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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220화 (220/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20화

여명이 밝아 오고 (1)

슈우욱-

“재빨리 방어막을 펼쳐라! 어서!”

쾅!

콰콰쾅!

“큭!”

적군에 의해 발사된 마법이 황궁을 덮친다.

그 찬란한 영광을 상징하던 황금빛의 벽면은 흙먼지와 균열에 뒤덮여 더 이상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고작 십 분.

놈들의 병력이 성벽을 넘은 지, 고작 십 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문제는 놈들의 마법이 도무지 어디에서 어떻게 날아오는지 예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슈우우욱-

“이, 이런……! 또 마법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제길! 대체 어떻게 이런 거리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상식 밖의 거리에서부터 날아오는 마법들.

마치 보이지 않는 적의 화살을 감으로 막아 내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퍼뜨린 마력은 모두 무용지물이었고, 예기치 못한 공격에 황궁은 점차 공격을 허용하고 있었다.

‘퍼뜨린 기감보다 먼 곳에서의 저격이라니…….’

오죽했으면 수도의 마법사들이 모조리 뭉쳤음에도 분전을 이어가고 있을까?

당연히 그럴수록 견제의 수단은 사라져, 날아드는 마법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었다.

“두 대마법사께서는 하필 이런 때에 어디를…….”

그때였다.

슈우욱-

“……!”

“이, 이런?! 대체 어느새!”

잠시 황성을 보호하던 마력이 약해진 틈을 타고 마법이 날아들었다.

마법사가 다급히 외쳤다.

“어서 방어벽을……!”

“늦었습니다!”

콰과과광!

까가각!

끼기기기기긱!

“……!”

“저, 저거!”

“무너진다!”

그 순간 모골이 송연해지는 소리와 함께 한쪽의 벽면이 갸우뚱 기울였다.

후방에서부터 덮쳐 오는 거대한 그림자와 잔해들.

이를 확인한 마법사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피, 피해!”

“으아아악!”

콰르르릉!!

“이럴 수가!”

결국 무너진 벽면에 휩쓸려 사라진 그들의 실루엣.

혹자는 제법 떨어진 위치에서 방어벽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몸을 내던지는 것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아낄 수 있었다.

하지만 황궁의 바로 아래에서 마법을 사용하던 이들은 아니었다.

이미 마력을 소진할 대로 소진한 그들이 떨어져 내리는 잔해를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철컥-!

“폐, 폐하!”

그리고 그 시각.

“마법사들이 당했습니다! 이대로라면 황궁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황좌에 고고하게 앉은 남자는.

그 모든 보고를 전해 듣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당했다.”

“그, 그렇습니다.”

“아직도 로카고스 후작과 마탑주의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나.”

“……그건.”

황제의 나지막한 물음에 기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미 그들에 관한 소식은 들어온 지 오래였다.

수도의 한복판에 솟아올랐던 얼음벽과 후작의 고유 공간을 본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므로.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들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하나, 결과뿐.

그들은 차원을 분리하던 막이 사라지고 적국의 왕이 걸어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써 순수하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 상황이 결코 그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뿐이리라.

“……폐하,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입술을 악다물고 있던 기사가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성벽이 무너지고 시작한 이상 놈들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황궁이 무너지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적국의 병력이 이미 코앞까지 들이닥쳤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짐 보고 어찌하라는 것이지?”

“……예?”

“이대로 황궁의 비밀 통로를 통해 도망치다가 비참하게 사로잡힐까?”

“그, 그건…….”

“그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적군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안위를 보장받으랴?”

“…….”

기사의 무거운 침묵에 황제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일 초가 멀다 하고 들어오는 절망적인 소식에도 황제는 요지부동이었다.

정확히는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 옳았다.

“마지막 희망이 되어 줄 대마법사들은 소식조차 없고, 황궁은 시시각각 놈들의 공격으로 무너지고 있지.”

적군의 삼만 병력은 이곳을 향하고 있었고 마법사들은 감시의 눈을 펼치고 수도를 주시하고 있었으니.

