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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221화 (221/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21화

여명이 밝아 오고 (2)

스스스스-

점차 사방에서 옥죄여지는 오염된 공기.

어느덧 피부로도 와닿는 그것에 나는 손가락의 끝을 가볍게 움직여 보았다.

“……그렇군.”

눈매가 가늘게 좁혀진다.

이를 확인한 황제의 몸이 즐거움으로 씰룩거렸다.

“어떠냐, 이 몸이 만들어 낸 독의 위력은?”

만독불침(萬毒不侵).

초인의 경지에 오른 기사는 어떠한 맹독에도 저항할 수 있는 육신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대기를 가득 채운 이것이, 놈의 말대로 육체와 정신을 붕괴시키는 저주의 일종이라면.

“그 힘의 근본이 되는 오러조차 일만의 혼령에게 갉아 먹히고 있을 테지! 조금씩, 조금씩! 네 모든 힘을 앗아 가고 그 몸을 지배할 터다!”

소드마스터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저항력은 무용지물이 된다.

오히려 그 힘의 먹잇감이 되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온몸이 잠식당하게 된다.

그렇게 기쁘게 설명을 지껄이던 놈의 입술이 일순 싸늘하게 굳었다.

“그러니 지금의 네놈은 검술을 익혔을 뿐인 애송이에 불과하지.”

스스스스-

수우우욱!

놈의 발치에 머물던 그림자가 요동치며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손바닥을 가볍게 들어 올리자 그것이 형태를 이루고 솟아났다.

빛 한 조각조차 반사되지 않는 칠흑의 검.

스윽-

척-!

녀석은 그것을 손에 쥐며 천천히 내게로 겨누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입이 열렸을 때는, 두 쌍의 날개가 훤히 펼쳐진 뒤였다.

“네놈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로 영원히 구천을 떠돌게 될 것이다.”

파앙-!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파공성과 함께 검은 잔상이 허공으로 새겨졌다.

그와 동시에 좌측 측면에서부터 느껴지는 진득한 사기(邪氣).

움직임을 쫓던 내 시선이 놈의 두 눈과 마주했다.

‘범위를 봐서는…… 피해 내긴 까다로운가.’

웬만한 소드마스터의 속도 정도는 가뿐히 상회하는 움직임이었다.

무엇보다도 저 칠흑빛 검에서 느껴지는 힘은…….

‘황성에서 죽어 나간 원혼들이 뭉치고 있다.’

마치 자기장을 이루는 것처럼 주변의 영혼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죽어 간 원혼들이 즐비한 이곳에서는 저 흑마법으로 이뤄진 검보다 날카로운 것은 찾기 힘들 것이다.

당연히 공격을 허용했다가는 만만치 않은 큰 출혈을 감내해야 하리라.

철컥-

나는 엘베른을 들어 올리며 녀석의 공격을 쳐내려 했다.

“…….”

하지만 올라가다가 멈추는 손목. 나는 일부러 반대 팔을 들어 다가온 녀석의 검과 맞부딪혔다.

챙캉!

까가가각!

이윽고 칠흑의 검이 스치며 기괴한 소음을 자아내는 왼팔의 갑옷.

재빨리 비스듬히 방향을 틀어 내는 것으로 밀치는 데에는 성공했다.

“크흐흐!”

그러나 검의 경로가 닿아 있던 보호대의 상태가 이상했다.

본디 은빛으로 찬란했던 금속은 썩은 것처럼 검게 물들었고. 날이 스쳐 지나간 결을 따라 음산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렇군. 부식인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닿는 것만으로도 물질을 부식시키는 수준의 검.

저것을 맨손으로 들고 휘두르는 녀석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마라는 이름에 어울렸다.

다르게 말하면, 놈이 몸에 받아들이고 있는 음차원의 마력이 그만큼 거대하다는 증거였고.

“모르긴 몰라도 대단한 검이군.”

“왜 그러지? 당황했느냐?”

놈은 공격이 적중하지 않았음에도 히죽 웃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 역시도 방금의 공격으로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보다는 내가 보인 행동이 흡족스러웠으리라.

“한데 오른팔을 움직이지 않은 것은 왜냐? 금방의 상황이라면 응당 검을 휘둘렀어야 정상이거늘.”

“…….”

“크흐흐, 왜? 설마 몸이 둔해지는 것이 느껴지기라도 하는 것이냐?”

스스스-

그러는 사이 놈의 검은 점차 새로운 형태를 갖춰나가고 있었다.

일전의 모습이 얼핏 반투명한 안개를 쥔 것처럼 보였다면, 이제는 완전히 압축되어 제대로 된 검처럼 보였다.

하지만 녀석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몸이 둔해졌다고? 내가?”

“말을 돌리지 마라. 그렇지 않았다면 오른팔을 놔두고 구태여 왼팔을 가져다 대지는…….”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콱!

