
“그래. 마법사와의 대치라고 생각하고 우습게 여기는 모양이었다만 아쉽게 되었군.”
정신이 아직도 온전치 않은지,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번뜩-!
“적…… 연방제국의…… 적…….”
“호오.”
적이 누군지 깨달은 순간, 그 투기가 폭사했다.
본능과 이성의 경계에서 반절이나마 정신을 차리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정신을 차린 소드마스터와 전투 마법사. 백병전은 더 이상 네놈의 특기가 아니다.’
로카고스 후작이 입술을 비틀었다.
상황은 순식간에 다수가 압박하는 형태가 되었다. 또한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우우우웅!
또다시 손끝에서부터 발현되는 그의 마법.
이곳 수도에 있을 다른 한 명의 대마법사, 마탑주를 불러낸 것이다.
‘아직 마력이 온전치는 않을 터나 놈을 상대하기는 손쉬운 일이지.’
삼대 일의 상황에서 놈이 얼마나 발버둥 칠 수 있을까?
그 어떤 소드마스터가 오더라도, 상황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감히 제국의 앞을 막은 죄를 톡톡히 물어 주마!”
분명 그리했어야 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