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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222화 (222/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22화

이곳에 내가 있노라 (1)

전쟁이 끝났다.

길었던 핍박과 농간 속.

수십 년 동안이나 에스테반을 노려왔던 연방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주인을 잃은 놈들의 땅은 흔적도 없이 무수히 분열했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미래였을지도 몰랐다.

이건 그 후에 알아낸 소식이다만, 연방제국의 귀족들은 모두 흑마법의 세뇌에 걸려 있었다.

세뇌의 주체가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거스르지 못하도록. 어떻게든 주인의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이 바로 수많은 살생과 부정을 저지르고도 유지할 수 있었던 권력의 정체.

그것이 황제가 죽은 이후 풀어졌으니 당연히 결집력이 와해 될 수밖에.

덕분에 지금 연방제국이 있던 땅은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스스로 황제를 칭하며 영역을 넓혀 나가는 귀족부터 시작하여, 사방을 조여 오는 승냥이들의 손짓까지!

그야말로 분열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에스테반도 점령한 서부의 성들을 기반으로 옛 제국령의 서쪽 대부분을 집어삼킬 수 있었다.

서부라고 한정 짓는다면 작다고 생각될지 모르나, 기존에 연방제국이 가지고 있던 땅의 크기를 생각하면 무척이나 광활한 크기였다.

게다가 그 땅 모두 알짜배기의 곡창지대가 대부분이었으니, 에스테반으로써는 전쟁의 전리품을 톡톡히 챙겨 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그것이 무작정 좋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전하, 이것이 현재 왕국이 확장한 영토의 크기입니다.”

“……쯧.”

나는 비도르 후작이 내민 지도를 받았다.

그러고는 반쯤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를 확인해 나갔다.

“크군. 쓸데없이.”

“커, 커험……!”

후작이 시선을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벌써 수 배나 늘어난 에스테반의 영토.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비대해진 까닭이었다.

물론 그런 서부의 점령을 맡았던 것이 후작 본인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나는 분명히 곡창지대까지 점령하라고 말했다.”

“부, 분명 그리 말씀하셨지요…….”

“한데 이것은 아무리 봐도 곡창지대라 부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군.”

“…….”

일그러진 표정의 까닭은 그것이었다.

국무회의의 안건은 벌써 수개월이 지나도록 영토에 관련된 내용뿐.

심지어 하루가 멀다고 들려오는 점령지의 소식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었다.

‘……절망적인 것은 그게 얼마나 더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스테반의 영토는 본의 아니게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더욱 얄미운 점은 그것이 후작의 의지 역시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하지만 전하, 아시겠지만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인근의 민초들이 왕국령에 소속되기를 원하는데 에스테반이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그건 놈들의 사정이지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나는 표정을 왈칵 일그러뜨렸다.

그래. 당초 점령한 서부의 땅은 지극히 상식적인 선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리도 불어나게 된 것은 인근의 영지들이 모조리 규합된 탓이었다.

영주성을 탈환한 평민들이 아예 영지를 가져다 바친 것이다!

이윽고 내 손이 귀찮다는 듯 휘저어졌다.

“더 받아 줄 생각 없다. 왕실에는 이제 그 넓은 땅을 관리할 만한 인력도 없고.”

“커, 커험……!”

“앞으로 놈들이 찾아온다면 모조리 돌려보내라. 말을 듣지 않는다면 강제로 내쫓아라.”

단호한 태도.

이에 후작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고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에스테반에 소속되고 싶은 것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 제국을 상대로 전쟁에서 이겼으며, 점령한 영토는 이미 왕국의 수준을 벗어났으니 말입니다.”

“…….”

“애초에 그들로서는 연방제국의 폭정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족한 인재는 뽑으면 될…… 거고요? 허허. 허허허…….”

하지만 그렇게 이어지던 후작의 멋쩍은 웃음도 점차 잦아들었다.

“…….”

“…….”

그를 지그시 노려보는 내 눈빛을 발견한 탓이었다.

“허, 허허…….”

후작은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으며 뒷걸음질 쳤다.

“허, 하나 전하의 의중이 그러하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 그렇고 말고요?”

“…….”

“앞으로는 영토의 편입은 조금 자중하겠…….”

