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빠악!
“아악!”
둔탁한 소성과 함께 사내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내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스악!
그때 김필도의 왼편 허벅지에서 피가 확 솟았다.
회칼이 오른편 허벅지를 가르고 지나간 것이었다. 재빨리 오른발을 빼는 바람에 상처는 깊지 않은 듯했지만 피는 무섭게 흘러나왔다.
김필도는 도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회칼을 든 자의 뒷목을 향해 도끼질하듯 내리찍었다.
퍼억!
“커억!”
회칼 사내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푸욱!
“젠장할!”
일이 공교롭게 되려고 그랬는지, 도에 목을 가격당하고 기절한 녀석이 자신의 회칼 위로 쓰러진 듯 칼끝이 등을 뚫고 나와 있었다.
본의 아니게 살인을 저지르고 만 꼴이었다.
첫 번째 살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아니, 감흥을 느낄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해야 했다.
퍼억!
이번엔 등에서 강한 통증이 왔다.
김필도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쓰벌!”
꿇은 무릎을 중심으로 김필도의 신형이 빙글 돌았다. 그리고 강한 바람을 머금은 도가 덩치의 무릎을 후려갈겼다.
“커억!”
오른편 무릎 뼈가 부러진 사내는 비명과 함께 풀썩 쓰러진다.
김필도는 그런 사내의 턱을 사정없이 쳐올렸다.
“컥!
급소를 가격당한 사내는 또다시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좋아, 개자식들! 전부 와! 전부 오라…….”
푹!
고함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나는데 배에서 섬뜩함이 끼쳤다. 김필도는 시선을 내렸다. 회칼 한 자루가 방탄조끼 바로 아래쪽으로 파고들어 가 있었다.
김필도는 왼손으로 회칼을 잡았다.
회칼을 돌리게 되면 뱃속의 내장이 조각조각 잘려나가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해지기 때문이었다.
칼날을 잡자마자 손바닥이 베여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김필도는 왼손으로 회칼을 잡은 채 사내의 머리를 틀어쥐었다. 녀석은 회칼을 돌리면서 빼내기 위해 힘을 쓰는 중이었다.
“사시미는 나야, 호로새끼야!”
김필도는 사내의 머리를 끌어당기며 사정없이 머리를 들이박았다.
빠악!
“크아아악!”
사내의 입에서 터지는 고통스러운 비명도 김필도를 말리지 못했다. 사내의 머리를 뒤편으로 밀더니 처음보다 더 강하게 당기며 머리를 박았다.
빠악!
둔탁한 소리가 두 사람의 이마에서 터져 나왔다.
사내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김필도의 동작이 더욱 빨라지고, 두 사람의 얼굴에서 흐르는 피의 양이 많아졌다.
김필도는 미친 듯이 팔을 폈다가 다시 끌어당겼다.
피가 사방으로 튀고, 급기야 살이 짓이겨지기 시작했다. 회칼을 들었던 사내는 이미 기절을 한 듯 흐느적거렸다. 그 상황에서도 김필도는 쉬지 않고 사내의 이마를 끌어당기며 머리를 박았다.
퍼억!
바로 그 순간이었다.
둔탁한 소리가 김필도의 목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동작을 우뚝 멈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19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덩치 한 명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싱긋 웃고 있었다.
“개새…….”
녀석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설 수가 없었다.
풀썩!
김필도의 몸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씨팔! 이판사판인데.”
김필도는 조금 전 놓았던 도에 눈을 맞췄다.
도를 뽑는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몇 놈은 함께 저승으로 데려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뚜벅!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김필도는 눈에 힘을 주었다.
“괜찮은 실력을 가졌는데 아깝구나, 김필도.”
김필도 앞으로 다가간 자는 나무꾼 박두칠이었다. 박두칠의 손에는 외국인들이 통나무를 자를 때 사용하는 두께가 얇고 칼날 부분은 넓은 도끼가 들려 있었다.
“장계상이 시킨 거냐?”
김필도는 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여전히 다리가 풀려 일어날 수가 없었다.
“넌 너무 나댔어.”
“너무 나댄 게 아니라 너희들이 생각보다 빨랐어.”
“우리가 공격할 줄 알았단 말이구나.”
“장계상이 죽은 다음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장 회장님을 죽일 생각이었다고?”
“장계상, 최태성, 정중수 세 놈을 전부 없앨 생각이었어.”
“허, 그거 재미있는 시추에이션이네. 장 회장이나 최 회장님은 그렇다 쳐도 정중수는 왜 없애려고 한 거냐?”
박두칠은 놀란 눈으로 김필도를 보았다.
지금껏 김필도는 정중수의 오른팔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본인 입으로 직접 정중수를 없애려 했다고 한다.
“내 동생을 죽인 놈이거든.”
“네 동생?”
“11년 전 일이니까 너는 모를 거다.”
“그 열세 살짜리 계집애가 네 동생이었냐?”
“……!”
김필도는 박두칠을 올려다보았다.
“그 계집애를 저수지에 던진 사람이 나야. 회장들이 눈이 뒤집힐 만하더구나. 열세 살밖에 안 된 계집년이 그렇게 풍만한 몸매를 가지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오죽했으면 저수지에 던지기 전에 내가 한 번 했겠냐.”
그때를 떠올린 듯 박두칠은 히죽 웃었다.
“그, 그럼 저수지에 던지기 전에도 살아 있었단 말이냐.”
“맞아. 마약 기운이 아직 남아 있어서 착착 감기는데 미치는 줄 알았어.”
“크큭!”
김필도의 입에서 메마른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무튼 너희 남매는 나와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둘 다 내 손에 죽게 됐으니까 말이다.”