나는 여전히 음산한 기운이 남은 왼팔의 갑주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신하들이 처음으로 바쳤던 진심을 함부로 더럽힐 수는 없으니까.”

콰지직!

“……!”

그것을 종잇장처럼 찢어 내며, 바닥에 내던졌다.

“……뭐, 뭐라고?”

이를 본 황제의 눈썹이 당혹감으로 꿈틀거렸다.

이윽고 눈에 띄게 흔들리는 흑마법의 사기.

그도 그럴 수밖에.

“네, 네놈…… 방금 어떻게…….”

온몸과 오러가 독으로 마비된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행동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분명 독의 영향이…… 아, 아니, 제아무리 소드마스터라 하더라도 그 정도나 되는 힘이 남아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인간이 오직 근력만으로 갑옷을 찢어 낼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 모든 갑옷의 경도가 동일하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것은 금속제의 갑옷이 분명했다. 명백한 최상품의.

“독의 영향이라.”

그리고 나는 피식 웃으며 놈의 말을 되짚었다.

“물론 힘이 남아 있을 리가 없지. 철저하게 초인을 노리고 제작된 불의의 일격이 그토록 허술했다면 도리어 우스웠을 테니까.”

“…….”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독에 ‘당했을’ 때의 이야기겠지.”

“……뭐라고?”

후우우웅!

그때, 갑옷에 가려진 오른팔이 번뜩이더니 대전에 만연한 흑마법의 독을 모조리 밀어냈다.

그와 동시에 옷자락이 휘날릴 정도의 바람이 불어왔다. 오염을 싱그럽게 정화하는 순수한 바람의 원소가.

그제야 놈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바람?! 설마…… 처음부터…….”

“그래. 독 따위에는 걸려 있지 않았지.”

어느덧 내 입가에는 비릿한 조소가 맺혀 있었다.

“한 번 당했던 독에 다시 당하는 것만큼이나 멍청한 것은 없으니까.”

“그, 그게 무슨…… 이미 당했다니…….”

“네놈의 무기가 또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란 소리다.”

───이 독은, 나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그때의 함정이었으니까!

팟-!

“……!”

순간 시야가 흐릿해지며 세상이 반전했다.

이윽고 나타난 곳에는, 궤적을 놓친 채로 당황하고 있는 놈의 뒷모습이 펼쳐진다.

슈우욱!

콰과과광!

“커헉!”

순식간에 휘둘러진 엘베른의 오러.

순수한 바람의 묘리가 담긴 움직임은 흑마법의 힘으로 강화된 놈조차도 읽어 낼 수 없을 정도였다.

“대체 어째서냐! 어째서 내 공격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냐!”

방금의 공격으로 놈의 외부를 감싸던 흑마법의 힘이 다수 소멸했다.

그 덕분에 치명적인 상처가 생기지는 않았으나, 일격을 허용했다는 것만으로 놈의 이성은 폭주하고 있었다.

“어째서 네놈만큼은! 감히 내 뜻대로 휘둘려지지 않는단 말이냐!”

콰과과과광!

놈이 쥔 검이 폭발하듯 휘둘러지며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다.

이윽고 그것들이 산 자를 노리듯 일 점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 옷자락을 스치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뭣이?!”

쑤욱!

그리고 재차 놈의 뒤에 나타난다.

이번의 공격은 사악한 기운을 꿰뚫고 놈의 육신에 직격했다.

“크아아아!”

“학습 능력이 없는가. 네놈의 공격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꾸득! 뚜드득!

등 뒤에 남은 상처 부위 속이 벌레가 기어가듯 꿈틀대기 시작했다.

흑마법의 힘이 재빠르게 상처를 틀어막고 몸을 재생시킨 것이다!

“감히! 감히 이 나를!”

물론 그럴수록 밖으로 흘러나오는 기운 역시 줄어들어만 갔다. 그러나 놈은 개의치 않았다.

단 일격만 적중시킨다면 그 몸 역시 원혼들의 힘으로 부식시킬 수 있을 터니까.

하지만 놈이 치유된 몸을 이끌고 고개를 치켜든 그 순간이었다.

──!

스스스스!

“뭐, 뭐야! 갑자기 이게 무슨……!”

놈의 손에 쥐어져 있던 검의 형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윽고 천천히 소멸하듯 허공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뭉쳐 있던 그 원혼들이 향한 곳은.

스스스스-!

“호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엘베른에 덧씌워진 오러 속이었다.

나는 그 흥미로운 광경에 드물게 놀라움을 표했다.

“흑마법의 기운이 약해진 틈을 타서 잃어버린 자아의 소유권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나.”

“네, 네놈이 그 힘을 어째서!”

“글쎄.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르겠군.”

타오르는 것처럼 흔들리는 핏빛의 오러.