“좋다. 원한다면 그들을 받아 주어도 좋다.”

“……습니, 예엣?!”

자신이 들은 것이 정녕 사실일까?

후작은 하얗게 질려 있던 얼굴을 반색하며 되물었다.

“저, 정녕 그리해도 되겠습니까? 이 이상은 귀찮아 하시던 것이 아니신지?”

“그것이 귀족들의 뜻이라면 국왕 된 도리로서 들어 주지 않을 수 없지.”

“오오……!”

실제로 귀족들은 서부 전체를 집어삼키기를 원했다.

탈이 나지 않는 선에서 얻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땅!

국력과 위엄은 곧 그 땅의 크기에서부터 나오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녕 기쁜 소식입니다! 여느 귀족들도 전하의 결정에 크게 감읍할 것입니다!”

“그래야지. 용건이 끝났다면 이만 돌아가도록.”

“그리하겠습니다.”

나는 귀찮다는 듯 재차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후작은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서려 했다.

문득 드는 의문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아, 그런데 이보다 영토를 더욱 넓힌다면 그곳의 관리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관리라.”

“분명 인력이 부족하다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분명 그랬지.”

그 순간 고개를 끄덕이던 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좋은 수가 떠올랐거든.”

“예…… 그, 그렇습니까?”

후작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은 수?

‘슬슬 논공행상이 시작될 시기긴 한데…… 귀족들의 영토를 넓혀 주시려나?’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어려웠던 탓이다.

* * *

그로부터 다시 일 개월이 지났다.

어느덧 만연하던 혼란도 잠잠해졌고, 연방제국의 서부를 규합한다는 목적도 완성에 가까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허어! 영토가 벌써 이리도 늘어났단 말인가?”

발테르 공작은 후작이 들고 온 지도를 보며 순수한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늘어나는 영토의 크기는 곧 재무와도 깊은 관계가 있는 것.

하물며 이제는 에스테반의 것이 된 그 땅이 가지는 의미는 남달랐다.

“대부분이 곡창지대이니만큼 그곳에서 생산되는 식량도 엄청난 양이겠지. 이제 더 이상 에스테반에서는 굶는 이가 생겨나지 않겠구나!”

“그렇습니다. 게다가 앞으로는 미스릴에 기대지 않아도 재정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허허, 참으로 잘 되었네.”

미스릴의 양은 어디까지나 한정적이었다.

캐내는 양을 조절하고 있기에 앞으로 수십 년간은 더 캐낼 수 있다 하더라도.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수입원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반대로 땅은 달랐다.

드넓은 공간. 하물며 옛 제국령의 북부와 마찬가지로 비옥하기로 소문난 곡창지대.

그곳을 활용하기만 하더라도 왕국의 운영이 차질을 빚을 일은 없다.

공작이 이리도 기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단 뜻이다!

“그렇다면 나는 관련된 내용을 정리해 보겠네. 아무래도 많이 바빠질 것 같다만, 자네도 슬슬 쉬러 가 보는 것이 어떤가?”

“그렇게 할까요?”

“음! 요 수 개월간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지 않았는가? 이럴 때라도 여유롭게 쉬지 않으면 안 되겠지.”

“……예,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후작의 눈은 무척이나 퀭했다.

뭐니 뭐니 해도 전쟁이 끝난 뒤로 하루도 쉬지 못했으니까.

‘후우…… 모두 내 욕심이니 누굴 탓하겠냐마는.’

어쨌든 이대로 과로로 쓰러지는 추태를 보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피로가 쌓일 대로 쌓였으니 휴식을 취하기는 해야 했다.

“그렇다면 실례를 무릅쓰고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담화 자리를 마련함세.”

결국 가벼운 마음으로 재무부를 나선 후작.

그가 발걸음을 향한 곳은, 왕실의 중책에게만 제공되는 개인실이었다.

“흐음! 이곳도 오랜만이구나.”

끼이익!

문을 열자마자 물씬 풍겨 오는 그리운 향기.

왕궁에서 지낸 지도 벌써 삼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던가?

“……그렇군.”

후작의 입술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익숙함이란 참으로 무섭지. 영지도 아닌 이곳이 그립다고 느껴질 줄이야.”

