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19화
영혼을 태워 불사르리라 (3)
“…….”
스스스스-
마탑주를 호출하기 위해 쏘아진 마력이 눈 녹듯 허공에 사라져 버렸다.
마치 통신을 거절할 때의 파장처럼, 뚝 끊겨 버린 것이다.
로카고스 후작의 한쪽 눈썹이 불쾌함으로 올라갔다.
‘……설마 놈이 방해 공작을 펼쳤나.’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두 가지 경우.
이를테면 호출의 대상이 마력을 피해 냈거나, 중간에서 마력을 차단했을 때 한했다.
한데 상대가 마법사라면 모를까, 검사가 이 공간에서 마력을 차단할 방법은 없다.
애초에 그런 낌새가 보였다면 자신이 나섰을 테고.
“무슨 일이지? 무언가 보여 주려 했던 것이 아닌가?”
“……쯧.”
‘그렇군. 그렇다면 마탑주께서도 전장에 참여하신 것이 틀림없다.’
몰려오는 적군을 처리하는 데 심취한 나머지, 호출을 파악하지 못했으리라.
후작은 그렇게 결론지으며 재차 마력을 움직였다. 엉겁결에 놓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신호를 내포한 마력이었다.
우우우웅!
팟!
“……!”
스스스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후작은 그제야 이 일련의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어째서…… 이 정도 강도라면 제아무리 전투 중이라 하더라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는데!’
그 순간 당황한 후작의 눈에 문득 웃음을 참는 듯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네놈.”
“아, 미안하군. 심히 당황한 것처럼 보여서 말이지.”
“설마 네놈이 마탑주님께 수작을 부린 것이냐?”
로카고스 후작의 얼굴이 굳었다.
이 상황을 예견한 듯한 상대의 모습. 그렇게밖에 생각할 길이 없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의 예상과 정반대의 대답을 남겼다.
“수작을 부렸다?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군. 애초에 나는 그 마탑주라 부르는 남자와 일면식조차 없으니까.”
“그렇다면 대체……!”
“간단하게 생각하면 될 일이 아닌가.”
남자가 한없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수작을 부린 것은 ‘내’가 아니라 그 본인이라고.”
“뭐라…….”
“호출에 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않은 것이겠지. 그 자신의 의지로 말이야.”
“네놈이 감히!”
그 말뜻을 알아들은 후작의 눈에 선명한 분노가 담겼다.
……배신!
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마탑주가 조국을 배반했다는 뜻과 다름이 없으므로!
“……오냐, 뚫린 입이라고 계속 지껄이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도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래. 그것은 제 사형에 대한 모독을 넘어 연방제국에 대한 모독이기까지 했다.
후작은 분노로 떨리는 손을 들며 마력을 응집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소원이라면 들어 주지! 탑주님을 찾아뵙는 것은, 그 이후에 해도 족하다!”
콰과과과!
이윽고 공간을 장악하듯 후작의 마력이 휘몰아쳤다.
‘움직여라!’
그와 동시에 까닥여지는 손가락.
핑!
“크으윽……! 적! 제국의 앞길을 가로막는 적!”
이에 손가락에서 뻗어 나간 마력의 실이 기사단장의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목표는 본능 속에 각인된 적……!
“죽인다!”
슈우욱!
콰광!
인간의 시야로는 따라붙을 수조차 없는 도약이 펼쳐졌고. 마침내 살기가 가득 담긴 두 검이 격렬하게 맞붙었다.
챙! 챙!
콰과광!
순간적으로 사방에 먼지구름이 휘날렸다.
고작 검이 맞닿은 것뿐이었으나, 언뜻 보기엔 폭약이라도 터뜨린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그러나 흐린 시야 속에서도 그치지 않고 이어진 공방 탓에 그 먼지구름조차 밀려나기 일쑤.
그렇게 시작된 두 기사의 정면 대결. 그렇다면 이제는 마법사의 시간이었다.