“필시 이 상태에서 도망쳤다가는 쫓아오는 적군에 의해 개죽음이 될 터다.”

“하, 하지만……!”

너무도 맞는 말이었기에 기사는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어쩌면 이 상황을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황제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닥치고 있어라.”

그 순간 황제의 눈이 살기로 번뜩였다.

“마지막까지 숨겨 둔 비수는 놈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 그에겐 아직 상황을 뒤집을 한 수가 남아 있었다.

최소한 ‘그’에게는 말이다.

뚜벅- 뚜벅-

“폐하?”

절망에 빠져 있던 기사는 황좌에서 걸어 내려오는 황제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보인 것은 왜일까?

하물며 그 눈빛은…….

콰득!

“……쿨럭?!”

문득 기사는 가슴팍을 집어 뜯는 듯한 감각에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목구멍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이라고는 제 목소리가 아닌 진득한 핏덩어리 밖에는 없었다.

한때는 그의 몸을 이루었던 혈액과 이에 뒤섞인 내장들.

그것들이 가슴팍을 꿰뚫은 손바닥으로 인해, 식도를 통해 역류한 것이다!

“폐…… 하……?”

까득!

까드드드드득!

“꺼, 끅…… 끄르르륵…….”

“크흐흐.”

이윽고 기사의 몸이 뒤틀리며 기형적인 형태로 일그러진다.

내부의 압력으로 터진 피부의 이곳저곳에서는 핏물이 배어 나왔고, 이내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점차 수축했다.

그리고 그 가슴팍에 손을 박아 넣고 휘젓는 황제의 몸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아, 그래. 이거야. 이 힘이야.”

갈라진 피부. 검게 물든 흰자. 온몸을 감싸고 있는 칠흑의 마력.

마지막으로 막대한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흘러나온 두 쌍의 날개까지.

이미 황제는 인간이라 부르기 어려운 것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준비하고 있었던 최후의 수단.

철컥- 철컥-

“크흐흐흐…… 드디어 오는가.”

온몸에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피 칠갑을 두른 채, 마지막 전장이 될 황실의 대전(大殿)으로 다가오는.

저 어린 양에게 향할 비수였다.

* * *

“알렌 에스테반.”

그 말이 시작이었다.

눈동자만을 들어, 그곳을 바라보자.

황좌에 앉아 오만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다만, 익숙한 것은 얼굴의 형태뿐이었다.

“기분 전환이라도 시도한 건가? 웃기지도 않은 모습이군.”

그 끔찍한 피부와 박쥐의 것과도 같은 두 쌍의 날개에는 일전의 모습과 닮은 점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을 수 없었으니까.

“라이덴 델 카롯트.”

내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놈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것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대비되는 광경이었다.

“마침내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면 성공이다. 충분히 그렇게 보이는군.”

“크흐흐, 확실히 이전에 보았던 모습과는 다르겠지. 어떠냐? 이제야 두려움이 느껴지나?”

“아니.”

나는 단호하게 놈의 말을 부정했다. 그러고는 싸늘한 목소리로 확언했다.

“일전에 에스테반을 찾았을 때와 달리, 이제 네놈에게는 안쓰러움조차 남지 않았군.”

“……뭐라?”

“그 모습조차 우습기 그지없다는 뜻이다.”

가면 앞에 드러냈던 부드러운 예의와 웃음.

놈에게 존댓말이란 스스로의 자신감을 대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을 낮추더라도 만인의 하늘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이를 가능케 했던 입지와 신뢰.

비록 그 이면은 피로 얼룩져 있다 하더라도, 놈이 그리던 미래에는 어떠한 걸림돌조차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젠 네놈의 자리를 지켜 줄 놈은 존재하진 않는다. 그 자랑스럽던 군대들도 사방에 발이 묶여 더는 힘이 되어 주진 못할 테지.”

“…….”

“아직도 스스로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가?”

“…….”

내 고저 없는 목소리에 놈의 표정이 점차 무표정으로 굳어 갔다.

