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3화 (3/225)

# 3

김필도는 음악을 들으며 옷을 벗어 걸었다.

상의를 벗고, 드레스 셔츠를 벗자 탄탄한 근육으로 뭉친 상체가 드러났다.

그런데 그의 상체는 보통 남자와 달랐다. 등에서부터 시작하여 앞쪽까지 온통 문신으로 들어차 있었다. 앞에는 백룡과 흑룡이 똬리를 틀고 승천하는 모습이고, 등에는 기왓장이나 갑옷 요대에 많이 사용됐던 귀면(鬼面)이 새겨져 있다.

근육의 움직임에 맞춰 문신을 새긴 듯 그가 동작을 취할 때마다 귀면의 얼굴 표정이 바뀐다.

활짝 웃기도 하고, 때론 지옥의 야차처럼 찡그린다.

그의 하체도 등이나 가슴과 다르지 않다. 발목 아래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문신으로 채워져 있다.

아니 그의 몸에서 문신이 없는 곳은 얼굴과, 손, 발뿐이다. 심지어 남자의 상징인 그곳까지 문신으로 채워져 있다.

김필도는 발가벗은 채로 그 자리에 가부좌를 했다. 그러고는 호흡을 골랐다. 소위 단전호흡이라고 부르는 호흡법이다.

어린 시절 체육관에 있을 때 우연히 들른 도사 스님께서 전수해 주신 호흡법이다.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필녀가 불쌍해 전수해 주는 거라고 하면서 제대로 익히고 나면 감기나 잔병으로 고생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하였다.

그다지 신뢰는 가지 않았지만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말에 열심히 호흡법을 익혔다. 가진 건 몸뚱이밖에 없는 사람에게 건강이 밑천이란 도사 스님의 말 때문이었다.

그 도사 스님이 가르쳐 준 호흡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아플 짬도 없이 살아온 삶 때문이었는지, 그건 모르지만 김필도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감기는 물론이고 잔병치레를 한 기억이 없다.

떡이 되도록 술을 마셔도 아침 6시면 어김없이 눈을 뜨고 말짱한 몸 상태로 출근을 하곤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피트니스센터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몸을 만들지 않아도 근육이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김필도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그런 이상 현상을 도사 스님이 전수해 준 호흡법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 이유 때문이었을까. 하루도 쉬지 않고 1시간 30분씩 호흡법에 몰두했다. 보통은 1시간 30분 정도에서 호흡법을 마치는데 요즘 들어서는 2시간 또는 2시간 30분을 할애한다.

그건 밤마다 꾸는 이상한 꿈 때문이었다.

“휴-우우!”

마지막 숨을 품어내며 김필도는 눈을 떴다. 그리고 욕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올 때까지도 엔야의 음악은 방 안에 물결쳤다.

그는 음악을 끄고 TV를 틀었다.

김필도가 보는 TV 프로그램은 뉴스가 유일했다.

“나사(NASA)에서는 또 다른 소행성 하나가 지구를 향해 접근해 오고 있지만 비켜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설사 지구와 충돌한다고 해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대기권에서 대부분 타 버리고 영향을 미치지 못할 거라고 브리핑했습니다.”

TV 헤드라인은 소행성에 대한 이야기가 장식하고 있다. 십여 일 전부터 소행성이 지구로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리라.

처음 소행성이 떨어진 곳은 미국의 뉴멕시코 주였다. 하지만 사막으로 떨어져 피해는 거의 없었다. 그로부터 이삼일에 한 번씩 소행성이 지구로 떨어졌다.

지구 멸망의 징조라며 밤샘 기도에 들어간 교회도 생겨나곤 했지만, 김필도는 웃고 말았다.

혼자 죽는 게 아닌 다 함께 죽는 거라면 아쉬울 것도 없다.

뉴스가 끝나고 다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침대에 몸을 뉘었다.

“꿈이여 물럿거라! 휙! 휘익! 오늘은 곱게 좀 자자.”

김필도는 신경질적으로 베개에 머리를 비비다가 어느 순간 잠에 빠져들었다.

제2장 현실과 꿈의 경계 그리고 빙의

하늘에 걸린 달은 마치 언젠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본 모기의 몸통 같다. 피를 잔뜩 머금어 바늘을 가까이 대기만 해도 붉은 비가 내릴 듯하다.