“흐읍!”
우우웅!
슈슈슉!
연신 번뜩이는 오러 블레이드의 향연 속으로 후작의 몸이 가세했다.
치지지지직!
콰과광!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번개!
후작의 오른팔의 주변이 일그러지며, 이내 닿은 공간으로 연쇄적인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강렬한 전자기가 대기를 이루는 원소를 왜곡시키고 파괴한 탓이었다.
그 막대한 영향력은 오직 한 명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치지지직!
“그게 바로 연방 제국이 자랑하는 전투 마법사의 힘인가.”
아슬하게 전류를 흘려낸 알렌 에스테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 기사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공방을 주고받는 동안 아군에게는 일절 영향도 없이 오로지 적군에게만 쏟아진 마력의 컨트롤에 감탄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파직-!
이번에는 후작의 왼팔에 들린 스태프가 빛을 내며, 마력을 내뿜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르륵!
“오호라.”
그러자 뇌전을 담은 오른팔이 움직였던 경로를 따라 마력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타나는 하나의 마법진!
일전의 공격은 오른팔이 만드는 마법진을 감추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다.
진정한 공격은 지금부터 시작인 것이다!
“하하! 방심했군!”
콰과과과광!
파직! 파지지직!
그렇게 단절된 공간 전체에 거대한 뇌격이 작렬했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소음이 이어졌고, 그 뒤로 일전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의 먼지가 휘날렸다.
어찌나 강력했던지 그 여파만으로도 여전히 대기에 원소가 남아서 감돌 정도였다.
그가 갈고닦은 뇌전 마법의 정수, 기가 스톰.
후작은 그것이 놈에게 정면으로 적중한 것을 확인한 순간 승리를 확신 지었다.
‘이 정도라면 소드마스터인 네놈의 운신도 멀쩡하지 못할 터다!’
일순 자연의 환경조차 변화시킬 정도로 막강한 힘.
그 일격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는 오직 아군이 서 있는 장소뿐이었으니, 놈 역시 온몸이 마비되어 바닥에 드러누워 있을 터였다.
후우우웅!
“……!”
그러나 이윽고 드러난 광경에 후작은 두 눈을 의심했다.
“……그렇군.”
“네, 네놈. 대체 어떻게……!”
대지를 딛고 일어선 멀쩡한 두 다리.
뇌전의 영향으로부터 조금의 피해도 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멀쩡한 갑옷.
그리고 마지막으로 털끝 하나 손상되지 않은 그의 육신까지.
“직접 당하면 이런 느낌이라는 건가.”
조소를 짓는 놈의 상태는, 처음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던 것이다!
후작의 눈동자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없다! 부, 분명히 마법이 적중한 것을 확인했거늘!’
슈우욱!
당황한 후작이 다시 손가락을 까닥이자 혼탁한 검은빛의 오러가 놈의 후방으로 쏘아졌다.
놈이 당최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대 다수의 전투가 가진 이점을 최대한 살리려는 움직임이었다.
허나.
콰직!
“커, 커억……!”
푹!
털썩-!
“……!”
폭사한 오러를 가볍게 피해 낸 국왕은 그대로 기사단장의 목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한 폭의 그림처럼, 그 심장을 노리고 여유로이 핏빛의 오러를 꽂아 넣는다.
마치 일전의 공방은 장난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 일련의 움직임이 어찌나 자연스러웠는지, 후작은 기사단장의 몸이 땅바닥으로 처박힐 때까지도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지, 지금 무슨…….”
“전투 마법사라 했던가? 뛰어난 마력의 컨트롤을 이용해 근접전을 벌이는 것은 제법 흥미로운 방법이었다.”
본디 기사와 정면으로 대치하는 것은 마법사에게 있어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으나, 그는 근접전을 즐기는 전투 마법사였다.
그 특유의 전투 스타일 덕에 백병전에서는 소드마스터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할 정도로…….