정말로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과거의 내가 흡수했던 마력 탓일 수도 있었고, 자신을 이 꼴로 만든 놈에게 복수하기 위한 원혼들의 의지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원혼들이 자신을 불태우면서까지 얻은 마지막 힘을, 내게 빌려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뭐, 마침 잘 되었군.”

나는 엘베른을 검집 속으로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몸을 측면으로 강하게 뒤틀며 검집을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네놈에게는 반드시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 있었거든.”

“머, 멈춰…….”

놈의 계략이 마침내 나를 차디찬 바닥에 눕게 만들었던 이후로.

또한 예상치 못했던 회귀 속에서 이 순간을 꿈꿔 왔던 이후로.

나는 비로소 과거의 실수들을 깨닫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스릉-

“그리고 이것은 그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

────!!

검집에서 뽑혀 나간 엘베른이 세상을 반으로 가른다.

긴 정적과 함께 만물을 이루던 원소조차 형태가 붕괴되고 절반으로 기울어진다.

그리고 찾아온 후폭풍이 어둠이 드리운 황궁을 정화하듯 휘몰아친다.

고오오오-

그렇게 소멸하여 형체조차 남지 않은 황궁의 벽면 위로 노을 진 태양 빛이 드리웠다.

“이것이 한때는 어리석었던 검왕의 전력이다.”

* * *

“허억…… 허억…….”

털썩-!

모든 마기를 잃은 황제의 육신은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모습이었다.

시시각각 눈에 보일 정도로 말라 가는 몸. 쩍쩍 갈라져 나무껍질처럼 떨어져 내리는 피부.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허하게 텅 비어 버린 몸통까지.

그 형체를 붙들고 있는 최후의 생명력만 아니었다면, 죽었어도 수천 번을 죽었어야 했을 충격이었다.

철컥-

“오, 오지 마……!”

울리는 갑옷의 마찰음. 육신의 파편과 검은 핏물을 짓밟으며 다가오는 사신.

엘베른을 회수한 뒤에 놈에게로 다가가자, 놈의 몸이 경기를 일으키듯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끝이군.”

“흐이이익!”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재차 발걸음을 옮겼다.

길었던 싸움의 끝. 그 마무리를 지을 때가 다가왔던 탓이었다.

철컥-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네…… 네놈……!”

그 공허한 눈빛이 옭아매듯 나를 노려본다.

이제는 한 줌의 마력조차 남지 않아 본래대로 되돌아온 눈빛.

그러나 무엇보다도 놈의 심경을 어지럽히는 것은, 자신을 이 지경까지 몰아넣었던 힘의 정체였다.

“어째서…… 어째서 네놈에게만 그런 힘이 허락되는 것이냐,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을 텐데…… 나 역시도 네놈과 다르지 않을진대 어째서…….”

“이런 상황에서 구태여 설명이 필요한가?”

“…….”

철컥- 철컥-

“하지만 알려 주지.”

오히려 그 모습조차 즐거운 듯, 무척이나 경쾌한 발걸음이었다.

놈을 바라보는 두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지만.

“네놈이 수하를 시켜 독을 삼키게 한 탓에, 나는 내 손으로 자국의 병사들을 베어야만 했다.”

“그, 그게 무슨…….”

“그리고 기어코 놈들의 손에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지.”

그때의 감각은 잊지 못한다.

흐릿해지는 시야. 전신에서 꺼져 가는 감각들.

그리고 그보다 더욱 역겨웠던 것은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병사들을 베던 그 자신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주했던 놈들의 비릿한 미소였다.

“나는 아버님의 죽음 이후로 단 한 번도 웃어 본 적 없다.”

“…….”

“그런 내게 놈들의 행복한 웃음은 새로운 열망을 갖게 만들어 주더군.”

다시 한번 이 생명으로 대지에 발을 딛고 설 수만 있다면. 반드시 나를 업신여기던 이들의 목을 베겠노라고.

다시 한번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반드시 내가 잃었던 것들을 되찾고 영광 속에서 승리하겠노라고.

철컥-

“그것이 비로소 모든 것을 잃은 나를 이 땅 위에 세웠다.”

“…….”

“네놈에게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

그렇게 놈의 육신이 허물어진 계단을 오르고, 수 없이 샘솟는 의문 속에서도 새파랗게 질린 놈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이제는 놈이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 아닌, 내가 놈을 바라보는 구도가 되었다.

“……설마. 네놈의 정체는.”

“그날의 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허수아비에 불과한 국왕이었을 테니까.”

라이덴 델 카롯트.

그리고 그것이 놈과의 최후의 인사였다.

“네놈이 마지막이다.”

서걱-

황제의 머리가 하늘을 날았다.

주인 잃은 놈의 몸뚱어리에서 피 분수가 터져 나와 대전을 붉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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