저 달을 레드 문(Red Moon)이라고 부르고, 블루 문(Blue Moon)과 다크 문(Dark Moon)이 있다는 사실을 김필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루트로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는 모른다.

마치 영어는 유창하게 하는데, 언제 누구로부터 배웠는지는 전혀 모르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과거 어느 시점의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젠장!”

분명 침대로 들어와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눈은 달을 보고 있다. 분명 저 광경이 꿈속의 한 장면이라는 걸 김필도는 알고 있었다.

수십 번도 더 꿈을 깨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위에 눌린 것처럼 꿈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아스카 아스 나하 달리스, 일루나 이하 부하 니홀리!”

붉은 달빛이 비추는 거대한 광장에서 웅장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2미터 사이를 두고 그려진 2개의 원. 큰 원과 작은 원 사이의 공간에는 알 수 없는 문양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안쪽의 작은 원 내부에는 별 모양이 그려져 있는데, 그 각 모서리에는 검은 로브를 걸친 자들이 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펜터그램, 즉 마법진이었다.

로브 후드를 깊게 눌러쓴 상태라 얼굴은 확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가슴팍까지 내려온 수염은 그들의 나이를 대략이나마 짐작하게 한다.

다섯 명은 한 곳을 바라보며 외치고 있는데 그들의 시선이 모이는 그곳에는 가슴에 검이 꽂힌 청년이 앉아 있었다.

김필도가 가위에 눌렸다고 확신하는 이유가 바로 검을 가슴에 꽂고 있는 청년 때문이었다.

그 청년은 김필도와 판박이였다.

검은 머리, 얼굴, 체구 등 모든 것이 일란성 쌍둥이처럼 같았다. 다만 한 가지. 눈동자만 파란색이었다.

파앗!

마법진에서 푸른색 광채가 솟구쳐 올랐다.

“아스카 아스 나하 달리스, 일루나 이하 부하 니홀리!”

그리고 로브를 걸친 자들의 입에서 웅장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그물처럼 촘촘하게 김필도를 감쌌다.

“도대체 너희들은 누구냐?”

김필도는 고함을 질렀다.

“난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네.”

“끙! 게임 끊은 지 언젠데…….”

대학 다닐 때 했던 게임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 황당한 노릇은 처음 듣는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알아듣는다는 사실이었다.

“손을 내밀게.”

그 말에 김필도는 자신도 모르게 왼손을 내밀었다.

잠시 후 마법진 안에서 손이 나와 김필도의 손을 잡았다.

“크억!”

불에 덴 듯한 통증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김필도는 얼른 손바닥을 살폈다. 손바닥에는 마법진 형태의 그림이 낙인처럼 새겨져 있었다.

“스피드 업(Speed up) 할 수 있는 마법이네. 박투 마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마법이니까 반드시 기억해야 하네.”

“박투 마법은 뭐지?”

“지금은 말해 줘도 모르네. 아무튼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라네. 꼭 손바닥을 펴 보이게.”

“미친놈, 그런데?”

김필도는 피식 웃었다.

방금 들은 그 말은 전날 윤치성에게 자신이 했던 말이다. 그런데 꿈속에서 루시안에게 그 말을 들은 것이다.

공연히 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명심하게.”

그 말을 끝으로 마법진을 감싼 푸른 광채가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안개가 걷힌 듯 천천히 머릿속이 맑아졌다.

문득 눈이 떠졌다. 어느새 아침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빌딩 숲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한동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주방으로 갔다.

집에서 식사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냉장고 안에는 음식이 거의 없다. 그는 냉동실 문을 열고 이틀 전에 사두었던 식빵 봉지를 꺼냈다.

봉지 안에서 식빵 두 장을 꺼내 접시에 놓고 나머지는 다시 냉동실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싱크대 구석진 곳에 놓아둔 콩을 꺼냈다. 로스팅한 지 삼 일 지난 신선한 커피다.

선반에서 핸드밀을 내려 커피콩 7그램 정도를 넣고 갈았다. 커피가 다 갈리자 여과지 안에 넣고 핸드 드립퍼에 장착했다. 그런 다음 물을 끓였다.

물이 끓는 동안에 토스터기에 식빵을 넣고 계란 프라이를 했다. 늘 그렇듯 프라이는 반숙이다.