하지만.
“그래 봐야 기사에 버금가는 정도라는 것이겠지.”
국왕의 입술이 호선을 그린다.
그래, 어디까지나 못지않은 수준일 뿐. 이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또한 예상 범주나 상식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말은 간단했다.
“어차피 개미나 다를 바 없는 전력. 처음부터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는 말이다.”
“……!”
슈욱!
챙!
“크윽!”
놈이 움직였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그 뒤로 땅을 박차는 소리가 뒤따랐다.
본능적으로 스태프를 들어 이를 막아 냈으나, 가볍게 휘두른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후작의 몸은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자세를 바로잡는 그의 머릿속으로 경종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기, 기사단장이 반응하기도 전에 목숨을 앗아 갔다! 놈은 단순한 소드마스터가 아니었어……!’
제아무리 정신이 멀쩡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게다가 방금도 다중으로 펼친 방어 마법이 단숨에 파괴되었다. 가공할 만한 위력. 그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힘을 합쳐야 한다.’
우우우웅!
정점에 달한 마력의 움직임이 순식간에 마법진을 생성했다.
공간 이동의 마법진.
놈에게서 빠르게 몸을 빼낼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일단은 후퇴하고 탑주님과 합류해야…….’
하지만 나타난 마법진 속으로 몸을 내던진 순간. 놈이 검을 들고 있던 오른팔을 치켜들었다.
“헛!”
설마 검을 던지려는 것일까?!
후작은 놈의 공격을 막기 위해 오른손을 움직여 방어막을 생성했다.
……아니. 생성하려 했다.
“……!”
허무하게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좌반신과. 사라진 마법진 너머에 멀뚱히 남아 있을 오른팔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공간 이동이…… 캔슬됐다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 속에서 후작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단지 단편적인 정보로나마 알 수 있는 것은. 놈의 오른팔로부터 흘러나온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의 마법을 집어삼켰고, 영창이 사라졌다는 사실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마법을 사용할 방도도 없었다.
‘주, 죽는다!’
울컥.
반밖에 남지 않은 육신 사이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죽음을 암시하듯 주마등 같은 것이 스쳐 간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었다.
‘공간 이동이 마탑주님의 마력이 있는 곳으로 설치되었다!’
본능적으로 익숙한 마력을 좇은 것일까?
워낙 다급한 상황이었기에 눈치채지 못했으나, 분명 그 너머에는 자신의 사형인 마탑주가 있었다.
그러니 곧 그분께서도 이변을 눈치채고 이곳에 나타나시리라!
저벅- 저벅-
“…….”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그러나 놈이 검을 늘어뜨리며 다가오는 동안에도 마탑주의 모습은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뒷일조차 미련 없이 버린 듯. 찰나에 드러났던 자신의 흔적마저 온전히 지워 버렸다.
……의도적으로.
또한 조직적으로.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대, 대체 어째서…….”
배신.
정말로 그가 자신과 조국을 배신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첨벙-
그러는 사이 남자의 발걸음은 좌반신만 덩그러니 남은 후작에게 가까워졌다.
낭자한 핏물을 밟는 그 발걸음은 무척이나 경쾌했다.
“뭐, 덕분에 고맙군. 로엘, 그 녀석에게 새로운 교육법을 익히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마, 마탑주님…… 어째서…….”
“글쎄. 그건 모를 일이지.”
푹!
“죽을 네가 알 필요도 없고.”
“……커헉!”
머리를 꿰뚫는 감각은 야속하게도 뇌리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죽어 가는 와중에도 마지막으로 느낀 감각은 끔찍한 고통이었다.
“어차피 가망이 없을 거라 판단했을지도.”
“…….”
그리고 남자는 웃었다.
그 싸늘한 시선에 담긴 의미는,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 * *
우우우웅!
툭-!
“…….”