사실 당시 1왕자의 임시 보좌관으로 지목되었을 때는 금방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강했었다.

왕궁의 한복판에서 고위 귀족인 수하를 참살한 남자.

전후 관계야 어찌 되었든, 그런 사람의 아래에 있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 줄 몰랐으니까.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그런 1왕자라는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분을 따르고 있었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올곧은 의지 탓이었을까.

그야말로 어느 순간부터 자신은 그를 진심으로 따르고 있었다.

아마 언제인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별다른 계기조차 없이 천천히 녹아들었을 테지.

다른 말로 하면 그 사람 자체가 가진 매력에 매료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따르게 만들 정도의 매력에.

“참으로 신기한 일이야, 으음?”

그때, 그렇게 중얼거리던 후작의 눈으로 책상 위에 올려진 한 통의 서신이 보였다.

“이게 뭐지?”

황금색 무늬로 장식되어 있는 고풍스러운 서신.

스윽-

이를 집어 올리자, 무의식 속에서 알듯 말듯한 기억 하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것을 어디에서 본 적이 있던가?”

음, 전혀 모르겠다.

쌓인 먼지로 봐서는 보름쯤 전에 도착한 것 같다만…….

후작은 무의식적으로 서신의 봉인을 뜯어내고, 그 내용을 확인했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툭-!

하지만 서신은 이내 힘없이 떨어져 내린다.

그 속에 담긴 내용이.

-……하여, 지엄하신 국왕 전하께서는 영토를 확장하려는 귀공의 노고와 충성에 감읍하신바.

-서신을 확인한 즉시 그대에게 새로운 작위와 영지를 수여하실 것을 약조하셨습니다.

새로운 서열을 갖추게 될 오등작의 귀족에게 보내는 통보장이었다는 것을.

……어느 날의 기억 속에서 떠올렸던 탓이었다.

-후작, 테일러 비도르 공에게 수여될 작위는 공작입니다.

-또한 새로이 편입된 동부의 영토 중 일부를 공국령으로 지정하고, 자치권을 인정하고자 하십니다.

-미리 승작에 대비하여 수여식에 차질이 없게 하십시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일거리가 늘어났다는 거다. 그것도 갑절로.

“커, 커어억! 전하아아!”

비도르 후작은 난데없이 찾아 든 경악할 소식에 뒷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 * *

고오오오-!

왕실의 연무장에 나열한 기사들.

그들은 벼려낸 검처럼 날 선 기세의 붉은 매 기사단이었으나, 오늘만큼은 그 살기가 정제되고 근엄했다.

“이제 가는군.”

“예, 전하.”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은.

제4 기사단의 단장인 브롬이었다.

아니, 지금부터는 그 이름을 사용할 필요는 없을 테지.

“브라함 레스피엘.”

“……!”

내가 그 이름을 불러내자, 무릎을 꿇은 놈의 몸이 움찔 떨렸다.

레스피엘 공국의 유일한 후계자 브라함.

마침내 조국을 망가뜨린 연방제국이 무너졌으니, 이제 약조한 대로 이곳을 떠나가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녀석은 정적을 깨고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말씀하십시오. 에스테반의 국왕 전하.”

“일어서라.”

“…….”

그 말이 의외였을까?

녀석은 일어서라는 내 목소리에도 움직이지 않을 뿐이었다.

“공국의 주인. 그대는 이제 타인의 앞에서 무릎을 꿇을 이유가 없고, 내게 예의를 차릴 필요도 없다. 일어서라.”

“……알겠습니다.”

철컥-

브라함은 이어진 목소리를 따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게 마주한 녀석의 표정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미묘했다.

“이미 관련된 정보는 알고 있을 테지만 궁금한 것이 있다면 말해 보도록.”

“……연방제국에 앗아 간 이후로 공국의 많은 것들이 변화했었다고 들었습니다.”

“음.”

차마 찾아보지 못했을 정보들.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던 그곳의 상황.

“그렇다면.”

일순, 그 표정이 슬픔 속에 잠겼다.

“저와 제 아버님의 추억이 남은 공작성은 그곳에 있습니까?”

어쩌면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정답을 확인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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