주전자 뚜껑을 열어 김을 한 숨 빼고 커피 여과지 위에 천천히 부었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빵에 딸기잼과 땅콩잼을 바르고, 그 위에 달걀 프라이를 얹고는 빵을 덮었다.

샌드위치를 접시에 놓고 내려진 커피를 따랐다.

커피 잔을 들어 올리던 김필도의 머릿속에 문득 어젯밤 꿈이 떠올랐다. 다른 날과 달리 꿈속의 인물이 손을 잡았다.

그는 커피 잔을 쥐고 있던 손가락을 엉거주춤 폈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지그시 보았다.

“헉!

쨍그랑!

손에 들렸던 커피 잔이 대리석 식탁 위로 떨어져 박살났다. 커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김필도는 뜨겁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왼손 손바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왼손 손바닥에는 마법진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김필도는 벌떡 일어나 싱크대로 가서 물을 틀었다. 그러고는 손에 비누칠을 해 박박 문질러 씻었다. 하지만 손바닥의 마법진 문양은, 그의 전신에 새긴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말도 안 돼.”

그는 손바닥을 노려보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임을 많이 한 탓에 꾼 판타지 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손바닥에 루시안이 찍어 준 낙인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설마 지금도 꿈?”

김필도는 칼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칼로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조금 전 커피를 쏟았던 부분에 물집이 생겨나 있었다.

김필도는 다시 식탁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이건 도대체……!”

그는 다시 왼손을 보았다.

문신을 새기는 것처럼 판 것도 아니고 벌겋게 달군 인두로 찍은 것도 아니다. 마치 살 속에 물감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박투 마법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는 지그시 주먹을 말아 쥐었다.

루시안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기억하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에이, 모르겠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답이 나오지 않는 일에 매달리는 건 체질상 맞지 않다.

그는 옷을 벗어 세탁기 안에 던져 넣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는 다시 커피를 내려 천천히 식사를 마쳤다.

문득 손바닥의 낙인을 보자 밥을 굶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를 먹고도 양이 차지 않아 이번엔 굽지도 않은 마른 식빵에 잼을 발라 먹었다.

“갑자기 식탐이 강해지면 죽는다는데…….”

옷을 챙겨 입던 김필도는 중얼거렸다.

문득 옷장 안쪽으로 시선이 갔다. 그는 천으로 싼 물건을 꺼냈다. 묵직한 그것은 일본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는 사람을 통해 구한 일본도다.

도를 가져다준 사람에 의하면 6백여 년 전 무로마치 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도(刀)라고 하였다.

칼날의 길이만 120센티미터에 손잡이까지 합치면 170센티미터에 달하는 장도다. 더불어 단도가 있는데 단도의 길이는 칼날과 손잡이를 합쳐 70센티미터가량이다.

김필도는 도를 싼 천을 둘러맸다.

“저놈도 가져가야 하려나?”

이번에 김필도의 시선이 향한 옷은 방탄조끼였다.

방탄조끼에 눈을 맞추고 있던 그는 왼손 손바닥의 마법진을 보았다.

“가져가자.”

이내 결심을 굳힌 김필도는 침대 위에 일본도를 던져 놓고 드레스 셔츠 위에 방탄조끼를 껴입고 재킷을 걸쳤다.

다시 일본도를 집어든 그는 방을 휘둘러보다가 자동차 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

지하 주차장에는 그의 애마인 BMW750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동을 켜자 기분 좋은 엔진음이 귀를 간질인다.

그는 글러브 박스를 열고 사각형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도청장치가 들어 있었다.

도청장치를 장착해 놓은 목표물은, 정중수, 최태성, 장계상 세 사람이다.

직속상관인 정중수는 사무실, 입고 있는 옷, 그리고 차량까지 3곳에 설치했고, 최태성과 장계상은 어제 방문했을 때 지하주차장에 있던 그들의 차량에만 하나씩 설치했다.

그는 도청장치를 작동하는 스위치를 켜 조수석에 놓고는 안전벨트를 맸다.

곧 차가 스르르 미끄러져 나갔다.

지하 주차장을 나선 차는 곧바로 강북으로 향했다.

오늘은 강북, 강동, 영등포 그리고 인천의 컨테이너 터미널까지 가야 하는 강행군이다.

강북에서 업소 두 곳에 들르고 강동 두 곳, 그리고 영등포 네 곳을 들른 다음 늦은 점심을 먹고 경인고속도로로 핸들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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