찰나의 시간, 공간이 열리고 그 속에서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공간 이동의 마법진이 소멸했다.
연방제국의 마탑주는 무감한 눈빛으로 그것을 쳐다보았다.
“도와주러 가지 않아도 되겠소?”
“…….”
누군가의 물음에 설레설레 고개를 내젓는 마탑주.
짐짓 무정하다고 느껴질 수 있었으나, 그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그따위 하루살이 같은 목숨에 내 안위를 걸 수는 없겠지.”
“…….”
“이래 봬도 나는 무척이나 이성적인 사람이오. 최소한 내 목숨 하나는 보전할 줄 아는.”
“그렇군.”
마탑주가 고개를 돌리자, 어느덧 공간을 분리하던 후작의 마력은 사라진 뒤였다.
후작이 죽었다. 그리고 더 이상 ‘놈’을 막을 방도는 사라졌다.
어쩌면 자신이 저곳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그러니 당신에게는 감사하고 있소. 마기아의 현자.”
마탑주가 맞은편에 선 노인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로드 헤임달이 눈썹을 꿈틀대며 답했다.
“무슨 의미요.”
“내가 호적수인 당신의 마력을 진즉에 감지하지 못했다면, 저곳에서 함께 죽어 나갔으리라는 소리요.”
그에게 있어서 제국의 안위나 사제의 목숨 따위의 단어는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니, 애초에 자신조차도 마찬가지. 그에겐 목숨이라는 것부터가 의미가 없는 단어였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위대한 진리와 마도의 끝. 그 외에 어떤 것들도 중요치 않았다.
그렇기에 마탑주는 처음부터 이 의미 없는 싸움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병력을 충분히 끌어모으지 못한 상태에서 마기아의 마법 전력까지 적진에 가세했다면, 필시 이 제국의 명운도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는 소리겠지.”
“간사한 소리로군. 그간 제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았음에도 그런 말을 하는가?”
“이성적이라 말해 주시길. 마도와 관계가 없는 일에 뛰어들기엔 시간이 아깝지.”
그렇게 대꾸하는 마탑주의 눈매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뭐, 혹여나 에스테반의 대마법사가 이곳에 왔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상대해 줄 의향은 있다만…… 아쉽게도 그들은 서쪽을 정리하는 모양이더군.”
스윽-
이내 마탑주는 무감정한 표정으로 공간 이동의 마법진을 생성했다.
“아아, 미리 말하지만 마탑의 연구자료는 이미 모두 빼돌렸소. 제법 많은 양이라 힘들었지. 마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오.”
“그대로 도망가려는 것이오.”
“도망이라니, 당치도 않은 소리.”
우우웅!
그리고 마탑주의 몸이 빛무리 속에 휘감겼다.
“본인은 마도의 극의를 보기 전까지 살아남기를 선택했을 뿐이오. 설령 흑마법의 힘을 빌려 썩어가는 육신이라 하더라도.”
“…….”
그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다.
팟!
“…….”
그렇게 홀로 남은 대마법사가 그가 사라진 장소를 노려보았다.
피차 대마법사 중에서도 두각을 달리는 몸이었으니, 공간 이동을 방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지식량이 아닌 마력으로서는, 현자라 불리는 그조차도 상대할 수가 마땅치 않기도 했고.
그러나.
-모든 것을 짓밟고 유린하겠다. 놈들의 흔적이 더 이상 이곳에 남지 않을 때까지.
“……자취를 감추었다고는 하지만 그대의 뜻대로 될 거 같지는 않군.”
로드 헤임달은 로브 자락 속에 감추어져 있던 물건을 꺼냈다.
고대의 디텍팅 마법이라 했던가?
애석하게도 그것은 눈앞에서 사라진 남자의 마력을 품은 채로 그가 있을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먼 훗날 그것을 단죄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 아니리라.
“알렌 에스테반.”
이윽고 로드 헤임달의 시선이 황궁의 방향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