박두칠은 도끼를 번쩍 들어 올렸다.
하지만 김필도는 박두칠을 보지 않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은 왼손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회칼을 쥐어 쩍 벌어진 왼손 손바닥이다.
쩍 벌어진 상처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나온다. 하지만 피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동영상으로 찍은 폭포 사진을 되감을 때처럼 피는 손바닥 안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그런데 부상을 당한, 쩍 갈라진 부위로 빨려들어 가는 게 아니었다. 놀랍게도 전날 밤 꿈속에서 만들어진 마법진으로였다.
마법진은 흡혈귀처럼 피를 빨아들인다.
인두로 지진 것처럼 검은색이었던 마법진이 점차 붉게 변해 갔다. 마치 간밤에 보았던 레드 문 같았다.
“잘 가라, 김필도!”
사악한 웃음이 스민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도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간밤의 꿈속에서 들었던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의 목소리였다.
“나는 너다!”
김필도는 저도 모르게 따라 했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가 옅은 파란색으로 변했다.
제3장 황혼에서 새벽까지
퍽!
박두칠은 깜짝 놀랐다.
조폭 생활 25년차인 그는, 어떤 상황에서는 설령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김필도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오른쪽 허벅지는 쩍 갈라졌고, 왼편 어깨와 갈비뼈 그리고 머리는 깨졌다. 그리고 배에는 회칼이 깊숙이 박힌 상태다. 설령 신이 어루만져 준다고 해도 일어설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도끼가 목을 향해 떨어지는 순간 놈은 몸을 굴려 피한 것이었다.
“흐크큭!”
그때 김필도는 도를 집어 들고 일어서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메마른 웃음이 흘러나왔다.
김필도는 천천히 도를 뽑았다. 도신(刀身) 120센티미터, 손잡이 50센티미터 총 170센티미터. 일반적인 일본도보다 길게 만들어진 이유는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120센티미터에 달하는 도신은 중간 부분에서 약간 휘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다.
베기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김필도는 오른손으로 가드 바로 아래쪽을 잡았다.
“죽여!”
박두칠은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차앗!”
“타앗!”
“이야압!”
기다렸다는 듯 박두칠의 부하들은 김필도를 향해 달려갔다.
척!
김필도는 도를 오른편 어깨 위로 세웠다. 그리고 왼손으로는 손잡이 아래쪽을 살짝 잡았다.
쇄액!
강한 바람 소리를 흘리며 골프클럽이 날아왔다.
김필도는 도를 내렸다. 도 끝이 땅바닥에 닿으려는 순간, 벼락처럼 사선으로 그어 올렸다.
스악!
그의 도는 덩치의 왼편 옆구리로 파고들어 가 뼈를 가르고, 오른편 어깨로 빠져나왔다.
“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피가 확 튀었다.
김필도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어 강하게 디디며 하늘로 향해 있던 도를 일자로 내리그었다.
스악!
또다시 섬뜩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덩치의 정수리를 파고들어 간 도는 사타구니 사이로 빠져나왔다.
곧바로 왼발을 우측으로 돌리며 그 여력을 이용해서 도를 횡으로 휘둘렀다. 도는 핏방울을 뿌리며 덕대의 목으로 파고들어 갔다.
스악!
“컥!”
나직한 비명과 함께 잘려 나간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
“죽어라!”
“죽여라!”
동료의 죽음에 광분한 덩치들은 더욱 거칠게 달려들었다. 골프클럽을 휘두르고, 쇠몽둥이로 찍고, 체인을 휘둘렀다.
하지만 김필도는 침착하게 그들의 무기를 막아내며 도를 휘둘렀다.
푸르스름한 광채를 뿜어내는 도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검붉은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내렸다.
파앗!
김필도 뒤에는 경주마가 바닥을 차고 달리는 것처럼 깊은 자국이 남았다.
어느새 덕대와 마주 선 김필도는 들어 올렸던 도를 내리그었다.
덩치의 오른편 어깨로 파고들어 간 도는 오른편 옆구리로 빠져나왔다. 순식간에 울대를 베어 버린 듯 덩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박투 마법 검술이네.
“좋군. 마음에 들어!”
김필도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몸을 날렸다.
스악!
“커억!”
휙!
“크아아악!”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란 말이 이처럼 어울릴까. 김필도는 가공할 속도로 움직여 다니며 덩치들을 도륙했다.
“이야압!”
박두칠은 목이 터져라 기합을 지르며 김필도를 향해 내달렸다. 도끼를 들고 달려가는 그의 얼굴은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조폭 생활 25년.
그 세월 동안 수많은 싸움을 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엄청난 광경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패싸움을 하더라도 가급적 상대를 죽이지 않는 한도 내에서 끝냈고, 살인 또한 어쩌다가 실수로 저지르곤 했다.
그럴 경우엔 쌍방이 합의하여 조용히 끝냈다.
살인 사실이 알려지면 서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김필도를 조용히 묻고 끝을 내려고 했다. 그 반대의 경우, 즉 김필도에게 블루팀이 당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물론 팀원 몇 명 정도 부상은 접고 들어갔다. 어렸을 때부터 격투기 체육관에서 살았던 녀석을 상대하면서 부상이 없을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결단코 팀원의 죽음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서른 명 이상의 팀원이 죽고 지금도 죽어나가고 있다. 박두칠 살아생전에 이런 참혹한 도살은 처음이었다.
“으아아아아!”
박두칠은 고함을 내지르며 들어 올렸던 도끼를 힘껏 내리찍었다. 바로 그 순간, 김필도의 신형이 탄환처럼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
그리고 그의 왼손이 오른편 허리춤으로 향했다.
푸욱!