그래. 놈은 더 이상 에스테반에 불쑥 찾아왔던 그때처럼 여유를 부릴 수단이 남지 않았다.

비로소 스스로의 육신마저 부정으로 불태운 뒤에야, 나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였다!

“크, 크하하핫!”

그때, 놈이 갈라진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광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즐겁지.”

“그랬군! 그 모습을 보니 확신이 드는군! 네 놈의 힘은 이제 막 소드마스터에 오른 애송이의 것이 아니다! 루카고스 후작이 당할 만도 해!”

“놈들뿐만이 아니지.”

나는 놈의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칼로스 후작은 물론이고, 마법으로 재워 놓고 있었던 금룡대의 기사단장까지. 친히 내 손으로 모조리 죽여 주었지.”

“칼로스 후작?”

“모르는 체해도 소용없다. 네놈이 서부의 비밀 통로를 통해 녀석을 보냈을 테니까.”

“크흐흐! 그래, 그것까지 알고 있다면 말은 빠르겠군! 역시 그랬어!”

광소를 짓던 놈의 눈이 즐겁다는 듯 휘어졌다.

이에 흑마법으로 꿈틀대는 칠흑빛의 눈동자. 그것은 광기에 가까웠다.

“우연은 없었다! 네놈이렷다! 내 모든 계획을 망가뜨리고 나를 몰아세운 것은!”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던 소드마스터의 일부터 ‘까마귀’의 일까지.

마침내 추측조차 할 수 없던 실마리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야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묻지! 네놈은 어떻게 내 계략을 알아차렸지?”

“…….”

“네 아비의 암살부터 마탑에 심어 둔 스파이의 존재까지, 결코 네놈들 에스테반 따위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설계했을 터다!”

“…….”

“어째서 네놈이 이 나를 밀어내고 역사의 주인공이 되려 한단 말이냐!”

쾅!

황제가 황좌를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을 내뱉을수록 점차 격해지는 감정.

내내 감추어져 있던 그것의 이름은 열등감이었다.

어떤 계책을 짜내더라도 알렌 에스테반이라는 남자에게 가로막힌 그는.

이미 어느 순간부터 모든 행동이 열등감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던 것이다!

“대답해라! 대체 무슨 수를 썼지? 어떻게 네놈 따위가 나를 이길 수 있단 말이냐!”

“시간을 끄는군. 이 지경이 돼서야 목숨이 아까워졌나.”

“……좋다, 대답하기 싫다면 상관없다. 어차피 내부에 세작을 심어 놓았을 뿐이겠지.”

어떻게든 자신의 작전을 알아낼 수 있는 위치의 수하를 매수했다.

그러고는 유출된 정보를 통해 앞길을 가로막고 자신을 이곳까지 몰아세웠다.

가장 합리적인 결론의 도출.

모로 가나 그렇게밖에 생각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면, 설마 이것도 알 수 있겠느냐?”

그 순간 황제의 격정 가득한 눈동자에서 실핏줄이 터져 나갔다.

그리고 기나긴 자상 사이로 흘러내리는 검은 핏물. 그것을 매개체 삼아 숨겨 두었던 마법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이건.”

스스스-

문득, 사방을 감싼 대기의 흐름이 뒤바뀌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는 새로운 유체가 기존의 것을 밀어내고. 대전의 내부를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달라진 대기의 흐름을 느끼던 황제가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 역시 이것까지 알 수는 없었겠지. 이것만큼은 네놈이 겪어본 적 없을 테니까!”

무색무취하지만 그것이 뭔지는 느낄 수 있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독이군.”

“크흐흐, 정답이다. 이 몸이 친히 일만의 심장을 흡수하고 응축해 낸 맹독이지.”

황제가 갈라진 얼굴을 쓸어내리며 뇌까렸다.

“그것은 네 육신과 정신을 좀먹고 갉아먹을 것이다. 네놈이 죽은 이후에도. 영원히.”

이 공간 전체에 독을 퍼뜨리는 것. 그것이 놈이 준비한 마지막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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